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안

KBO 퓨처스리그 현재 감독
북부
리그
파일:Attachment/police baseball s 5.png유승안
(경찰)
한문연
(고양 다이노스)
파일:Attachment/doosan bears s.png공필성
(두산 베어스 2군)
쉐인 스펜서
(화성 히어로즈)
김동수
(LG 트윈스 2군)
파일:Attachment/sk wyverns s.png김무관
(SK 와이번스 2군)
남부
리그
파일:Attachment/lotte giants s.png손상대
(롯데 자이언츠 2군)
파일:Attachment/samsung lions s.png성준
(삼성 라이온즈 2군)
파일:Attachment/sangmu s.png박치왕
(신협 상무 피닉스)
파일:Attachment/hanwha eagles s.png최계훈
(한화 이글스 2군)
55px정회열
(KIA 타이거즈 2군)
파일:Attachment/KT Wiz s.png이상훈
(kt wiz 2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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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모습.
500px
경찰청 감독.

1987년, 1989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경찰 야구단 No.81
유승안(柳承安 / Seong-Ahn Yu)
생년월일1956년 6월 1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기도 여주시
학력경동고-목원대
포지션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2년 MBC 창단멤버
소속팀MBC 청룡 (1982~1983)
해태 타이거즈 (1984~1985)
빙그레 이글스 (1986~1991)
지도자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타격코치 (1994~1998)
한화 이글스 1군 수석코치 (1999)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2000)
한화 이글스 감독 (2003~2004)
경찰 야구단 감독 (2009~)
1989년 한국프로야구 타점왕
김성한(해태 타이거즈)유승안(빙그레 이글스)장종훈(빙그레 이글스)
한화 이글스 역대 감독
이광환
(2001~2002)
유승안
(2003~2004)
김인식
(2005~2009)

1 소개

경찰 야구단의 감독. 야구선수 유원상, 유민상의 아버지. 별명은 대감,[1] 유대갈, 원소.[2] 아들 유원상과 세트로 부자 사기단이라 많이 불린다.

2 선수 시절

실업야구 한일은행 시절 포수 최초로 홈런 1위[3]를 차지한 원조 공격형 포수로,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MBC 청룡에 합류했다.

1982년 3월 27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도 선발 포수로 출장하여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시구를 받았고, 특히 7:4로 뒤지던 7회말 3점 동점 홈런을 날려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가는 수훈을 세웠다. 하지만 10회 1사 2, 3루의 끝내기 찬스 상황에서 3B 0S의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 구원투수 이선희의 바깥쪽 볼을 무리하게 타격했다가 투수 앞 땅볼로[4] 3루 주자 김인식이 홈에서 아웃 당했다.[5] 이 에피소드 때문에 원년 개막전에서 유승안은 '7회말 동점 홈런'보다 '연장전의 병크'로 기억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유승안은 백인천 감독에게 찍혀 이듬해까지 벤치만 덥히는 신세가 되었다.

1983년 시즌 후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었다가 1986년 빙그레 이글스의 1군 참가를 앞두고 빙그레에 트레이드 되었다. 참고로 해태 시절인 1984년에 드라마 수사반장의 여형사로 명성을 떨쳤던 배우 이금복 씨와 결혼했다. 당시 기사. 이후 이금복 씨가 백혈병으로 투병하자 혈액형이 O형인 임직원들이 헌혈에 동참하고 청계산 회장님까지 나서서 위로금을 전달하며 투병을 격려했지만, 안타깝게도 1999년 11월 타계했다.

빙그레 시절에는 팀의 4번 타자 겸 포수를 맡으며 공수양면에서 활약, 약체 빙그레의 콩라인 도약에 큰 기여를 했다. 이와 함께 1987년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 1989년 타점 1위와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다만 1989년 타점 1위는 김영덕 감독의 노골적인 밀어주기 때문에 저평가받고 있는 실정이다.[6][7] 여담으로 당시 신인이었던 장종훈과 매년 누가 홈런 많이 치나 돈내기를 했는데, 처음엔 알토란같은 후배의 돈을 쪽쪽 뺏어먹다가 나중엔 점점 자기가 털리기 시작하자 중단했다고 한다.

KBO 리그에서 처음으로 노히트 노런을 2번 경험한 포수이기도 하다.[8] 1984년 5월 해태의 방수원이 프로 1호 노히트 노런을 기록할 때 유승안이 마스크를 썼었고, 1988년 4월 빙그레 이동석의 노히트 노런때도 선발 포수였다.[9]

3 지도자 시절

그 후, 북일고 출신 김상국과 1991년 입단한 또다른 북일고 출신 양용모에 밀려 1991년 시즌 후 유니폼을 벗었으며, 이후 KBS 라디오 해설위원을 거쳐 1994 시즌 강병철 감독 부임과 함께 한화의 코치로 영입되었으며, 2000년에는 2군 감독직을 지냈고 2001년 이광환 감독 부임과 동시에 미국으로 2년 간 연수를 떠났다. 2003년에 복귀하여 2년 간 한화 이글스의 감독직을 맡게 된다. 2008년 말부터 김용철의 뒤를 이어 경찰 야구단의 2대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PC통신 시절부터 팬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으며 1990년대 후반 초고속 인터넷이 대중화 되기 전부터 이미 도메인을 보유하고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었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면도 있었다.[10]

해외 연수 시절 홈페이지에서 당시 감독이던 이광환의 용병술을 간접적으로 까기도 했는데, 이미 후임 감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이광환 감독은 2002 시즌 후반에는 거의 태업에 가까운 팀 운영을 했으며 시즌이 끝나자마자 김성근의 뒤를 이어 LG 트윈스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3.1 2003 시즌

2003 시즌 2년 계약으로 야심차게 감독 자리에 올랐으나, 감독 부임 후 첫 스프링캠프를 구단의 독단으로 해외가 아닌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치르게 되는 병크에 맞닥뜨리게 되었으며, 당연히 훈련 효과는 미미했고 쌀쌀한 날씨 탓에 부상 선수가 속출하는 등 출발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정민철, 송진우의 부진까지 겹쳤지만 FA를 앞둔 이상목이 커리어 하이인 15승을 올렸고, 김태균이 전년도의 소포모어 징크스를 완벽히 극복하며 대활약을 펼친 것을 앞세워 한때 3위권 내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지만, 결국은 안타깝게 5할 가까운 승률에 4위와 2게임 차 5위를 기록, 구단의 미비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초보 감독 치고는 무난한 첫 시즌을 보냈다고 평가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이듬해였다.

3.2 2004 시즌

이듬해에는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병살을 노려 내야에 5명을 세우고 외야에 두 명만 세우는 수비 시프트를 펼쳤다가 쐐기 점수를 내주고, 박기혁에게 두 차례의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허용하면서 꼴찌 롯데에게 6승 1무 12패로 털리는 등[11] 야구장에서 야구 대신 개그를 하다가 7위로 추락해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되어 물러났다.

이듬해 아들 유원상이 계약금 5억 5천만원에 한화 이글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면서 아버지 퇴직금이라는 드립이 난무하기도 했다. 유원상의 이후 활약을 보면 진짜로 그런것 같기도 하고

야심차게 영입했던 용병 엔젤 페냐가 3루에서 만족할 만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대체 용병으로 영입한 에디 디아즈 역시 전년도에 SK 와이번스에서 보여 주었던 만큼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멘도사 라인에서 허덕였다. 또한 전년도 실질적 에이스였던 이상목은 FA 계약으로 롯데 자이언츠로 떠났으며, 정민철은 1승도 올리지 못하는 최악의 시즌을 보냈고, 프랜차이즈 스타인 송지만현대 유니콘스에 내주면서까지 영입한 클로저 권준헌이 상반기까지는 만족할 만한 성적을 올리며 뒷문을 잠궈주었으나 7월 말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아웃당하는 등 전반적으로 전력이 약화되어 순위가 추락하고 말았다.

9월에는 프로야구판을 뒤흔든 2004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주축 선수들이 다수 연루되는 사태를 겪으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7위로 시즌을 마감하여 결국 재계약에 실패했다. 그러나 그 댓가로 류현진을 2차 1순위 전체 2순위로 지명할 수 있었다

전년도의 병크를 반성하여 구단에서 스프링캠프도 제대로 보내주고 송창식, 김창훈 등 거물 신인들을 영입하였으며, 계약 마지막 해로 팬들의 성적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자, 감독의 선수 기용을 비난하는 여론이 구단 홈페이지와 팬카페에 들끓기 시작한다. 일찌감치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했을 정도로 인터넷 문화에 익숙했던만큼 구단 홈페이지 채팅방에서 팬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으나 쉽게 여론이 진정되지 않자, 비난 여론을 주도했던 몇몇 팬들을 직접 지목하며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현피대화의 자리를 갖자는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5월 30일 대전구장 근처에서 스무명 가량의 팬 대표들과 비공개 만남이 성사되었다.[12]

이 당시 팬들의 불만 중 상당 부분은 노장인 송진우를 혹사한다는 데에서 기인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그가 남긴 '송진우는 흑인같이 몸이 유연하다'(…)는 해명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인종차별급 명대사이다.

3.3 지도자로서의 평가

일명 '유승안 시프트'라고 불리는 전설의 5내야수 수비 시프트[13]

내야수를 5명으로 포진시키는 수비 시프트메이저리그에서도 마이크 소시아를 비롯한 몇몇 감독들이 실제로 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시프트는 9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팀 주자가 출루했을 때 땅볼로 병살타를 유도해 경기를 끝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점을 더 내주지 않게 하려고 쓰진 않는다. 이 시프트와 앞서 서술한 네티즌 놀이는 그를 감독계의 개그 캐릭터로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승안 본인은 자기가 시프트를 쓰고 난 뒤 유소년 야구에서 학습을 목적으로 이 시프트를 사용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주장했는데, 진실은 저 너머에(…).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쓰이지 않던 새로운 시프트를 사용했다는 것에 대해선 높게 평가하는 인물들도 있다.[14]

감독으로 재임하고 있는 경찰 야구단에서도 이 시프트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2013년 3월 28일 LG 트윈스와의 연습경기에서도 똑같은 5인 내야 시프트를 선보였다!

또한 감독 해임 후 KBO 경기운영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던 중, 2006년 5월 하일성이 KBO 사무총장으로 임명되고 후임자인 이용철이 법규 사건으로 출연을 못하게 되는 바람에 갑자기 KBS 공중파 해설자 자리가 공석이 되자, 과거 KBS 라디오 해설을 했었던 인연으로 5월 21일 두산-한화 잠실 경기(류현진 선발 경기)에 땜방을 맡게 되었는데 경기 감독관이 자리를 비우고 부업을 했다는 이유로 언론으로부터 까이면서 개그 이력서에 한 줄을 더 추가하게 된다.

한화 감독 시절 상술한 어이없는 작전을 종종 시전해 패배를 자초했고, 그로 인해 불로장생할만큼의 욕을 먹었지만 후임 킬인식김인식 감독이 팀을 노령화시킨 것과 한화 이글스 프런트의 변함없는 병크 때문에 몇몇 이글스 팬덤에서는 재평가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문동환을 부활시키고, 이범호, 최진행, 신종길 등을 발굴하는 등 고교 선배처럼 완전히 암흑의 구렁텅이로 처박지는 않았기 때문.

거기다가 라이벌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비해 약체로 평가받았던 경찰 야구단의 감독을 맡은지 세 번째 시즌만에 퓨처스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또한 경찰청을 거쳤던 타자들, 특히 야수(민병헌) 및 포수들이(가장 최근의 예로 양의지최재훈) 전역 후 괴물같은 상승세를 보인 것 또한 재평가의 요인이기도 하다.

반면 김인식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주목받기는 해도, 결과론적으로 그가 감독 시절 본인의 본분인 '성적'과 '팀 육성'의 균형을 잡는 데에 실패한 건 사실이라 지나친 띄워주기란 시각도 있으며, 어찌보면 재임 시절이 워낙 프로야구 인기가 바닥을 칠 때였고 그 중에서도 특히 비인기 구단이었던 한화의 당시 막장 상황을 모르는 뉴비 팬들이 많아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즉, 성적을 내는 것에 있어서는 호불호도 갈리고 비판도 많지만 육성에 있어서만큼은 입을 모아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 후에 경찰 야구단을 다녀와서 만개한 선수들이 쌓여감에 따라 이런 평가는 더욱 강화되었다.

아울러, 엽기적이고 이상한 아집, 늙은 선수들을 좋아하지 않는 점, 경동고, 포수, MBC 출신, 서북식 발성과 발음 등은 백인천 감독과 똑같은데, 늙은 선수들을 좋아하지 않는 점, 한일은행 출신 등에서 강병철 감독과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강병철 감독의 경기 운영이 너무 뻔하고 틀에 박혀 있었던 것에 비해 흥미와 볼거리를 확실히 줬다는 점에서 백인천 감독의 경기 운영과 거의 비슷하다.

사실 까이던 이유는 따로 있다(…).

4 흑역사

은퇴 직후 대전 지역 교수, 사업가들과 함께 억대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 명단에 올랐던 흑역사가 있다.당시 기사 1당시 기사 2 당시 기사 3

경찰청 감독인 지금 상황을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그 때 경찰 관계자들 한테 눈도장 찍은 듯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82MBC 청룡57142.254365092923221.479.350
198365140.23633301108217.279.318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84해태 타이거즈41118.263319052113224.466.387
198563151.272416081820014.470.333
연도소속팀경기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86빙그레 이글스79256.238615072324232.340.321
198797328.30810115112
(7위)
59
(4위)
30124.470
(5위)
.351
1988103297.2637814215
(6위)
55
(9위)
42346.475
(10위)
.358
1989115370.281104
(9위)
15021
(2위)
85
(1위)
46051.492
(2위)
.363
1990110293.2567512014
(7위)
5429340.440.338
19915794.170161005305.181.212
KBO 통산(10시즌)7872189.2635768539235923815274.431.341
  1. 과거 PC통신한화 이글스 게시판에서의 ID가 '대감'이었다.
  2. 원상 아버지니까.
  3. 1977년 실업야구 페넌트레이스. 여담으로 그와 공동 홈런왕을 차지했던 선수가 리즈시절DTD 사마였다.
  4. 당시 출범 개막전 수훈선수에게 주는 부상인 오토바이에 눈독 들이다가 그랬다(…). 결국 오토바이는 끝내기 만루포의 주인공 이종도에게 돌아갔다. 참고로 이날 프로출범 1호 타점과 홈런을 기록한 이만수는 등나무가구 세트를 받았다.
  5. 당시 유승안의 타격은 백인천 감독의 웨이팅 사인을 무시한 결과였고, 유승안의 고교 선배이자 청룡 입단의 은인이었던 백인천은 이 일로 유승안에게 단단히 실망했다는 후문.
  6. 1, 3루에서 후속타자 안타 때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지 않고 유승안 앞에 만루 밥상을 차려준 적도 있다.
  7. 그런데 이건 당시 유승안과 홈런, 타점왕 경쟁을 벌이고 있던 김성한의 해태도 마찬가지여서 유승안이 나오면 고의사구로 거르거나, 김성한을 만루 찬스에서 대타로 출장시키기도 했다.
  8. 몇 명이 더 있는데, 바로 1997년 정민철, 2000년 송진우의 노히트 노런때 호흡을 맞춘 강인권. 이후 양의지 또한 유네스키 마야보우덴의 노히트 노런을 두 번 경험했다.
  9. 이때 상대팀 선발이 다름아닌 해태의 선동열. 그런데 유승안이 그날 경기 전에 선수들에게 "오늘(선동열 나오는데) 질 게 뻔하다. 만약 오늘 이기면 내가 집을 팔아서라도 너님들한테 10만원씩 돌리겠다"라고 했다가 그냥 이긴 것도 아니고 노히트 노런으로 이기는 바람에 실없는 사람으로 몰릴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코치이던 강병철이 "상조회에 10만원 내는걸로 퉁치자"고 중재해 주긴 했지만.
  10. eagles.co.kr 도메인이 그의 소유였다.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당시의 흔적을 열람해볼 수 있다.
  11. 참고로 8888577시절 한화는 2004년만 빼고 롯데를 탈탈 털었다.
  12. 정작 그가 지명했던 사람들 상당수는 일방적으로 정해진 일정이라며 반발하여 불참하였고, 비교적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는 후문.
  13. 개그 포인트는 어떻게 해서든지 포장을 해보려는 하일성 해설위원. 그렇게 전설로 묻히나 했지만 2013년에 또다시 등장했다
  14. 이만수 SK 와이번스 감독이 2013 시즌 시범경기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똑같은 수비시프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다만 그 경기는 투수 밀어내기로 패배... 시즌에 들어선 이후로도 이따금씩 선보였다만 어째 하나같이 결과가 영 좋지 않았다. 예를 들면 NC와의 경기에서 끝내기 스퀴즈 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