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15호

역대 아폴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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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15
아폴로 15호 미션 패치
발사일1971년 7월 26일
13시 34분 00초 UTC
달 착륙일1971년 7월 30일
22시 16분 29초 UTC
귀환일1971년 8월 7일
20시 45분 53초UTC
미션 기간12일, 07시간 11분 53초
우주선사령선 - 인데버(Endeavour)
달착륙선 - 팰콘(Falcon)[1]
사령관(CDR)데이비드 스콧 [2]
사령선 조종사(CMP)알프레드 워든 [3]
달착륙선 조종사(LMP)제임스 어윈 [4]

아폴로 15호의 승무원들
왼쪽부터 데이비드 스콧, 알프레드 워든, 제임스 어윈 순이다.[5]

1 소개

1971년 7월 26일에 발사되었으며, 데이비드 스콧(사령관), 앨프리드 워든(사령선 조종사), 제임스 어윈(달착륙선 조종사)이 탑승했다. 신형 우주복을 사용한 첫 임무이고, 로버(rover)라는 이름의 월면차를 사용한 최초의 달 탐험대이며, 3회의 선외활동을 행한 최초의 미션이다.

그리고 아폴로 계획에서 9번째로 발사된 유인우주선이고, 3회의 선외활동을 행한 최초의 미션이다.

2 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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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5호가 가져온 제네시스 록(Genesis rock).[6]

이들의 목적은, 달에 가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넘어 과학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매우 많은 월석을, 그것도 고퀄리티의 레어템들로 골라서 가져왔다.[7]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위 사진에 있는 제네시스 록이다. '창세기의 바위'라는 이름답게 이 돌의 나이는 46억 년으로, 달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돌이 되었다.

처음으로 월면에서 스탠드업 EVA[8]를 실시했고, 달에서 지구까지의 비행 도중 사령선 조종사가 심우주 EVA를 실시한 미션이기도 하다.

또한 의미있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그동안 NASA와 소련에서 우주 비행사 훈련/임무 수행 도중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자 이들의 이름이 적힌 알루미늄 판을 해들리 산에다 가져다 놓았다. 거스 그리섬 같은 아폴로 1호 멤버들은 물론이거니와 소련 우주인들도(유리 가가린, 블라디미르 코마로프) 있었다. 다만 소련의 기밀 유지 정책 때문에 아폴로 15호 당시까지 존재가 알려지지 않던 순직 우주인 두명은 이름이 적히지 못했다. 이들의 이름은 발렌틴 본다렌코, 그리고리 넬류보프였으며, 데이비드 스콧은 이후 인터뷰에서 이들의 이름을 뒤늦게야 알았다며 아쉬워했고, 소련도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다만 이 알루미늄 판 역시 제작자와의 마찰이 있어서... 하여간 이래저래 말썽이 많았던 미션이었다.

3 우표 스캔들

하지만 아폴로 15호의 우주비행사들은 나중에 징계를 받아야했다. NASA의 허가 없이 우표를 몰래 우주선에 숨겨갖고 탔다가 지구 귀환 후 '달에 다녀온 우표'라고 우표 판매업자에게 비싸게 팔아먹을 궁리를 했으나 중개업자와의 분쟁으로 인해 탄로나 버려서 문제가 된 것이다. 이외에도 지나치게 사적이거나 보고하지도 않은 선외활동, 사익 추구 등의 여러 사건사고가 많이 밝혀졌고, 달 탐사의 상업성 논란으로까지 불거질 수 있었기에 이 팀은 디크 슬레이튼에게 혼쭐이 나고 이후의 우주 비행 자격을 박탈당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아폴로 17호의 백업 팀으로 내정될 수 있었지만... 뭐, 나중에 법정에서는 "대원들이 규정을 좀 위반하긴 했는데 무슨 심각한 불법행위는 아니다"는 판결을 받기는 했다.

4 승무원

7회의 착륙 시도 미션 중 유일하게 미합중국 공군 출신 승무원으로만 꾸려진 팀[9]이다.

달에 갔다왔던 제임스 어윈은, 말 그대로 죽을 뻔 했다. 달에서부터 그의 심박수가 이상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관제센터에서는 심장마비 우려를 표하는 의료진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NASA 우주 프로그램 역사상 최초로 우주에서의 사망자가 나오는가 하며 NASA 관계자들의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 결국 귀환은 다행히 문제 없이 마쳤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어윈은 몇달 후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실려가며 사경을 헤매야 했고, 겨우 살아난 이후에는 종교에 귀의하여 선교 활동을 하며[10] 여생을 보냈지만 결국 그 심장질환 때문에 1991년 8월 8일을 일기로 달에 갔다온 우주비행사들 중 가장 일찍 사망하였다.

귀환 당시 우주선 낙하산 하나가 망가져서 여러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리기도 했다. 다행히 하나만 나가서 다행이지 하나라도 더 망가졌더라면 아마 물에 떨어질 때 싹 찌그러지고 승무원들도 끔살을 못 면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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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폴로 12호 팀과의 경쟁의식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12호의 착륙선 이름은 인트리피드, 즉 범선 이름이자 미 해군 항공모함 이름이었고, 15호의 팰컨은 공군이 좋아하는, 지금도 F-16의 애칭으로 남아있는 맹금류 이름이다.
  2. 리처드 고든
  3. 밴스 브랜드
  4. 해리슨 슈미트
  5. 월면차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월면차에 탑승하기 편하도록 우주복 정면에 있는 공기/물 공급 호스 커넥터 위치가 이전 미션들의 우주복과 변경된 신형 우주복이 도입되었다. 물론 달에 내릴 일 없는 사령선 조종사는 그런 거 없다.
  6. 아폴로 15호는 복귀하면서 지질학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제네시스 록(Genesis Rock)을 가져오는 등 과학적 공헌이 이전에 비해 매우 컸던 미션이다.
  7. 지구에서 달까지의 10화에 이들이 겪어야 했던 전혀 새로운 경험이 담겨져 있다. 끽해야 항공공학 공부한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군인들을 교수가 직접 오지 협곡으로 끌고 다니며 지질학적 마인드를 심어준다. 착륙지점에 대해 논쟁이 있을 때도 안전한 곳에 가기보다는 지질구조 연구에 있어 큰 보탬이 될 곳을 고르는등 15호부터 17호까지는 여러모로 대놓고 과학자들이 연구하려고 보낸 미션들이다. 이들에게 지도교수를 소개해줬던 15호 백업 승무원이었던 해리슨 슈미트는 17호에서 정말 달에 가게 되며, 이는 과학자로서는 최초였다.
  8. 스콧 혼자서 사령선 위로 몸을 내밀고 경치를 쭉 둘러보는 것. 해들리 열구의 풍경을 지상에 보고하여 지질학자들에게 큰 도움을 줬다.
  9. 11호의 전업 테스트 파일럿 출신인 닐 암스트롱을 제외하면 피트 콘래드, 짐 러블, 앨런 셰퍼드, 존 영, 유진 서넌은 모두 해군 현역이었다. 해군 테스트 파일럿 출신자들이 아무래도 헬리콥터 같은 VTOL 기종을 조종한 경험이 공군 출신보다 많았기 때문에 달 착륙 연습에 있어서는 해군 출신자들이 좀 더 익숙했다고. 취소된 아폴로 18호 사령관 리처드 고든 역시 해군 출신이며, 19호 사령관으로 예정되었던 프레드 헤이즈 역시 NASA 전업 테스트 파일럿 출신이다.
  10. "나는 달에서 걸으며 신의 권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지구를 걷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같은 여러 어록을 남겼다. 다른 우주비행사들의 회고에 나오는 말들과는 좀 이색적인 행적인데, 아무래도 갑자기 몸에 문제가 생기며 목숨이 위태로웠던 입장인지라 심정적으로 신에게 많이 의지했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