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시

반파국의 역대 국왕
반파국 건국1대 이진아시왕2대 ??왕 ???
왕명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김(金)
이진아시(伊珍阿豉)/내진주지(內珍朱智)/뇌질주일(惱窒朱日)
생몰년도42년(?) ~ ?
재위기간42년(?) ~ ? (미상)

1 개요

42년 반파국[1]을 건국하였으나 그 이외에 역사기록은 거의 없다고 한다. 하긴 가야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니...

2 이름

삼국사기에서는 대가야국의 시조를 이진아시라고 하고, 그를 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즉 이진아시는 고대에 흔히 그랬던 것처럼 향찰식 표기일 가능성이 높다. '뇌질주일'이라는 이름으로도 써 있는데, 여기서 금관국수로왕은 '뇌질청예'라고 쓰고 있다. 뇌질이 성씨격인지 뭔지 알긴 어렵지만 이름에 같은 글자들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이진아시왕과 김수로왕은 분명히 어떤 공통점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일본 신화 이름인 이자나기와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서로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검색해 보면 고령문화원, 몇몇 언론에서도 주장하는 이야기인데 뚜렷한 공통점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2.1 탄생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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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견모주

대가야의 건국설화이기도 한 이진아시의 탄생설화는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한가지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지봉 탄생설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탄생설화다.

本大伽倻國【詳見金海府山川下】 自始祖伊珍阿豉王【一云 內珍朱智】 至道設智王 凡十六世五百二十年 【按崔致遠 釋利貞傳云, 伽倻山神, 正見母主, 乃爲天神夷毗謌之所感, 生大伽倻王惱窒朱日. 金官國王惱窒靑裔二人, 則惱窒朱日, 爲伊珍阿豉王之別稱, 靑裔, 爲首露王之別稱, 然與駕洛國왕古記六卵之說, 俱荒誕不可信, 又釋順應傳, 大伽倻國月光太子, 乃正見之十世孫, 父曰異腦王, 求婚于新羅, 迎夷粲比枝輩之女, 而生太子, 則異腦王, 乃惱窒朱日之八世孫也, 然亦不可考.】
본래 대가야국(大加倻國)【김해부(金海府) 산천(山川) 하(下)에 자세하다】[2].은 시조 이진아시(伊珍阿豉) 왕【한편으로 내진주지(內珍朱智)라고 한다.】부터 도설지왕에 이르기 까지 범(凡) 16세(世) 520년【최치원의 석이정전(釋利貞傳)에 이르길, 가야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가 곧 천신 이비가(夷毗訶)에게 감응해, 대가야왕 뇌질주일(惱窒朱日)과 금관국왕 뇌질청예(惱窒靑裔) 두사람을 낳았으니 뇌질주일은 이진아시왕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 그러나 가락국고기의 육란의 설과 더불어 황탄하여 믿을수 없다. 또 석순응전(釋順應傳)에는 대가야국 월광태자(月光太子)는 곧 정견모주의 십세손으로 부는 이뇌왕이라 하는데 신라에 구혼하여 이찬 비지배의 딸을 맞아 태자를 낳았는데 이뇌왕은 뇌질주일의 팔세손이다. 그러나 참고할것은 못된다.】을 지냈다. 신라 진흥왕이 이를 멸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29 고령현(高靈縣) 건치연초(建置沿草)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자세한 내용의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중략)이런 줄도 모르고 정견은 한가롭게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는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물 속을 보기도 하고 산새들이 우짓고 있는 숲 속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목욕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다가 햇빛이 유난히 밝은 것을 느꼇다. 정견은 그 순간 너무나 눈부시게 빛나는 햇빝을 의식하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는 눈부신 햇빛을 보지 않으려고 한손으로 해를 가렸으나 햇빛은 여전히 정견의 마음 속까지 환히 비치는 듯 하더니 순간 이비가의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정견은 아주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견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는 해가 서산으로 와전히 기울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부터 정견은 하늘나라의 남신인 이비가의 아이를 잉태하였다. 정견은 아이를 위하여 자기 몸을 소중히 하였다. (중략) 정견은 오랜 산고끝에 쌍둥이를 낳았다. 정견은 큰아이의 이름을 뇌질주일, 작은 아이의 이름을 뇌질청예라 하였다.(후략)

- 출처 : "한국인의 신화". 한상수 저. 문음사. 2003年**

뇌질주일은 아버지인 이비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붉었다고 한다. 수로왕은 어머니인 정견모주와 닮았다고.

이 설화를 보면 알겠지만 《삼국유사가락국기에 등장하는 〈육가야형제설화〉, 즉 김수로왕 탄생설화에선 김수로가 형이지만 대가야 탄생설화에선 이진아시가 형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내용은 이진아시에 대한 신성성이 극히 강조된 것으로, 신화 내용으로 보아 정견모주로 나타나는 토착 세력과 이비가로 나타나는 이주 세력의 결합에 의해 대가야가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대개 건국 신화는 특정 계급의 우월성 또는 신성성을 구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즉 신화를 통해 지배 계급의 정당성을 부여받고, 또한 이를 의례를 통하여 재현하면서 백성들로 하여금 왕권의 원천과 현실의 정치 사회적 관계를 수긍하게 하였다.

이러한 탄생설화 때문에 대가야의 모태인 가야산은 우두산(牛頭山)이라 불렸고 산신제때는 소를 제물로 바쳤다. 아직도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마을 뒷편에 가면 정견모주의 제단과 정견모주가 하늘신 이비가를 맞이할때 탓다던 꽃가마가 변했다고 전해지는 가마바위[3]가 존재한다.

이진아시가 맨처음 도착해서 나라를 세운 곳이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장기리 알터마을로 추정하는 이유도 위의 설화 때문이다. "알터"라는 이름은 주변 산기슭에 꿩이 집단으로 서식해 알이 꿩알이 많아 알터가 되었다는 설화도 있지만 이진아시 설화에서 이진아시의 알이 멈춘 장소도 바로 이곳이어서 "알터"가 되었다는 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가야의 기록이 부실한 만큼 더이상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3 드라마 김수로의 등장인물

1을 모델로 하였다.
  1. 흔히 알려져있는 명칭으로는 대가야
  2. 【】항목은 원문에 기재된 각주다.
  3. 상아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