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진

파일:/image/109/2006/08/09/200608092050391101 1.jpg
현역 시절
20101011071233247.jpeg

두산 베어스 No.76
장원진(張元鎭 / Won-jin Chang)
생년월일1969년 6월 15일
출신지인천광역시 중구
학력인천신흥초 - 상인천중 - 인천고 - 인하대
포지션외야수, 1루수
투타우투양타[1]
프로입단1992년 OB 베어스 2차 4라운드 지명
소속팀OB 베어스/두산 베어스(1992~2008)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등번호 37번
장원진(1992~2008)고창성(2009~2012)
2000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안타상
이병규(LG 트윈스)이병규(LG 트윈스)
장원진(두산 베어스)
이병규(LG 트윈스)

1 소개

바가지 안타의 달인[2]

두산 베어스의 외야수, 現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현역 시절 등번호는 37번이었다. 포지션은 좌익수-1루수, 우투양타의 스위치 히터였다. 별명은 "장샘"이었지만, 그의 불같은 성격 탓에 타 팀 팬들으로부터는 "장승질(…)"이라고 불렸다.[3]

2 선수 시절

1992년 OB 베어스에서 데뷔, 삼성 라이온즈김한수와 함께 소리없는 강자[4]로 자리잡았으며, 1995년 우승2001년 우승에 기여했다. 2000년에는 170안타를 때려내 최다안타 타이틀을 수상하기도 했다.[5]

스위치 히터로서는 박종호와 함께 가장 성공한 케이스이다. 2000년도 타격왕과 연속출루 기록을 세운 박종호가 일시적인 임팩트는 강했지만, 장원진 역시 그해 170안타로 최다안타왕을 수상했으며. 커리어 전체를 보면 장원진이 더 기복없는 안정감을 보였다. LG시절에는 스위치히터로 완성도가 떨어져 사실상 우타자에 가까웠던 박종호에 비해, 처음부터 스위치히터로 양 타석에서 모두 안정적으로 꾸준한 기록을 보였던 점에서 국내 타자 중 사실상 가장 뛰어난 스위치 히터라 해도 손색이 없다.

커다란 덩치(188cm)에도 장타력 대신 정확한 컨택 능력을 과시하며 주로 2번 타순을 맡았다. 젊었을 때는 좌익수, 나이를 먹어서는 1루수를 맡았다. 양 포지션 모두 화려하지는 않지만 준수한 수비 능력을 자랑했다. 2000년 현대와의 한국시리즈에서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며 7차전까지 시리즈를 끌고 가는 데 크게 공헌했다. 대학 동기였던 구한성의 칼럼에 따르면 권명철의 패키지로 인하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노력 하나만은 끝내줘서 마침내 권명철보다 더 성공한 야구 선수가 되었다고 한다[6]. 특히 대학교 2학년에서야 시작한 좌타자 연습이라 더욱 대단했다고. 하지만 원래 장원진은 왼손잡이였다. 야구를 시작했을 시기에는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때라 야구를 오른손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본인은 자신이 원래 왼손잡이라 그런지 좌타 적응이 조금은 빨랐던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창 20대 시절에도 노장 선배인 당시 LG의 정삼흠에게 데드볼을 맞자 마운드까지 올라와 노려보고 큰소리칠 정도로 다혈질을 자랑했다. 역시 장승질 이외에도 빈볼이라고 판단하면 선배 투수라고 해도 강하게 대응하기도 했다.

투수와 끈질긴 승부를 펼치다가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텍사스성 안타로 상대 배터리를 허탈하게 만드는 플레이가 전매특허였다. 모 팬은 이런 플레이를 두고 '방망이 깎는 장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이런 수필도 있었다 카더라. 사실은 '방망이 깎던 노인'의 패러디. 동기들이 몸집은 그렇게 크면서 비겁한 타격(...) 좀 그만하고 풀 스윙 좀 하라고 하자 '먹고 살려면 이렇게라도 해야지'라고 응수했다고.

방위 복무 선수들의 출전금지 조치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그는 방위병 제도가 폐지되자 1996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전환하여 잔여 기간 동안 복무했으며, 1997년 시즌 중 소집 해제되어 팀에 복귀했다. 이 원인 제공자는 불상수....

덕아웃에서 열정적으로 응원하기로 유명했다. 상대팀 덕아웃까지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타 팀 코칭스태프에서는 싫어하기도 했다고. 홍성흔과 나란히 앉아 있으면 덕아웃이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안경현과 대립해 팀 내 파벌을 형성했다는 루머도 있다.[7]

2008 시즌에는 선수로 등록됐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코치 역할을 했으며 이듬해 도일하여 일본프로야구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연수 코치로 일하였다.

3 지도자 시절

2009년 9월 20일 은퇴식을 치렀다. 이후 두산 베어스 전력분석원으로 재직하다 2011시즌부터 수비코치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5월 들어 팀이 침체기에 빠지자 코치진 개편으로 인해 1군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다.

4 역대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2OB 베어스2348.313153004605.375.377
19934972.264194106949.347.341
199499259.2977719242537525.432.357
1995123393.26010215295863837.377.320
1996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199797339.265908063134132.342.327
199898249.225569222018326.301.298
1999두산 베어스121426.31713515225859343.376.372
2000133527.323170
(1위)
275
(1위)
75994
(5위)
1046.433.374
2001129513.285146173553731141.359.336
2002130444.27512212313055234.322.324
2003124386.29011223154846135.394.346
2004130429.284122154
(4위)
54951549.373.356
2005123423.28612116034258451.345.361
200698198.2535080219819.323.280
20072327.18552003102.259.226
20081군 기록 없음
통산15시즌15004733.2841342193255150561258444.367.342
  1. 원래는 왼손잡이다.
  2. 바가지 안타는 텍사스히트의 별칭인데, 유독 장원진이 바가지 안타를 잘 쳐서 붙여진 별명이다.
  3. 성질 더러운 타이론 우즈를 제압한 일화가 있다.
  4. 통산 성적 중 OPS .800을 넘긴 것이 2000년 한 시즌 밖에 없어, 공격력 위주의 포지션인 사이드 외야수와 1루수로 주로 나온 선수치고는 공격력이 한참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5. 물론 이 때는 LG의 이병규(9번)와 공동으로 따냈다.
  6. 실제로 권명철이 1년 반짝으로 끝난데 비하면 크게 성공한 셈이다.
  7. 여기에 대해서 안경현은 2011년 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장원진과는 그냥 친할일이 없었을 뿐이지 갈등은 없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장원진과 안경현은 성격도 꽤 다르다. 안경현 항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