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비

KBS 1TV 대하드라마
왕과 비
(1998)
王과 妃 / Kings and Queens
국내등급15세 이상 시청 가능
방송 시간토요일, 일요일 밤 9시 45분
방송 기간1998년 6월 6일 ~ 2000년 3월 26일
방송 횟수186부작
방송사50
장르대하사극
제작사50 자체제작
연출김종선, 김용수 -> 윤용훈, 윤창범
극본정하연
출연자임동진, 채시라, 최종원, 한혜숙, 조경환, 안재모, 정태우
저승사자해설이강식
KBS 1TV 대하 드라마
용의 눈물왕과 비태조 왕건
"용상은 하나지요. 결코 둘이 될 수 없지요."

1화 중 인수대비의 대사[1]

1 개요

1998년 6월 6일 ~ 2000년 3월 26일까지 KBS 1TV에서 방영한 186부작의 전 대하사극.

문종 사후부터 세조를 지나, 연산군의 사망까지를 그리고 있다. 전작 용의 눈물에는 태조 이성계태종 이방원이라는 고정된 주연이 있지만 이 작품은 사실상 고정된 주연 없이, 시대에 따라 얽히고 설키는 정치적 권모술수와 암투를 그려내고 있다.

이 사극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조선시대판 격동 50년. 실제로 드라마가 다루는 기간은 문종의 승하(1452년)에서 중종반정(1506년)까지이므로 50여년이다. 다만 타임 워프가 몇군데 존재하는데, 단종 사후 9년, 공혜왕후 사후 3년, 폐비 윤씨 사사후 12년, 무오사화 후 6년 등 실질적으로 다루는 기간은 총 54년 중 30년이다.

왕과 비 오프닝. 전작인 용의 눈물과 같은 테마곡을 사용하였다.

사실 주연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한 명 있다. 그 주인공인수대비로서 드라마 첫 회부터 마지막회까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2] 사실상 인수대비가 역사 속에 처음 등장하는 덕종(도원군)과의 혼인 부터 승하할 때까지 계속 등장했으며 종영을 3회 앞둔 183회에서 승하한 이후에도 연산군의 회상 등으로 계속 등장한다. 그리고 이 시기 덕종의 사망으로 사가에 나가 있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유력 대군의 며느리, 세자빈, 대비, 대왕대비 등으로서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게다가 인수대비가 한 발 물러나 있는 기간에는 타임 워프(...).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드라마 오프닝에 출연배우가 나올 때 초반부의 주역인 세조 역의 임동진 다음에 세조의 정비인 정희왕후나 중신들을 밀어내고, 인수대비 역의 채시라가 등장하였다. 세조 승하 이후에는 당연히 제일먼저 채시라가 나왔다. 이후 아예 인수대비의 일생을 다룬다며, 등장한 드라마가 동일 작가의 JTBC 인수대비.

작가인 정하연은 이전에도 장녹수 등의 인물을 주연으로 비슷한 시대를 그린 사극을 쓴 경험이 있다. 따라서 에피소드나 등장인물이 일부 겹치는 부분도 존재했다.

2 비평

작가가 조선왕조실록을 거의 그대로 옮기다시피 하여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때문에 세조의 왕위찬탈이 긍정적으로 그려져서, 방영 당시에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3] 일단 용의 눈물은 실록과 다른 사료와의 교차검증을 통하여 역적으로 손가락질 받던 정도전을 폭풍간지 혁명가로 재조명한 것이 대표적인 예시지만, 왕과 비는 교차검증을 통하지 않아서 그런지, 김종서가 무조건 나쁘게 나오고 세조가 착하게 나온다.[4][5]

좀 더 문학적으로 평론을 하자면, 기본적으로 영웅적인 주인공에게도 한가지 하마르티아가 있고, 이로 인해 파토스가 폭발, 침몰해가며 몰락하는 것은 그리스 이래 비극의 유구한 뼈대다.[6] 고전비극의 틀로 볼 때 미화된 수양대군이라는 영웅적 캐릭터는 '즉위'라는 영웅적 성취를 이루지만 '자식처럼 아끼던 조카의 왕위를 쿠데타를 통해 탈취했다'는 하마르티아를 떠안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 '수양대군(세조)'는 스스로 증명한 권력의 비정함 속에 몸부림치며 죄책감으로 망가져간다. 이러한 전개를 선택한 작가의 의도는 '권력의 무서움과 권력으로 인해 초래되는 인간성의 황폐화'다.

극 초반부 나약하게 묘사되지만, 강한 권력의지와 아들에게 그 권력을 대물림하려는 욕망을 드러내는 역덕후들의 까임거리를 제공한 문종은 수양대군과 구체적인 이유는 다르지만, 역시 권력으로 인해 황폐해진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보인다. 하다못해 이 드라마는 김종서를 너무 지나치게 폄하를 하였는데 문종의 국상 기간동안 자신의 부하들을 풀어 민가를 감시하게 하고 문종을 향해 곡을 하는 백성을 향해 신나게 두들겨패기까지 한(...) 말도 안 되는 내용까지 썼다. 그 이유가 충격적인데 "새 임금이 즉위하셨는데 이미 죽은 왕에게 곡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느냐"였다. 한마디로 김종서는 권력에 눈이 먼 간신으로 몰아세우고 조선왕조의 왕실 법도에 대해서도 왜곡이 아주 심한 내용이다. 물론, 이러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없으며, 작가 자신이 창작해낸것.

드라마 극초반부부터 권력에 강한 관심을 드러냈고, 의경세자 사망과 함께 사저로 내쫓기자 절망했다가, 결국 성종을 왕위에 올리며 권력을 향해 무한전진했던 주인공 인수대비 역시 연산군에 의해 못 볼 꼴 다보고 허망하게 사망. 죽은 후에도 후궁의 예로 장사지내지는 등 푸대접을 받는데 이 역시 권력의 무상함을 표현한다.

요약하자면, 이 드라마는 역사적 기록을 취사선택하여 주제의식을 표현할 수 있는 인물상을 표현한 것이다.

초반 시청률 부진의 원인을 들자면 크게는 두 가지가 있다. 문종을 중심으로 한 왕궁 내부 상황은 문학적 수준이 일반 드라마에서 찾기 힘들 정도[7]로 높긴 했지만 도가 지나쳐서 거의 음침한 데까지 흘렀다. 게다가 화끈한 천하의 개쌍놈 면모를 보일 것으로 기대되었던 주인공 수양대군은 너무 착하고 잔뜩 미화가 된 듯한 모습으로 그려진데다가, 심지어 문종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아내 품에 안겨 울 정도로 섬세하기만 할 뿐, 상황 주도능력은 거의 전무한 것으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극초반부에 극의 한 축은 너무 음침하고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계유정난 전까지 주인공은 가만 앉아서 눈물이나 찔찔 짜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었다. 이게 첫 번째 이유다. 호시탐탐 왕이 되기 위해 온갖 잔인한 짓을 다 하는 성품을 지닌 인간이 한낱 여자 치마폭에서 눈물이나 질질 짜지는 않았을 거다.

두 번째 이유는, 세조에 대한 지나친 찬양과 이로 인한 부정적 여론의 형성. 특히, 세조가 승하할 때 '세조가 세종대왕의 가장 뛰어난 아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문종이 있어서 부인하고 싶은데?, ' 경국대전]] 편찬', '호패법[8]', '중국의 속국이 아닌 자주국 지향' 등의 찬양조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물론 끝에서는 이러한 업적을 쌓았음에도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으로 인해 악업이 더 커서 가려진다며 깠지만. 사실 차라리 이런 인물평 자체를 포기하는 편이 극적 완성도면에서도 더 좋은 선택이었을 듯. 다만 당시까지만 해도 '해설 없는 사극'이란 상상도 못할 선택이었다.

사실 미화된 캐릭터 자체가 욕을 먹은 것이지, 세조를 표현한 배우의 연기 자체는 딱히 흠 잡을 곳은 없었다. 특히 노년에 죽기 전에는 꿈에서 단종이 나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더니 나오는 곳이 단종이 묻힌 곳. 그 앞에서 단종이 울면서 춥다고 꺼내 달라고 하자, "홍위야! 내 조카가 이런 곳에 묻혀 있었단 말이냐! 내가 꺼내주마! 조금만 기다리거라!"하고 울부짖으면서 무덤을 파헤지는 장면은 전율이 일 지경.

사실 전작의 인기에 가려져서 언급이 적을 뿐이지, 지금 보면 내용을 떠나서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한 사극이다. 단종 전문 배우 정태우는 아마도 생에 마지막으로 맡은 단종 역을 몰입감 넘치는 연기했고, 이 드라마로 대상을 탄 채시라의 연기 역시 명불허전. 노회하면서도 능글맞은 한명회 역을 맡은 배우 최종원의 연기도 볼만하다. 왕실지상주의자 양녕대군을 연기한 신구 할아버지의 연기나 근엄하면서도 왕실의 풍파에 회의를 느끼는 중견배우 한혜숙 씨의 연기도 괜찮은 편.

3 극중 인물 묘사의 특이점

왕과 비에서의 세조와 단종의 관계는 정말 찰진 관계다... 36화에서는 종친부에서 숙직하며 책읽다 자는 숙직하는데 잠이나 자다니 수양에게 웃으며 호피를 덮어주는 단종이 나오고 수양이 깨기를 기다리다 잠든 단종에게 수양이 다시 호피를 덮어주며 수양 회상씬 On : 문종 "내가 죽으면, 아우님께서 이 자리를 맡아 주시게... (중략) 아우님에게 대세가 기울면 어떡하겠소? 그때도 내 아들을 지켜주겠소? 약속... 약속을 해 주시게. 내 아들을... 아들을 살려주시게. 살려주셔야 하네... 내 아들을... 내 아들을...!" 회상씬 OFF 한 다음에 수양이 단종을 업어서 대전까지 모신다. 그 와중에 단종이 깨는데 나누는 대화가 사이좋은 부자지간. 단종 왈 "숙부님의 등이 따뜻해서 좋습니다." 정말 찰지구나 서로가 서로를 찾기 못해 안달이다(...) 왕과 비만 보면, 둘은 가만히 있는데 양 세력이 서로 난리라 비극이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여담으로, 세조의 장자 도원군과 단종의 죽음의 순서가 뒤바뀌지 않고 제대로 나온 드라마이기도 하다. 세자가 된 도원군이 사경을 헤매자 세조는 문종의 사당에 가서 제발 아들을 살려달라고 비는데, 결국 도원군은 그대로 죽고 만다. 분노한 세조가 "형님이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형님 아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며 결국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게 하는 전개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야사에 전해지는 현덕왕후와 세조의 관계를 어느 정도 담으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세조를 지나 성종 때의 인수대비 - 폐비 윤씨의 갈등이 심화되며 시청률이 올라가더니, 안재모가 연산군으로 열연한 마지막 부분은 시청률 톱 10에 들었고, 다른 부분들도 역덕후들이나 사극 매니아들에게는 정통 사극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수작. 결국 최고시청률 44.3%를 찍었다.(단 평균 시청률은 아니다.).

중종반정이 일어나서 연산군이 폐위될 때 연산군을 진짜 미치광이처럼 묘사를 했다 유자광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산군이 있는 방 앞으로 몰려가 "폐주는 어보를 내놓으시오." 하고 외친다. 이에 연산군"나를 가리켜 폐주라 했느냐?"라고 반문한다. 그러자 유자광이 "그렇소이다!, 당장 어보를 내놓지 않으면 밖으로 끌어내겠소이다. 왕실의 체통을 생각해서 폐위하는 것으로 그 죄를 묻는 것이니 어보를 내놓고 오늘 밤 안으로 대궐을 떠나시오!" 라고 외친 후 방으로 진입하는데...

방 안으로 들어가보니 연산군이 웃으면서 춤을 추는 가운데 다음 대사를 날린다.
"할머니, 할머니 소원대로 폐주가 되었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내쫒고 새 임금을 세웠으니, 새 임금인들 임금 노릇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하하하하하!" 그 말대로 중종도 임금 노릇 제대로 하려고 기묘한 팀킬을 벌였다! 오오 이것이 선견지명?[9]
출처 #

강화도로 유배를 간 후 비참한 몰골을 비추면서 나레이션으로 "권력이란 가면과도 같은 것이다. 권력이란 가면을 벗은 연산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표현했다.

마지막에 연산군이 사망하고 나서 연산군이 쓴 용서라는 글씨들이 휘날리는 가운데 드라마가 끝이 나는데, 마지막 나레이션이 문제가 있다. "역사는 연산을 폭군이라고 기록을 하고 있다. 승자의 기록이다." 출처#... 그렇지만 연산군은 확실하게 폭군이 맞다. 정하연 작가가 본작 수년 전에 썼던 장녹수에서는 '연산군의 악행들은 줄줄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으며 한 짓이 한 짓이다 보니 폭군이라는 평가는 그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 연산군의 악행이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정도로 평가했는데, 이때보다도 시각이 후퇴한 셈.

같은 작가의 사극인 장녹수와 마찬가지로 수근비가 연산군의 임종을 지키는 모습이 나온다. 본시 수근비는 장녹수에게 모함을 받아 연산군의 명으로 장형 80대를 맞고 유배된 이후에 거열형을 당해 죽었는데 이상하게 정하연 작가의 작품에서는 연산군의 사랑을 받고 연산군 사망까지 생존하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4 캐스팅

캐스팅 면모만 봐도 용의 눈물의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용의 눈물에 출연한 배우가 등장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조 역으로 중견 배우 임동진이 캐스팅 되었는데, 1990년 <파천무>에서 유동근이 세조를 연기한 바가 있기 때문에 준수했던 연기에도 불구하고 비교를 많이 당한듯 하다. 그도 그럴것이 <파천무>에서 유동근이 열연한 세조역의 연령대와 분위기가 실제 세조의 집권막전막후와 흡사하기도 했고 왕위찬탈및 사후처리과정에서의 비정하고 냉혈한 전개에서 보여준 유동근의 입체적인 연기와 중후하고 노숙한 이미지의 임동진의 세조연기 와는 분위기상 비교가 될수밖에 없었기 때문인것 같다.[10] 그러나 "홍위야, 내가 꺼내주마!"를 외치며 실성한 모습을 보여주는 말년의 연기는 ㅎㄷㄷ 그 자체. 인수대비 역으로는 채시라가 캐스팅되어서 열연했다. 특히나 대왕대비, 즉 연산군 때의 인수대비 때에는 흰머리와 노역 분장을 완벽하게 하고, 폐비 윤씨-연산군 모자에게 윽박지르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에서의 열연으로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 안재모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 전작인 용의 눈물에서 성군 세종 역에서도 호평받았던 안재모는 희대의 폭군으로 일컬어지는 연산군을 연기했다. 용의 눈물에서 살해당하는 어린 왕자 방번을 연기했던 정태우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단종을 연기[11], 두 작품 연속으로 어린 나이에 살해당하는 역을 연기했다.(...)[12]

이 외에도 김갑수(권람), 신구(양녕대군), 최종원(한명회), 故 여운계(폐비 윤씨의 어머니 신씨), 김성령(폐비 윤씨), 조경환(김종서), 김형일(홍윤성) 등의 실력파 중견 배우들도 다수 투입되어 모두 연기력에 있어서 불만족이 없었다. 심지어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당시 신인급이었던 장서희, 최강희도 이 드라마에 나온다! 장서희는 문종의 후궁인 숙빈 홍씨, 최강희는 연산군의 후궁인 수근비 역으로 출연한다.[13]

자세한 출연진은 왕과 비/캐스팅 참조

5 이야기 거리

조선 임금들이 가장 많이 등장한 사극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무려 8명의 임금이 이 사극에서 등장했다.(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원래 제목은 바람의 생애였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 NHK 대하드라마꽃의 생애와 비슷하다고 해서 바뀐 제목은 왕조의 계단. 그렇지만 이것도 너무 추상적이다 하여 왕과 비로 바뀐 것이다.

1분 촬영에 160만원이나 들어서 까이기도 했다.(당시는 외환위기 시기였으니)#

1997년 외환 위기 직후여서 그랬는지 오프닝 테마곡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전작인 용의 눈물의 것을 그대로 재탕했다(...)
연산군이 용서를 빌면서 사망하는 인상 깊은 엔딩장면으로도 사극 팬들에게 알려져 있다. 막판 연산군이 깽판을 치며 피를 부르는 장면에선 상당히 고어한 연출이 여과없이 방영되기도 했었다. 망나니의 칼질과 함께 땅을 구르는 머리라든가, 부관참시라든가, 거열형 등 공중파에선 방영하기엔 약간 무리가 있는 장면들이 있었다.[17]

아울러, 당초 99년 12월 말 끝낼 예정이었으나 후속작 태조 왕건의 담당 PD로 낙점된 김재형에 대한 검찰 수사로 인해 촬영에 차질을 빚게 되자 2000년 3월 막을 내렸으며, 이 과정에서 <왕과 비>는 담당 PD 김종선이 <태조 왕건> 연출자로 발령되어 하차하는 대신 윤용훈 연출로 변경됐다.

이 드라마가 끝나는 장면이 중종반정인데, 이 드라마가 끝나고 11개월 후 옆 동네에서는 중종반정이 첫 장면으로 나오는 여인천하가 방영된다. 여인천하가 KBS에서 방영되었더라면 아마 KBS판 조선왕조 5백년이 완성되었을지 모를 일. 근데 여인천하는 역사왜곡이 너무 많아서... 조선왕조 5백년 역사를 드라마로 보고싶은 사람은 용의 눈물-왕과 비-여인천하 순으로 드라마 봐볼 것을 추천. 여인천하 다 보면 징비록?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로 개국한 JTBC가 개국특집으로 편성한 드라마 인수대비는 사실상 왕과 비 2012 HD 리마스터 버전으로 여겨진다. 채시라가 그대로 인수대비로 출연하는 데다가 주요 장면의 구성이 본작과 매우 유사하다. 심지어 작가도 같은 정하연.

  1. 이 대사를 할 때는 아직 대비 시절이 아닌 도원군부인 시절에 도원군에게 하던 말이었다.
  2. 용의 눈물 종방연 당시 드라마 소개에서 세조 역을 맏은 임동진씨는 왕과 비에서 비에 해당하는 사람은 인수대비라고 칭했다.
  3. 단종실록은 실록 편찬 당시 찬탈의 주역들이 만든 것이라서 앞뒤가 맞지 않거나, 세조에 대한 미화로 가득차서 오늘날 반드시 교차검증과 다른 사료와 같이 읽어야 하는 실록이다. 애당초 원 제목 자체가 노산군일기다.
  4.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 균형감각은 있는지, 김종서가 살해당한 후 나오는 나레이션은 "김종서, 그는 만고의 충신이다."로 마무리된다.
  5. 물론 처음부터 김종서의 충성심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다만 문종이 수양 앞에서는 김종서를 의심하고 김종서 앞에서는 수양을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고 이후에도 김종서의 캐릭터가 전형적인 '충신 명재상'과는 거리가 멀어 눈에 잘 안 보일 뿐이다. 군사독재 급의 공포정치를 시전하지만 본인은 한결같은 충신인, <관상>의 김종서와 비슷한데 그보다 과격한 행동을 보인다고 이해하면 빠르다. 심지어 완성된 살생부를 살피는 장면에서 수양대군조차도 김종서의 충성심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뉘앙스의 촌평을 남겼다.
  6. 이를 깨트리고 평범한 인물의 소시민성에서 오는 비극성을 그린 아서 밀러 등의 걸출한 극작가들도 있지만 이러한 현대문학의 성취는 그리스 비극에서부터 내려오는 줄기와 양립하며 현대사회를 반영하고 건전한 안티테제를 형성한 것일 뿐 이러한 사조가 고전비극의 문학적 성취를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다.
  7. 차라리 연극 대사에 가까울 정도
  8. 그러나 당시 백성들에게는 악법으로 취급되었다.
  9. 물론 결과야 정말 그리 되었지만 당시 연산군의 심경 쪽으로 해석하면 그냥 멘탈붕괴에서 나온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저런 대사를 하고 강화도로 추방유배 되고 난 후 그 광기어린 폭군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사람이 안습하게 변해버렸고, 결국 비참하게 죽었다.
  10.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아서인지 세조 집권기가 빠르게 흘러가며 극중에서 세조가 예정보다 더 일찍 퇴장했는데, 이 때문에 임동진이 불평을 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임동진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명회에서는 김종서 역을 맡아서 서로 대립되는 역을 모두 맡은 셈이다.
  11. 참고로 이 작품에서가 3번째 단종 연기였다.
  12. 오죽하면 한 때 출연한 개그 콘서트에서도 맨날 단종만 연기한다고 그것을 개그로 승화시켰겠는가?
  13. 여담으로 최강희가 맡은 수근비는 연산군이 폐위되고 강화로 유배되자 유배지까지 가서 연산의 시중을 들고 연산의 최후까지 지켜보았다. 연산이 죽자 그의 시신을 가지런히 눕히고 흰 천으로 덮는 등 예를 갖춰 수습하려 했으나 마지막에 연산의 부고를 듣고 조정에서 파견한 금부도사들이 몰려와서 그들에게 강제로 끌려나가게 되고 만다. 안습.
  14. 용의 눈물에서는 젊었을 시절의 세종대왕 역을 맡았다.
  15. 용의 눈물에서 황희역을 맡았다.
  16. 용의 눈물에서 하륜 역을 맡았다.
  17. 요즘 사극은 단순히 칼로 베는 장면만 나와도 시청자 게시판에서 '잔혹' 운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