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처기

丘處機
(1148 ~ 1227)

파일:Attachment/jangchunja.jpg
구처기를 그린 삽화

1 개요

금나라 때의 도사. 전진교전진칠자 중 한 사람이자 전진교의 제 5대 조사로 자는 통밀(通密), 도호는 장춘자(長春子)로 등주 서하 출신으로 19세 때 출가하여 영해에서 왕중양을 스승으로 삼고 왕중양 사후에 용문산에서 수도하였으며 그를 따르는 무리를 용문파라 불렸다.

2 상세

1188년에는 금나라의 세종의 부름을 받아 도에 대해 문답하고 춘절초사를 주재하였다고 하며 1190년에는 갑자기 금 장종(章宗)이 도교 금지령을 내리자 용문산으로 돌아갔으며 1214년 가을에 금나라에서 양안아가 일으킨 군사들이 투항할 수 있도록 금나라 조정에 요구해 성공을 거두었다.

1219년에 서정을 하던 칭기즈 칸의 부름을 받자 제자 18명을 거느리고 서역의 대설산의 아무강(지금의 우즈베키스탄까지 가서 1222년에 칭기즈 칸을 만나 면세 특권과 대종사라는 직책을 받아 도교에 대한 총괄권을 얻었다.

또한 칭기즈 칸이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묻자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라고 하였으며 오래 살아서 장구히 살 수 있는 도에 대한 질문으로는 마음을 맑게 하여 욕심을 적게 하는 것과 살인을 즐겨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칭기즈 칸은 이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구처기를 매우 좋아했는지 그와 장시간 대화를 하곤 했다. 본디 칭기즈 칸은 구처기가 자신에게 불로장생의 비법을 가르쳐 줄것이라 믿었지만 구처기는 솔직하게 그건 불가능하다고 했고 칭기즈 칸도 (좀 실망하긴 했지만) 그의 솔직함을 높게 사서 그를 공경했다.[1]

이처럼 정치적인 수완이 뛰어나 이를 바탕으로 전진교 중의 용문파가 가장 발전이 빨랐고 이를 계기로 전진교가 나라 때 융성했다고 한다.

1227년에는 연경으로 가서 도교 사원인 태극궁을 장춘궁이라 개칭하며 도교를 관장하다가 7월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칭기즈 칸보다 한 달 전에 사망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사조영웅전의 끝 부분까지만 등장이 가능하고 신조협려의 연대에는 등장할 수 없다.

3 창작물의 구처기

3.1 징기스칸 4

코에이의 게임인 징기스칸 4에서는 도호인 장춘진인으로 등장하는데 역사적으로 정치 수완이 뛰어났기 때문인지 정치력이 매우 좋게 나온다. 다만 사조영웅전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한자릿수 전투력으로 충공깽을 선사한다. 그리고 금 장종의 도교 금지령을 반영했는지 따로 등용 커맨드로 찾아야 출현하며 초기 충성치도 낮은 편이다.

3.2 사조영웅전

왕중양의 제자로 전진칠자의 한 사람이다. 사조영웅전 모든 사건의 발단을 이루는 인물. 실존 인물은 금, 몽고에 협력한 인물인데 소설에선 한족 국가를 지키기 위해 이민족에 맞서는 민족투사가 되었다. 무예만이 아니라 의술에도 뛰어나고, 시에도 조예가 깊다. 의협심이 강하지만 성격이 불같아서 작중 온갖 트러블을 일으켰다. 곽소천이건 양철심이건(이쪽은 일단 금나라 끄나풀인 줄 알고), 강남칠괴(다짜고짜 공격해서 싸움이 붙었다)건 일단 만나기만 하면 한번 싸우고 본다. 도사인데도 성질이 정말 더럽다. 오죽하면 사형인 마옥도 몽고에서 강남칠괴와 만났을 때 "도사인데도 성격이 불같고 내기를 좋아하니 이는 도교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할까.

무공은 칠자 중 가장 높다고 하며 사조의 초반에 나오는 듣보잡 적들보다 확실히 우위이다. 강남칠괴 전부가 협공해도 승부를 알 수 없었으며 금나라 조왕부(양강의 양아버지 완안열)에 초빙된 고수들인 사통천, 팽련호, 구양극(구양공자) 등보다도 한 수 위다.[2]

금나라와 결탁한 간신 왕도건(王道乾)을 10일 넘게 추격하여 목을 베고 내장을 들어내서 살해한 다음, 눈길을 걸어 돌아오다가 곽소천양철심의 집에 들어오게 된다. 이 때 원수를 갚는답시고 양철심의 비수를 빼앗아 왕도건의 염통과 간을 토막내어 술과 함께 먹어치웠다. 이 엽기적인 광경에 경악한 곽소천과 양철심은 구처기를 흉악한 살인자로 여기고, 구처기도 이에 질세라 두 사람에게 금나라의 끄나풀이냐며 덤벼들어서 한바탕 싸우다가 금나라의 완안열과 그 병사들이 쫓아오자 그제서야 오해를 풀고 이들을 단신으로 물리친다. 송나라 황제들이 금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정강의 변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두 사람의 아들에게 곽정(靖)과 양강(康)이란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도망친다는 사람이 저 소동을 벌였으니 그대로 지나갈 리가 있나. 결국 그의 행적이 문제가 되어 완안열[3]단천덕이 꾸민 음모로 곽소천이 살해되고 양철심은 실종되자, 단천덕의 진영에 나타나 그를 추궁하려 하지만 단천덕이 교활한 속임수를 부린 탓에 단천덕의 삼촌인 고목대사, 그리고 그 사제인 초목대사와 실랑이가 벌어지고 초목대사의 친구인 강남칠괴와도 싸움이 붙게 되었다. 사실 이야기만 잘 했어도 잘 풀릴 문제였지만, 구처기가 워낙 과격하게 나가고 강남칠괴도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라 서로 오해를 풀지 못하고 말다툼을 하다가 실력 대결로 나서게 된다. 취선루(醉仙樓)에서의 술 대결에서 승부가 나지 않자 법화사로 가서 무공을 대결하다가 양쪽 다 부상을 심하게 입고, 단천덕이 곽철심의 아내인 이평을 데리고 도망치려고 하다가 자신들이 모두 속았음을 알고 분노한 초목대사가 단천덕을 죽이려다가 목숨을 잃는 것을 보게된다. 그제서야 자신이 또 성질을 못죽인 탓에 일이 커진 것을 깨닫고 후회하면서 사과하지만 강남칠괴가 그 사과를 들어줄 리 만무. 가진악은 "너님 덕분에 우리 체면이 뚝 떨어졌으니 이제 촌에 가서 밭이나 갈고 살겠음. 너님께서 아득바득 쫓아오지 않으시면 남은 여생은 그나마 편히 지낼 수 있을 듯."하고 쏘아 붙이기까지 한다. 구처기는 자존심이 강한 강남칠괴의 고집을 꺾고, 곽소천과 양철심의 후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각자 이평과 포석약을 찾아 그 아이들을 제자로 길러 18년 후에 제자들 간에 무공승부를 내기로 약속한다.

구처기는 포석약의 행방을 찾아 그녀의 아들인 양강(완안강)을 제자로 받아 길렀지만, 양강이 점점 삐뚤어지자 그 책임을 지고 바로잡으러 강호를 많이 떠돌았다. 포석약을 데리고 도망치던 양철심을 구하기 위해 완안열 휘하의 고수들과도 서슴없이 싸웠다. 그리고 왕처일을 도와주고 있던 곽정과 강남칠괴와 재회하자 무공 이전에 자신의 제자인 양강의 인품이 곽정에게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고 시인하고, 18년 전의 약속에 대해서 패배를 인정한다.

양강이 임안부 우가촌에서 구양극을 살해하고 툴루이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을 때 나타나서 양강의 불의함을 추궁했지만, 양강이 반성하는 척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훈계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해서 놓아준다.

취선루에서 곽정에게 강남칠괴가 황약사에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원래 주백통과 담처단이 황약사에게 죽었다고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전진칠자 및 가진악과 힘을 합쳐 황약사와 싸운다. 그리고 곽정에게 진실을 알고 마침 구양봉이 나타나자 그와 싸우다가 홍칠공의 제지로 멈추었다.

곽정의 소개로 칭기즈 칸에게 불려가 도교의 교리를 설법하며 무익한 전쟁을 자제하라며 권유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 성격이….

몽골에서 도망쳐온 곽정과 만나 화산으로 향한다. 화산에서 팽련호, 사통천, 후통해, 영지상인등과 싸우다가 주백통의 도움으로 네 악당을 제압하고 전진교로 끌고가 20년간 감금했다.

작중 초기에는 최상위권의 무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않아서 급락하고 말았다. 강남칠괴 모두와도 싸우는 등 실력은 있으나 사실 강남칠괴는 의협심으로 유명한거지 무공은 그다지... 그래도 천하오절 다음가는 정도의 능력은 있는 듯 하다. 물론 버금가거나 하지는 않는다. 천하오절이나 주백통, 구천인정도만 되도 강남칠괴는 눈에도 안 차는 수준이니 뭐... 게다가 계속 같이 비교되는 팽련호, 사통천, 후통해, 영지상인은 중간보스라고 하기도 민망한 야라레 메카 수준이다.

3.3 신조협려

원래 신조협려 시기에서는 역사적으로 구처기는 죽은 뒤이지만, 소설적 허구에 따라 등장하고 있다. 노환으로 초반부에 사망한 마옥의 뒤를 이어 장교의 지위를 맡는다.

곽정이 양과를 데려오자, 양과의 아버지인 양강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에 그가 악인이 되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구처기는 양과를 제대로 가르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배분 따지느라(제자의 아들이다.) 직접 가르치지 않고 하필 조지경에게 맡긴 탓에 양과가 학대를 받다가 도망쳐서 고묘파에 입문해버리는 낭패를 보게 된다. 하다못해 윤지평에게 맡겼다면 양과는 특유의 재능과 뛰어난 머리로 전진교의 고수로 성장하고 윤지평도 견지병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래저래 사람보는 눈이 정말 없다. 원본 장춘진인의 정치적 수완은 다 어디에 팔아버리고 이렇게 됐을지 좀 의문이 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제자 복이 정말 없다. 한명은 패륜아, 한명은 강간범, 한명은 매국노...

나중에 다른 전진칠자와 함께 칠성취회를 완성한다. 다만 그 완성했다는 칠성취회가 일곱명이서 금륜법왕과 동수를 취했는데 쌍수호박을 배워온 소용녀가 혼자서 쌍검합벽으로 금륜법왕과 동수를 이루는 걸 보고는 좌절했다. 16년 후에는 노환으로 쓰러져서 활동이 없게 된다. 이 양반의 사숙되시는 주백통은 회춘하고 황약사도 정정한 마당에...
  1. 근데 사실 전진교 입장에서는 이게 당연한 게, 전진교는 대부분의 중국 도교들과는 달리 신선술이나 불로장생술 등을 인정하지 않았던 독특한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2. 조왕부에서 구양공자, 팽련호, 후통해를 맞아 3대 1로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혼자 셋을 상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세에 몰리지 않으며 신나게 싸웠다"라 묘사된다. 구양공자나 팽련호는 마옥이나 왕처일 급으로 취급되는 것을 보면 구처기의 실력이 칠자 안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3. 구처기에게 상처를 입고 숨어들어왔다가 포석약에게 도움을 받고 그녀를 사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