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적

禹致績
조선시대의 인물으로, 임진왜란 당시의 무관이다.
생몰년도 : 1560~1628년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이천부사를 지낸 우필성(禹弼成)의 아들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592년(선조 25) 경상우수영에 속한 영등포의 만호로 재임하였다. 그해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일본수군이 밀려오자, 경상우도수군절도사 원균(元均)의 밑에서 적선 10여 척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경상좌도수군절도사 박홍(朴泓)이 적의 기세에 겁먹고 병사들과 도주하자 좌수영의 병사들도 거의 흩어져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이에 원균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李舜臣)에게 원병을 요청하는 한편,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여 고군분투하였다. 5월 초에 이순신의 함대가 도착하여 이순신원균의 연합함대가 합동작전을 펴자, 우치적은 옥포만호 이운룡(李雲龍)과 함께 선봉에서 싸웠다. 특히 옥포·적진포·합포 해전 때는 제일 먼저 적선에 올라타 적을 죽이고 포로로 잡힌 백성들을 구해내는 등 용맹을 떨침으로써 아군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1596년 순천부사[1]에 임명되고, 이듬해 정유재란이순신 대신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의 지휘 아래 일본수군과 싸웠으나 대패하여 원균 및 전라우도수군절도사 이억기안습(李億祺), 충청도수군절도사 최호(崔湖) 등은 전사하고 그는 겨우 탈출하였다. 1598년 조선수군일본 수군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이순신의 전사에도 불구하고 적장을 활로 쏘아 죽이는 등 용맹히 싸워 큰 승리를 거뒀다.

1601년 충청도수군절도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의롭지 못한 일을 하여 인심을 잃었다는 이유로 간원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605년(선조 38) 북도우후(北道虞候)를 거쳐 경흥부사·회령부사 등을 역임한 후 1611년(광해군 3) "삼도수군통제사"[2]에 올랐다. 1613년 가선대부에 가자되면서 함경도·강원도의 순변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경성부사·평안도병마절도사·경상좌도병마절도사·함경북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다가 근무지에서 죽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재포가 연기했다.
원균과 종성부사 시절부터 원균의 군관으로 인연을 맺는다. 실제와는 다르게 이순신이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자 반감을 표해 이순신의 제장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는 인물이다.

칠천량 해전에서도 돌격장 역할을 마다치 않았던 그는 원균의 죽음을 뒤로 하고 전장에서 탈출, 이순신에게 원균의 유지를 전하게 된다.[3]
  1. 이전에는 권준이 맡았었다.
  2. 조선 5명의 수군 절도사 중 제일 높은 관직 (정2품)
  3. 이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이순신의 편에 서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