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가수)

(이혜련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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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5월 3일 ~ 2007년 1월 21일

1 요약

대한민국가수이자 배우이며, 1981년 생 배우 한예슬전지현이랑 동갑내기 연예인이다.

2 아역배우 시절

본명은 허윤(許允)으로 알려져 있고 가수 데뷔 전 아역배우[1] 활동도 했는데 당시의 본명은 이혜련(李慧蓮).[2]

그녀는 중학생때도 전교회장[3]을 맡을만큼 모범적인 학생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진학 후 TV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연예인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겨 연기학원을 다니며 꾸준히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사실 그녀는 가수로 데뷔해서 역경이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아역배우로 데뷔했던 1996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그녀는 KBS1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로 데뷔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당시 사춘기 학생들의 사연 제보를 바탕으로 드라마로 재구성해 10대들 사이에선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는데[4], 유니(당시 이혜련)는 이 프로그램의 한 방영 분인 '공주병 스타병' 편에서 '왕공주병' 학생으로 데뷔했다. '공주병'이라는 단어 자체가 2000년대 초반 나왔던 '강추(강력추천)'처럼 당시의 신조어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신조어였으며, 그녀는 나르시즘 말기인 공주병 학생 역을 연기했다. PC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그때부터 악역 아닌 악역이었던 이 역할로 좋지 않은 도도한 이미지를 얻게됐다.

이후 KBS2 '슈퍼선데이' 등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공주병', '깍쟁이', '싸가지' 등 철없는 이미지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왜냐면 이후 맡았던 드라마나 영화 세븐틴 등 역시도 그런 새침데기 느낌의 연장선이었던 배역뿐이었다. 게다가 본인의 외모, 목소리 등이 너무나 찰떡같아 배역 소화를 너무나 잘했기에... 그 때는 대중들이 프로그램 배역과 연예인을 분리시키는걸 더욱 안하려고 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후 그녀는 연기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3 댄스가수 데뷔 (2003)

그는 긴 공백 끝에 성인이 되었고 2003년엔 댄스가수로 데뷔했다.[5] 당시 각종 예능에서 전혜빈, 채연, 렉시 등[6]과 함께 활발히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는데 그녀의 장기였던 격렬한 '클럽 댄스'와 도도해보이는 차가운 외모, 여성스럽고 조곤조곤한 말투가 대비되자 이쁜척 한다, 가식적이다, 오버스럽다며 인터넷에서 비난이 쇄도했었다.

특히 정점이었던 사건은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에 출연해 0표를 받자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고 이 시점부터 인터넷엔 가식적인 공주병 연예인이라며 그녀를 질타하는 악플들이 절정에 달했다.[7] KBS2의 미팅프로그램 등에서도 시청자게시판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의 아역배우 시절 사진까지 가져와 성형에 관한 비난까지 추가됐었다.

이윽코 추석특집에서 이효리와 댄스배틀을 벌이다 쉬는 시간 둘이서 무표정으로 같이 있는 순간포착해서 '카메라 앞에서만 친한척'한다는 사진때문에 선배한테 버릇없다(사진)며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악플이 시작됐고, 그녀는 억울하게 또 한번 곤욕을 치렀다. 예능 출연으로 인해 인지도는 많이 높였으나[8] 배우 시절과 유사하게 욕을 먹으며 1집 앨범 활동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세월이 흘러서 세대교체가 되었을텐데 똑같은 오해로 욕을 먹었다

4 두번째 앨범 Call Call Call (2005)

정규 2집 타이틀곡 'Call Call Call'의 M/V

그 후 2005년에 정규 2집 앨범을 준비하며 앞전의 비난과는 다른 방향으로 악플은 더욱 더 심화됐다. 그녀는 앨범 발매 몇달전 개인 미니홈피(싸이월드)를 개설하여 근황 사진을 올렸었는데, 이때 또 네티즌들이 소식을 알고 찾아와 코와 가슴 등을 수술했다며 성형 지적으로 비아냥대며 인신공격성 악플로 그녀를 괴롭혔다. 2005년 2월 다소 기괴한 호러무비 컨셉과 과감한 노출이 곁든 섹시컨셉이 결합해 큰 화제를 모았던 타이틀곡 'Call Call Call'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며 논란과 화제를 동시에 터트렸다. [9] 독특한 구성으로 이뤄진 뮤비의 화제성은 높았지만 컴백 라이브 무대에서 긴장한 탓에 파워풀하고 당당한 라이브를 선보였던 1집 '가'와는 불안정한 라이브를 보여주는 등 악재가 이어졌다.[10]

2집 앨범 활동이 이어질수록 그녀의 행보가 못마땅한 악플러들은 이를 향해 질타하는 인신공격과 패드립은 이전과는 다른 엄청난 수위로 무수히 늘어만 갔다. 2005년 여름 드림콘서트에도 참가하는 등 2집 'Call Call Call'은 대중들에게 소소한 화제를 모았으나 그녀에겐 '노출 많이 한다'싸보인다는 섹시 여가수의 안좋은 이미지가 깊게 박혀버렸고, 도를 넘은 악플들은 멈출줄 모르고 더욱 더 심해졌다. 후속곡으로는 발라드곡 '아버지'를 발표했다. [11]

'스타셀프카메라'. 악플러들은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며 오해했지만, 그는 보다시피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성격이었다.

이때 유니는 MBC 예능프로그램 '행복주식회사-만원의 행복'에도 출연했는데, 프로그램안의 코너였던 '천원의 만찬'을 어머니에게 선사했다. 어머니는 악플로 힘들어하는 딸을 다독였었고 시청자들에게도 실제로 여린 아이니 부디 오해없이 예쁜 모습으로 지켜봐달라며 당부하며 모녀가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공중파 인기 예능프로까지 출연하여 가족까지 호소했는데도 2집 활동 내내 악플은 그치지 않았다. [12]

몇몇 동료 연예인들 역시 유니를 기피한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잠시 돌았던 적이 있다. MBC '이미지 서바이벌'이라고 연예인들 이미지를 개선해보자는 취지의 예능프로에 출연한 유니는 굴욕 아닌 굴욕을 당해야만 했다. 당시 이경규는 '딸 예림이가 절대로 이렇게 안됐으면 싶은 연예인'을 순위매겨 뽑는 부분에서 1위에 유니를 주는 바람에 그녀의 씁쓸한 표정이 카메라에 계속 잡혀 불편하게 만들었었다. 이유는 딸이 노출 있는 옷을 입고 과하게 행동하는것이 싫어서. [13]

5 유작이 된 정규 3집 (2007)

2006년일본에서 데뷔 싱글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으나 2007년 3집 앨범 'Sorrow Fantasy'[14]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루 앞둔 1월 21일에 고질적인 우울증으로 추정되는 사유로 인천광역시 서구 마전동 자택에서 자살하였다. 원인은 악플로 인한 심적 충격으로 인해 우울증이 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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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3집을 준비하는 공백기동안 그녀는 미니홈피를 통해 '제발 욕을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호소하며 많이 위축된 모습을 보였고, 2007년 1월 초에 유니의 컴백 기사가 나자마자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인신공격성 악플들과 개인 미니홈피까지 찾아가 '다신 TV에 나오지마라'며 괴롭히는등 악플 테러(악플)의 정도가 굉장히 심했었다. 결국 이러한 악플이 유니의 자살로 이어지게 되면서 이로 인한 심적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악랄한 모습들은 고스란히 캡쳐되어 공중파 뉴스나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심도 있게 온라인 악플 문화를 비판했었다.

더욱이 이 사건은 웃찾사 미녀삼총사의 일원인 김형은이 사고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부터 한 달도 안 돼서 대한민국의 배우 정다빈도 자살을 해서 베르테르 효과가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정규 3집앨범 타이틀곡이었던 'Sorrow Fantasy' 안무 영상. MBC 섹션TV와 케이블 Y-STAR 채널에서 공개됐었다.

유니의 3집 앨범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음반사측이 발매에 난색을 표하여 결국 발매 무산 될 뻔했으나, 팬들과 유족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우여곡절끝에 유작앨범을 발매하게 됐으며 추모의 의미로 기존 댄스 타이틀곡에서 발라드 수록곡인 '습관'을 타이틀곡으로 변경하여 유니의 생전 모습을 담은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공개했다. 음반 판매로 인한 수익은 유족에게 돌아가는 방향으로 정했었다.

6 이후

과도한 섹시 컨셉을 밀어붙여 대중들에게 호감도가 높지 않은 상태였으나, 사후 실제 그녀를 겪어본 연예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대부분 천사표)가 많이 나와 드러나지 않은 그녀의 매력에 아쉬움을 표현한 사람도 많았다.유니 생전 그를 인터뷰했던 기자의 칼럼 에서 알 수 있듯, 대중은 유니를 단순한 섹시컨셉 여가수로만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사려깊을뿐더러,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나 여성 인권, 성 해방에 대한 인식 수준도 대단히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생전에 신해철이 진행했던 라디오 '고스트네이션'에도 그녀가 몇번 언급되다가 결국엔 이례적으로 초청받아 게스트로 출연했었다. 그때도 그녀가 가진 여러 선입견덕에 대중들에겐 평판이 좋지 않았으므로 방송후에 호불호가 갈렸다. '왜 유니가 나온건지 마왕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불평하는 청취자들과 '유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는 청취자들도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악플의 부작용에 대하여 사회적 관심을 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 기사 댓글 포맷이 이 이후로 조금씩 변화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세대교체의 영향도 있을테고 이런 사건이 터져도 나몰라라 하는 악플러도 있을테고 이렇게까지 상처주며 결과가 안좋은 사례가 있었다는걸 잊혀진듯 여전히 악플은 진행중이다.
  1. 사극 왕과 비에서 장녹수로 활동한 적이 있다. 왕과 비 이전에 출연한 용의 눈물에서는 어리로 등장했었다. 젝스키스 영화로 유명한 '세븐틴'이나 KBS '신세대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등에도 출연했다.
  2. 여기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허윤으로 개명하였다.
  3. 부회장은 배우 정태우.
  4. 형식은 드라마이지만 드라마국이 아닌 교양국(당시 부서명은 TV 1국) 제작이었다. 뒤에 학교 시리즈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5. 데뷔 앨범에 수록된 타이틀곡 '가'는 일본 가수 DJ 오즈마에 의해 '초'(超)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다.
  6. 이때부터가 걸그룹의 암흑기다. 1세대 걸그룹들이 해체가 잇따랐으며 이때부터 2006년쯤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엔 솔로 여가수들의 활동이 오히려 걸그룹 시장을 대신해내며 왕성했다.
  7. 최근 EXID의 하니가 예능에서 울어서 오버한다고 조롱당한 상황과 비슷했다.
  8. 같은 데뷔동기였던 신은성이나 채연보다 더 활발히 예능에 출연하며 인지도가 높았다. 물론 괄시당하는쪽으로 유명해진거였지만... 다음해 채연이 2집 '둘이서'를 발매하고 나서는 상황은 역전됐다.
  9. 요즘 느낌으로 비유하자면 걸그룹 스텔라의 논란과 비슷했다.
  10. 1집때도 안티가 많았지만, 그녀의 라이브 무대에 관해서는 AR 하나 없이 힘있는 쌩라이브를 선보여 이 부분에선 칭찬하는 분위기도 존재했었다. 반면 동기였던 신은성은 불안한 라이브를 선보여 인터넷에서 꽤나 욕을 먹었다.
  11. 그녀는 어릴적부터 아버지 없이 자라서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고 생전에 인터뷰한적 있다. 그래서 애틋한 곡임을 표한바 있다.
  12. 해당 프로그램에서 배우 김태희의 생일파티에 게스트로 초청되어 갔는데 그마저도 거길 '왜' 갔느냐고 욕먹을 정도였으니...
  13. 같이 출연한 연예인중엔 김완선이나 서인영, 아유미, 채연 등도 있었지만 실제로 결정된 순위엔 그녀만이 여가수였고 2~3위도 과격함을 이유로 조혜련 등의 개그우먼을 선택했다. 유니는 팬도 많이 없고 이경규는 팬이 많았고, 아빠로써의 이경규가 충분히 이해 된다는 반응들에 그냥 묻혔다.그럼 동료들과 시청자 앞에서 공개적으로 개망신당한 유니 멘탈은
  14. HONEY와 더블 타이틀곡이었다고 한다. 두 곡의 안무 연습영상이 유튜브에 존재한다. 당시 뮤직비디오 촬영장소로 예정됐던 홍대의 한 클럽의 사진들도 공개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