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엔나 다 아마란스

룬의 아이들의 등장인물.

풀네임은 이엔나 카틀레야 다 아마란스. 아마란스 백작가의 후계자. 란지에 로젠크란츠와 동료이자 친한 사이이다.

1부 룬의 아이들 윈터러에서는 잠깐 나오는 정도의 비중이지만, 2부 룬의 아이들 데모닉에서는 상당히 비중이 크다.

아노마라드 남부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아마란스 백작가의 영애. 금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언뜻 보면 남자아이로 오해할 만큼 남자아이처럼 입고 다니는 보이시한 미소녀.[1]. 본인은 그냥 남자옷이 더 좋고 취향에 맞아서 그러고 다니는 듯. 여자애 옷을 정말 싫어해서 억지로 드레스 같은 게 입혀지면 일부러라도 껄렁해진다. 억지로 드레스를 입고 가게 된 파티에서 남자 정장 차림이었다면 좋은 마음으로 왔을 거라고 하기도. 또 전형적인 여자애 이름인 '이엔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이엔'이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그래서 깐깐한 사람이 아니면 대부분 이엔이라고 불린다. 성격은 귀족답지 않고 쾌활하며 소탈한 편. 사내아이 같은 성격으로 귀족 사교계에서 흔한 파티나 뒷소문등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분이 신분이다보니 사교계의 유명인사와는 친분이 있는 편. 어느 정도는 신분을 신경쓰는 루시안 칼츠가 그녀를 친하게 이엔이라고 부르고 보리스에게 이엔은 성격이 귀족답지 않아서 좋을 거라고 하는 걸 보면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인 듯. 클로에 다 폰티나가 파티장에 나타난 이엔에게 어린시절 이야기를 꺼냈었다.

데모닉 초반부에서 사립 그로메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애처럼 입고 다니는 것 때문에 어머니가 이 애가 제대로 결혼이나 할 수 있나 하면서 걱정하고 있는 듯하며, 나중엔 결국 실비엣 드 아르장송에게 귀족 영애로서의 교양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해 실비엣과 알게 된다.

주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이 틀 아래의 내용은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의 줄거리나 결말, 반전 요소가 직, 간접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내용 누설을 원치 않으시면 이하 내용을 읽지 않도록 주의하거나 문서를 닫아주세요.

사실 공화정의 부활을 추구하는 비밀결사 '민중의 벗'의 회원이며, 같은 회원으로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란지에 로젠크란츠의 둘도 없는 동지이다.

란지에와는 지스카르 드 나탕송의 학생일 때부터 교제한 동지이며, 란지에, 하일저 딘츠와 함께 사립 그로메 학원의 '민중의 벗' 회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참고로 귀족인데 공화파인 경우는 드물다 생각하기 쉽지만, 작중에선 '자기가 귀족이면서 귀족들 때려잡겠다는 공화파에 동조하는 귀족 자제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이 나온 걸 봐선 이런 인물이 적지 않은 듯하다..[2] [3][4][5]

테오스티드 다 모로가 망명정부에 제의한 협상에 란지에가 나갔을 때 하일저와 함께 참가했다. 이후 테오의 계획에 의구심을 가진 란지에가 뒷조사를 행할 때 소공작을 조사하기 위해 접촉해야 할 때 그를 샤프롱으로 위장시키고 결국 모로의 계획이 위험한 것으로 결론이 나자 학원을 떠난 란지에 대신 그로메 학원의 동료들을 책임지게 된다.

그 후에 쫓기는 란지에를 자신의 별장에 잠시 숨겨줬다. 이 당시 란지에는 보리스 진네만과 재회한다. 이후 실비엣 드 아르장송이 란지에의 정체를 눈치챈 후 그녀에게 란지에의 동생에 대한 협박편지를 보내고, 이엔은 실비엣과 란지에의 약속장소에 같이 가 란지에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된다. 뒤이어 란지에는 기지로 실비엣을 같이 엮어넣고 이엔은 미리 짜뒀던 대로 귀족의 지위를 이용해 왕국 8군에게 호통을 쳐서 위기를 넘기나 란지에가 체포되었단 사실에 멘붕 직전까지 몰린다.

란지에에게는 동지, 친한 친구로서의 감정만을 갖고 있는 것처럼 표현되었으나 위에 언급한 실비엣과의 사건에서 단순한 동지나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는 게 드러났다. 그런 감정은 아닌 듯하지만 란지에도 친구, 동지로서 그녀를 중히 여기는 듯 하다.

란지에의 체포 사건 때문에 히스파니에 폰 아르님은 그녀가 공화파라는 것을 눈치챘으나, 심증만 있고 확실한 증거가 없어 체포되지 않았다. 아르님 공작가에 찍힌 셈이라 요주의 인물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1. 윈터러에서 '예쁘다'라고 미인 인증.
  2. 덧붙여서 실제 역사에서도 이상주의적인 귀족청년들은 혁명가의 주요한 공급처 중 하나였다. 체 게바라레닌부르주아 귀족집안 출신이다.
  3. 그런데, 혈통에 근거한 신분제가 거의 사라진 현대에는 '부르주아' 라는 표현을 '특권계급'이라는 의미로써 '귀족'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근세 이전의 유럽을 기준으로 보면 이 두 계급은 명백하게 다른 계급이다. 이 점에서 보면 앞에 예시로 나온 체 게바라의 경우 부모가 전문직 종사자(의사)이고 자신도 의사였으며, 레닌의 부모는 공무원과 교사이고 소지주로써 하급귀족 칭호를 받았다는 점에서 귀족이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 출신이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여유 있는 부르주아 중간계급 출신의 젊은이들이 혁명에 투신한 계기에는 이상주의적 열정도 있지만 혈통을 이유로 자신들을 억압하고 멸시하는 귀족계층에 대한 반발 역시 있다는 것. 그래서, 부르주아 중간계급 출신의 전문직 종사자나 지식인 출신의 혁명가는 정말 많은데 비해 혈통을 통해 특권을 부여받은 귀족 출신의 혁명가는 찾기 힘들다.
  4. 그러나 이건 엄밀히 따지면 반만 맞는 이야기다. 체 게바라는 왕정과 귀족이 아니라 부르주아가 지배계급인 권위주의 정권에 맞섰다. 따라서 부르주아 출신임에도 출신 계급에 등을 돌린 체 게바라는 귀족임에도 혁명을 지지한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지배계급 내 이탈자"에 속한다. 게다가 프랑스 혁명 당시에도 귀족이면서 혁명을 지지한 젊은이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혁명전쟁 참전용사이자 혁명의 편에 선 대귀족 라파예트 후작. 또한 레닌의 볼셰비키가 궁극적으로 러시아 제국을 끝장냈을 뿐이지, 차르 군주정에 가장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도전한 집단은 데카브리스트의 난 등에서도 보이듯 자유주의적인 젊은 귀족 청년장교들이었다.
  5. 게다가 이는 원인과 결과의 전후가 바뀐 이야기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 당시만해도 지들끼리 다해먹는 대귀족들에게서 권력을 얻기위해 하급 귀족들은 혁명에 가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코르시카의 촌뜨기 나폴레옹. 그런데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하급귀족 출신이 프랑스 제1제국을 만드는 사태를 본 후대의 혁명가( 대표적으로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들)들은 의도적으로 군부와 귀족들을 혁명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간 것이다. 다만, 굉장히 비슷한 사례가 프랑스 혁명에서 하나 있는데, 루이 필리프 부자다. 무려 부르봉 정통 왕가 다음으로 계승권이 높은 왕가이면서 귀족으로서의 특권을 자진 반납했고(그래서 붙은 이름이 평등한 필리프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좌익으로 간주된 자코뱅을 지지하는 위엄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