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두르쉬르글란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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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 Le massacre d'Oradour-sur-Glane
독일어 : Das Massaker von Oradour


파괴당해 유령도시가 된 오라두르쉬르글란의 모습.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4년에 프랑스 중부지방의 작은 마을 오라두르쉬르글란(Oradour-sur-Glane)에서 일어난 독일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자 제암리 학살사건프랑스 버전.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오라두르쉬르베르 마을 근방에서 주둔하고 있던 독일군, 정확히는 제2SS 기갑사단 '다스 라이히'(2. SS-Panzer-Division ,,Das Reich“) 를 습격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때 독일군 장교가 레지스탕스에게 생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독일 무장친위대는 독일군 장교의 구출 및 레지스탕스를 향한 보복을 목적으로 오라두르쉬르베르 남쪽에 있던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을 공격하였다. 마을을 포위하여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길목을 차단했고, 곧바로 독일군의 학살이 시작되었다.

남자들은 헛간에 가두고 여자와 아이들은 성당에 가둔 뒤, 남자들을 전부 총살하고 성당에 불을 질러 여자들과 아이들을 불태워 죽였다. 성당에서 빠져나오려던 사람들은 기관총에 맞아 죽었다. 차마 말이나 글로 전달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방법으로 잔인한 학살이 계속되었고, 마을은 다이너마이트로 완전히 파괴당해 사라져버렸다. 아이들까지 합쳐 600여 명이 넘는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했으며 학살이 끝난 뒤 살아남은 자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기관총에 맞아 죽은 시체인 척 연기를 해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프랑스인들이 이 학살을 그냥 넘길 리가 만무했고, 1953년 1월에 열린 보르도의 전범재판에서 이 사건을 다루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학살에 연루된 200여 명의 독일군 가운데 다수가 2차대전 중에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특히 장교급은 전원 전사하여 생존자는 총 65명이었지만, 대부분이 동독에 살고 있어 실제로 체포되어 재판정에 끌려온 범죄자는 도합 21명이었다. 이 가운데 7명은 독일인이었지만 나머지 14명은 알자스[1] 출신이었다. 실제로 체포된 21명 중 20명은 자신들이 "강제 징집된 병사들이었기 때문에 본인의 의지와 관계 없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여 각각 5년형에서 11년형의 징역을 선고받았다가 알자스 지방의 격렬한 항의에 의해 의회 차원에서 모두 사면되었다. 독일인 징집병들은 같은 혐의를 적용받아 10~12년 정도의 징역형을 받았다. 단, 자진입대한 알자스인 한 명은 매국노라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이후 동독에 남아 있던 전범들도 1983년 자체 재판을 거쳐 처벌받았다.

전쟁이 끝나고 오라두르쉬르글란은 다시 재건되었으나, 원래 있던 마을은 학살이 일어났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사적지로 보존하여 전쟁의 참혹함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세계 3대 유령도시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폐허가 된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 입구에서는 이러한 말이 적힌 푯말 하나가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기억하라!
2013년 9월 4일, 프랑스를 방문 중이던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오라두르쉬르글란을 찾아 독일군이 저질렀던 학살에 대해 다시금 사죄하고 나치의 잔재 척결을 다짐했다. 같은 전범국이지만 다른 대응을 보여준다
  1. 1차대전 직후 독일에서 프랑스로 편입된 지방으로, 나치에 의하여 제3제국의 일부로 간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