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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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단계 로켓에 타고서 대기권을 벗어나서 달의 중력이 미치는 곳으로 가 무사히 착륙한 후 과학적 관측을 한 다음에, 지구로 무사히 돌아온다는 것은 쥘 베른의 엉뚱한 상상 속에서나 가치있는 일이죠. 저는 미래가 어떻게 발전하든지, 인간이 그런 항해를 할 수 없으리라고 장담합니다.[1]

-리 드 포레스트 박사, Lewiston Morning Tribune 1957년 2월 25일자에 실린 인터뷰에서.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 닐 암스트롱, 1969년 7월 20일 달에 최초의 발자국을 남기며.

인류의 긍지, 그리고 미국의 힘을 절실히 보여준 역사상 가장 큰 우주 탐사 계획.

인류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여정, 사람들에게 꿈과 희열과 감동을 준 탐험, 인류 최초의 유인 천체탐사계획.

1 시작된 달 경쟁

냉전당시 소련은 스푸트니크 무인위성을 최초로 쏘아올려 지구궤도에 안착시키는데 최초로 성공했다. 이를 본 미국역시 수많은 인공위성 개발에 집중하였고 양국의 우주 경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소련보다 달에 사람을 먼저 착륙시킨 후 귀환시킴으로써 우주 경쟁에서 우위를 가지려고 했다. 1960년대의 미국은 이 계획에 집착하듯이 달라붙었는데, 이는 한때 NASA의 예산이 미국 GDP의 0.75%를 차지했던 시절이 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2] 아폴로 계획에 투입된 예산은 2005년 환율로 환산하면 1700억 달러, 한화로 189조원에 해당한다. 이는 2010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예산의 660배에 달하며 2014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국가예산의 절반이다. 나사의 현재 1년 예산이 170억 달러 가량인걸 감안하면 한 프로그램에 이 정도의 예산이 투입됐다는건 국가가 이 프로그램에 얼마나 큰 노력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자존심의 문제로, 계획의 시작은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1년, 소련이 보스토크 1호로 세계최초의 유인우주선 제작국이라는 타이틀을 얻자, 미국은 가뜩이나 스푸트니크로 상처받은 자존심에 비수가 꽂힌 느낌이었다. 미국도 이에 응수해 가가린 크리가 뜬지 한 달도 안되어 머큐리 계획의 첫 우주비행을 감행, 앨런 셰퍼드가 탑승한 프리덤 7호를 머큐리 계획의 일환으로 발사했으나 이는 로켓의 파워부족으로 소련의 보스토크가 지구를 한바퀴 돌고 온 것과는 달리 준궤도비행에 그쳤다. 이후 리버티 벨 7호(거스 그리섬)까지도 탄도비행에 그쳤고, 3차 우주비행인 프렌드십 7호(존 글렌)에서야 겨우 궤도비행에 성공했다.

1.1 미국의 패기선공

결국 당시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우주 경쟁에서의 소련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고, 61년 5월 25일 국회에서 그 유명한 "1960년대 안으로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연설을 통해 달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최초로 언급했다.

미국은 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 무사귀환시켜야 합니다. 다른 어떠한 우주 계획도 인류에게 이보다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는 또한 장기적인 우주 탐사 계획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며, 이를 위해 온갖 어려움과 막대한 비용을 감수할 것입니다.[3]

그리고 1962년 9월 12일, 라이스 경기장(Rice Stadium)에서의 연설에서 보다 명확히 했다.

"세계의 눈이 지금 우주를 향해, 달과 그 너머 행성들을 향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맹세했습니다. 우주가 적의에 차 있는 정복의 깃발(=소련) 아래 지배되도록 좌시하지 않고, 자유평화의 깃발 아래 지배되도록 할 것을. ...(중략)...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달에 갈 것입니다. 우리는 1960년대 안에 달에 갈 것이고, 다른 일들도 할 것입니다.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입니다.[4]

참고로 마지막 부분은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의 오프닝에서 사용되었다.

1.2 소련의 반응과 그 이후

연설 직후,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조지아에 각료들을 모아놓고 미국과의 달 착륙경쟁에 나서야 되는가에 대해 토론했다. 긴 회의였지만 결국 이번에도 미국을 엿먹이자 는 결론이 나왔다.

일단 선수를 치긴 했지만 계획이 계획인만큼 워낙 큰돈이 들고 기술도 부족하여 케네디는 당시 루나 2호를 달 뒷편에 충돌시키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던 소련과의 연합계획도 고려하게 되었다. 케네디는 두 차례에 걸쳐 흐루쇼프에게 기술-자금 협력을 제안했지만 흐루쇼프의 반대와 케네디의 암살로 결국 양국은 독자적으로 달 탐사를 추진하게 된다.

한편, 진 크랜츠를 비롯한 나사 직원들도 이 연설을 듣고선 그야말로 기겁을 했다. 머큐리도 간신히 올려놓은 판국에, 사람을 달로 보낸다니? 소련을 따라잡기도 급급한데? 그러나 그 직후 NASA에는 일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줄을 섰다. 크랜츠의 회고에 따르면 "좋아. 저 인간이 우릴 믿어주는데 한번 해봐야지!" 이런 분위기였다고 한다. 결국 NASA 전체는 휴일 그거 먹는 건가요, 자발적인 공밀레 모드로 돌입했다.

달착륙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NASA의 연구개발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첫번째는 달까지 보내기 위한 거대 로켓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는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의 주도 하에 진행된 새턴 V 로켓의 개발 프로젝트였다. 두번째는 달착륙 미션 과정에 필요한 여러가지 실질적인 비행 기술을 테스트하고 익히는 것이다. 이것이 머큐리 계획 이후에 진행된 제미니 계획이었다. 제미니 계획 동안 랑데뷰, 도킹, 우주 유영, 장기간 우주 체류 등 달착륙에 필요한 여러가지 기술들에 대한 테스트가 이루어졌다.

2 아폴로 계획의 전모

아폴로 계획
아폴로 7호아폴로 8호아폴로 9호아폴로 10호아폴로 11호아폴로 12호
아폴로 13호아폴로 14호아폴로 15호아폴로 16호아폴로 17호ASTP
취소된 아폴로 미션들스카이랩


아폴로 계획의 미션 표장

이렇게 서로의 자존심을 건 레이스가 시작되었고, 두 나라는 자신들의 전투기 톱에이스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당연히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면서 하드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소련은 루나 무인 탐사선들을[5], 미국은 베르너 폰 브라운의 주도하에 레인저[6], 서베이어[7], 루나오비터를 보내 착륙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후 아폴로 계획의 세부일정 수립을 총괄하던 오언 메이너드(Owen Maynard)는 아폴로 계획의 세부 미션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A 미션 : 새턴 로켓과 사령선의 비행(아폴로 4, 6호 - 무인)
B 미션 : 달 착륙선 시험 비행(아폴로 5호 - 무인)
C 미션 : 지구 저궤도에서 사령선의 시험 비행(아폴로 7호)
D 미션 : 지구 저궤도에서 사령선과 달 착륙선의 시험 비행(아폴로 8호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실제로는 아폴로 9호가 담당. 아폴로 8호는 C-prime 미션으로서 사령선만의 달 궤도 진입을 실행함)
E 미션 : 지구 중궤도에서 사령선과 달 착륙선의 시험 비행(아폴로 9호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F 미션 : 달 궤도에서 달 착륙을 위한 리허설 실시(아폴로 10호)
G 미션 : 최초의 달 착륙 시도(아폴로 11호)
H 미션 : 달에서의 정확한 착륙 시도 및 달에서 2일간 체류하며 두 차례의 선외활동 실시(아폴로 12호, 13호(실패), 14호)
I 미션 : 기존 미션보다 더 긴 사령선의 달 궤도 비행 및 사령선의 여유 공간을 활용한 추가적인 과학 실험 수행. 실제로는 이후의 J 미션과 통합되었다.
J 미션 : 기존 달 착륙선보다 더 발전된 달 착륙선을 이용한 3차례의 선외활동 및 월면차를 이용한 임무 수행(아폴로 15호, 16호, 17호). 원래 아폴로 15호는 H 미션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나 아폴로 18호에서 20호까지가 예산 삭감으로 취소되면서 J 미션으로 편입되었다.

2.1 아폴로 1호

아폴로 1호는 원래 정식 아폴로 미션이 아니라 여러 훈련미션 중 하나였다. 원래의 훈련미션 넘버는 AS-204. 하지만 불의의 화재로 조종사 3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나자 이들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달래기 위해 사후 아폴로 1호로 승격되었던 훈련 미션이었다.

존슨 위원회가 자세한 원인을 규명하겠지만, 원인은 분명하다. 바로 우리다. 준비도 안 되어있었고, 장비도 불충분했고, 모든 것이 부족했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아무도! 아무도 중지라는 말을 하지않았다. 이제부터는 '철저'와 '완전'을 신조로 삼자.

유인 테스트 비행은 미국이 먼저 시작했는데, 아폴로 1호를 통해 사령선과 기계선의 작동을 테스트하는 게 아폴로 1호의 목적이었다. 때문에 이 미션은 정식 아폴로 미션은 아니었고 계속되었던 수많은 작은 훈련 미션 가운데 하나였다.

진 크랜츠는 그때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다들 머리에 열이 차 있었죠." 즉 반쯤 맛이 갔다는 뜻이며, NASA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단 제껴. 시간 없어."로 일관하면서 시험비행을 강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1967년 1월 27일, 케이퍼 커내버럴에서 훈련 중 화재가 발생했다. 사고원인은 우주선 내부의 스파크로 인한 화재발생으로, 내부의 공기가 순수한 산소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화재진압에 실패한 것이 문제였다.우주비행사들은 급히 탈출하려고 했지만, 한 번 열려면 90초나 걸리는 해치때문에 탈출에 실패하여 3명 모두 질식사하였다.

  • 거스 그리섬 (Gus Grissom) - 아폴로 1호의 사령관이자 미 공군 중령으로(한국전 참전 경험이 있다.), 이전에도 사고기록이 있었다. 머큐리 계획 중 리버티 벨 7호를 타고 두 번째 탄도비행을 성공시킨 우주인이 되었는데, 착수 직후 우주선 캡슐 해치가 저절로 열려버려[8] 익사할뻔 했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리섬 중령의 과실로 여겨졌다가 재조사후 해치의 오작동 문제로 밝혀졌는데, 이 때문에 그리섬 중령은 징계를 받지 않고 아폴로 1호의 사령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리섬은 아폴로 1호의 해치를 쉽게 열리지 않도록 설계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 에드워드 화이트 (Edward White) - 시니어 파일럿으로, 미국 최초로 우주유영을 한 사람이다. 구명줄만 잡고 나간 소련의 알렉세이 레오노프와 달리, 우주 총[9]을 사용하여 비교적 자유롭게 우주를 돌아다녔던 경력이 있으며, 사고 당시 해치를 열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 로저 채피 (Roger Chaffee) - 미 해군 소령.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쿠바 상공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였는데, U-2[10]를 조종했다는 설이 있고 A-3 스카이워리어를 조종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 당시 미션들이 죄다 일급 기밀이라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사고 당시 통신회선에 "화재다!"라고 외친 사람이다.

이 참사는 HBO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 2화 전체를 할애하여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참사의 원인은 그야말로 여러 가지 사소한 부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사태를 키운 것. 우선 일부 배선 하네스가 점검용 패널 근처에 배치되어 패널을 여닫을 때 씹히면서 배선 피복이 벗겨져 전원 공급시 스파크가 튈 가능성이 있었다. 이 스파크가 조종석 하단의 나일론 망 등의 가연물질에 튀었고, 대기중에서는 그정도의 불꽃으로 큰 화재가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당시 아폴로 1호 사령선 내에는 100% 순산소가 공급된 상태였다. 그것도 무중력 하의 선내 압력조건 재현을 위해 가압된 상태로!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해치가 안쪽으로 열리게 설계되어 선내가 가압된 상태[11]에서는 설사 해치 잠금장치를 제때 풀었더라도 해치를 열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후 NASA는 계획을 잠시 중지하고 설계를 재검토했다. 화재에 대비해 가연성 재료를 불연성으로 교체하고, 배선을 보호물질로 덮었으며, 선내 기압을 조절하고, 해치를 여는데 걸리는 시간을 7초로 줄였다.

그리고 죽은 우주비행사들이 탑승한 우주선은 아폴로 1호가 되었다. 원래 이 미션은 AS-204라는 이름의 임무였다. 그 전에 실시된 유사한 3회의 미션은 AS-201, AS-202, AS-203으로만 불릴 뿐 아폴로 몇 호라는 식으로 불리지 않았다. 아폴로 1호 역시 원래 그러한 일련의 미션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사고로 희생된 우주비행사들의 유가족들을 달래기 위한 보상책의 일환으로 아폴로 1호로 명명되었다.

이 사건을 경험한 NASA 직원들은 이 사건을 '그 화재'로 가리키며 죽은 이들을 기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로도 NASA의 인명피해는 계속 이어졌는데, 공교롭게도 이 사건 29주년 하고도 딱 하루가 지난 1986년 1월 28일 STS-51-L 챌린저 우주왕복선이 발사 도중 폭발했고, 1월 중순 발사하느라 앞선 참사들의 추모식을 좀 일찍 치르고 우주에 올라갔던 STS-107 컬럼비아가 2003년 2월 1일에 귀환 도중 공중분해되었다. 어째 NASA의 사고들은 죄다 이 시기에 몰려있다...

2.2 아폴로 2호

취소됨. 추가바람

2.3 아폴로 3호

취소됨. 추가바람

2.4 아폴로 4호, 5호,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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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턴5호를 이용해 발사한 로켓들
카메라 화질의 발달을 보여주는사진

훈련미션이었던 AS-204가 졸지에 아폴로 1호로 승격되면서 향후 아폴로 미션 전체 넘버링 자체가 크게 엉켜버렸는데, 이에 NASA는 아예 아폴로 2호, 3호 넘버링은 취소된 계획에 붙였다.

아폴로 4호~6호까지 세 개의 미션은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채로 새로 개발한 새턴V 로켓을 테스트하기 위한 목적의 미션이었다.

아폴로 4호는 최초로 새턴 V 로켓을 사용해서 발사되었으며[12], 아폴로 5호는 새턴 1B 로켓에 의해 발사되었고 달착륙선을 테스트했다. 아폴로 6호는 다시 새턴 V 로켓으로 발사되었으며, 이들 모두는 무인비행으로만 테스트되었다.

그리고 아폴로 4호와 6호는 로켓이 분리되는 장면을 촬영함으로서, TV에서 새턴 V 로켓의 1단과 2단이 분리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폴로 4호~6호는 새턴V 로켓을 테스트하기 위한 성격의 미션이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아폴로 미션은 유인미션인 7호부터라 볼 수 있다.

2.5 아폴로 7호

1968년 10월 11일새턴 1B 로켓에 의해 발사되었으며, 달 착륙선은 실려있지 않았다. 탑승한 우주비행사는 머큐리 세븐의 일원인 월리 시라(사령관)[13], 돈 아이즐리[14](사령선 조종사), 월터 커닝햄(달착륙선 조종사)이다.

2.6 아폴로 8호, 그리고 크리스마스

아폴로 계획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도약을 이룬 미션 희대의 미친짓

아폴로 8호 참고.

2.7 아폴로 9호

1969년 3월 3일에 새턴 V 로켓으로 발사되었으며, 지구 궤도를 돌면서 달착륙선과 우주복의 안전성을 시험했다. 탑승한 우주비행사는 제임스 맥디비트(사령관), 데이비드 스콧(사령선 조종사), 러스티 슈바이카트(달착륙선 조종사). 우주복 안정성 시험을 위한 우주유영 준비 중 슈바이카트가 구토를 하는 바람에 잠시 임무가 지연되었으나 모든 임무는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이 중 스콧은 아폴로 15호 사령관으로 달에 착륙하였다.

아폴로 9호 참고.

2.8 아폴로 10호

달착륙을 한 역사적인 아폴로 11호의 바로 직전 미션이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아폴로 10호 문서 참조

2.9 아폴로 11호. 독수리는 내리다

인간이 최초로 지구 외의 천체에 발을 디디게 한 역사적인 미션. 아폴로 11호 참고.

2.10 아폴로 12호

SCE를 Aux로!

MCE를 Aux로? 그게 뭔데?[15]

아폴로 12호 참고.

2.11 아폴로 13호

간단히 말하자면 아폴로 13호는 폭발했고, 우주비행사 3명은 죽을 뻔했으며, 지구에서 가장 멀리 나가본 인류로 기록되었다. 미션 목표는 실패했으나 귀환에는 성공하여 Successful Failure라고 이름붙여졌다.
자세한 것은 아폴로 13호 참고. 개별 아폴로 문서중 가장 긴 위엄

2.12 아폴로 14호

1971년 1월 31일에 발사되어 2월 5일에 프라 마우로 크레이터에 착륙했다. 이곳은 아폴로 13호가 착륙하려다 실패한 곳이며, 우주비행사는 앨런 셰퍼드(사령관), 스튜어트 루사(사령선 조종사), 에드거 미첼(달착륙선 조종사)이다.

2.13 아폴로 15호

1971년 7월 26일에 발사되었으며, 데이비드 스콧(사령관), 앨프리드 워든(사령선 조종사), 제임스 어윈(달착륙선 조종사)이 탑승했다. 신형 우주복을 사용한 첫 임무이고, 로버(rover)라는 이름의 월면차를 사용한 최초의 달 탐험대이며, 3회의 선외활동을 행한 최초의 미션이다.

2.14 아폴로 16호

1972년 4월 16일에 발사되었으며, 승무원은 존 영(사령관), 켄 매팅리(사령선 조종사), 찰스 듀크(달착륙선 조종사)이다.[16]

2.15 아폴로 17호


아폴로 17호 40주년 트리뷰트. 이후로 인류는 40년이 넘도록 달에 다시 가지 않았다.

2.16 스카이랩 계획

아폴로 13호의 실패 이후 아폴로 계획은 20호까지였던 원래 계획에서 17호까지로 축소되었지만(취소된 아폴로 미션들 항목 참조 바람.), 이미 만들어진 아폴로 우주선은 스카이랩 계획에 재활용되었다. 아폴로 우주선 3대(3개 팀이 다녀왔으므로)가 사용되었으나 아폴로 00호라는 이름 대신 스카이랩 2호, 3호, 4호(스카이랩 1호는 스카이랩 본체)라는 번호가 붙여졌다. 스카이랩항목과 우주 정거장 항목 참조 바람. 왕복용도로 새턴 IV가 사용되었다.

2.17 아폴로와 소유즈의 조우(ASTP)

최후의 아폴로 미션으로, 새턴 IV로 1975년 7월 15일에 발사되었다. 아폴로 우주선의 승무원은 토머스 스태퍼드(사령관), 밴스 브랜드(우주선 조종사), 디크 슬레이튼(도킹모듈 담당)이다.[17] 소유즈 우주선의 승무원은 알렉세이 레오노프(사령관)와 발레리 쿠바쇼프이다.[18] 이 미션에서도 귀환 도중 밸브 고장으로 로켓 산화제인 사산화질소가 사령선 안에 흘러들어오는 바람에 세 우주비행사가 하마터면 사산화질소 중독으로 사망할 뻔한 사고가 있었다.

이 임무가 끝난 이후, 아폴로 계획에 사용된 LC-39A 발사대는 폐쇄되어 우주왕복선용으로 리모델링하였다. 이후 STS-135까지 우주왕복선을 이 곳에서 발사한 후, 지금은 팰컨 헤비용으로 쓰이고 있다.

2.18 결산

아폴로 계획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유는 실패한 미션이 2개(아폴로 1호, 아폴로 13호) 뿐이고, 사망자도 아폴로 1호 미션의 3명 외엔 없었기 때문이다.[19] 아폴로 13호는 연료전지의 이상으로 기계선이 폭발하는 사고를 겪었지만, 승무원들이 달 착륙선으로 대피해 우주선을 수동으로 조종한 끝에 결국 지구로의 귀환에 성공하였다. 이는 후에 영화로도 나오게 된다. [20]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아쉽게도 문레이스 도중 사망하여 그 끝을 볼 수 없었고, 그 이후 소련의 우주개발부를 맡은 바실리 미신 시대에 아폴로가 달에 착륙함으로서 소련은 패배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유인 달착륙 대신 우주 정거장에 매달렸고, 1970년대는 살류트, 1980~90년대는 미르를 운용했고, 2000년대부터 운용한 ISS에서도 거대 물주로 부상하였다.

2.19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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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50억 달러를 들인 아폴로 계획을 통해 미국은 385kg의 월석과 월토를 비롯한 각종 유무형의 성과를 얻었다. 달에 설치한 지진계를 통해 달의 내부 구조가 지구와 유사하다는 점을 파악했고 레이저 측정기를 통해 달과 지구의 거리 및 달의 궤도를 보다 정확히 알아낼 수 있었다. 또한 월석과 월토의 분석을 통해 달에 매장되어 있는 자원이나 달의 생성연도 등을 추정하기도 했다. 과학자들은 월토에서 생명체 반응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박테리아조차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폴로 11호가 가져온 월석은 오사카 세계 박람회를 통해 최초로 민간에 공개되었고 지금도 스미소니언 등 각국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참고로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은 달에서 골프도 쳤고 월면차를 이용해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2.20 달 경쟁의 이면

소련 역시 유인 달 탐사 계획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N-1이다.

그러나 이 로켓은 1969년 3월 7일에 폭발하고 말았다.[21] 소련은 어떻게든 계획을 지속하려고 했지만 그 해에 7월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면서 경쟁은 끝났고, 남은 부품도 모조리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 소련은 로봇 탐사선 루나호를 이용한 무인 탐사 쪽에 더 주력하는 한편 우주 정거장에 올인해서 살류트, 미르 등의 걸작 우주정거장을 만들었다. ISS(국제 우주 정거장)도 비록 하드웨어는 미국이 대부분 제공했지만, 운영은 러시아의 노하우 덕분에 돌아간다.

원래 아폴로 계획은 아폴로 20호까지 계획되어 있었지만, 베트남 전쟁과 사회복지 프로그램들로 인해 달착륙을 목적으로 한 마지막 3개의 미션은 취소되었다. 그러나 18호[22]는 달에 가는 대신 아폴로-소유즈 계획에 사용되어 우주에서 소련의 소유즈 19호와 도킹을 했고[23] 다른 한 대의 새턴 로켓은 개조되어 스카이랩 발사에 사용되었다. 남은 로켓 한 대는 휴스턴 우주 센터에 누워있고 기타 남은 하드웨어들은 미국 각지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NASA는 오리온이라는 새로운 유인탐사선으로 달에 다시 가려고 했지만 2010년에 예산문제로 백지화되었다. 하지만 오리온 우주선 자체는 우주왕복선이 퇴역하였기에 앞으로의 사용을 위해 계속 개발되는 중이다.

3 이미지로 보는 아폴로 계획

파일:Attachment/concept.jpg
계획 초기의 각종 개념안과 결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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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궤도에 들어서는 실질적 아폴로 우주선의 구성[24]. 로봇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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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계획의 개념도.

파일:Attachment/apollo docking.jpg
비행중 사령,기계선과 달착륙선의 도킹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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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1호에서 17호까지의 착륙지가 표시된 달사진.

4 우주인은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달에 다녀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아폴로 우주선에 타더라도, 달에 가기 위해서는 여러 난관을 넘어야 한다.

  • 달에 내리는 사람은 두 명이므로, 달을 밟고 싶으면 달착륙선 조종사가 되거나 사령관이 되어야 한다. 사령선 조종사가 된다면 지못미. 농담이 아니라 어지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폴로 11호에서 버즈 올드린까지는 기억해도 콜린스는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사실 짬밥이나 비행 경력으로 따지면 사령선 조종사의 능력이 더 좋다고 보는 것[25]이 적절함에도 세간의 이목은 달에만 가 있다(...)
  • 아폴로 우주선은 매우 좁다. 의자 세 개가 있는 비좁은 사령선 안에서 1주일 넘게 버텨야 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남자 세 명이 어깨를 맞대고 지내보면 우주비행사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 배설물을 몸에서 내보내고 싶으면 몸에 비닐 주머니를 붙이고 힘을 준 후, 비닐 주머니 입구를 잘 막고 처리해야 한다. 제대로 막지 않으면 똥이나 오줌이 선실을 둥둥 떠다니는 비극이 일어난다.(더러운 건 둘째치고, 배설물이 엔진에 들어갈 경우 엔진에 결함을 일으킬 수 있다.)위의 아폴로 10호의 대화문을 봐도 그러하다(...). 게다가 아폴로 13호는 오물을 밖으로 내보냈다간 우주선 궤도가 비뚤어질 수 있어서 밖으로 내보내지도 못했다(...)[26] 제대로 된 화장실이 설치된 곳은 우주왕복선이나 우주 정거장 정도다.
  • 화장실에서 목욕도 못하고 1주일 이상 지내면 내부 공기가 굉장히 탁해진다. 산소가 모자라는 건 아니지만(...).
  • 우주 식량은 맛이 없다.
  • 목숨을 위협하는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우주 비행사들의 아내들 역시 정신적인 고통이 매우 심했다. 프랭크 보먼의 아내는 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고, 닐 암스트롱, 피트 콘래드, 존 영, 토머스 스태퍼드 등 수많은 우주 비행사들은 끝내 아내와 갈라서야 했으며, 에드 화이트의 아내는 남편이 살아있을 때에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등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다가 남편의 사망 이후 재혼을 했음에도 정신적 방황이 이어지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온갖 험한 꼴을 다 겪으면서도 백년해로하는 짐 러블 같은 사례는 양호 한편[27] 아내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는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의 11화에 묘사되어 있다.

5 아폴로 계획 음모론

항목참조

6 기타

아폴로 우주선에 탑재된 유도컴퓨터, 소위 AGC는 클럭스피드 2048KHz 컴퓨터로 키보드도 없이 여러개의 토글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사용하는 물건이었다.[28] 새턴 로켓의 관제 컴퓨터와 함께 집적회로최초로 사용한 컴퓨터이기도 하다. 그나마도 11호 미션에선 달에 착륙을 시도하는 중에 고장이 나서, 암스트롱이 손으로 계산을 하며 달표면에 착륙을 했다고.[29]

아폴로 11호를 달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데 꼭 필요한 비행컴퓨터의 소프트웨어의 개발에는 마가렛 해밀튼(Margaret Hamilton)이라는 여성과학자의 역할이 컸다. 그녀는 MIT 개발연구실 출신으로 NASA에서 스카이랩 계획과 아폴로 계획에 쓰인 비행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개발주임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시스템 모델링과 개발, 소프트웨어 개발, 자동 생명유지장치 개발, 소프트웨어의 신뢰성과 유지보수기능 향상, 인터페이스 설계, 오퍼레이팅 시스템, 생명유지 관리기술 등등 그녀가 담당한 분야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특히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과정 중에 발생한 시스템 에러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저 시스템 에러는 달 착륙 시퀀스를 개시하고 3분뒤에 발생했는데, 랑데뷰 레이더 때문에 부하가 걸린 컴퓨터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작업에 들어가는 시스템 자원을 더 높은 중요도의 작업에 돌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착륙 시퀀스를 속행할 수 있었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과정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었던 위기를 넘기는 역할을 했다.[30]

아폴로 계획의 달착륙선은 착륙후 귀환시 하드웨어 분리 없이 달궤도에 진입이 가능한 인류가 만든 몇 안되는 발사체중 하나다. 이른바 SSTO. 소련 달계획의 몇몇 착륙선 또한 하드웨어 분리없이 달궤도 진입이 가능하다. 달의 적은 중력때문에 가능한 것.[31]

아폴로 11호가 가져온 월토 중 일부는 40년이 넘도록 빛을 보지 못한 적이 있다. NASA 측에선 연구를 위해 각 대학 연구소에 월석 및 월토들을 배분해 주었는데, 이 중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연구소에서 월토 샘플을 연구한 뒤 행정 착오로 NASA에 반납하지 않고 연구소 보관 창고에 방치한 것. 이 샘플은 2013년에야 발견되었다.

월석의 대부분은 도난당했다. 이는 월석을 세계 곳곳에 뿌려 연구하게 했는데... 도로 회수할때 문제가 생긴것이다.
2002년 누군가 월석 도난 예고가 있어 FBI에 신고하게되었고, 후에 진짜 월석이 NASA내부 관계자에 의해 도난당한다.
훔친것은 월석 샘플이 들은 금고, 아폴로 계획의 모든게 들어있었다.
결국에는 범인을 체포하고 월석은 회수되었다.

그러나 이 일은 도난 사고의 일부분이고, 진짜로 도난당한 월석들은 아직도 회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법에는 월석 소유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NASA나 세계 각 연구소에서 도난당한 월석들은 암시장에서 공공연하게 거래되곤 한다.

대한민국의 전 천문학자인 고 조경철 박사의 별명이 여기서 따 온 아폴로 박사이다.[32]

구글 어스에서 보기메뉴에서 탐색영역을 달로 설정해서 실제 아폴로 착륙장소를 3D, 파로라마, 이동경로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아폴로 11호 미션의 가이드를 볼 경우 달착륙선의 시점에서 착륙하는걸 볼 수 있다.

외국의 한 디자이너가 아폴로 미션 로고들을 이용하여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7 대중매체에서의 아폴로 계획

푸른 유성 SPT 레이즈너에선 아폴로 X라는 가상의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아폴로 11호 달착륙 전에 과연 착륙해도 안전한가를 알기 위해 일본계 미국인 비행사 혼자 탑승한 편도 우주비행을 나사가 시행했고 죽을 줄 알고도 달에 도착한 이 우주비행사는 달에 때마침 와 있는 그라도스군과 접촉, 구조되고 그후 자신의 아들인 주인공 에이지에게 지구에 그라도스 침공을 알리게 한다...

Mythbusters에서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뒤,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착지하는 모습이 조작이라는 설에 대해서 시즌6 에피소드2 NASA Moon Landing편에서 다룬 바 있다. 물론 전문가들의 의견과 실제적인 실험을 한 끝에 결론은 "진실". 사진에서의 그림자 문제, 영상조작문제, 깃발의 흔들림, 달에서는 선명한 발자국이 찍힐 수 없다.를 고루고루 다루면서 음모론자들을 깠다.

동방프로젝트에서 월인들은 이 계획을 '달 침공'으로 생각한다.분명히 평화를 위해서 왔다고 써져 있을텐데??? 동방맹월초 시작 전에는 월인들이 아예 아폴로 계획 깃발을 뽑아다 지구로 던져버렸고 이 성조기는 환상향에 떨어져 루나 차일드가 가져갔다.
동방감주전에서는 곳곳에서 관련 소재를 차용한 듯하다.#

문명시리즈에서 게임을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아폴로 계획을 완성한 이후부터 알파 센타우리행 우주선의 부품들을 각각 제작할 수 있고, 이 부품을 모두 완성시킨 후 조립하면 우주로 이민선을 발사, 우주로 진출한 인류의 모습이 나오며 게임이 끝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작품 <>에서 이걸 그대로 가져와버렸다.

반다이어른의 초합금 제1탄으로 아폴로 11호 & 새턴 V호 로켓이 출시되었다. 로켓 발사부터 사령선의 귀환까지 달 착륙의 모든것을 재현할 수 있는 굉장한 물건. 스케일은 1/144. 전고 76cm의 거체를 자랑한다. 덧붙여 그 2탄은 무려 1/144 동 스케일의 스페이스 셔틀. 그런데 여기에 홍콩 프라모델 메이커 드래곤 모델이 강펀치를 날렸으니, 무려 1/72 스케일의 새턴 V호 로켓을 출시한 것. 높이가 1.5미터나 된다! 드래곤 모델은 그전부터 닐 암스트롱의 12인치 피규어나 1/72 스케일 아폴로 우주선 금속제 모형 등을 이미 발매하고 있는데 퀄리티가 무척 좋은 편이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아폴로 13은 위에 언급된 아폴로 13호의 사고 사례를 극화한 것이다. 이 뒤를 이어 제작된 HBO의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From the earth to the moon)는 아폴로 계획 전체를 주제로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공중파를 통해 방영된 적이 있으며, DVD로도 발매되었다.

이 외에도 2010년 들어 외계인 소재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도 곧잘 아폴로 11호를 소재로 삼는다. 트랜스포머 3편이라든지 맨 인 블랙 3편이라든지.

트랜스포머 3에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달 뒷면에 불시착한 센티넬이 탑승한 아크를 수색하기 위한 기밀 임무를 감추기 위한 선전 이였고 착륙후 잠시 발생한 통신 두절은 사고가 아니라 수색 작전을 위해 일부러 통신을 끊어버린것으로 나온다.

맨 인 블랙 3편에서는 아예 달에 외계인 죄수를 가둬 놓는 감옥이 있으며 보글로다이트 족을 막을수 있는 행성 방어 시스템 아크넷을 구축하기 위해 새턴 11호를 발사현장에서 과거의 젊은 K와 시간여행 한 J가 개고생을 한다. 이때 아크넷을 넣기 위해 우주선에 달라붙은 K를 본 조종사들의 만담도 압권. "이거 보고하면 발사 취소 되겠지?" "난 아무 것도 못 봤어."

알드노아. 제로에서는 아폴로 17호가 달에서 화성인들의 유적인 하이퍼 게이트를 찾아내 화성개척의 시발점을 만들어 낸다는 설정이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에 대한 도전정신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아예 미국에서 소련에 앞서가기 위한 선전용 사기극이라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쿠퍼는 피꺼솟

Fate/EXTRA 시리즈는 1970년부터 분기가 갈라진 if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인류의 기술 발전이 멈춰 물리적으로는 달에 도달하지 못했다.

린드버그 - 하늘을 나는 생쥐의 후속작으로 암스트롱 - 달에 간 생쥐가 2016년 7월 25일에 출판될 계획이라고 한다.

암스트롱이라는 말이 들어간걸 보면 알겠지만, 아폴로 11호 계획을 패러디한듯 하다. 이 생쥐 정체가 뭐지?[33]
  1. "To place a man in a multi-stage rocket and project him into the controlling gravitational field of the moon where the passengers can make scientific observations, perhaps land alive, and then return to earth—all that constitutes a wild dream worthy of Jules Verne. I am bold enough to say that such a man-made voyage will never occur regardless of all future advances."
  2. 미국 GNP의 4%(!)까지 달한적이 있다는 출처불명의 루머도 있다. 아마 연방정부 예산의 4%가 와전된 것으로 추정.
  3. first, I believe that this nation should commit itself to achieving the goal, before this decade is out, of landing a man on the Moon and returning him back safely to the earth. No single space project in this period will be more impressive to mankind, or more important for the long-range exploration of space; and none will be so difficult or expensive to accomplish.
  4. For the eyes of the world now look into space, to the moon and to the planets beyond, and we have vowed that we shall not see it governed by a hostile flag of conquest, but by a banner of freedom and peace. ...(중략)... We choose to go to the moon, We choose to go to the moon. We choose to go to the moon in this decade and do the other things, not because they are easy, but because they are hard.
  5. 참고로 후기의 루나 탐사선들은 달 표면에 착륙해 샘플을 채취한뒤 복귀했다.
  6. 지정된 지점까지 낙하하면서 사진을 촬영해 전송하는 것이 임무였다. 표면에 충돌해서 파괴되는 것으로 레인저의 임무는 끝이 난다.
  7. 레인저와는 달리 달 표면에 착륙해서 조사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여담으로 아래에도 나오지만 아폴로 12호에서 서베이어 중 한대의 부품을 일부 회수했다.
  8. 머큐리 우주선의 경우 해치에 내장된 폭약을 터뜨려 해치를 날릴 수 있었다. 아래에도 나오지만 오작동을 일으키는게 확인되어 아폴로 사령선에서는 이걸 제거했다.
  9. 가스를 분출해 작용 반작용의 원리로 우주유영이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
  10. U-2는 공군 기종이긴 했지만 상식적으로 우주비행사로 뽑힐 정도의 엘리트 테스트 파일럿들을 인류의 존망이 걸린 실전에 투입할 때 소속을 일일이 구분할 이유는 없다.
  11. 거기에 화재와 내부 온도 상승으로 선내의 압력은 더욱 올라간다.
  12. 새턴 5호는 당시 최대의 크기였다.(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개발된 로켓을 합쳐도 최대의 높이와 성능을 자랑한다. 물론 이것은 현대의 기술이 모잘라서가 아니라, '저런 괴물'을 만들 필요가 아직까지 없기 때문이다. 나사가 아폴로 계획의 후속으로 계획했던 컨스털레이션 계획에서 사용될 예정이었던 로켓, 아레스 V의 경우는 새턴 V보다 거대하고, 더 높은 성능을 가진다. 물론 계획이 취소되었기에 이 로켓을 볼 기회는 영영 사라져버렸다.) 높이 100m, 300만개의 부품, 약 370만 리터의 연료를 실을 수 있었다.
  13. 여담이지만 한국의 연기자 채시라의 아버지가 아폴로 7호의 비행을 보고 월리 시라의 이름을 따서 채시라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4. Don Eisele. 이 발음이 은근히 까다로워서 제임스 웹 NASA 국장은 린든 B. 존슨 대통령에게 7호 승무원들을 소개하다가 말문이 막혔다고(...)
  15. 콘래드가 SCE를 잘못 알아듣고 한 말. SCE가 뭔지조차 몰랐기 때문에 잘못 알아들은 것이다.
  16. 존 영은 우주왕복선 최초의 미션인 STS-1 컬럼비아 미션에서 사령관이 된 인물이기도 하며, 켄 매팅리는 '홍역에 대한 면역이 없다는 이유로' 아폴로 13호의 탑승자격을 박탈당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찰스 듀크는 아폴로 13호의 예비 승무원으로 있다가 홍역에 걸려 매팅리를 물먹인 그 사람이다. 기분 참 묘했을듯...
  17. 이들 중 슬레이튼은 머큐리 계획에 참가했던 인물로, 원래대로라면 7번째로 머큐리 우주선에 탑승해야 했지만 심장 이상으로 우주에 올라가지 못했고 대신 우주비행사 팀장으로 지상근무를 했다. 그후 슬레이튼은 각고의 노력으로 심장병을 극복했고, 나는 우주에 가고 만다는 일념으로 마지막 기회를 잡은 것이다.
  18. 인류 최초로 우주유영을 했고, 돌아오던 도중 죽을 뻔한 그 레오노프의 팀이다. 원래 소유즈 11호에 탑승할 예정이었지만 쿠바쇼프의 결핵 오진(...)으로 교체되었는데, 하필 그 팀이 우주에서 재돌입하던 도중 사망하였다. 아폴로-소유즈 미션도 이 때 스태퍼드가 NASA측 조문사절로 소련에 가서 관을 운구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
  19. 상기되었듯이 아폴로 1호는 정식 미션이 아닌 훈련 미션 중 하나였다가 사망자를 위로하는 의미에서 추승된 것이기에 실질적인 실패는 아폴로 13호만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식으로 승격된 이상 아폴로 1호도 실패한 미션에 넣어야 함이 타당하다.
  20. 소유즈에 비해 아폴로가 안전해보일 수도 있지만, 소유즈도 1967년 1호 발사에서 귀환도중 사망한 1명, 11호에서 1971년 츄리닝 차림으로 내려오다가 감압이 안돼 사망한 3명을 제외하면 사망자는 전무하다. 통계로 따지면 128회 발사되어 4명이 사망한 소유즈가 아폴로보다 훨씬 안전하다.
  21. 새턴 V 로켓의 1단이 대형 엔진 5개를 묶은 형태인데 반해 N-1 로켓은 소련 공업능력의 부족으로 중소형 엔진 30개를 묶어서 겨우 원하는 추진력을 얻는 복잡한 구조였기 때문에 엔진 하나의 고장이 곧 폭발로 연결되어 버렸다.
  22. 정식 명칭은 아폴로 18호가 아니라 Apollo-Soyuz Test Project의 약자를 딴 'ASTP Apollo'이다.
  23. 이 계획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는데 소유즈와 아폴로는 선내에서 호흡할때 쓰는 공기의 기압과 산소와 여타 대기가스의 비율이 달라서 다른 우주선에 탄 사람이 갑자기 옮겨 타면 잠수병이 생길 수 있었다. 그래서 두 우주선을 연결하는 장치는 우주인들이 서로 다른 기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한쪽 우주선에서 다른 쪽으로 넘어가려면 통로에서 잠시 대기해야 했다.
  24. 사령선, 기계선, 달착륙선 그리고 우주비행사 3명.
  25. 예를 들어 11호의 멤버는 원래 올드린이 사령선 조종사였고 착륙선 조종사는 초짜인 프레드 헤이즈가 맡았지만 이런 중대한 미션에는 더 능력있는 파일럿이 필요하다며 콜린스를 사령선 조종사로 배치한 뒤 올드린을 LM으로 보내고 헤이즈를 제외하였다. 또한 8호와 9호, 10호, 11호, 12호, 14호의 사령선 조종사들은 모두 이후 미션에서 사령관 직위를 보장받았다.(13호의 잭 스와이거트는 귀환 후 NASA를 나와서 헤이즈가 대신 19호 사령관으로 예정되었다) 물론 딕 고든과 헤이즈와 스튜어트 루사는... 아폴로가 죽었슴다ㅡㅡ;;;
  26. 아폴로 13 영화에서 사고 나기 전에 한번 나오긴 한다. 유-라이언자리(Constellation U-rine)라는 희대의 개드립과 함께(...)
  27.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공군 조종사들이 의무복무만 채우고 칼전역하는 이유 중에는 민간항공사로의 이직 등의 이유도 있지만 이런 고달픈 가정사가 매우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우주 비행사들은 대개가 늘 사선을 넘나드는 직종인 테스트 파일럿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들이기에 가족들의 정신적 부담도 매우 심하다.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한 여성 우주 비행사들 중에는 아예 독신인 이들도 적지 않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28.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키트로 팔린 알테어 8800도 비슷한 입력기를 가졌다. 그리고 거기서 애플이 나왔다.
  29. 사령선과 달 착륙선에 설치된 그 컴퓨터는 당시 세상에서 제일 작고 성능이 빠른 컴퓨터였다.
  30. https://en.wikipedia.org/wiki/Margaret_Hamilton_(scientist)
  31. 사실 달착륙선을 만들고 달에서 이게 실제로 뜰까? 라는 의심이 많았다. 제조사 그루먼이나 NASA나 보증을 못하는 것이다. 결국 11호에서 성공하면서 이런 기우는 사라졌다.
  32. KBS에서 아폴로 11호 착륙 생중계 해설을 담당했다. 그 당시 KBS는 중계권이 없어 주한미군 방송(AFKN)을 받아 간접 중계하였다.
  33. 작중 배경이 1950년대이다. 이 시기 말에 인간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고,당시 미국은 1957년 12월 6일 급히 뱅가드 TV3호를 발사하려다가 실패했던 때다! 여담이지만 유리 가가린이 세계 최초로 우주에 진출한건 1961년대이니..... 본격 생쥐의 외계인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