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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강운태 | ← | 12대 윤장현 | → | (현직) |
이름 | 윤장현 (尹壯鉉) |
출생일 | 1949년 4월 26일 (67세) |
출생지 |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부 구동 現 광주광역시 남구 구동 163번지 |
학력 |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졸업 |
정당 | 더불어민주당 |
가족 | 아버지 윤지혁, 4남 1녀 중 장남 |
배우자 | 손화정 |
자녀 | 1남 3녀 |
종교 | 가톨릭 (세례명 : 마르코) |
홈페이지/SNS | 사이트, 페이스북[1] |
1 개요
2 생애
1949년 전라남도 광주시 서석동(현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에서 태어났다. 살레시오고등학교,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동 대학교 대학원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3 경력
3.1 의사활동
1970년대 중후반 국군광주병원(현 국군함평병원) 군의관으로 병역 의무를 이수하였다. 이 때 이리역 폭발사고가 일어났는데 상관의 지시를 기다릴 여유가 없자 근무지를 이탈하여(?) 이리시로 가서 부상당한 시민들을 구조하였다. 그리고 사후 보고를 하였는데 명령 불복종에 탈영감임에도 서종철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오히려 초동출동을 잘 했고, 환자 치료하느라 정말 고생했다는 격려를 받았다. 해당 조치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와 비교되어 2014년경 거론되었다고 한다.
1983년 중앙안과(현 아이안과) 원장을 역임했다.
3.2 시민단체 활동
30여 년 동안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5•18 기념재단 창립이사, 아름다운 가게 전국대표, 아시아인권위원회 이사, 광주전남 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등 시민운동에서 그의 경력은 다양하다. 이 때 안철수와 인연을 맺었다.
1987년부터 2000년까지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1992년 들어서 광주 시민연대 대표를 지내며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1998년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8년 한국YMCA 전국연맹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2013년 12월 새정치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3.3 정치활동
2014년 3월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했다. 이어 같은해 7월 무소속 강운태 후보와 접전 끝에 광주광역시 시장에 당선됐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안철수계로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략공천을 받아 광주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헌데 같은 안철수계였던 금태섭 전 새정련 대변인의 회고에 따르면 원래 광주시장 전략공천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정작 지도부에서는 계속 이렇다 할 확언이 없었다고 한다.
기존에 시장 출마를 준비 중이었던 강운태, 이용섭 등 후보들은 끝까지 지도부에서 아무런 확답이 없자 경선을 통해 선출을 하려는 줄 알고 출마를 계속 준비했는데 막바지에 가서야 전략공천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이에 현직 시장이었던 강운태 후보와 재선 국회의원인 이용섭 후보는 지도부의 결정에 크게 반발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했다. 그리고 강운태 후보로 단일화까지 이루어졌으나 결국 새정치민주연합으로 출마한 윤장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주요공약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모형을 응용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 구축, 광주 노사민정 경제상생위원회 운영, 자존감있는 노인 시민참여형 일자리 1만 개 창출, 아시아문화전당 연계 아시아융합문화산업 육성, 100년 광주 비전 수립과 혁신발전소 설치 등이 있다.
2015년 12월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당내에서 안철수계로 분류되던 사람들의 줄탈당이 예상되었으나, 주철현 여수시장, 송호창 의원과 더불어 안철수 전 공동대표와 결별하고 당에 남는 길을 선택한다.
4 사건 사고
4.1 행정 인사논란
회전문 인사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 당선된 뒤 이모의 딸 남편(이종사촌 매제) 김용환씨를 비서관으로 내정해 친인척을 챙겼다는 비난을 받았다.
- 사조직을 결성해 사전선거운동을 한 의혹이 제기됐다. 광주시 선거관리위원회가 6ㆍ4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2014년 5월 말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윤장현을 고발했다.
- 그러나 검찰은 2014년 11월 윤장현을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지방선거에서 공을 세워 사익을 추구하려던 모 유권자단체 대표 이씨의 개인적 욕심으로 판단될 뿐 윤장현이 사전선거운동에 관여한 증거나 구체적 정황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 기사 기사,윤장현 시장, 끝없는 인사잡음 논란
- 윤장현 시장 또 인사논란
5 평가
"시민운동가 출신 시장 그러나 ..."
윤장현은 의사 출신으로 여러 시민운동에 참여해 왔다. 광주 부시장이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행정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14년 7월 광주시장에 취임했다. 스스로 ‘첫 시민시장’이라 칭했다.
하지만 이런 자체평가에 걸맞지 않게 취임 후 6개월 동안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산하기관장 정실인사와 소통부재에 따라 시의회와 갈등이 빚어졌고 광주 도시철도 2호선 건설 등 각종 시정현안에 대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JTBC-리얼미터가 발표한 민선6기 전국 17개 시도지사의 지난해 12월 직무수행 지지도 정례조사에서 3개월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취임 100일을 맞은 2015년 10월 10일 발표에서 50%가 넘는 지지도를 보였지만 12월 34.6%로 떨어져 전국 광역단체장 가운데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평균 40점” 윤장현 시장 2년 초라한 성적표
참여자치21, 윤장현 시장 2년차도 ‘낙제’ 평가
이런 추세는 2016년 현재도 계속되는 상황. 트램을 좋아하는 모 시장님이나 주민소환 위기에 처한 앵그리버드 도지사님보다도 지지율이 낮은 건 분명히 위기다. 그리고 깨알 같은 서병수 시장
6 상훈
- 2005년 무등의림대상
- 2006년 행정자치부 감사장
- 2007년 보건복지부 장관상
- 2011년 아시아 태평양 안과학회(APAO) 공로상
- 2013년 통일부장관 표창
7 기타
- 저서로 <안녕을 묻고 희망을 답하다>(2014)가 있다.
- 취미는 사진 촬영과 등산이다. 히말라야에도 갔다 왔다.
- 알아주는 애처가다. 그는 “히말라야에 갔을 때 빼곤 아내와 떨어져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 시민운동을 하면서 만난 유인택 영화감독에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화려한 휴가 제작을 위해 부인 몰래 영화제작비 1억 원을 빌려줬다.
- 자택에서 아버지와 장모를 함께 모시고 산다.
8 선거 이력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2014 |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광주광역시장) | 새정치민주연합 | 367,150 (57.8%) | 당선(1위) |
- ↑ 선거이후 업데이트가 없다. 시정행사 사진이 간혹 올라오지만 2015년 이후 감감 무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