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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文碩
1903년 12월 3일 ~ 1971년 6월 24일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법조인,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03년 경상북도 영천군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및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33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 및 사법과에 합격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관료로 근무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때 일본군을 위문하고 일제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글을 작성하면서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8.15 광복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대구변호사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천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상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신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병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처음에는 자유당 이우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으나 부정선거로 이우줄의 당선 무효가 대법원에서 선고되어 당선자가 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대구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원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6년 민중당을 탈당하여 신한당 창당에 참여하여 신한당 정무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67년 다시 신민당에 속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공화당 이원만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친일파 708인 명단의 도 참여관 부문과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