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군재물조사

군대에서(육군[1]기준) 2년에 한 번 하는 푸닥거리. 상급부대에서 어떤 부대가 재산대장상에 보유하고 있는 재산과 실제 가지고 있는 재산이 맞나를 대조하여 살펴보고 결과에 따라 후속조치를 한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나, 실상 군수 계통에 근무하는 행정병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기간. 이외의 소총수들도 귀찮기 짝이 없는 짓거리다. 또 의외로 간부들에게도 꽤나 큰 스트레스를 주는 행사.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군대에서 공식적으로 관리하는 재산목록의 가짓수는 미필(...)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전투복, 전투화, 담요, 베개, 방탄모, 수통, 소총 같은 기본적인 품목은 물론이고 위장망, 지주핀, 차량이나 장비에 들어가는 각종 수리부속, 의약품, 태극기, 취사장 부엌칼이랑 국자 등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품목이 검열의 대상이 된다.[2] 심지어 나사도 군납품은 단순히 치수별로 구분된 게 아니라 사용된 장비/부위별로 구분해놨다. 전방에 있는 부대일수록 이런 운영물자가 많다.

2. 후방이라고 해서 편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더 힘들다. 왜냐하면 써먹을 수 있는 병사는 별로 없는데, 전시 예비군이 쓰는 물자인 치장물자는 엄청난 규모이기 때문(심한 경우는 현역의 100배에 해당하는 물자가 배치되어 있기도 하다). 이걸 언제 다 세니? 하지만 치장이기 때문에 업무량은 많을 수 있어도 난이도는 적다. 치장은 수가 틀리면 안되기 때문에 훈련 전후로 관리를 철저하게 한다. 하지만 운영용이라면.......?

3. 실셈하는 정도에서 귀찮은 일이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군대에는 실셈 불일치의 법칙이 있다. 재산대장에 잡힌 재산과 실제 보유재산은 절대 맞지 않는다. 실제 재산관리를 하는 병사(...)[3]들은 자기가 근무하는 2년만 잘 넘기면 되므로, 어리버리한 신병 때나 말년병장 때는 사실상 부대재산이 관리되지 않는다. 게다가 큰 훈련이라도 뛰면 난리통에 없어지고 섞이고 생겨나는(...) 물자들은 수도 없다. 총기탄약이야 철저하게 실셈해서 맞춘다고 쳐도, 지주핀이나 위장망을 누가 신경쓰리.[4]

4. 따라서 보급병은 전군재물조사가 뜨기 전부터 열심히 재산을 맞춘다. 좀 웃긴 얘긴데 실제로 재산이 맞춰지는 경우도 꽤 있다. 제일 쉬운 것으로는 소모성 물자를 장부에 맞게 소모해 주는 작업(물론 실물이 재산보다 많을 경우다). 이외에도 창고를 열심히 뒤져서 물건을 찾아낸다든가(...) 일정이 대대별로 잡혀 있을 경우 물자를 서로서로 빌려주고 빌려오는 페이크를 쓴다든가(...) 심하게는 문서를 위조해서 억지로 재산을 맞추기도 한다. 뭔가 부족하면 부대 주면 미사용시설이나 야산을 파보자.[5] 더 심한 경우에는, 밖에서 만들어서 숫자를 채우는 경우도 있다.[6]

5. 그러나 당연히 모든 재산이 완벽히 맞춰질 리 없다(...) 정말 꼼꼼한 간부와 병사들로만 부대가 이뤄져 있지 않은 한, 살다 보면 판쵸우의 몇 장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일단 물자가 남는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다. 모자라는 부대에 보내서 불우이웃을 도울 수도 있고, 정 남아돌면 상급부대에 반납하면 되니까. 하지만 절대로 반납 안한다.. 부대단위로 창고에 은밀하게 짱박는게 군대다. 괜히 제2차 세계대전때 만들어진 수통이 군대에 남아있는게 아니다.[7]

6. 그런데 모자라면 된다. 운 좋게 옆부대에서 그 물건이 좀 남으면 도움을 좀 받을 수 있지만, 그게 불가능하면 이른바 손망실이라고 해서, 물건을 잃어버린 것으로 처리하고 그 관리소홀 책임을 지휘관이나 재산 담당관에게 묻는다. 물론 군 재산은 손망실 대비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므로, 대박 손망실을 맞지 않는 한 간부가 자기 돈 털어서 책임지는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웬만한 군수물자는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 규모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 그리고 보험의 한도액도 그리 많지 않다. 재수없으면 담당간부가 돈을 물어내는 일도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손망실 기록이 인사기록에 남으므로 당하는 입장에서는 좋을 리 없다. 특히 장기지원한 위관급 장교라면.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사 기록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단기 복무 장교나 부사관 앞으로 손망실 책임을 몽땅 몰아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7. 그리하여 군수장교와 중대장은 애꿎은 보급계를 갈구기 시작하는데(...) 갈궈도 소용없어서 안갈구는데도 많고 같이 철야하면서 재산대장 정리하고 보고서 작성한다. 1종부터 10종까지 모든 품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노라면 그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8]

대략 이런 패턴이므로 병사, 특히 행정병 입장에서는 무지 짜증나는 이벤트다. 간부도 물자 빌려오고 빌려주고 하면서 짜증이 배가 된다.[9] 다만 2년에 한 번이기 때문에 재수 좋으면 이걸 한 번도 안 하고 전역하는 케이스도 있으며, 그럴 경우 짜증은 그 부사수이병에게 전가된다는 옛날얘기.

최악의 경우는 이 푸닥거리에 더해 전투장비지휘검열이 겹칠 때이다. 이땐 수량은 수량대로 맞추고 상태도 최상으로 만들어 놔야 해서 작업량이 몇 배로 증가한다.

그리고 2011년부터 1년에 한번씩 전군재물조사를 실시한다고 한다고 했는데 사실 11년은 아니고 12년부터 매년 하는 것으로 이미 공문은 하달된 거라고 한다. 야 신난다!

공군의 경우에는 수교조사가 전군재물조사와 비슷한 개념인데 1년에 2회 실시된다.
검사품목은 기본적으로 전투장구류(탄띠,방탄헬멧,대검,대검집,방독면,탄입대 등),침구류, 그 외 군수물자의 수량을 점검한다.

해군의 경우 추가바람

  1. 당연히 해군이나 공군도 한다. 여기서는 육군을 기준으로 서술했다
  2.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민간에서도 구입 가능한 시장성 소모품이 아닌 이상 사소한 물건이라도 어지간하면 규정에 보유량이 정해저 있다.
  3. 물론 원래 재산관리의 책임은 간부에게 있다. 다만 그 업무를 직접 본인이 관리하는 간부는 단언컨대 전군의 1%도 되지 않는다.
  4. 모부대는 부지가 넓어서 타부대가 혹한기 뛰고 간 적이있는데 여기서 주워놓은 지주핀과 공구로 손실량을 채우고 여유분까지 챙겼다. 혹한기 뛰고간 부대는...
  5. 그러나 군 재산관리가 점점 전산화되고 체계를 잡아 가면서 이러한 가라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6. 대검(대검은 단순 손망실로 처리하기에는 난감한 품목이다. 일단 무기다!)이 부족해서, 청계천에 가서 만들어 온 경우도 있다.
  7. 나중에 언젠가는 없어지는 일이 생길테니까. 짱박힌 물건들은 은근히 내비치면서 물물교환을 하기도 한다. 보급병은 보통 나중에 어떻게 되든 알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짬되는 부사관은 그 지역 내에서 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경을 써줘야한다.
  8. 군대처럼 계급체계가 철저한 곳에서 지휘관의 결재를 받아야한다는 점이 매우 크다. 단순히 소속 부대 지휘관에서 끝나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결재체계가 담당관중대장대대장연대장사단장(with 군수처장)까지 가는 게 통상이고 군수사령부와도 연결이 되기 때문에... 중위소장(계급)에서부터 내리갈굼을 당하는 거라 정신이 아득해져서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도 정신줄 놓는 경우가 있다. 병장이등병 갈구는 것과는 먹이사슬 계단 자체가 다르다!
  9. 이렇게 오가면서 물건이 사라지거나, 보기 좋은 A급 빌려줬더니 폐기 직전의 C급이 돌아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