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9호

역대 아폴로 계획
아폴로 8호아폴로 9호아폴로 10호
APOLLO 9
아폴로 9호 미션 패치
발사일1969년 3월 3일
16시 00분 00초UTC
달 착륙일-
귀환일1969년 3월 13일
17시 00분 54초UTC
미션 기간10일, 1시간 00분 54초
우주선사령선 - 아폴로 CSM-104 (검드롭, Gumdrop)[1]
달 착륙선 - LM-3 (스파이더, Spider)[2]
사령관(CDR)짐 맥디빗[3]
사령선 조종사(CMP)데이비드 스콧[4]
달착륙선 조종사(LMP)러스티 슈바이카트[5]

1 개요

아폴로 9호는 아폴로 계획의 세번째 유인 미션이자 지구 궤도에서의 첫 달 착륙선(Lunar Module, LM[6]) 테스트이며, 비록 지구 궤도에서 미션이 진행되었지만 여러 의미로 JFK못 다 이룬 꿈을 가능케 했던, 아폴로 계획의 분수령과 같은 중대한 미션이었다.

2 꼬여버린 아폴로의 일정

아폴로 9호에 대해 소개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미국은 아폴로 계획의 단계를 A, B, C, ..., J 등으로 나누어서 실행하기로 당초 계획해놓고 예산과 개발시한을 정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아폴로 1호, 2호, ... 같은 식의 이름 대신 AS-201, 202, 203, ... 등으로 이름을 지을 방침이었다. 이 중 최초의 유인 비행은 AS-204. 하여간 우주왕복선 미션도 STS-51-L 같이 짓는 NASA의 괴이한 작명센스는 알아줘야 한다 아폴로 7호 비행을 수행한 월리 시라 팀의 경우 원래 AS-205라는 명칭으로 미션에 나설 예정이었고, 짐 맥디빗의 팀은 AS-207, 아폴로 8호프랭크 보먼[7]은 AS-208 미션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967년 1월 AS-204 테스트 도중 화재가 발생해 거스 그리섬, 에드 화이트, 로저 채피의 팀이 몰살당한 뒤 진상조사와 사후대책 마련 등에 1년 이상이 소요되었고 시간은 더욱 촉박해졌지만 우주선 개발이 지체되며 1968년 여름에야 아폴로 7호가 발사되어 지구 궤도상 사령선 테스트 임무를 수행했다. 그나마 사령선(Command/Service Module, CSM)은 발사를 했다고 쳐도, 1969년 12월에 달 착륙선 개발을 완료하려던 미국의 계획은 계속해서 늦어졌고, 결국 NASA 관계자들은 아폴로 8호에서 달 착륙선과 신형 우주복을 테스트할 예정이었던 것을 1969년으로 미루는 대신 베르너 폰 브라운이 제안한 달 궤도상 사령선 단독 비행(!)이라는 희대의 미친 짓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1968년의 크리스마스를 장식한 아폴로 8호 미션이다.

당초 우주비행사 배정과 훈련 임무를 담당하던 디크 슬레이튼은 시라의 다음 순번이었던 짐 맥디빗의 팀에게 빨리 달 궤도 비행을 갔다 올지, 아니면 좀 기다렸다가 LM 테스트를 할지 결정하도록 했고, 아폴로 미션 일정이 바뀌기 전부터 그루먼에서 LM 개발에 참여하던 맥디빗과 러스티 슈바이카트는 그냥 LM의 최초 비행을 맡기로 결정[8] 1968년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3 아폴로 9호 미션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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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포트레이트

아폴로 9호의 주 임무는 지구 궤도를 돌면서 달착륙선과 우주복의 안전성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1969년 3월, 아폴로 9호가 발사되었다. 달로 갈 것은 아니었지만 여태껏 두 우주비행사의 듀얼 EVA를 해본 전례가 없었고 아폴로 우주복과 생명 유지장치도 EVA에 적합한지 시험이 필요했으며, 프로토타입으로서 무인 비행에 그쳤던 이전 버전의 달 착륙선(LM)들과 달리 처음으로 우주비행사가 달 착륙선(LM)을 조종하며 궤도를 돌아보고 도킹을 해야 했다.[9] 게다가 제미니 시절에 몇번씩 우주선 도킹을 해봤다고는 하지만 정작 우주비행사들이 도킹을 했던 아지나 타겟은 무인 우주선이라 우주비행사들이 안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즉, 새로 도킹한 우주선에 우주비행사가 직접 진입하는 것 역시 아폴로 9호가 최초였다는 것. 아폴로 8호가 미친 짓이었다고는 하지만, 이것 역시 만만치 않은 미친 짓이었다.

게다가 우주에서 도킹한 우주선에 진입하는 최초의 인류로도 기록된 달 착륙선(LM) 파일럿 러스티 슈바이카트가 갑자기 구토를 하는등 컨디션이 메롱이어서 계획은 더욱 꼬였다. 슈바이카트와 사령선 조종사 데이비드 스콧은 EVA를 하며 우주복을 테스트해야 했는데 슈바이카트가 EVA를 못하면 우주복 테스트가 안되고, 자칫하다간 1년도 안 남은 1960년대가 휙휙 지나가서 JFK의 공약이 지켜지지 못할 것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탄식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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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에서 나온 슈바이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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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드롭에서 나온 스콧

다행히 슈바이카트는 한숨 자고 컨디션을 회복하여 EVA를 한번이나마 수행할 수 있었고, 이로서 LM에 문제가 생겼을 때 LM 탑승자가 EVA를 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우주에서 도킹을 해제하여 스파이더의 단독 비행을 진행한 뒤 하단부를 분리하였고, 본 모듈만 남은채로 사령선과 다시 도킹하여 돌아온 뒤 LM을 멀리 떠나보내고 지구로 귀환했다.

이들 중 스콧은 아폴로 15호 사령관으로 달에 착륙하게 된다.

4 매체

지구에서 달까지 5화에서는 LM의 개발과정을 중심으로 9호 미션을 다루고 있다. 그루먼의 LM 개발 책임자 톰 켈리[10]가 극중 주인공이자 내레이터로 나오는데, 7년간 LM 개발을 하며 온갖 정이 다 들어서인지 완성된 LM을 보며 감상에 젖는 것을 보고 맥디빗은 "오오 님 이거 존나 쩌네효 ㄷㄷ" 등의 덕담을 보내주고는 러스티랑만 있을 때는 "토스터에 다리짝 달아놓은 것 같은데 그런 얘기를 들려주긴 그렇잖아?" 하는등 스파이더가 이쁘지 않다는 푸념을 한다. 하지만 맥디빗 역시 스파이더를 떠나보낼 때는 스파이더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창 밖을 내다보며 정든 친구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을드러냈다. 엔딩에서는 LM-5의 완성 후 LM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던 엔지니어 톰 돌란과 존 허볼트를 초대하였다. 마지막에서는 이글이란 콜사인을 소개하며 11호를 기대케 한다.
  1. 설탕 뿌려진 젤리. 노스 어메리칸 사에서 사령선 모듈이 파란 비닐에 감싸인 채 도착한 모습이 꼭 그 모양이었다고.
  2. 말 그대로 거미 같이 생겼다고 스파이더라고 불렀다.
  3. CDR백업 피트 콘래드
  4. CMP백업 리처드 고든
  5. LMP백업 C.C. 윌리엄스앨런 빈. 클리프턴 커티스 "C.C." 윌리엄스는 1967년 10월 5일 T-38 추락사고로 사망하고 앨런 빈으로 교체되었다. 빈이 합류한 이 백업 팀은 그대로 아폴로 12호의 멤버가 된다.
  6. 이라고 쓰고 렘이라고 읽는다. 원래 착륙선은 Lunar-Excursion Module이란 이름으로 개발되다가 명칭을 바꿨는데 이 약자 명칭만은 그대로 이어졌다.
  7. 원래는 짐 러블 대신 마이클 콜린스가 지구 고고도상 테스트를 수행할 보먼 팀의 사령선 조종사로 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콜린스가 디스크 수술을 받게 되며 백업이었던 러블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콜린스는 8호의 백업이었던 닐 암스트롱의 팀에서 우주비행 경력이 없던 프레드 헤이즈가 빠진 대신 사령선 조종사가 되었고 기존 사령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 LM 조종사가 되었다.
  8. 이 결정은 실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왜냐 하면, 이 결정으로 인해 맥디빗의 백업 팀이었던 피트 콘래드의 팀 역시 일정이 한 회씩 미뤄졌기 때문. 대신 보먼 팀의 백업이었던 닐 암스트롱의 팀이 11호를 맡게 되었고, 그 11호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 된 발자국을 남겼다.
  9. CSM과 LM은 달로 갈 수 있게 도킹된 상태로 발사되지 않고 각각 궤도에 전개된 뒤 CSM이 180도 회전을 하여 LM에 도킹을 해야 했다. 아폴로 13 영화의 잭 스와이거트는 이를 남녀상열지사와도 같은 대단한 테크닉이라며 여친에게 자랑했다.
  10. 배우는 맷 크레이븐이다. 자비스 장관님! 추가로 리로이 제스로 깁스 역의 마크 하먼은 4화에서 월리 시라로 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