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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51년 5월 12일 |
출신지 | 펜실베니아 주 펜 힐즈 |
학력 |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교 |
포지션 | 가드 |
프로입단 | 1973년 드래프트 4라운드 (전체 66번, 뉴욕 닉스) |
소속팀 | 샌안토니오 스퍼스 (ABA/NBA) (1973~1978) |
지도자 | 샌안토니오 스퍼스 어시스턴트 코치 (1978~1980) 몬태나 골든 너기츠 감독 (1980~1983)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감독 (1984~1986)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감독 (1986~1988) 앨버니 팻룬스 감독 (1988~1989, 1990~1991)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 감독 (1989~1990, 1991~1992) 시애틀 슈퍼소닉스 감독 (1992~1998) 밀워키 벅스 감독 (1998~2003)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2) 덴버 너기츠 감독 (2005~2013) 새크라멘토 킹스 감독 (2015~2016) |
등번호 | 22번 |
2013년 NBA 올해의 감독상 | |||||
그렉 포포비치 | → | 조지 칼 | → | 그렉 포포비치 |
목차
1 개요
NBA의 감독. 필 잭슨, 플립 손더스와 더불어 CBA에서 감독생활을 시작한 감독 중 한 명.
2 일생
2.1 선수생활
명예의 전당 포인트가드 조조 화이트를 상대하는 조지 칼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딘 스미스 밑에서 농구수업을 받고 난 후 1973년에 드래프트 4라운드 66번으로 뉴욕 닉스에 지명되었으나, 지명을 포기하고 ABA 팀인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입단, NBA에 합병된 이후인 1978년까지 5년간 선수로 뛰었다.
2.2 감독생활
2.2.1 시애틀 슈퍼소닉스
은퇴하자마자 스퍼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 1980년에 CBA 팀인 몬태나 골든 너기츠 팀의 감독으로 데뷔, 3년 뒤에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감독으로 처음 NBA 감독 무대에 데뷔했다.
그후 골든스테이트-CBA팀 앨버타-레알 마드리드 농구팀을 거치며 별 볼일 없는 행보를 걸어오다가, 1991~92시즌 도중 KC존스 감독이 물러나면서 공백상태에 빠진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감독으로 취임하기 시작한다.
부임 이후 숀 켐프-게리 페이튼을 축으로 하여 시애틀을 다시 강팀으로 변모시켰고, 1990년대 중반에 4차례 지구 우승을 차지하며 서부의 강호로 도약했지만, 1994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 1번 시드로 오고도 8번 시드인 덴버 너기츠에 깨지는 굴욕을 겪었다.
그 이후 절치부심하여 1995-96시즌에 압도적인 기세로 NBA 파이널에 도약했지만, 상대는 그 분이 이끄는 정규시즌 72승을 기록한 시카고 불스(...) 결국 소닉스는 나름 선전하다가 2승 4패로 패하면서 우승의 적기를 놓쳤고, 그 뒤로는 유타 재즈의 도약과 LA 레이커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시대를 지켜보는 신세로 전락했고, 결국 칼은 1997-98 시즌을 끝으로 해임당했다.
2.2.2 밀워키 벅스
1998년에 당시 약체 상태였던 벅스의 감독으로 취임, 글렌 로빈슨과 레이 알렌을 축으로 부임 첫 시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1999년에 샘 카셀을 영입해 로빈슨-알렌-카셀의 '빅 3'로 삼각편대를 이루어 다시 강호로 도약하여 2000-01시즌에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했지만, 앨런 아이버슨이 이끌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게 3승 4패로 지면서 아깝게 파이널 진출에 실패했다. 이 때 밀워키 선수들은 NBA 사무국이 흥행을 위해 필라델피아를 밀어주는 부커짓을 한다고 불만을 표했다가 벌금 크리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이 빅3 체제도 팀워크의 문제가 보이면서 오래가지 못했고, 대신 2000년에 2라운드 43번으로 데뷔했던 마이클 레드를 축으로 어떻게든 어수선한 상황을 타개해보자 했으나, 2003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뉴저지 네츠에게 광탈당한 것을 끝으로 팀에서 경질되고 만다.
2.2.3 덴버 너기츠
2004-05 시즌 도중에 경질된 덴버의 감독 마이클 쿠퍼의 대타로 부임, 그는 2003년에 1라운드 3픽으로 뽑힌 카멜로 앤써니의 재능을 발견함과 동시에 앤써니를 축으로 한 특유의 공격농구로 플레이오프에 단골로 진춣시켜 덴버를 다시 서부의 강호로 발돋움시켰고, 2006년 12월 28일에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꺾어서 개인 통산 800승에 도달했고, 2008년 12월 31일에 토론토 랩터스를 이기고 900승, 더 나아가 암으로 투병중인 2010-11 시즌에도 1,000승을 달성했다.
앤써니가 떠난 2011년부터 조직력을 이용해서 변함없이 플레이오프에 꾸역꾸역 갔고, 특히 2012-13 시즌에서 홈경기 기준 33승 3패를 기록해 '홈덴버' 라는 명칭을 얻고 2013년 올해의 감독상까지 받았으나, 불행히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2승 4패로 광탈당하고 해임당한다.
2.2.4 새크라멘토 킹스
이후 2년간 ESPN 해설자를 하는등 코트 바깥에서 지내다 2015년 2월 13일에 4년 1450만 달러로 임시 감독에 부임, 올스타전 브레이크 이후인 22일 보스턴 셀틱스전부터 감독직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시즌 중에만 3번째 부임하는 감독으로 4년 계약을 준 만큼 팀에서도 어느정도 전권을 위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선임과정 중에서 팀의 스타인 드마커스 커즌스의 에이전트가 조지 칼을 탐탁치 않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또다시 삐긋거리고 있는 상황. 후술하겠지만 조지 칼의 전략 스타일이 커즌스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건 사실이라 커즌스를 얼마나 잘 달래어 멘탈을 잡고 팀을 재건할지가 조지 칼의 숙제로 나오게 되었다.
2016년 초, 수비가 안좋다는 이유로 경질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막장구단 새크라멘토만은 명장인 그도 플레이오프로 올릴 수 없었던 모양. 마이크 말론 시절에는 공격농구 하라고 해고하더니 이번엔 반대로 하는 꼴. 결국 칼은 나가고 오프시즌에 멤피스 감독이었던 데이브 예거가 킹스의 새 감독이 되었다.
3 감독 스타일
故 딘 스미스 코칭 트리에 속해 있으면서 대단히 화끈하고 공격적인 농구를 펼치며 수비지향보다는 업템포 공격지향을 우선하는 성향의 코칭을 한다. 그의 밑에서 배운 코치들은 스캇 브룩스 前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감독, 테리 스토츠 現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감독, 드웨인 케이시 現 토론토 랩터스 감독이 있다.
특히 브룩스와 스토츠는 조지 칼의 혼즈 셋(Horns set)을 잘 활용하는 편인데
혼즈 셋이란 이렇게 퍼지는 대형을 의미한다. 골밑을 비워두는 대신 두명의 빅맨이 하이포스트의 좌우 끝에 서서 탑에 선 1번과 적절한 픽앤롤로 수비를 벗겨낸뒤 시작하는 모션 오펜스. 현재의 썬더와 블레이저스는 확실한 포스트업 득점원보다는 스트레치 빅맨과 적극적인 3가드 활용등 양궁농구에 강점을 보이는 팀이다. 조지 칼은 이런 팀의 기틀을 만드는데 능했던 감독이다.[1]
시스템을 우선시하는 감독이다보니 즉흥적인 작전지시보다는 벤치에 앉아 스포츠 음료를 들이킬 때가 더 많다고 한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벤치 멤버를 폭넓게 기용하며 로테이션 농구에도 눈을 떴다. 카멜로 앤써니 트레이드 이후 슈퍼스타 없이 승리하는 법도 깨우쳤다. 다만 이런 팀이다보니 플레이오프와는 인연이 별로 없는 편.
4 여담
현역 NBA 감독 중에서는 최다 승수 보유자이다. (2위는 그렉 포포비치)- ↑ 혼즈 셋의 이상적인 구성은 위치 보면 알겠지만 1-2-3번 전원이 3점 슛을 쏠 줄 알아야 하고, 4,5번은 중거리 슛을 쏠 레인지가 있어야 한다. 딱 양궁농구에 최적화된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