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창법(楊家槍法)은 창을 사용하는 중국무술의 하나로, 무협물에서는 무공으로 재해석된다. 양가창(楊家槍)으로 줄여 부르기도 하고 달리 이화창(梨花槍)이라고도 부른다.
1 설명
중국 전통 무술 중 대표적인 창법의 하나. 양씨 가문에서 유래한 것이라 것이라 양가창법이라고 부르나, 그 기원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
양가창이 거론되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송나라 사서인데, 금나라 말기에 홍오군(紅襖軍)의 수령인 양안아(楊安兒)의 누이이자 철창 이전(李全)의 부인이며, 양안아의 뒤를 이어 금과 몽고에 항전하다 남송에 투항한 여장군 양묘진(楊妙眞)이 이화창(梨花槍)의 명수라고 한다. 양묘진이 전한 창법을 일러 양가창법이라고 한다.
허나 양가창이 널리 언급되는 것은 명청 시기이므로 정말로 송대에 만들어졌는지, 그 이전에 존재했던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양가창은 척계광의 《기효신서》와 그를 인용한 《무비지》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아, 명대의 저명한 창술이었음은 확실하다. 높게 잡으면 남송 말기에 생겨난 것이고, 그 외의 좀 더 확실한 기록을 따르자면 명청 시대에 널리 유행한 창법이 될 것이다.
기효신서에 따르면 양가창이 이화창(梨花槍)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변화가 무쌍하고 끊임이 없이 기묘해서 마치 배꽃이 휘날리는 것 같아서라고 한다.[1] 당시에 마가창(馬家槍), 사가간자(沙家杆子), 이가단창(李家短槍) 등의 유명한 창법이 존재했는데 각기 그 묘(妙)가 있으나 양가창은 창대의 뿌리 쪽을 잡아서 길게 찌르기 때문에 빧으면 몹시 길고, 허허실실과 기기정정이 있어서 나아감은 날카롭고 물러남은 빠르며, 기세는 준험하고 마디가 짧으니 움직이지 않으면 산과 같고 움직이면 우뢰와 같다고 칭송했다. 그래서 여러 창법 중에서도 이화창을 가장 으뜸으로 쳐주었다.
2 기효신서의 양가창
기효신서에 실린 양가창은 양가육합팔모창법(楊家六合八母槍法)이라고 부르는데, 양가창의 육합의 기법과 팔모의 기법을 싣고 있기 때문이다.
팔모(八母)의 기법은 창법의 여덟가지 기본 동작을 말한다. 여덟개의 모태가 되는 기술이라 하여 팔모라고 부르는 것. 팔모의 기술은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체로 이하의 여덟 가지 기법을 가리킨다.
- 권리창(圏裏槍)
- 권외창(圏外槍)
- 권리저창(圏裏低槍)
- 권외저창(圏外低槍)
- 권리고창(圏裏高槍)
- 권외고창(圏外高槍)
- 흘창(吃槍)
- 환창(澋槍)
육합창은 일합(一合)에서 육합(六合) 까지의 여섯가지 합(변식, 연계식)을 이르는 것으로 이하와 같다.
- 일합(一合) 진왕마기(秦王磨旗)
- 이합(二合) 봉점두(鳳點頭)
- 삼합(三合) 백사농풍(白蛇弄風)
- 사합(四合) 철소추(鐵掃箒)
- 오합(五合) 발초심사(撥草尋蛇)
- 육합(六合)은 일절(一戟), 이진(二進), 삼란(三攔), 사전(四纏), 오나(五拏), 육직(六直)의 연계를 말한다.
이 창법 초식들은 꽤나 복잡한 초식이다보니 어리석은 병사들이 전부 익히기는 어려울테고, 단지 써놓을테니 관심있는 자가 알아서 익히라고 적혀있다. 병사를 가르칠 때는 단지 봉(封), 폐(閉), 착(捉), 나(挐), 상란(上攔), 하란(下攔)의 여섯 기법 만을 쓰고, 봉(封), 폐(閉), 착(捉), 나(挐)의 기법은 대문(大門)과 소문(小門)이 있으니 그 차이를 두어 연습시키면 충분하다고 한다.
척계광이 말하기를 산동 하남 각지의 무술 사범들이 양가창법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들의 창법은 좌우로 나(挐)의 기법으로 상대의 창을 감는 기법이 우수하지만 힘있게 찌를때 보법이 따라가지 않는 단점이 있다, 고로 척계광 자신이 개발한 보법을 혼합하여 깊게 찌르면서 짧고 잘게 발을 내딛으며 연속적으로 추격해나가 쉼없이 찌르면, 상대가 한 번이라도 선수를 빼앗기면 도저히 반격할 수 없는 무적의 창법이 될것이라고 말했다.
3 현대의 양가창
근현대의 여러 전통권 유파에서 육합창(六合槍), 대이화창(大梨花槍) 등으로 수련되는 것들은 대부분 양가창을 기원으로 한다. 조선 시대의 무술 교범인 《무예도보통지》는 기효신서에 영향을 받아 쓰여졌기 때문에, 무예도보통지에 등장하는 장창술이 곧 양가창법이다. 길게 찌를 때 당구 큐대 잡듯이 왼손은 가만히 있고 오른손으로 쭉 밀어 찌르고, 너무 깊게 찔러서 창대 끄트머리만 잡게 되거나, 좌우로 휘휘 감는 동작이 많다면 양가창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면 된다.
4 무협물 속의 양가창법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양가창법 역시 실제 무술 양가창을 모티브로 삼고 있으나, 이름만 따왔을뿐 초식이나 상세는 전혀 다르다.
4.1 《사조영웅전》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양가창법의 창시자는 남송의 명장인 악비 장군의 심복으로 역시 명장이었던 양재흥(楊再興)이다. 양재흥이 300명의 송나라 군사를 이끌고 소상교(小商橋)에서 4만의 금군을 상대하여, 스스로 2천의 군대를 해치웠으나 아깝게도 수에 못이겨 장렬하게 전사했다. 하지만 이 전투로 인해 금나라 군대도 양가창법을 경외하게 되었고, 중원에서도 양가창법의 명성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대대로 양씨 집안의 장남에게 물려주었다고 하며, 사조영웅전 작중에서는 양강의 아버지 양철심이 사용했다. 양철심은 창법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할수는 있었지만 아쉽게도 선조만큼 위력적이지는 못하다고.
양강은 양철심에게 직접 배우지는 못했지만 구처기로부터 양가창법을 전수받았다. 양강의 양가창법에 대항하기 위해 곽정은 파창식을 열심히 수련했지만 양강과 무기를 가지고 대결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헛수고가 되었다. 양철심과 양강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지 않고 죽었기 때문에 이후로는 실전된 듯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양철심과 양강이 양가창법을 보여준 것도 각각 한 번씩 뿐.
총 72개의 초식이 있다고 하지만 당연히 전부 다 나오지는 않았다.
4.1.1 초식
독룡출동 (毒龍出洞)
- 창끝으로 원을 그리며 찔러서 적의 가슴 한 가운데를 노리는 초식.
회마창 (回馬槍)
- 양재흥이 송나라 조정에 귀순하기 전, 악비 장군과 일전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이 초식으로 악비의 동생 악번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몸을 돌려 달아나다가 적이 추격해오면 재빨리 반전하여 적을 치는 초식으로 양가창법에서 가장 위력적인 기습 초식이다.
횡소천군 (橫掃千軍)
- 창을 횡으로 휘둘러서 한 번에 여러 명의 적을 쓰러뜨리는 초식.
5 관련 항목
- ↑ 다만 군기도설에는 장창 끝에다가 이화라고 부르는 화염과 유황연기를 뿜는 통을 달아서 적에게 들이대는 무기가 등장하는데, 이화를 단 창을 이화창이라고 불렀다. 양가창법의 이화창과는 이름만 같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