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

1 三韓

한국의 역사
고조선 / 부여 / 원삼국시대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 백제 신라)
삼국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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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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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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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
옥저
동예
신라태봉,후고구려
마한백제후백제미군정대한민국
진한신라신라
변한가야
우산국대한민국 임시정부
탐라국


1.1 세 개의 '삼한'

1.1.1 원삼국시대 한강 이남에 있었던 세 개의 나라 또는 소국 연맹체.

고대 한반도 중남부 일대에서 형성된 소국들의 연맹체인 마한, 진한, 변한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사실 마진변한이라고 편의상 분류하지만 실상은 각 문서 내에서 확인할 수 있듯 수많은 소국이 난립하고 있었으며, 서로 열심히 싸우기도 하고 점령하기도 했던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각자 소국들의 크기는 지금의 ,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제대로 된 국가라기보다는 성읍국가나 지역들의 연맹체에 가까운 형태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한국사판 춘추시대라고도 볼 수 있으며,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수수께끼의 나라들.

각 나라들 사이즈는 작았지만 한사군 중 대방군과 낙랑군이 마한을 이루는 일개 소국 중 하나인 신분고국에 쳐들어갔다가 대방태수가 전사했다는 기록도 있는 걸 보면 부여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실제로 백제신라의 건국 이후에도 상당한 기간동안 그 세력이 남아있었다. 신라와 백제는 건국 후 처음부터 흔한 삼국시대 지도처럼 서부와 동부를 다 가진 영토국가는 아니었다. 가령 신라는 맨 처음에는 수많은 진한지역 소국들 중 하나였을 뿐이었는데, 신라만 해도 경주에서 말 그대로 바로 옆인 울산, 안강, 영천에도 각자 우시산국, 음즙벌국, 골벌국이 존재했을 정도니 초기 신라(사로국)이 얼마나 작은 나라였는지 알 수 있고 그리고 이런 작은 나라들을 하나하나 복속해나가면서 우리가 아는 경상도 일대를 지배하는 신라가 된 것이다.

백제의 경우 가까이 있었던 마한이 그 예로,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서는 백제가 건국된 이후 곧 마한을 복속시켰다고 나오나, 고고학 연구 상으로는 그 이후에도 오랜 기간 동안 독자적인 세력을 이룬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7차 마지막 개정 국사 교과서에서는 이 추정이 공식적으로 삽입되었다. 교과서는 마한이 천안, 익산, 나주 등을 중심지로 삼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는 성장하는 백제에 밀리면서 천안->익산->나주 지방으로 차차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마한도 속을 들여다보면 목지국 같은 맹주격 국가가 있긴 했지만 실은 수십개의 생판 남남인 소국들이었는데, 어떤 식으로 밀려나고 따위는 기록이 워낙 일천해 알기 어렵다.

삼한은 각각 백제, 신라, 가야로 판도가 정리되어 북쪽을 장악한[1] 고구려와 함께 삼국시대를 만들게 된다.

삼한의 한(韓)은 당시 삼한 지역 혹은 그 지역에 사는 종족들을 일컬어 부르는 명칭의 음차이다. 음차된 명칭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신라, 고구려, 백제와 달리 삼한은 선택할 수 있을 만큼 한자 문화가 발달하기 전에 소멸되었기 때문에 한의 원래 발음 및 의미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환빠들은 삼한의 한이 고조선 또는 고조선 이전의 강력한 고대 국가의 명칭이라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런거 없다


1.1.2 '삼국시대의 세 나라'로 의미 변화

다만 삼한을 삼국 정립 이전 한반도 중남부로 보는 관점은 어디까지나 조선 후기 실학적 역사학 확립 이후[2]에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오랫동안 삼한=고구려, 백제, 신라의 다른 표현으로 인식되었다. 지금 우리가 백제, 신라는 삼한과 연결이 되지만 고조선, 부여, 고구려는 삼한과 별도로 인식하는데 이것은 근대 역사학 지식이 축적된 결과물이고, 그 전엔 천 년 넘게 삼한=고구려+백제+신라로 인식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고증해내기 전까지 저 마한, 진한, 변한의 세 나라가 고구려, 신라, 백제로 발전 및 대체되었다는 것이 전근대 지식인들의 인식이었다. 물론 교육을 못 받은 피지배층은 그런 거 몰랐다.[3] 단지 마한과 변한 중 어느 쪽이 고구려이고 어느 쪽이 백제인지를 놓고 논쟁이 있었을 뿐.

최소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정립된 이후에 삼국=삼한으로 칭하는 관점은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킬 때 쓰던 정치적 구호로 쓰인 점을 봤을 때 확실하다. 수나라, 당나라의 역사기록에도 삼국을 삼한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고구려 왕족 출신으로 당나라에 투항한 인물인 고현의 묘지명에서도 스스로를 요동 삼한인이라고 칭하는 것을 보아 삼한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가리키는 말이 확실하다. 고려에서 삼한공신을 책봉하거나 후일 조선이 대한제국을 자칭하면서 생각했던 한도 마한, 진한, 변한이 아니라 삼국의 삼한이다.

이 외에도 한국을 뜻하는 한이라는 말이 넓은 의미의 요동처럼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한민족의 거주지역을 뜻하는 관용적인 말로 쓰였다. 또한 삼한을 마한, 진한, 변한으로 칭하는 것을 어디까지나 근대시기 이후에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한, 진한, 변한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중국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는 이를 한(韓)전이라고 쓰고 있지 삼한이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 마한, 진한, 변한을 삼한이라 칭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근대시기 역사학이 정립되면서 그야말로 고대 삼한만을 일컬어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일 뿐이다. [4]

1.1.3 '한민족, 국가, 문화권'의 통칭으로

한국을 뜻하는 삼한이라는 말이 넓은 의미의 요동처럼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한민족의 거주지역을 뜻하는 관용적인 말로 쓰였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조선이 대한제국을 자칭하면서 생각했던 한도 마한, 진한, 변한이 아니라 삼국의 삼한이다. 당시의 시점으로 국호를 '고작 한반도 남부에 움츠리고 있던' 삼한에서 따오는 게 하등 이상할 게 없어서 그냥 따온 게 아니라, 애초에 신라가 삼한일통할 때 외쳤던 그 삼한은 고구려, 백제, 신라였다. 고구려는 마한, 백제는 변한, 신라는 진한으로 놓고 생각했던 것인데, 물론 이건 근대 역사학의 연구 결과로는 틀린 생각이지만 신라나 고려가 외쳤던 삼한일통이 한반도 남부를 통합한 의미로 쓴 게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한국의 고대사에서는 고조선이나 고구려 등 요동 국가들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지만, 그렇다고 흡사 중국의 영토 사관 비슷한 생각마냥 한반도 남부에 근거한 정치 조직들만이 현대 한국인의 혈통적, 언어적, 문화적 근원에 있다는 건 아주 무리한 주장이다. 애초에 정사 삼국지에 고조선의 왕이었던 준왕이 남하했다라는 얘기가 당당히 수록되어있는데다가 진한을 구성했던 구성원들에 고조선이 아주 많은 기여를 했는데? 삼한이 한국사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도 있으며 예맥과 대비되는 종족 명칭으로 통칭되는 것도 아니다.


1.2 중국, 일본의 삼한 기록

중국의 정사(正史) 중 하나인 삼국지에는 고대의 삼한을 가리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그 나라 안에 무슨 일이 있거나 관가(官家)에서 성곽(城郭)을 쌓게 되면, 용감하고 건장한 젊은이는 모두 등의 가죽을 뚫고, 큰 밧줄로 그곳에 한 발〔丈〕쯤 되는 나무막대를 매달고 온 종일 소리를 지르며 일을 하는데, 이를 아프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작업하기를 권하며, 또 이를 강건한 것으로 여긴다."
其國中有所爲及官家使築城郭, 諸年少勇健者, 皆鑿脊皮, 以大繩貫之, 又以丈許木鍤之, 通日嚾呼作力, 不以爲痛, 旣以勸作, 且以爲健.

라는 말이 나오는데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흠좀무스럽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를 지게로 해석한다.

"또 주호(州胡)가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의 큰 섬에 있다. 그 사람들은 대체로 키가 작고 말도 한족(韓族)과 같지 않다. 그들은 모두 선비족(鮮卑族)처럼 머리를 삭발하였으며, 옷은 오직 가죽으로 해 입고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옷은 상의(上衣)만 입고 하의(下衣)는 없기 때문에 하의실종? 거의 나체와 같다. 배를 타고 왕래하며 한(韓)나라에서 물건을 사고판다."
又有州胡在馬韓之西海中大島上, 其人差短小, 言語不與韓同, 皆髡頭如鮮卑, 但衣韋, 好養牛及豬. 其衣有上無下, 略如裸勢. 乘船往來, 巿買韓中.

라는 기록도 같은 책에서 등장하는데 여기서 주호는 탐라국, 즉 제주도를 뜻한다고 추정하고 있다.[5]

일본에서는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을 일컫는 말로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의 근거로 쓰인다. 나중에 한반도를 자기들 영토라는 역사왜곡을 일삼아 정한론을 걸쳐서 한반도 병합에 이른다. 또한 조선시대까지도 삼한의 한(韓)은 고려(高麗)와 함께 한민족 국가를 가리키는 별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현 일본 오키나와 현과 아마미 제도를 지배한 류큐 왕국에서도 조선을 삼한으로 지칭한 예가 있다. 1458년(조선 세조 재위기)에 쇼 타이큐(尚泰久, 상태구) 왕의 명으로 주조된 만국진량의 종(万国津梁の鐘)[6]의 명문(銘文)에 류큐를 주변국에 비교하며 미화하는 내용이 적혀 있는데 조선을 삼한으로 적고 있다.

"류큐국은 남해의 승지에 위치하여 삼한(三韓=조선)의 빼어남을 모아 놓았고, 대명(大明=명나라)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 일역(日域=일본)과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류큐는 이 한가운데에 솟아난 봉래도이다. 선박을 통해 만국의 가교가 되고, 이국의 산물과 보배가 온 나라에 가득하다"
琉球國者, 南海勝地, 而鍾三韓之秀, 以大明爲輔車, 以日域爲唇齒, 在此二中間湧出之蓬萊島也, 異産至寶, 充滿十方刹.

참고로 이 명문에서 삼한이 외국 중에 제일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류큐인들이 조선을 가장 좋아했던 게 아닌가 갑질을 안 하니까 짐작되고 있다.


2 三寒

3번의 추위.

한국의 겨울철 기온을 나타내는 삼한사온에서의 삼한이다.

  1. 사실 고구려도 처음엔 작은 나라에서 시작해 부여나 낙랑, 옥저 등을 전부 정리하고 우리가 아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의 고구려가 될 때까지 수백 년이 걸렸다.
  2. 딱 깨놓고 말하자면 이익과 안정복의 동사강목 이후라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3. 농담 아니고 국사, 국가 정체성, 민족 정체성 같은 게 다수의 피지배 민중들한테까지 확고하게 전파되기 시작한 건 근대 이후 민족주의(nationalism), 국민국가(nation state) 개념이 도입된 이후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역사를 민족주의에 의거해 논의하는 것에 회의론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4. 당시 기준으로 로마 제국이라 불렸던 동로마 제국이 현재는 비잔티움 제국이라 불리는 것, 헬라스가 원어지만 로마식 표현인 그리스라 불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역사 용어는 실제 당시를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
  5. 마한 서쪽이라고 해서 환빠들이 이런저런 억측을 내놓고 있지만, 사학계에서는 당시 중국인들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 대한 지리를 잘 몰라서 잘못 기재한 것으로 보고 있다.
  6. 일본 정부에 정식으로 등록한 명칭은 구 슈리성 정전종(旧首里城正殿鐘)이다. 만국진량의 종은 흔히 부르는 이름이다. 참고로 만국진량은 세상 모든 나라를 연결하는 가교(架橋)라는 의미인데, 각국과 교역하던 류큐 왕국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