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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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敏祐
1905년 10월 02일 ~ 1982년 10월 10일
1905년 충청남도 아산군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등보통학교(현 서울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대학 경제과에 재학하다가 중퇴하였다. 이후 서울수산시장주식회사 전무취체(전무이사)역, 서울제빙주식회사사장, 흥산증권주식회사 사장, 대한상공회의소 위원 및 특별위원, 흥국건업주식회사 대표이사, 한국냉동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충청남도 아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1년 3.15 부정선거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영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9년 민주공화당 당기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변호사 출신인 김세배에 밀려 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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