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라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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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역대 감독
히가시오 오사무
(1995 - 2001)
이하라 하루키
(2002 - 2003)
이토 쓰토무
(2004 - 2007)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역대 감독
와타나베 히사노부
(2008 - 2013)
이하라 하루키
(2014개막 - 2014.6.)
타나베 노리오
(2014.6. - 2016)
오릭스 버팔로즈 역대 감독
레온 리
(2003.4~시즌 종료[1])
이하라 하루키
(2004)
오기 아키라
(2005)

1 소개

일본 히로시마 현 출신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며, 선수로서는 니시테츠 - 타이헤이요 클럽 - 크라운라이터 - 세이부 라이온즈,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다. 현역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변신하여 세이부 라이온즈(코치,감독), 오릭스 블루웨이브(감독), 한신 타이거스(코치), 요미우리 자이언츠(코치)에 재직했으며 해설가로도 활동했다.

한국계 일본인으로 한국명이 윤춘식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일본위키엔 그런 정보가 없다. 조작인지는 불명인 상황.

2 프로 시절

1971년~1980년 프로 선수 시절에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은퇴한 이듬해인 1981년 세이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모리 마사아키 감독 아래 3루베이스 코치를 맡으며 상대팀 선수의 버릇을 간파해 메모하고 및 정확한 주루 지도를 통해 세이부의 두뇌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하라의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격돌한 1987년 일본 시리즈 6차전이었다. 세이부 구장에서 열린 6차전 2대1로 세이부가 앞선 8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아키야마 코지의 중전안타 때 1루 주자 츠지 하츠히코를 홈까지 내달릴 것을 지시[2]한 사람이 이하라였다. 상대팀의 중견수인 워렌 크로마티와 유격수 가와이 마사히로의 수비 시 버릇을 간파한 이하라의 통찰력이 빛을 발했다.

1999년까지 세이부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한신 타이거스의 수비주루 코치로 취임하지만 당시 감독이던 노무라 카츠야와의 불화로 1년만에 퇴단하고[3] 이듬해인 2001년 세이부에 코치로 복귀했다. 이 시즌을 끝으로 히가시오 오사무가 감독직에 물러나고 차기 감독으로 키우던 포수 이토 쓰토무가 현역 속행을 원하여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2002년에 정규 시즌 90승을 기록하며 4년만에 세이부를 퍼시픽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일본시리즈에선 이하라와 같은 해에 취임한 신감독 하라 타츠노리가 이끌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4전 전패로 떡실신당해(...) 우승엔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2003년 시즌을 마치고, 당초부터 예정되어 있던 이토 쓰토무에게 지휘봉을 넘겨주었다.

이듬해인 2004년에는 당시 2년 연속 리그 최하위를 찍었던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선수, 코치들과의 불화[4]로 인한 내분으로 탈꼴찌에 실패했다. 또한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와의 합병으로 인한 프로야구 재편성 문제로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유니폼을 벗었다.

해설자로 지내다가, 2007~2010년에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로 취임해 하라 다쓰노리 감독을 보좌했고 이승엽, 다카하시 요시노부등을 지도했다. 이때 선수들이 이하라 코치를 무서워 한다고 이승엽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요미우리를 떠나 다시 해설자로 지내다가, 2013년 시즌 종료 후 퇴임한 와타나베 히사노부의 뒤를 이어 세이부 감독에 취임하였다[5]. 그러나 패전 때 선수들을 맹비판하는 것 등으로 인해 또다시 선수들과 불화를 일으키면서[6][7] 2014년 개막전부터 3연패를 기록하고, 양 리그에서 가장 빠른 페이스로 30패를 기록하는 등 작년까지만 해도 언제나 상위권을 차지하던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팀은 최하위로 떨어졌고, 결국 6월 3일에 휴양을 빙자해 사실상 해임당하면서 감독 대행에 당시 타격코치였던 타나베 노리오가 취임했다. 이후 평론가로 복귀해 활동중.

3 트리비아

"코치는 미움 받는 사람이어야한다. 선수에게 사랑하려고 했더니, 서로 성장이 멈춘다" 고 발언하고 어느 팀에서도 훈련 교관으로 매우 엄격한 지도를 하는 스타일이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가차없이 발언을 하는 것이 원인으로 설화를 일으키거나 타협이 없는 강경파스런 지도 방침때문에 감독 시절 선수들과의 불화가 끊이지 않아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다는 견해도 있다.[8]

좋아하는 음식은 카레라이스이며, 보통 사람이라면 정말 먹을 수 없는 수준의 매운맛을 좋아한다고 한다. 201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스프링 캠프에서는 숙소에서 제공하는 카레라이스가 이하라의 요청으로 매운 맛을 한껏 더해 다른 선수와 직원이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고 한다. 캠프 후반에는 일반 선수들이 먹는 '매운맛'과 이하라의 "핫"의 2 종류가 준비되었다는 흠좀무한 일화가 있다.

휴대전화를 싫어해 지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1. 당시 감독이던 이시게 히로미치의 도중해임으로 인한 감독대행.
  2.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주자 1,2루 또는 주자 1,3루
  3. 참고로 이하라의 전임 코치였던 후쿠모토 유타카도 노무라와의 불화로 짤린 바 있다(...) 이쪽은 본인이 "도루보단 출루가 우선" 이라며 선수들의 타격에 간섭해 해임을 자초한 것도 있지만...
  4. 이 당시 오릭스에서 뛰던 구대성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5. 이때 악마가 돌아왔다는 야유가 있었다고 한다.
  6. "패전 후 인터뷰가 없었으면 좋겠다. 사기저하를 부른다." 라던가, "이하라 감독은 경기를 이기면 자신의 공으로 돌리고 경기를 지면 선수 탓을 한다"응? 라고 한 선수들도 있었다.
  7. 특히나 5월 16일, 아키타 원정 중 행한 전체연습에서 폭풍우 치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에게 실외연습을 강행시킨 게 결정타였다.
  8. 2014년 세이부 선수들은 전부 농군 패션으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