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폴로 11호

역대 아폴로 계획
아폴로 10호아폴로 11호아폴로 12호
APOLLO 11
아폴로 11호 미션 패치[1]
발사일1969년 7월 16일
13시 32분 0초UTC
달 착륙일1969년 7월 20일
20시 17분 40초 UTC
귀환일1969년 7월 24일
16시 50분 35초UTC
미션 기간8일, 3시간 18분 35초
우주선사령선 - 컬럼비아(Columbia)
달착륙선 - 이글(Eagle)
사령관(CDR)닐 암스트롱[2]
사령선 조종사(CMP)마이클 콜린스[3]
달착륙선 조종사(LMP)버즈 올드린[4]

아폴로 계획의 11번째 임무.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

인류가 지구 외의 천체에 첫 발을 디딘 역사적인 순간.

아폴로 11호 임무의 모든 과정.

1 준비과정

지금까지의 모든 아폴로 미션은 11호를 위한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아폴로 11호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 워낙 역사적인 일인 만큼 NASA 홍보부 측에서는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로 불린 아폴로 10호의 콜사인과 달리 더 의미있고 진지한 콜사인을 요구했다. 그 결과 사령선은 쥘 베른의 '달 세계 여행'에 등장하는 우주선 '컬럼비아드'에사 따온 '컬럼비아(Columbia)'로, 달착륙선은 미국의 국조이자 가장 유명한 상징인 독수리를 따서 '이글(Eagle)'이라는 콜사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착륙 지점은 이전에 달에 착륙한 탐사선들이 보낸 지형 데이터를 바탕으로 비교적 평평한 '고요의 바다 (Mare Tranquillitatis)'로 결정되었다.

977px-Apollo_11.jpg
좌측부터 암스트롱, 콜린스, 올드린

역사적인 임무의 주인공들은 이미 제미니 계획 시절 우주 비행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었다.[5]

한편 아폴로 11호 계획을 맡은 크랜츠의 팀은 시뮬레이션 훈련을 할 때마다 낙제를 받았다. 마지막 훈련에서도 낙제를 받았는데 착륙선 컴퓨터의 시스템 에러 코드 1201과 1202 때문이었다. 관제사들은 "왜 중지시킨 겁니까? 경보는 울렸어도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잖아요. 착륙을 중지시키지 말았어야죠."라는 말을 남겼고, 엔지니어들은 실제상황에서는 그 에러가 안 뜰 거라고 장담했지만...

이런 불안감을 뒤로 하고 아폴로 11호는 1969년 7월 16일에 발사되었다. 발사 12분 후 지구 궤도에 접어든 11호는 1바퀴 반을 돌고 달로 향했고, 30분 후 이글과 컬럼비아는 새턴 V 로켓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도킹하면서 달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2 독수리는 내리다

Michael+Collins,+the+astronaut+who+took+this+photo,+is+the+only+human,+alive+or+dead+that+isn%27t+in+the+frame+of+this+picture,+1969.jpg
[6]

UTC 기준 7월 20일, 이글은 컬럼비아와 분리되어서 달 착륙 궤도에 진입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의 크레이터와 바다 같은 랜드마크를 기준으로 착륙 연습을 받았는데, 두 비행사는 착륙선이 지나가는 랜드마크들이 모의 착륙 때 보다 약 4초 빠른 위치임을 알아챘다.[7] 이 상태대로라면 원래 예정 위치에서 더 서쪽으로 착륙하게 될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잠시 후, 착륙 돌입 5분 후 이글이 1800m 상공으로 서서히 내려갈 때 컴퓨터가 코드 1201과 1202 에러를 띄우기 시작했다. 모의 착륙때의 문제점이 다시 생긴 것. 휴스턴에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할때 컴퓨터 엔지니어 잭 가먼(Jack Garman)이 관제사들에게 "착륙을 계속해도 좋다"는 말을 전한다. 1201/1202는 시스템에 일시적인 과부하가 걸렸을 때 출력되는 에러 코드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불필요한 계산 중 일부만이 처리 리스트에서 지워질 뿐이었다.[8] 비행사들은 이를 전해듣고 착륙을 강행한다.

창 밖을 주시하던 암스트롱은 예상 착륙 지점이 돌투성이인 것을 발견하고 준 수동 모드로 전환한 뒤 올드린의 고도와 속도 복창을 듣고 이글을 조종해나갔다. 이 때문에 모의 착륙에서보다 시간이 더욱 많이 소요되었고, 휴스턴에서는 연료가 떨어지지 않을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긴장하는 가운데 착륙선 이글은 1969년 7월 20일 20:17:40 UTC에 달에 있는 고요의 바다에 착륙했다.

Houston, Tranquility Base here. The Eagle has landed.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기지.[9][10] 이글은 착륙했다.
착륙 약 18초 후, 20:17:58 UTC, 닐 암스트롱

경보가 두 번이나 울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무시하고 진행된 착륙이었고, 착륙했을 때 연료계의 잔량은 25초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달의 인력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관계로 실제로는 약 50초 정도의 분량이 남았지만, 커다란 크레이터를 넘어가며 이뤄낸 착륙이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올드린은 착륙을 마치고 선외 활동 준비를 시작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This is the LM pilot. I'd like to take this opportunity to ask every person listening in, whoever and wherever they may be, to pause for a moment and contemplate the events of the past few hours and to give thanks in his or her own way."

"이쪽은 달 착륙선 파일럿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나는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든, 지금 어디 있든, 잠시 멈춰 지금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서 각각의 방법으로 감사를 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3 달에 발을 디디다

Here men from the planet Earth first set foot upon the Moon, July 1969 A.D. We came in peace for all mankind.

서기 1969년 7월, 여기 행성 지구로부터 온 인간들이 달에 첫 발을 내딛었다. 우리는 모든 인류를 위해 평화의 목적으로 왔다.

착륙 후 우주비행사들은 실험 장치들과 성조기를 꽂을 위치를 계산하고 달에 발을 내딛으려고 했지만, 해치가 너무 작아서 준비에만 2시간이나 걸렸다. 누가 해치를 이렇게 작게 설계한 것인가. 소련인인가 사실은 해치 설계가 끝난 후에 우주복 설계를 변경했는데, 그게 해치에 반영이 안 되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11] 7월 21일 02:39 UTC에 암스트롱은 해치를 열고 착륙선의 사다리를 내려갔다. 암스트롱은 사다리를 내려가며 착륙선에 부착된 카메라를 켜고 위에 나온 기념판을 착륙선 사다리에 부착시켰다. 달에 첫 발을 내딛기 직전 암스트롱은 이 말을 남긴다.

I'm, ah...at the foot of the ladder. The LM footpads are only, ah...ah...depressed in the surface about, ah...1 or 2 inches, although the surface appears to be, ah...very, very fine grained, as you get close to it. It's almost like a powder. (The) ground mass, ah...is very fine.

지금 어...착륙선의 사다리 밑단에 서 있다. 착륙선 다리는 어...어...달 표면에, 어...1인치나 2인치 정도 가라앉아 있지만, 달의 표면은 가까이서 보면 꽤…꽤 입자가 곱다. 거의 가루와 같이 보인다. 지표는, 어...입자가 굉장히 가늘다.

I'm going to step off the LM now.
이제 착륙선에서 내려가겠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12]
1969년 7월 21일 02:56:15 UTC, 닐 암스트롱

올드린도 암스트롱에 뒤이어 달을 "웅장한 황무지 (Magnificent Desolation)"[13]라고 묘사했다. 이때 혼자서 성찬식을 실시했고, 이것은 달에서 행해진 사상 최초의 성찬식이었다.[14][15] 그리고 20분쯤 후 올드린도 달에 발을 내딛고[16], 인간이 월면에서 얼마나 잘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 후 두 사람은 기념판을 월면에 설치하고 성조기를 세우는 등의 선외활동을 진행했다. 그리고 잠시 뒤 닉슨 대통령과 통화를 진행했고,[17][18] 암스트롱은 과학 실험 키트 설치를 마치고 짧은 산책을 가졌다.[19] 그리고 유리 가가린과 아폴로 1호 승무원들을 기리는 물건들을 놓고 착륙선으로 돌아와 총 2시간 반의 선외활동을 마무리했다.

달 착륙선에 돌아가서 (달에서) 7시간의 수면을 취한 후, 이륙해서 달 궤도에서 기다리는 사령선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상승용 엔진을 작동시키는 스위치는 부러져 있었고, 올드린은 급히 볼펜을 집어넣어 스위치를 넣음으로서 문제를 해결했다[20]. 그러나 이륙하던 도중, 올드린은 자기가 그렇게 고생해서 세웠던 성조기가 달 착륙선이 일으킨 폭풍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지못미 이후 성조기는 달 착륙선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 세우게 된다.

4 귀환

그리고 그들은 지구로 귀환했다. 달에서 이상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에 대비해서 2주일동안 격리되었지만, 그 후에는 수많은 환영행사에 참석하였으며 미국은 승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5 논란?

일부 사람들이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거짓이라는 주장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들이 드는 예로는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하였을 때 미국 국기를 꽂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때 미국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것[21]같은게 있다. 이것이 사실이면 미국은 우주 조종사를 달로 보낸 게 아니라 지구에서 우주복을 입히고 전세계를 상대로 쇼를 한 셈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쇼 맞기는 하다. 오늘날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200조원이 들어간 소련을 발라버릴 초특급 쇼

이러한 논란은 소련과의 경쟁의식 때문에 미국이 조작한 것 아니냐는 주장에서 나왔다. 당시 냉전 체제에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절정에 달한지라...소련이 달 왕복 우주선을 만들자 미국 NASA에서는 이에 대한 대항마가 필요해졌고, 그래서 아폴로 11호를 만들었다. 하지만 달 왕복 & 착륙을 해 본 경험이 전무한지라 어쩔 수 없이 달 착륙을 한 것처럼 조작을 하였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폴로 계획 음모론 참고.

6 기타

암스트롱이 명언을 남기며 첫 발을 디딘 후 올드린이 내려왔는데, 올드린은 원래 제미니 계획에서도 사령관은 우주선 안에 있었고 조종사라고 쓰고 짬밥 딸리는 신참이라 읽는다EVA 등 궂은 일을 도맡았기 때문에 자신이 최초로 달에 착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 착륙선 좌석 배치 때문에[22] 결국 암스트롱이 먼저 착륙했고 올드린은 이 일로 매우 삐쳤다고 한다.[23]

하지만 가장 서러운 사람은 바로 마이클 콜린스. 사람들은 암스트롱은 당연히 알고 올드린도 어느정도는 알지만 콜린스는 거의 모른다. 나도 엄연한 일행인데 왜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냐![24] 콜린스의 안습함은 여기서 끝이 아닌데 콜린스는 달에 착륙하지 않은채 사령선을 타고 달의 궤도를 돌았어야 했다. 콜린스가 쓸쓸히 홀로 달의 반대편을 돌때, 지구의 관제센터는 물론 달에 착륙해있던 올드린과 암스트롱과도 통신이 48분간 두절되었다. 왜 콜린스는 햄보칼 수가 업써!! 그래도 인류가 탄생한 뒤 그 누구보다도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서 48분동안 모두와 통신이 두절된 채로 달의 궤도를 홀로 비행[25]했으니 콜린스 대단하다!! 이런 말로라도 위로를..[26] 그런 점이 인정받았는지 콜린스는 올드린이 공군에서 테스트 파일럿 스쿨 교장으로 있다가 예편한 것과 달리 준장까지 달고 전역했고, 이후 예비역 소장으로 특진하기도 했다.

xkcd what-if에 따르면 마이클 콜린스는 다른 아폴로 사령선 조종사들과 함께 인류 역사상 기록된 예 중 다른 인간으로부터 홀로 가장 멀리(3,585km) 떨어진 사람들 중 하나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들이 쓴 책에 따르면 외로움은 딱히 느끼지 않았다고.

1999년에는 NASA에서 달 착륙으로부터 정확히 30주년 되는 7월 20일에 찬드라 X선 우주망원경을 탑재한 STS-93 컬럼비아가 발사될... 뻔 했지만 메인 엔진 이상으로 카운트다운을 중단했다. 3일 후 발사했지만 이 때도 결국 엔진 누수가 발생하여 예정한 궤도에 미치지 못했다. 안습.

2016년 7월에는 아폴로 11호에 사용된 유도 컴퓨터(Guidance Computer)의 소스코드가 GitHub에 오픈소스로 완전히 공개되었다.링크

6.1 읽히지 않은 추도문

사실 임무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달에 착륙한 비행사들은 생존 귀환 가능성을 상당히 낮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유명 언론인, 작가이자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였던 윌리엄 새파이어는 발사 이틀을 남기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대통령 발표문을 준비해야 했다.

그 당시 달착륙 계획중 가장 위험성이 높았던 단계는 착륙선을 다시 궤도를 돌고있는 사령선과 접촉하는 것이었습니다, 실패할 가능성도 높았고, 만약 그들이 실패했었다면 그들을 달에 죽게 내버려두고 떠나야 했을겁니다, 관제센터는 모든 통신을 두절시키고 그들은 굶어죽기를 기다리거나 자살해야 했을겁니다.

-윌리엄 새파이어

이후 1999년 이 연설문의 전문이 공개되었다. 다음은 최악의 경우 닉슨 대통령이 읽어야 했을 수도 있었던 추도문이다.

Fate has ordained that the men who went to the moon to explore in peace will stay on the moon to rest in peace. These brave men, Neil Armstrong and Edwin Aldrin, know that there is no hope for their recovery. But they also know that there is hope for mankind in their sacrifice. These two men are laying down their lives in mankind’s most noble goal: the search for truth and understanding. They will be mourned by their families and friends; they will be mourned by their nation; they will be mourned by the people of the world; they will be mourned by a Mother Earth that dared send two of her sons into the unknown. In their exploration, they stirred the people of the world to feel as one; in their sacrifice, they bind more tightly the brotherhood of man. In ancient days, men looked at stars and saw their heroes in the constellations. In modern times, we do much the same, but our heroes are epic men of flesh and blood. Others will follow, and surely find their way home. Man’s search will not be denied. But these men were the first, and they will remain the foremost in our hearts. For every human being who looks up at the moon in the nights to come will know that there is some corner of another world that is forever mankind.

달을 향해 탐험을 떠났던 우주비행사들은 이제 달에서 영면을 취할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닐 암스트롱, 에드윈 올드린[27]이라는 두 용감한 우주비행사들은 더 이상 구원의 길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이 인류를 위한 희망이었음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이들 두 우주비행사들은 진실과 이해를 갈구한다는 인류의 제일 고귀한 목표를 위해 그들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국가를 넘어 전세계 사람들 그리고 그녀의 아들 둘을 미지로 떠나보낸 어머니 지구 또한 애도하며 그들의 넋을 기릴 것입니다. 아폴로 11호 대원들의 탐사로 인해 인류는 하나로 결속했고 이들의 희생으로 인하여 인류의 동포애는 더욱 더 깊어졌습니다. 고대 인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자리 속 영웅들을 보곤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밤하늘 속 영웅들을 바라보지만 이 영웅들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고귀한 인간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발자취를 따를 것이고, 무사히 귀환할 것입니다. 인류의 탐험은 절대 멈추어져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첫 발자국을 내민 선구자이며 영원토록 우리의 가슴 속 가장 중요한 곳에 기억될 것입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밤마다 달을 보는 모든 인간들은 저 곳 어딘가에 영원한 인류애가 자리잡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참 주옥같고 슬픈 문장. 이 연설이 끝나면 대통령은 미망인들에게 전화를 하고, 이후 성직자가 생방송으로 추도 미사를 올릴 예정이었다고 한다.

6.2 달 착륙 필름의 실종

아폴로 11호의 착륙 후 닐 암스트롱이 첫 발을 내딛는 장면과, 달 표면에서의 활동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약 6억명이 시청하였다. 당시 영상은 미국과 호주의 전파망원경 총 4곳에서 달착륙선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 휴스턴에서 중계하는 방식이었는데, 영상을 전송하는 방법이 완전 구식 그 자체였다. 신호 규격의 문제로 변환을 할 수 없어서, 즉 달에서 온 신호를 받아 처리하여 브라운관에 손바닥만하게 나온 영상을 TV카메라로 찍어서 그걸 휴스턴으로 넘겨주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휴스턴은 그 4개의 신호를 잘 나오는걸로 번갈아가면서 돌렸기 때문에 더더욱 화질은 개나 줘버린것이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영상의 화질저하 원인은 그런 이유였다.

중계상의 문제 및 기록을 위해 달에서의 활동 영상은 녹화되고 있었는데,(릴 테이프로 약 45개 분량) 각 전파망원경과 휴스턴에서 녹화를 하였다.(전파망원경에서 수신된 영상은 중간 손실이 적기 때문에 화질이 우수했다.)

그리고 그 우수한 화질의 녹화본은 잊혀졌다!

시간이 많이 흘러, 당시 녹화된 영상을 수소문했지만, 관계자는 물론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몇몇의 인원과 나사까지 동원되어서 추적을 시도하였지만, 수많은 기록더미속에서 찾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70년대 나사에서는 기록테이프 부족으로 인해 이전에 기록되었던 필름을 재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달 착륙 영상도 그런식으로 소실된게 아닌가 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일단은 각 전파망원경에서 녹화를 했으므로 그곳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본이 존재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가 있지만... 과연...

현재는 호주 전파망원경에서 받은 음성없는 영상을(TV중계본 화질열화판이다.) 디지털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일부 결과가 나왔는데 화질이 무지 좋아졌다고 한다.

6.3 대중매체의 아폴로 11호

1960년대의 사건은 물론 현대사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사건 중 하나였던지라, 뉴스를 비롯한 각종 TV, 영화, 음악 등에서 상당히 많이 다뤄졌는데,

당시 방영된 실시간 뉴스로는 미국의 명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진행했던 CBS 생중계가 유명하다.[28][29]


발사 카운트다운 또한 매우 유명해서, 제이지나, 펫 샵 보이스의 노래에도 이 음성이 샘플링되어 나왔다.

  • 퓨쳐라마에서는 시즌1 2화에서 프라이가 닐 암스트롱이 남긴 발자국을 일부러 밟아서 망가트려버린다미친. 그런데 착륙선과 발자국이 있는 역사적인 장소가 달 거주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고 아무런 보호 조치도 없이 마치 역사에서 잊혀진 것처럼 방치되어있었다. 후에 프라이와 릴라가 구출될 때 착륙선까지 통째로 갖고 와 버린다.
  1. 마이클 콜린스가 디자인 했는데, 비행사들의 이름이 없는 이유는 임무 완수에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림을 잘 보면 지구의 그림자가 왼쪽으로 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본인의 실수였다고.
  2. 백업 짐 러블. 이 팀은 앤더스 대신 켄 매팅리가 들어온 채로 아폴로 14호에 배정되나 13호 예정이었던 앨런 셰퍼드의 팀이 셰퍼드의 귓병 이후 복귀에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며 일정을 교대하여 아폴로 13호에 배정된다.
  3. 백업 윌리엄 앤더스
  4. 백업 프레드 헤이즈
  5. 당초 이 팀은 아폴로 8호의 백업 팀이었고 콜린스 대신 프레드 헤이즈가 들어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콜린스 대신 올드린이 사령선 조종사, 올드린의 자리엔 헤이즈. 하지만 제미니 시절의 베테랑들이 중대한 미션을 담당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었기에 아폴로 8호의 사령선 조종사에 짐 러블이 배치되고 8호 사령선 조종사 콜린스가 8호의 백업이었던 11호 팀으로 옮겨오며 사령선 조종사가 된 뒤 기존의 올드린이 헤이즈 대신 착륙선으로 갔고 헤이즈는 백업 신세가 되었다. 지못미 결국 13호에서 달에 가지만 아폴로 13호는...게다가 19호 사령관으로 예정되었다가 취소... 안습
  6. 파일명을 보면 알겠지만, 외국에서는 콜린스를 두고 종종 온 인류를 사진 안에 담고 자신은 사진에 찍히지 않은 사람이라는 농담거리로 쓰이기도 한다.
  7. 이 문제는 나중에 밝혀졌는데 지구와 다른 중력으로 인해 컴퓨터 시계가 잘못된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즉, 달에서는 지구보다 시간이 느리게 간 것. 오차는 겨우 0.32초였지만 이 1초도 안되는 오차 덕분에 몇백미터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8. 이 에러의 원인은 올드린이 착륙 과정에서 도킹 레이더를 켜놓았기 때문이었다. 도킹을 기준으로 설정된 레이더가 달 표면을 탐지하면서 잘못된 정보들을 컴퓨터로 보냈고, 정보의 과부하가 걸린 컴퓨터는 에러 코드를 출력하게 되었다.
  9. 착륙 위치인 '고요의 바다'에서 따온 것. 확실하고 안전하게 계획된 위치에 내렸다는 말을 전한 것이다. 원래 모의 비행에서 착륙선의 콜사인은 줄곧 '이글'이었다. 그러나 암스트롱은 떠나기 직전 이 명칭을 떠올리고 관제실의 캡콤 찰스 듀크에게만 이를 귀띔해주었다. 이후 아폴로 11호가 착륙한 자리의 이 명칭은 국제 천문 연맹에서 공인되어 지금도 라틴어 명칭인 'Statio Tranquillitatis'로 불리고 있다.
  10. 이 말을 들은 찰리 듀크는 다들 숨죽여 지켜보느라 새파랗게 질렸는데 이제야 숨 좀 쉬겠다는 말을 보냈는데 이 역시 명언으로 남았다. 찰리 듀크 역시 이후 홍역에 걸려서 켄 매팅리를 엿먹인 뒤 아폴로 16호에 배정되어 달을 밟게 된다.
  11. 이유는 다르지만 우주선 해치 문제는 소련도 겪은 적이 있다.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첫 우주유영을 한 뒤 우주선에 못 들어갈 뻔 했다! 항목 참조.
  12. 이 대단히 유명한 한 마디는 당연히 온갖 곳에서 패러디 혹은 오마주되었다. 대표적으로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 유리의 복수>에서 소련 캠페인의 주인공(사령관)이 달에 착륙하자 로마노프 서기장이 감격에 겨워 외치는 말. "아~! 드디어! 소비에트가 달에 착륙했소! 이것은 동무에게는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지만, 소비에트 인민에게는 위대한 도약이지! 와하하하하!"
  13. 한국어로는 '위대한 황야'를 비롯해 여러 번역이 혼재한다.
  14. 참고로 이 와인은 달 위에 부어진 최초의 액체고 밀떡은 인류가 달에서 먹은 최초의 음식 되시겠다.ㅎㄷㄷ 이때 올드린이 사용한 잔은 그가 다니던 교회에 전달되었고, 지금도 그 교회에서는 7월 20일을 기념하고 있다.
  15. 드라마 지구에서 달까지에서 재현된 모습. 읽은 문장은 요한복음 15장 5절;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If you remain in me and I in you, you will bear much fruit;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6. 달 표면의 발자국을 찍은 유명한 사진도 사실은 올드린의 발자국이다. 게다가 이건 올드린의 첫 발자국도 아니라 월면 성분 실험의 일환으로 찍은 발자국이다.
  17. 여기서도 닉슨은 콜린스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물론 '달에 착륙한 인간'들과 통화를 했기 때문에 콜린스는 애초에 대상이 아니었다.
  18. 원래 닉슨은 이 통화를 위해 긴 연설을 준비했지만, 당시 백악관에 닉슨과 함께 있었던 아폴로 8호 비행사 프랭크 보먼이 "케네디의 유산임을 존중하라"며 닉슨을 설득했고, 결국 닉슨은 약 1분 정도로 짧게 말을 마쳤다.
  19. 이때 세워진 착륙 모듈로부터 가장 멀리 떠난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았다.
  20. 이 볼펜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21. 우주에서는 공기가 없다. 달에서 깃발을 꽂는다면 깃발이 가만히 있는 게 정상인것.... 같지만 깃발의 천에도 관성력은 작용하므로 깃발을 꽂는 움직임에도 반응하여 당연히 펄럭이는게 정상이다. 즉 바람에 펄럭이는 게 아니라 흔들어서 펄럭이는 것.진공이라서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공기저항이 있는 지구에서 같은 방법으로 깃발을 내리꽂을 경우 깃발이 펄럭이지 않는다. 그럼 깃발이 펄럭이는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깃발에 펄럭이는 무늬가 있는가? 그 비밀은 깃발 자체에 있다. assembly.gif 이것이 아폴로 11호에 쓰인 깃발. 일부러 펄럭이는 무늬가 나도록 깃발을 접은 것이다.
  22. 해치는 여닫이식인데, 해치가 올드린이 서 있는 쪽으로 열리기 때문에 올드린이 먼저 나가려 하는 경우 해치가 파손될 수 있다.
  23. 암스트롱의 독사진이 하나도 없는 이유는 올드린이 삐쳐서 암스트롱을 찍어주지 않아서라는 카더라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진촬영을 맡은 암스트롱이 올드린에게 카메라를 넘겨 자기를 찍어달라고 했으나, 올드린이 실험장비를 설치하느라 바쁘다며 카메라를 넘겨받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 아 ㅅㅂ 지금 바쁘다고 근데 사람들이 다 암스트롱 사진인 줄 안다는 게 함정 그래서 그 후의 아폴로 미션에서는 두 우주비행사 모두 카메라를 우주복에 장착하게 했다.
  24. 그 때문인지 20세기 소년에서는 작중에서 달 착륙 사건을 언급할 때 콜린스 중령(?)이 몇 번 언급된다. 그래도 디크 슬레이튼이 로테이션에 따라 아폴로 17호의 사령관 자리를 제안하지만 콜린스는 그 제안을 사양했고, 그 자리는 다시 달에 착륙하지 못하고 돌아오느니 차라리 프로그램을 그만두겠다고 뻗대던 10호 달 착륙선 조종사이자 16호 사령선 조종사가 될 예정이었다가 로테이션에서 빠져버렸던 유진 서넌에게 돌아갔고, 서넌은 현재 기준으로 달에서의 인류 역사상 마지막 발자국을 남겼다.
  25. 엄밀히 말하자면 달에서의 사령선 솔로 비행은 콜린스가 아니라 10호의 사령선 조종사 존 영이 처음이긴 하지만 존 영은 그래도 아폴로 16호 사령관이 되고 우주왕복선 초대 사령관도 하는 등 NASA에서 통산 40년 넘게 근무하며 제대로 끗발 날렸으니 콜린스가 더 안습해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26. 사실 능력을 따지면 콜린스가 올드린에 전혀 밀릴 것이 없다. 콜린스가 11호 팀에 합류한 것도 아폴로 8호의 당초 백업 팀에 속했던 루키 프레드 헤이즈를 빼면서 베테랑을 집어넣는다고 할 때 올드린을 착륙선 조종사로 보내고 콜린스를 끼워넣은 것임을 상기하자. 게다가 사령선 조종사는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훈련도 해야 했다. 오히려 NASA에서도 아폴로의 로테이션과 승무원 서열을 따지면 착륙선 조종사보다 사령선 조종사를 더 쳐줬던 편으로, 가령 착륙 팀이 변고를 당하여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멘탈을 유지하고 홀로 지구로 돌아와야 하는 만일의 사태는 루키에게 쉽게 맡길 수 없는 사태였다.
  27. 콜린스는 사령선에 남아있어 착륙선이 사령선과 접촉하는데 실패해도 돌아올 수 있었으므로 제외. 이 사람은 여기서도 빠졌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렇게 달에서 지구로 홀로 돌아와야 하는 임무가 더욱 끔찍하고 처절했을 것이다.
  28. abc생중계와 비교가 되는데, abc가 CBS보다는 그래픽을 상대적으로 덜 쓰고 직접 촬영하는 화면을 내보내고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고 그래픽 또한 상대적으로 현실감이 있었다. 그러나 앵커빨이...
  29. 크롱카이트가 '휴! boy!' 하면서 안경을 벗고 웃는 모습은 인터스텔라 예고편에서 재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