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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 파이리츠 시절. 루이스 히메네스?이 마르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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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 No.5 | |
앤디 마누엘 마르테 (Andy Manuel Marte) | |
생년월일 | 1983년 10월 21일 |
신체 | 185cm, 93kg |
국적 | 도미니카 공화국 |
출신지 | 빌라 타피아 |
포지션 | 내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ATL) |
소속팀 |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2005)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2006~2010)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14) kt wiz (2015~) |
응원가 | Bonnie Tyler - Holding out for a hero[1][2][3] |
kt wiz 등번호 5번 | |||||
손정훈(2014) | → | 앤디 마르테(2015~) | → | 현역 |
1 소개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야구 선수로, kt wiz 창단 1호 외국인 타자다.
2 미국 선수 시절
2000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 입단했다. 2002년 싱글A에서 0.281의 타율에 21개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2003년 베이스볼 아메이카에서 선정한 유망주 40위에 올랐다. 그 해 하이 싱글A에서 홈런은 16개로 전년도에 비해 좀 줄었지만, 타율은 0.285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유망주 순위는 11위로 껑충 뛰어올랐고, 2004년에는 더블A에서도 좋은 성적을 이어갔다. 2005년 시즌을 앞두고는 유망주 순위가 9위까지 올랐고,[4] 트리플A에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다 메이저리그에 승격, 데뷔했다. 그리고 2005년 12월에 에드가 렌테리아를 상대로 보스턴 레드삭스에 트레이드되었다.[5] 그러나 트레이드된 지 불과 1개월만인 2006년 1월 다시 트레이드 패키지에 묶여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이적했다.
당시 인디언스에서는 케이시 블레이크가 주전 3루수로 있었기 때문에 마르테는 한동안 주전으로 활동하진 못했다. 2008년 7월 블레이크가 트레이드된 후에야 주전 3루수가 되긴 했는데, 그때까지 마르테는 메이저리그에서 2할 5푼을 못 칠 정도로 부진했고 주전이 된 후에도 타율은 좀처럼 오르지 못했다. 2009년에는 포지션을 1루수로 바꿔 트리플A에서 시작했다가 당시 인디언스의 주전 1루수였던 라이언 가코가 7월 말에 트레이드되고 나서야 다시 메이저리그에 올라왔다. 7월 29일 뉴욕 양키스전에는 투수로 등판해 닉 스위셔를 삼진으로 잡기도 했다. 2010년에도 여전히 타격 부진이 계속되면서[6] 40인 엔트리에서 빠짐과 동시에 자유계약 선수로 풀렸다.
이후 마르테는 피츠버그 파이리츠,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산하 마이너리그 팀을 전전했다.
2014년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산하 트리플A에서 활동하다가 7월 31일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왔다. 4년만의 메이저리그 복귀전인 피츠버그 파이리츠전에서 대타로 출장해 제프 로크를 상대로 홈런을 치기도 했다. 이후 8월 지명할당됐다가 10월에 다시 자유계약 선수로 풀렸다.
2014년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타격과 홈런 부문 1위를 하면서, 전년도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맹활약하다가 한국에 와서 대박친 선수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도 마르테의 활약이 주목받았다. 2014년 11월 14일, 한국프로야구 kt wiz와의 1년 총액 60만$ 계약을 체결하면서 kt wiz의 제1호 타자 외국인 선수가 되었다. 2014년 퓨처스리그에서 주전 3루수로 활약하던 문상철이 극악의 볼삼 비율을 보여준데다 부상으로 중도 이탈하면서 마르테를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마르테는 메이저리그에서 부진했지만, 마이너리그에서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이어갔었고 유망주 시절부터 3루수로서 좋은 수비를 갖고 있다고 평가받았다.
여담으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메이저리그에 처음 승격되었을 적에, 당시 애틀랜타에서 인턴십 트레이닝 코치로 있었던 코야마 진과 함께한 적이 있다고 한다. kt 위즈에 마르테가 입단한 후 코야마 진도 코칭스탭에 합류하여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3 kt wiz 시절
3.1 2015년
외국인 최초 3루수 골든글러브에 도전했던 시즌.
해당 항목으로.
3.2 2016년
햄스트링 부상으로 개막전에선 빠졌고 이후 몇경기 더 빠지고 나서야 선발로 복귀했다. 하지만 작년과 달리 타율이 폭풍 하락해 2할 5푼 아래로 떨어져있다.
5월 29일 경기 부터 6월 3일 경기 포함 17타수 무안타를 기록중이다.타율은 2할 3푼 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3일 경기 3타수 무안타로 부진하다 11회말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이끌어냈다. 인터뷰에서 타격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고 마음고생도 심했다고 한다.
6월 중순부터 다시 안타와 홈런을 다수 만들어내면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8월 11일에 허리 디스크 통증 때문에 말소됐으며 22일에 수술을 받을 예정이며 시즌 아웃이란 공지가 났다. 슬슬 감을 잡아가던 시기에 시즌을 끝내게 되면서 본인이나 팀이나 상당히 아쉽게 됐다. 이후 9월 4일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고국인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귀국했다.
4 기타
마르테 부인이 한국의 치안이 맘에 든다며 계속 머물고 싶다고 했다.[7] #기사 선수 성적을 보아서는 잔류 여부는 마르테쪽에 달린 듯.
그런데 한신 타이거스가 노리고 있기에 일본으로 갈지 모를 일. 10월 26일 재계약이 확정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 이미 구두 계약이 돼 있었던 모양.
- ↑ 응원단장의 담당 배구단의 외국인 선수 조이스의 응원가다.
- ↑ I need a hero~ kt 위즈의 마르테 마르테 오오~ 시원하게 화끈하게 kt 위즈의 마르테 오오~
- ↑ 전용구호도 있는데, 응원가가 나오기 전 혹은 응원가가 끝난 후 Animo MARTE!!!를 크게 선창/후창 두번씩을 외친다. Animo는 스페인어로 힘내라! 정도의 뜻.
- ↑ 특급 유망주 출신 용병은 두 명이 더 있었다. 하나는 대박. 하나는 대망.
- ↑ 이 당시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선정한 보스턴 구단 유망주 중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마르테 아래로 2위 존 레스터, 3위 조나단 파펠본, 5위 더스틴 페드로이아, 6위 자코비 엘스버리, 10위 클레이 벅홀츠 등이 있었다. 이런 쟁쟁한 선수들을 제칠 정도로 당시 마르테의 평가는 아주 좋았는데, 2004년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스카우팅 리포트에서는 마르테를 아드리안 벨트레에 비견할 정도였다.
- ↑ 파일:Attachment/uploadfile/cngj.jpg 이게 바로 문제의 그 사진.
??? : 2할5푼만 넘기라고 빠따 시발들아.당시 마르테는 7번이었고, 2010시즌 클리블랜드에서 3할 타자는 추신수 한 명 밖에 없었다. - ↑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사건수원 토막 살인 사건수원 토막 시체 유기 사건수원역 여대생 납치 살인 사건사실 두드러지는 사건이 가끔씩 터져서 그렇지 수원 자체의 치안은 중남미권과 비교해서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좋을 수밖에 없다. 한국을 통틀어서도 괜찮은 편이고. 최소한 지나가다가 갱단의 총격전에 휘말릴 일(...)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해당 사건들은 야구장에서는 거리가 먼 팔달구에서 일어났다. 이게 중요한 점이 팔달구가 위치한 수원역 일대 구시가지는 다소 슬럼화된데다 저러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며 치안이 상대적으로 불안한 편이지만, 장안구와 영통구는 이와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치안 상태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