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1 개요

한국의 정치인

2 생애

1966년 4월 24일 생으로 전라남도 장흥군이 고향이다. 이후 상경하여 서울용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생 운동에 뛰어든 것은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과 1학년 때, 노래패에 가담하면서부터로 알려져 있고, 1990년 전대협 3기 의장을 맡으면서 학생 운동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 그가 주도한 것이 바로 임수경 방북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인해 경찰의 수배를 받으면서 도피하다가 결국 체포, 3년여 간 옥고를 치루게 된다. 다만 이 때 워낙 잘 도망다니면서 경찰의 추적을 피해 별명이 '홍길동'이 되었고, 이 도피로 인해 당시 여고생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1993년 출소 이후에는 시민운동 쪽에서 활동하다가 1999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대규모 사면복권 당시 복권되면서 출마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창 386 운동권 출신 영입 경쟁 때 새천년민주당을 택하면서 입당, 서울 성동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4선의 이세기 의원을 누르고 당선되면서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다만, 임종석 자신은 의외로 전대협 의장 출신의 경력 대비해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의원은 되지 못했는데,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당선되고, 열린우리당 대변인도 했다지만, 큰 두각을 나타내거나, 당 대표를 노리는 의원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18대 총선에서는 뉴타운 열풍에 밀리면서 한나라당 김동성 후보에 밀려 낙선했고, 당 내에서 활동하면서 재기를 노렸다. 그리고 민주통합당 출범 당시 당 사무총장에 임명되면서 처음으로 비중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문제는 이 당시 임종석이 정치자금법 문제로 재판에 걸려 있었다는 점. 결국 19대 총선 직전 나온 1심 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되면서 총선 출마가 좌절되었다. 사실 출마 자체는 할 수도 있었지만, 재판 문제로 인해 공격을 받을 것 같자 결국 포기한 것. 한명숙 당시 대표가 끝까지 만류했다고 하는데 결국 그는 사퇴를 선택하고 말았다. 여기에는 사무총장으로서 공천권과 관련하여 소위 노이사 공천(친노-이대-486 위주 공천)을 주도했다는 공세도 한 몫 했다. 성동구 을 지역구는 그의 친구인 홍익표 교수에게 넘어갔고, 그는 사무총장직도 내놓게 되었다. 그의 사퇴 원인이 된 정치자금법 문제는 2심에서 무죄로 뒤집히면서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가 났다.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시장 캠프에서 활약하면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되어 2015년까지 재직하였다.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한 후, 은평구 을 출마를 선언한다. 정계의 거물인 이재오와 겨뤄서 정치적인 재기를 모색하였는데, 그만 당내 경선에서 무명의 신인이지만 은평구 내에서 기반을 착실하게 만들었던 강병원 후보에게 패하면서 출마 자체를 하지 못했다.

사실 박원순 시장 아래에서 정무부시장을 한 것으로 인해 박원순 계로 분류되었는데, 2017년 문재인 캠프의 비서실을 이끌고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삼고초려 끝에 영입을 했다고 하는데, 일부에서는 박원순 시장이 문재인 상대로 극단적인 공세를 퍼붓는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한다.

3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 여부비고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구)새천년민주당68,481 (48.4%)당선 (1위)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구 을)열린우리당36,467 (49.6%)당선 (1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성동구 을)통합민주당26,718 (46.7%)낙선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