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성

609daf462fd7730421c2dc713ec8144c.jpg
KILL 라인의 중심이었던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image/003/2013/06/21/NISI20130621 0008354418 web 59 20130621211005.jpg

NC 다이노스 No.37
고창성(高昌成 / Chang-seong Ko)
생년월일1984년 12월 21일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봉천초 - 홍은중 - 선린인터넷고 - 경성대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1]
프로입단2008년 2차지명 2라운드(전체 13번, 두산)
소속팀두산 베어스(2008 ~ 2012)
NC 다이노스(2013 ~ 현재)
NC 다이노스 등번호 37번
신재영(2012)고창성(2013~ 2014)이호중(2015~)
NC 다이노스 등번호 1번
정진(2013~2014)고창성(2015)김준완 (2016~ )

1 소개

NC 다이노스의 우완 사이드암 투수.

선린인터넷고시절에는 잘 던지기는 하는데 임팩트는 약한 투수였다. 결국 유급까지 했지만 프로 지명을 받는데는 실패했고 경성대에 진학하여 에이스로 급부상한다. 당시 경희대 재학중이던 개장수 박현준과 함께 대학 야구의 사이드암 양대 산맥으로 활약하며 2008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에 지명된다. 하지만 부상으로 데뷔연도는 2009년[2].

별명은 이름에서 따 온 곱창성. 한때 고삐삐로 불리기도 했다.

2 프로 데뷔 후

2.1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image/076/2012/07/25/2012072501001968800165071.jpg

2.1.1 2009 시즌

64경기에 출장해 5승 2패 1세이브 16홀드, 2010년 시즌엔 73경기에 출장해 6승 4패 22홀드를 기록했다.

2009년 시즌 성적만을 보면 당시 신인왕으로서도 손색이 없었으나, 달랑 9표로 3위에 그치면서 2차 결선투표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전형적인 중간계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한 것. 신인왕 투표시 같은 팀의 이용찬과 팀이 겹치기도 했다. 하지만 야구인들이 주는 일구회 신인왕을 수상했다.

파일:Attachment/고창성/KILL.jpg

2009년을 호령하던 두산 불펜. 속칭 KILL 라인(고창성-임태훈-이재우-이용찬). 그러나 20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 망했어요

이름처럼 NC다이노스 감독 김경문에 의해 모두 KILL당했다.

2.1.2 2010 시즌

고창성은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5경기에 모두 등판하여 3⅓이닝 2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 2탈삼진 무실점, 1홀드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고창성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도 5경기 모두 등판하여 2⅔이닝 5피안타 1볼넷 2몸에 맞는 공 3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0.13, 2홀드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고창성은 2010년 포스트시즌 10경기 중 10경기 모두 등판하여 제대로 노예 인증을 하며 6이닝 7피안타 3볼넷 3몸에 맞는 공 5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4.50, 3홀드 1세이브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2010년의 활약에 힘입어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으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내내 덕아웃에 있었고 파키스탄에 올라와 겨우 ⅔이닝 던졌는데, 그조차도 장작놀이를 했다[3]. 그리고 그 이후 그의 등판은 없었다. 말하자면 베이징 올림픽의 한기주 포지션 이었던 셈, 그 경기가 중계가 안되는 바람에 고창성이 엔트리에 있었는지 몰랐던 야구팬들도 몇몇 있었다.추신수 군면제에 대한 이슈가 큰 탓도 있어 그러고도 금메달로 병역 면제 성공.

2.1.3 2011 시즌

전반까지는 무난한 성적을 보여줬으나, 잦은 등판, 피로누적 등으로 인해서 제구력, 구위등이 많이 하락한 편이다. 최근에는 등판 횟수도 크게 줄어들었고 방어율도 5점대 이상으로 올라갔다. 최종적으로 2011시즌 51경기 1승 4패 14홀드를 기록했으나 전년도에 비해 이닝수는 거의 ⅔수준으로 토막난데 비해 피안타 개수는 별 차이가 없고 사사구는 오히려 늘었다(…). 평균자책점도 4.44로 전년도에 비해 크게 상승.

2.1.4 2012 시즌

4월에는 진정한 폭망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4월 동안 현재 7경기에 나와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11.57(…). 더 충격적인 것은 4⅔이닝 동안 맞은 피안타가 12개고 사사구가 5개(고의사구 1개 포함)였다. WHIP가 무려 3.43에 달했고 피안타율은 .522(…). 정재훈이 드러누워 있던 상황에서 두산 입장에선 별다른 대안도 없었다는 게 더욱 안습. 김진욱 감독에 의하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제 공을 뿌리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4].

2012년 7월 5일 스캇 프록터, 김현수와 빈볼 시비가 붙었던 나지완에게 비웃음을 날리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었다. 멀쩡한 3대 스포츠신문 중 하나를 뜬금없이 지역신문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에이 설마[5] 오히려 프록터, 김현수, 나지완은 당시 사건에 관해 각자의 변명거리가 있었음에 반해 고창성은 비하의 의도가 다분하여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해당 글은 삭제되었고, 김선우와 이종욱의 중재로 나지완에게 사과를 하여 화해했으나 논란이 계속 커지자 결국 1군에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7월 6일 징계성 2군행을 당했으며 두산 선수들은 SNS 사용을 다시 한 번 제한받았다.#

2.2 NC 다이노스 시절

시즌 종료후 NC의 특별지명에 선택되어 NC로 이적하게 되었다. 이로써 1년만에 다시 김경문감독과 재회하게 되었다. 왠지 전 소속팀이 분이 분의 관계가 생각난다.

2.2.1 2013 시즌

2013년 5월 7일 한화와의 홈 경기에서 9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노성호와 교체되어 구원등판했다. 그런데 오선진에게 초구 사구를 던져 1구만에 블론세이브를 달성한 것도 모자라, 정현석에게 결승타까지 처맞는 등 순식간에 5점을 내줘 마산아재의 콜라병 투척을 유도대첩급 패전의 원흉이 되었다. 패전의 멍에는 호투했지만 승계주자를 남긴 이민호에게 덮어씌우게 됐다.

감독이 이승호와 더불어 어느정도 경험이 있는 투수이기 때문에 투수진에 나름대로 고참으로서 역할을 해주길 바랬지만, 부진하면서 고참으로서의 역할은 손민한이 하고 있는 실정. 그나마 완전히 폭망한 이승호와는 달리 간간히 등판하는 편.

시즌 이후 8000만원에서 1000만원 깎인 7000만원에 계약했다. NC에서 삭감된 선수 두명중 한명이라는 것이 안습.

2.2.2 2014 시즌

의외로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4월 5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9-6으로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해서 0.2이닝을 퍼펙트로 막아내며 시작했다.

4월 11일에 말소된 후 한 달 정도 후인 5월 7일, 그러니까 507 대첩에서 다시 복귀했다. 그러나 고창성이 등판하기 전 우천취소가 되어 이 날 고창성은 투구수 0개, 0이닝을 기록하고 등판 경기 수만 1경기 늘어났다.

5월 27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팀이 18-2로 크게 이기는 상황에서 등판했다. 7회에 홍성용의 뒤를 이어 한 타자를 잡고, 8회에 다시 올라왔는데, 이때 첫 타자 김태완을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시키더니 한화 타자들이 고창성을 맹폭하며 5실점했는데, 정작 자책점은 1점이었다.

5월 31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2.1이닝을 임창민의 주자를 분식하기는 했지만 피안타 1개로 잘 막아냈고, 팀이 고창성이 등판하는 중에 역전을 해서 이 날 고창성은 시즌 첫 승을 챙겼다. 달과 아버지를 위하여

6월 17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선발 에릭 해커에 이어 등판했다. 점수 차이가 2점차로 홀드 상황이었는데, 아웃 카운트 2개를 잡고 시즌 첫 홀드를 기록했다.

6월 20일자 기준으로 18.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이 0.98이다. 작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7월 22일 한화전에서 1이닝동안 볼넷 2개, 피홈런 1개를 허용하며 2실점하며 역전을 허용해 패전 투수가 되었고, 이 경기 이후 1군에서 말소되어 다시 1군에 오르지 못했다. 당연히 준PO 엔트리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5경기 25이닝 1승 1패 1홀드 ERA 1.80. 고창성 외에 다른 불펜들이 잘 해줘서 그런지 고창성을 왜 안쓰냐는 말은 딱히 나오지 않았다.

2.2.3 2015 시즌

패전조로 등판 중이다.
5월 19일 기준 6경기 9 2/3이닝 ERA 3.72,WHIP 1.55 탈삼진 3개 사사구 4개를 기록하고 있다.
결국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부상 때문인 듯.

3 기타

두산 시절에 '고창성의 사이드암 투수로 살아남는 법'이라는 동영상을 찍은바 있다. 동영상

2013년 4월 11일 이재학과 함께 켠김에 왕까지 164회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편에 게스트로 출연하였다. 거기서 징크스같은게 생기면 그 징크스를 한번 더해보면서 징크스를 극복하려 한다고 말해놓고 제작진이 간식으로 홈런볼 과자를 주자 이 과자를 5년째 홈런볼을 안먹고 있다고 하면서 웃음을 주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8두산 베어스53⅔00000.0002.455032112.182
2009647452116
(2위)
0.7141.95591254821160.986
2010738264022
(2위)
0.6003.62687276737331.024
20115150⅔140140.2004.44504314027251.461
20122115⅔32030.6008.6222210515151.851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13NC 다이노스2820⅔00010.0004.79270171312111.887
2014252511010.5001.802511011951.280
KBO 통산(7시즌)267271⅔16131570.5523.51256151231861221061.248
  1. 사이드암
  2. 경성대학교 야구팀에서 혹사논란까지 있을 정도로 투구이닝이 많았고 그덕분에 팔꿈치에 무리가 갔다는 설이 정설. 실제로 김기표, 장원삼 듀오가 졸업한 2006년 고창성은 대학야구 투수 중 유일하게 100이닝을 넘게 던졌다. 경성대의 특정 투수 1명(때로는 1명 추가) 줄창 돌리기 계보는 이후 이상백 - 임현준 - 임준섭 - 이민우 - 김명신으로 이어진다.
  3. 하지만 고창성은 롯데와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모든 경기에 등판했다. 연투로 인한 피로누적도 있고 사이드암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
  4. 고창성은 2012년 만우절에 자기 페이스북에서 부상드립을 친 적도 있어서, 돡갤러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5. 사실 스포츠신문은 지역에 따라 1면 기사가 종종 다르다. 같은 날에 사도 지역마다 다른 기사가 1면으로 올라와 있다. 예를 들면 대구면 삼성이 1면,광주면 기아가 1면 이렇게. 하지만 이 경우는 일간스포츠가 해당 기사를 전국 1면에 걸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