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크라멘토 킹스

NBA 서부 컨퍼런스
퍼시픽 디비전
45px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Golden State Warriors)
45px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Los Angeles Lakers)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Los Angeles Clippers)
55px피닉스 선즈
(Phoenix Suns)
새크라멘토 킹스
(Sacramento Kings)
­
새크라멘토 킹스
Sacramento Kings
창단1923년
연고지캘리포니아새크라멘토
컨퍼런스서부 컨퍼런스
디비전퍼시픽
현재 연고지로 이동1985년
구단 연고지 변천로체스터 (1923~1957)
신시내티 (1957~1972)
캔자스시티 (1972~1985)
새크라멘토 (1985~)
구단명 변천로체스터 시그램스/로열스 (1923~1957)
신시내티 로열스 (1957~1972)
캔자스시티 킹스 (1972~1985)
새크라멘토 킹스 (1985~)
구단주비벡 레너딥 (Vivek Ranadivé)
단장피트 D. 알레산드로 (Pete D'Alessandro)
감독데이브 예거 (Dave Joerger)
파이널 우승
(1회)
1951
컨퍼런스 우승
(1회)
1951
디비전 우승
(3회)
1979, 2002, 2003
홈구장골든 1 센터
약칭SAC
홈페이지
유니폼
원정얼터네이트

1 개요

NBA의 프로농구팀. 서부 컨퍼런스 퍼시픽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새크라멘토. NBA에서도 손꼽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팀이지만, 오랜 역사에 걸맞지 않는 안습한 성적을 가진 팀이기도 하다. 연고이전이 드물지 않은 NBA에서도 연고이전이 상당히 잦은 편인 팀.

2 역사

1923년 뉴욕주 로체스터 시를 연고로 하고 주류/음료 회사인 시그램의 지원을 받아 '로체스터 시그램스'라는 이름의 세미프로 팀으로 창단, 이후 1945년에 해리슨 형제에게 인수되어 NBL에 가입하면서 로체스터 로열스라는 팀 명칭으로 바꾸었다. 처음에는 NBA의 전신인 BAA에 대항하는 NBL 소속이었고, 당시 감독 겸 구단주인 레스 해리슨의 지휘 하에 NBL 소속으로 1차례 리그 우승에 성공했다. 그러다가 NBL이 BAA에 통합되어 오늘날의 NBA가 형성될 때, 합류하게 되었다. 초창기 전력이 괜찮았기 때문에 1951년에 NBA 우승에 성공하면서 강호로 이미지를 형성하는가 싶었는데, 그 때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 우승이 이 프랜차이즈가 가진 처음이자 마지막 NBA 파이널 진출이었음을.

영광스러웠던 로체스터 시절은 이렇게 끝을 고하게 되었는데, 당시 구단주인 해리슨 형제(형인 레스 해리슨은 1945년부터 1955년까지 초대 감독도 겸했다.)는 시장 규모가 작은 로체스터 대신에 오하이오주의 신시내티로 연고를 옮겼다. 신시내티 로열스 시절은 그래도 나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불세출의 포인트가드 오스카 로버트슨의 지휘 아래 제법 강호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끝내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시대에는 윌트 체임벌린, 빌 러셀과 같은 괴수들이 우글거리던 시절이었고, 하필이면 이 팀은 센터가 약점이었다. 아니, 약점이 아닐 수도 있었다. 이 팀에는 빌 러셀과 맞먹는다는 모리스 스토크스라는 걸출한 센터가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는 뇌진탕 후유증으로 전신마비가 오면서 코트를 떠났다.

그래도 오스카 로버트슨과 위대한 50인 중 한 명인 제리 루카스의 활약 덕분에 강호로서 입지는 굳혔지만, 결국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70년 결국 오스카 로버트슨은 팀을 떠났고, 로버트슨은 새롭게 도착한 밀워키 벅스에서 생애 첫 우승 반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신시내티 로열스는 또 새로운 구단주에게 팔려 신시내티를 떠나 캔자스시티로 연고를 옮겼다. 그리고 팀 명도 동명의 야구팀을 의식하여 캔자스시티 킹스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때부터 킹스는 대세 하락기에 접어들었다. 스타야 간간히 나오고 플레이오프도 가끔 갔지만, 일단 이기지를 못하니 관중이 올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 당시 캔자스시티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메이저리그 최강이었던 야구팀과 NFL 강호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더 대세였고[1], 이사온 허접한 농구팀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1985년 다시 연고지를 서부 캘리포니아 주의 주도, 새크라멘토로 이전했다.

그러나 일단 암흑기에 접어든 팀이 뭐가 달라질 이유는 없었다. 애당초 망해가던 이 팀은 1986-87시즌부터 1994-95시즌까지 9년 연속 PO 진출 실패라는 수모를 당했다. 다행인 것은 이렇다 할 스포츠가 없던 새크라멘토 시민들이 그들을 꾸준히 응원해 줬다는 것.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암흑기 에이스인 미치 리치먼드를 1998년에 워싱턴 위저즈로 보내고, 기대보다 성장세가 덜하던 포워드 크리스 웨버를 받으면서 개혁의 신호탄을 썼다. 이 때 부임한 새로운 감독은 바로 릭 아델만.

릭 아델만은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를 NBA 팀 중에서 최초로 전면적으로 도입했고, 이를 가장 잘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그간 약체로 있으면서 잘 모았던 전력이 모션 오펜스와 결합하면서 1990년 말과 2000년대 초반, 드디어 새크라멘토는 NBA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농구를 구사하면서 이른바 밀레니엄 킹스의 시대를 열었다. 마이크 비비 - 덕 크리스티 - 페자 스토야코비치 - 크리스 웨버 - 블라디 디박, 여기에 브래드 밀러, 바비 잭슨을 위시한 풍부한 벤치 멤버를 축으로 물 흐르는 듯한 공격 전개와 다섯 명 모두가 유기적으로 플레이하는 우아한 팀 플레이를 구사하면서 최고의 인기 팀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들은 마지막 한 고비를 넘지 못했다. 특히 가장 아쉬웠던 것은 2001-02 시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LA 레이커스와 만나 정말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결국 졌다. 특히 4차전 99-97로 앞선 상황에서 골밑에서 탭 아웃한 볼이 하필이면 로버트 오리에게 갔고, 그게 역전 3점포가 되면서 좌절하는 일명 오리 꽥 샷으로 진 장면은 킹스 팬들에게는 정말 통한의 순간이었다. 그 순간만 버텼다면 3승 1패로 앞서나가는 것이었고[2], 그랬다면 천하의 LA 레이커스와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였다고 해도 뒤집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동부 컨퍼런스의 상대는 정말 만만해 보이는 뉴저지 네츠였기 때문이었다. 여담으로 이 시리즈는 조작논란이 있는 시리즈이다. 그 경기에서 심판을 맡지는 않았지만 도박 스캔들에 연루되었던 팀 도너히(실제로 06/07 샌안대 피닉스 세미파이널 3차전을 승부조작했다)가 이전부터 많은 승부조작이 있었다며 예를 든 대표적인 경기가 레이커스대 킹스의 6차전 경기. 당시 6차전에서 레이커스는 4쿼터에만 자유투 27개를 얻어냈으며 시즌 자유투 성공율이 50%수준이던 샤킬 오닐은 자유투 할때 선을 넘는 바이얼레이션을 저질렀지만 전혀 심판의 제지를 받지 않으며(자유투시 바이얼레이션을 저질렀을 경우 그 자유투는 그냥 실패한것이 된다. 마지막샷때 바이얼레이션을 저지르면 공격권은 자동적으로 수비팀에 넘어간다.) 자유투 17개 중에 13개를 넣었다.

우아하고 아름답던 밀레니엄 킹스의 시대는 핵심이던 크리스 웨버가 부상으로 기량이 쇠퇴하고, PO에서 자꾸 7차전 접전 끝에 탈락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해체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토야코비치를 대신해서 데려온 론 아테스트는 팀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아델만 감독도 팀을 떠났다. 결국 그렇게 밀레니엄 킹스의 전성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 이후 2006년에 샌안토니오 스퍼스와 1라운드에서 만나 2-4로 탈락한걸 마지막으로 계속 플레이오프에 올라가지 못하는 암흑기가 시작됐다. 케빈 마틴이 뭔가 아쉬운 에이스 역할을 맡았다가 휴스턴 로키츠로 트레이드됐고, 타이릭 에반스가 오스카 로버트슨,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만이 성공했던 루키시즌 20득점-5리바운드-5어시스트를 찍으며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갈수록 성적이 나빠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코어가 되는데 실패한다.

팬들의 성원은 여전하지만, 킹스는 2010년대 초반까지도 이렇다 할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특히 크리스 웨버의 고백에도 나왔지만 새크라멘토 자체가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작은 도시인 데다, 리그의 최대 다수인 흑인 선수들이 이 동네가 흑인들이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기피해서[3] 특급 선수들이 오길 싫어한다. 그래서 백인, 유러피언들 중심으로 전력을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다.

2.1 2013-14 시즌

2013년 오프시즌에 재능은 출중하지만 멘탈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를 듣는 센터 드마커스 커즌스와 맥시멈 재계약을 맺고 타이릭 에반스를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로 트레이드, 12월에는 토론토 랩터스에서 루디 게이,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에서 데릭 윌리엄스를 받으면서 어정쩡한 선수들 정리에 나섰다. 에반스, 바스케즈의 트레이드로 핵심 식스 맨에서 주전으로 오른 아이제아 토마스와 리더로 자리잡은 커즌스의 성장, 토론토에서 트레이드 된 이후에는 기대하고 있던 모습을 보여준 게이가 큰 위안이었지만, 야심차게 영입했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핵심 식스맨이었던 칼 렌드리는 부상으로 인해 시즌 전부터 시즌아웃 돼 버리고 슈터인 짐머 프레딧은 완전히 시망, 루키인 벤 멕클레모어 역시 장신가드로서 기대를 받았지만 갈 길이 멀어보이는 슛팅 정확도 및 슛 타이밍을 보여주었다.

토마스-게이-커즌스 라인이 각자 20득점씩 해주며 셋이 같이 뛸 때면 5할에 가까운 승률은 찍어줬지만 3인방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한명이라도 빠지면 지고 들어가는 일이 많았고, 허약한 가드진과 불안한 수비, 너한번 나한번 식의 단순한 공격전술 등[4] 약체팀의 한계를 보여주며 유타, 레이커스와 함께 서부 컨퍼런스 하위권에서 멤도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결국 짐머 프레딧을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맞추어 방출시키고[5] 마커스 쏜튼도 브루클린 네츠로 트레이드 하는 등 팀 정비를 계속하는 시즌이 되었다. 최종 성적은 28승 54패(.341)로 뒤에서 7번째의 성적. 그나마 유타 재즈와 레이커스 덕분에 서부지구 전체 꼴찌는 면했다.

2.2 2014-15 시즌

루디 게이가 $19.3M의 플레이어 옵션을 사용하면서 14-15 시즌까지는 함께하게 되었다. 드래프트에서는 8픽을 차지. 인디애나 대학의 유망주 파워포워드 노아 본레를 거르고 미시건 대학의 슈터인 닉 스타우스카스를 선택했다. 단신이라 한계가 있는 토마스를 대체할 포인트가드 영입, 제이슨 톰슨/칼 랜드리/데릭 윌리엄스/레지 에반스 등 어정쩡한 선수 투성이인 프론트코트 정리 등 과제는 많이 남아 있는데 여타 리빌딩 팀들하고는 달리 팀 샐러리는 빡빡한 상황.

시즌 초반에는 커즌스와 게이의 활약과 새로 온 포인트가드 대런 콜리슨의 적응 성공으로 의외로 잘나가며 플레이오프 진출도 노려볼 만한 기세를 뿜었지만 커즌스가 뇌수막염으로 결장하자 패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12월 15일(한국시간), 마이크 말론 감독을 경질하고 타이론 코빈 어시스턴트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성적 부진이었으나 애초에 말론 감독과 프런트진 사이에 마찰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코빈 감독대행이 지휘하는 동안 팀은 7승 21패를 찍으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좋은 뉴스라면 커즌스가 올스타전에 코비 브라이언트의 대체 선수로 나가며 11년만에 올스타를 배출한 점 하나.[6]

2015년 2월 12일, 킹스는 덴버 너기츠의 감독이었던 조지 칼을 신임 감독으로 선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스타전 브레이크 이후부터 감독으로서의 임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선임과정 중에서 팀의 스타인 드마커스 커즌스의 에이전트가 조지 칼을 탐탁치 않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또다시 삐긋거리고 있는 상황. 아무튼 조지 칼이 부임한 만큼 커즌스를 얼마나 잘 달래어 멘탈을 잡고 팀을 재건할지가 조지 칼의 숙제로 남게 되었고, 시즌 막판에 주포인 커즌스와 게이를 빼면서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고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최종 성적은 29승 53패. 언제쯤 30승 고지를 돌파할 수 있을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2.3 2015-16 시즌

커즌스가 새크라멘토를 떠날 수 있다는 루머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가운데, 드래프트에서는 6픽으로 켄터키 대학교의 수비형 센터 윌리-칼리 스테인을 선택하면서 커즌스가 파워포워드로 포지션 변경. 댈러스에서 욕만 먹고 나온 라존 론도가 주전 포인트가드를 영입하고 시즌을 시작했는데...아니나다를까 커즌스와 조지 칼 감독 사이에 불화설이 터졌다.

둘의 사이는 대충 수습하고 유타, 포틀랜드와 플레이오프 막차싸움을 하고 있었다. 조지 칼의 업템포 농구가 정착하고 론도가 댈러스 시절보다 폼이 살아나면서 공격력은 제법 봐줄 만한 팀이 되었지만 수비는 아예 놓아버렸다. 4쿼터 승부처에서 약해지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고 있다. 1월에 좀 잘나가면서 8위까지 올라가는 듯 하더니 순식간에 패를 쌓으면서 플옵권에서 탈락하더니 조지 칼을 경질시키려고 하고 있다. 막장 프론트부터 어떻게 하지 않으면 리빌딩은 절대 끝나지 않을 듯. 조지 칼쪽 코치였던 어시스턴트 코치 벤스 윌버그를 해임한것으로 보아 심하게 압박하고 있는 모양.

어찌 됐건 플레이오프는 탈락해버렸고 4월 1일 현재 꿈에 그리던 30승은 달성했다.

2.4 2016-17 시즌

16-17 시즌부터 새크라멘토 킹스를 이끌 새로운 선장으로 前 멤피스 그리즐리스 감독이었던 데이브 예거를 선임했다. 계약 조건은 4년간 1600만 달러. 이번엔 좀 진득이 기다려줘라잉 드래프트에서는 안그래도 자리가 없는 포지션인 센터만 둘을 뽑는 이상한 선택을 하고, 게이가 트레이드 블록에 오르는가 하면 주전 포가로 뛰어야 할 콜리슨이 가정폭력을 저질러 출장정지 징계를 받는 등 시즌 시작 전부터 뒤숭숭하다.

첫경기인 피닉스 선즈 원정에서는 낙승을 거뒀으나 새로운 홈구장 골든 1 센터에서의 첫경기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만나는 바람에 패배했다.

3 2번에 걸친 연고이전설

2010-11 시즌 종료 시점에서 킹스의 연고 이전 설이 나왔다. 아래 나온 구단주 말루프형제가 재산을 잃으면서 매물로 킹스를 내놓았고 거의 확실하게 연고를 LA 근교의 애너하임으로 이전해서 애너하임 로열스로 탄생한다는 것이 유력했는데, 새크라멘토 시가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그들에게 새 구장을 지어주기로 약속하면서 결국 새크라멘토에 남기로 결정했다. 오클랜드 보고있나 남은 것은 이제 리빌딩은 완수해서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것이다. 여전히 새크라멘토 팬들은 킹스를 사랑한다. 그리고 2012년 킹스가 우승했는데, 그 우승한 킹스는 NHL의 LA 킹스였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또다시 연고 이전 이야기가 나왔다.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의 연고이전으로 농구팀을 잃은 시애틀에서 신축구장 계획을 발표함과 동시에 크리스 핸슨과 스티브 발머가 이끄는 시애틀의 투자 그룹(이하 시애틀 그룹)이 킹스 인수에 관심을 보이면서 다시금 매각설과 연고이전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결국 킹스의 구단주인 말루프 형제가 구단 지분의 65%를 시애틀 그룹에 매각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자인 시애틀 그룹은 이 팀으로 2013-2014 시즌부터 사라진 시애틀의 프랜차이즈인 슈퍼소닉스를 부활시킬 생각을 갖고 있고,[7] 이것이 현실이 될 경우, 단순한 연고이전 수준이 아니라 과거 시애틀 슈퍼소닉스가 그랬던 것처럼 킹스 프랜차이즈는 사라지고 지금의 킹스가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프랜차이즈를 이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시애틀로 입양가는 것. 그리고 이것은 높은 확류로 현실이 될 뻔했다. 시장이자 NBA 레전드인 케빈 존슨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전력으로 저지하기 위해 퀄컴 CEO 폴 제이콥스, 24 HOUR FITNESS[8]의 설립자 마스트로브 등의 투자자를 끌어모으고(이하 새크라멘토 그룹) 2013년 4월 30일에 있었던 NBA 위원회에서는 연고이전을 만장일치로 부결시켰다. 하지만 시애틀 그룹이 구단을 인수하는 대가로 지불할 돈의 100%를 NBA 시스템에 입급시킨 반면, 새크라멘토 그룹은 50%밖에 입금시키지 않았고 무엇보다 말루프 형제가 강력히 시애틀 그룹에 구단을 팔기를 원하면서 만약 연고이전이 부결될 경우 새크라멘토 그룹에 구단을 팔지 않고 20%의 주식만을 시애틀 그룹에 팔며 구단을 계속 운영해 나갈것을 선언하였다. 무엇보다 시애틀 그룹은 115m의 금액을 연고이전 대가로 내놓을 것을 선언함으로서[9] 5월 15일에 있을 NBA 구단주 회의에서의 최종결과가 주목되었다.

결과는 연고이전반대. 22:8로 연고이전 반대의 표가 집중되면서 결국 킹스의 연고대결은 새크라멘토 잔류로 결국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말루프 형제는 새크라멘토 그룹에 결국 구단을 팔면서 당분간은 연고 이전 소동이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럴러면 하루빨리 다운타운에 새 구장을 지어주어야겠지.

그리고 마침내 킹스의 새로운 구장 건설 계약이 발표되었다. # 구장 건설 비용의 절반 가량을 새크라멘토 시에서 부담하기로 했으며, 개장 시기는 2016~17시즌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대로 일이 순조롭게 흘러간다면 연고지 이전 이야기는 완전히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4 영구결번

1. 네이트 아치볼드(Nate Archibald) : 가드로 캔자스시티 시절을 상징하는 선수. NBA 50주년을 맞아 선정된 위대한 NBA 50인 중 한 사람이다.

2. 미치 리치먼드(Mitch Richmond) : 암흑기 새크라멘토 시절의 팀의 에이스.[10]

4. 크리스 웨버(Chris Webber) : 밀레니엄 킹스 시절의 주역 중의 주역. 새크라멘토 이전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

6. 팬(Sixth Man) : 새크라멘토의 열성적인 팬들을 위해 비워둔 번호. 코트에서 다섯 명이 뛰고, 팬들은 여섯 번째 선수라는 의미다.

11. 밥 데이비스(Bob Davies) : 로체스터 로열스 시절의 선수로 1951년 우승의 주역이다.

12. 모리스 스토크스(Maurice Stokes) : 미국의 임수혁. 뇌진탕과 이로 인해 찾아 온 급성 뇌염이 아니었다면 빌 러셀과 맞먹을 수 있던 선수. 이 부상으로 인해 1970년 타계할 때까지 12년을 병상에서 전신마비로 살아야 했다.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절, 심한 파울을 당하면서도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으나 병마로 커리어를 끝냈다.

14. 오스카 로버트슨(Oscar Robertson) : 신시내티 로열스 시절 시즌 평균 트리플 더블을 달성한 당대 최고의 포인트 가드.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고, NBA 위대한 50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16. 페자 스토야코비치(Peja Stojaković) : 밀레니엄 킹스 주역 중 한명으로 유고(유고 연방 해체후엔 세르비아 국적) 출신의 장신 슈터. 새크라멘토 역대 최다 3점 슛 시도/성공 수 보유자이다.

21. 블라디 디박(Vlade Divac) : 유고(유고 연방 해체후엔 세르비아 국적)에서 건너와 한 시대를 풍미한 센터. 밀레니엄 킹스의 주역이기도 했다. 2001년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11] 유럽 출신으로서 성공적으로 NBA에 정착한 초창기 "개척자" 중 한명이며 특히 고국 세르비아 출신 선수들(페자 스토야코비치 등)에게는 대부같은 존재. 특히 운동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아저씨 농구"에 능한데 얼굴도 심한 노안이다.(...) 91년 파이널을 보면 웬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레이커스의 주전센터로 뛰고 있는데 이때 파릇파릇한 만 23세였다.(...) 2000년대에 뛰면 더욱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은 센터로, 1대1능력은 그리 높지 않지만 슛거리가 상당히 길고 가드 뺨칠 정도의 패싱력을 자랑한다. 또한 팀전술에 대한 이해도가 대단히 높아서 새크라멘토의 패싱농구의 주축이기도 했다. 또 헐리우드 액션의 최고수이기도 하다. 2015년 현재 새크라멘토 킹스의 프론트로 일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단장이라고 한다.

27. 잭 트와이먼(Jack Twyman) : 본인의 실력도 뛰어난 선수이지만, 그보다는 모리스 스토크스와의 우정이 더 유명한 인물. 스토크스가 쓰러진 후, 그의 모든 병원비를 죽을 때까지 대신 내 줬고, 그를 위한 자선 경기를 주최했고, 재단도 만들었다. 그리고 1950년대 후반의 미국 상황에서는 놀라운 일인데, 스토크스는 흑인이었고, 트와이먼은 백인이었다. 팀 동료인 스토크스와 친한 친구는 아니었으나, 그가 병마로 쓰러지고 나서 자신의 아내와 헌신적으로 그를 간호했고, 병원비를 벌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의 노력으로 열린 자선경기에는 러셀과 체임벌린[12] 등 많은 스타들이 참여했고, 스토크스가 사망하기 까지 12년간 계속되었다. 두 사람의 이 우정을 기념하여 현재 NBA에서는 Twyman-Stokes Teammate of the Year라는 상을 제정하여 한 시즌 동안 팀메이트들에게 가장 헌신적이었고 노력했던 선수에게 수여하고 있다.

44. 샘 레이시(Sam Lacey) : 캔자스시티 시절을 지킨 센터.

5 2016-17 선수명단

2016-17 시즌 새크라맨토 킹스 선수단
감독 데이브 예거
코치 엘스턴 터너, 밥 쏜튼, 브라이언 게이츠, 듀안 티크너, 제이슨 마치, 낸시 리버만, 댄 하트필드
가드 5.말라치 리차드슨 7.대런 콜리슨 10.타이 로슨 17.가렛 템플 23.벤 맥클레모어 40.아론 아플라로
포워드 8.루디 게이 18.옴리 카스피 22.맷 반즈 43.앤서니 톨리버
센터 00.윌리 컬리-스테인 13.게오르기오스 파파야니스 15.드마커스 커즌스 41.코스타 쿠포스
포워드-센터 3.스칼 라비시에르
  1. 비슷한 예로 뉴저지 데블스의 전신인 캔자스시티 스카우츠도 같은 이유로 2시즌만에 연고이전을 했다.
  2. 게다가 만약 킹스가 이 경기를 이겼다면 남은 세 경기 중에서 두경기(바로 다음 게임인 5차전과 최종 7차전)를 홈에서 치르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반면 레이커스는 난적을 상대로 3연승을 거둬야 하는 미친듯이 불리 상황.
  3. 새크라멘토는 백인들이 많이 살고 흑인들이 거의 없는 도시이다.
  4. 13-14 시즌 팀 평균 어시스트 30위.
  5. 시카고 불스가 바로 영입
  6. 킹스는 2004년 브래드 밀러와 페자 스토야코비치 이후 올스타 선수가 없었다.
  7. 오클라호마시티 썬더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시애틀 시는 슈퍼소닉스 프랜차이즈에 대한 권리 일체를 갖고 있다.
  8. 미국의 체인 휘트니스 센터
  9. 오클라호마시티 썬더가 5년전에 연고이전할때 30m의 금액을 다른 29개 팀에 제공했었던 것을 보면 거의 4배의 금액을 오퍼한 셈. 29개 구단이 만약 연고이전이 승인될 경우 약 4m가 약간 못되는 금액을 나눠가지게 되는 것이다.
  10. 마이클 조던이 "슛만큼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할 정도로 슛도사이며(삼점슛 콘테스트 우승과 올스타 mvp도 있다), 올NBA세컨팀까지 오른 슈퍼스타였다. Rock이란 별명답게 단단한 체구에서 나오는 파워와, 이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슛터치로 유명했던 득점기계.
  11. 하필 그가 전성기를 맞이하던 90년대에는 하킴 올라주원-데이비드 로빈슨-패트릭 유잉-샤킬 오닐로 이어지는 속칭 "4대센터"가 활동하고 있었던 데다가 그 외에 알론조 모닝, 디켐베 무톰보, 릭 스미츠 등 우수한 센터들이 득실거리던,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센터 풍년인 시기라 기량에 비해 수상실적에서 손해를 본 감이 있다. 33세 노장이 된 2001년에 들어서야 올스타에 처음 선정되었을 정도인데, 그보다 현저히 레벨이 떨어지던 자말 매글로어, 브래드 밀러 등이 올스타에 뽑히던 2000년대 초중반 이후에 뛰었으면 올스타전 단골이 됐을 확률이 높다.
  12. 윌트 체임벌린은 이 자선경기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