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통제권

1 개요

전통제을 줄여서 전작권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Wartime Operational Control; OPCON.
말 그대로 전시에 군 작전을 통제[1]할 권리를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이 가지는 통수권의 차하위, 합동참모의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위임받아 행사하는 지휘권의 하위 개념이다. 전쟁 중일 때만 적용되는 개념이며, 평상시의 작전권은 평시작전통제권이라 하며 전시작전통제권과는 별개이다.

2 상세

한국은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전쟁 발발후 한달이 조금 안되던 1950년 7월 14일 한국군의 지휘권을 맥아더 극동사령관 겸 UN군 사령관에 위임하였고 7월 16일에 이를 확인하여 한국전쟁때 작전지휘를 함으로서 UN군 사령관이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었다.[2] UN군 사령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을 겸임했으며, 이때는 한국군이 지휘계통에 개입할 여지가 없어서 정말 작통권을 미군이 행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1979년 한미연합사령부(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CFC)가 창설되면서 이쪽에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부터 한국군이 본격적으로 지휘계통에 개입이 가능해졌다. 한미연합부사령관 겸 지상구성군 사령관이 한국군 대장에 참모진의 절반이 한국군 출신이니 당연한 일.

이후 노태우 정권(노태우의 대통령 선거 공약중 하나가 작전권 회수였다) 때 합의를 거쳐 김영삼 정권 때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로 환수된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작전통제권환수에 반대하는 군고위 장성 압박과 설득을 병행하면서 미국과의 2년이 넘는 협상끝에 환수를 확정지었다. [3] 그러나 군장성들의 반발과 합참이 과연 작전지휘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절충안으로 평시작전권을 일단 1993년에 환수하고,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서 1995년에 전시 작전권까지 완전 환수한다는 일정이 합의되었다. 그러나 1993년 평시작전권 환수이후 북의 핵개발문제가 본격화되면서 1994년 전쟁위기설이 나오자 1995년 전시 작전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한미간에 합의하였다. 그리고 이 상태 그대로 노무현 정부까지 흘러오게 된다.

이 때 김영삼 정부에서는 이를 자주국방의 성과로 표현했고, 당시 언론들도 '다음 과제는 전시 작전권 회수라는 말로 김영삼 정부를 옹호했다.[4] 때문에 김영삼이 노무현 정부시절 전시 전작권 환수를 비난하고 나서자 그 내용의 시비를 떠나서 치매 또는 기억상실증 소리를 들었다. 전시작전통제권은 노무현 정부 당시 2012년 환수로 합의됐으나 이명박 정부 시기에 안보공백 우려로 인해 2015년 12월로 미뤄지게 되었다. 즉, 그전에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한국의 작전은 한미연합사령부가 지휘하게 된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4년 10월에 미군기지 현행 유지와 함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2020년으로 연기되었다만 실제 서명에는 기한이 없는 무기한 연기로 남게 되었다.

전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된 이후에도 전시 대한민국 해군, 공군의 전시작전권은 계속 미군이 갖게 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기존 연합지휘체계에서는 한국군과 미군(주한미군, 증원군 포함)의 육해공군별 연합 구성군 사령관을 병력규모 지분의 기준으로 정하고 있는데, 해-공군 사령관은 미군측이 맡고 있다는 점을 잘못 이해한 듯.

3 각국 전시작전통제권들과의 차이

3.1 NATO

NATO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작전통제 환경을 가지고있으나 결정적으로 다른점이 존재한다. 대다수 NATO 회원국의 경우는 회원국 정부가 전시 상황시 작전통제권을 넘겨주며[5] 승인한 부대만 전시작전통제권을 유럽동맹군 총사령관(Supreme Allied Commander Europe; SACEUR)이 지휘하게 된다 참고로 SACEUR는 언제나 미군 대장이며 이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전시 작전통제 환경을 가진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나토군에 차출된 군병력은 각국의 군병력 약 10~25%만이 나토군에 배속되나 냉전시절 최전선이었던 독일군은 한국군과 동일하게 병력의 90%를 나토에 배속해서 운영했다, 이는 전체 유럽군은 예비전력적 성격이 강했던 것과 비해 독일군은 유럽전선의 주전선이자 최전방으로서의 입장[6]이라 개전시에 바로 NATO의 지휘통제가 필요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북한을 상대로는 사실상 최전선인 한국군은 연합사에게 현실적으로 나토처럼 군병력을 10%정도만 배속시킬수 없고 독일의 사례와 동일한 상황이 적용되는 이유라고 하겠다. 그 때문에 제2작전사령부수도방위사령부 등을 제외하고 제1야전군사령부·제3야전군사령부등이 한미연합사에 모두 배속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3.2 일본 자위대

일본주일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전시에는 일본정부가 자위대를 지휘한다. 자위대의 법적 직위상의 일본 국내적으로도 연합체제를 구성하는데 있어서의 통합사령부는 어렵긴 했다. 하지만 2005년 이후부터 일본에서 꾸준히 미일연합사령부 즉 한미연합사령부와 같은 형태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고 있다.[7]
2015년 9월 19일, 집단자위권 개정으로 전시와 평시 중간지대인 그레이존에서도 타국으로 제한적인 군사력 투사가 가능해 졌다.

자위권 개정의 주요한 부분은 " 동맹이 공격을 당했을때 " 라는 부분이다. 즉, 다른 동맹국과 함께 제3국에 무력투가 가능해진 것으로 일본 스스로 전쟁을 선포하고 혼자서 공격해 들어 갈 수는 없다.

3.3 호주군

호주군 역시 연합체제는 미국과 갖추어져 있으나 상당히 느슨한 편이다. 이는 호주 주변에 적대적 위협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이것이 기인되었기 때문에 냉전시기부터 지금까지 통합사령부 형태의 군령권 행사가 가능한 기구는 두지 않고 국방장관회담과 태평양이사회-특별이사회와 같은 상부구조의 연락체계 안에서 협력을 하고 있다. 물론 군사적으로는 현지의 ISAF 사령부와 같은 미국주도의 다국적군 사령부의 작전통제지휘를 받는 형태를 취한다.

실제로 베트남 전쟁 당시에도 호주군은 6천명까지 파병되었을때에도 독자적인 사령부가 아니라 MACV사령부의 지휘통제를 받았고 그 이후 이라크-아프간등에서도 마찬가지형태였다.

4 평가

1978년의 한미연합사 창설 이후,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작전통제권이 미군에 있었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 할 것이다. 한미연합사에 있다는 것이 사실에 가까운 표현.

한미연합사의 존재 때문에 특히 주사파 NL을 중심으로 한 반미 진영 일각에서는 '한국은 군사적으로 미국에 예속되어 있으며, 미국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군사상의 결정도 못하는 식민지'라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8] 하지만 한미연합사에 의한 전시작전통제권의 행사는 어디까지나 미국이 한국과 함께 싸우는 연합작전을 전제로 한 것이다. 미국: 그러니까 전쟁할 때 팍팍 도와줄 때니까 지휘는 나한테 맡겨 다시 말해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아무런 군사적인 도움도 받지 못하는 분쟁[9]에 대해서까지, 미국이 한국의 군사력 동원을 막거나 간섭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군의 일부 부대들 가운데는 전평시를 막론하고 한미연합사의 관할 밖에서, 항상 한국이 지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육군 특수전사령부, 육군 제2작전사령부가 그렇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만약 한국이 전쟁 수행 과정에서 미국과의 견해차이가 심해진다면, 당장 한국군 병력의 대부분을 한미연합사의 지휘 아래에서 철수시키고 직접 지휘권을 행사하면 그만이다. 심지어는 6.25 전쟁 당시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측에 넘겨준 장본인격인 이승만 대통령도 전쟁 중에 "한국군을 UN군사령부에서 철수시켜 독자적으로 북진하겠다"는 의사를 간혹 펼치기도 했다.[10] 그 이전에는 38선을 넘어 북진하도록 이승만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북진 명령에 결재를 하여 국군 단독으로 북진을 하게 되었으며 맥아더는 하루나 이틀 정도 뒤에 UN군을 북진시켜 사실상 눈감아주었다.[11]

전시작전통제권이 없다면, 아니 작전통제권이 없는 상황에서도 이승만의 사례에서 보듯이 한국군은 마음대로 북진을 선포하고 북한을 공격하며 자기 마음대로 전쟁을 벌일 수도 있었고 이는 이미 여러 전례에서 드러난 것이다. 진짜 작전통제권을 포함한 군통수권을 아예 뺏긴 수준은 동유럽의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속한 소련의 동유럽의 공산권 군대들의 통제와 지휘체계 확립에서 들어난다. 실제로 이 때문에 냉전해빙기때 동유럽은 군대를 통한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지도 못했을뿐만 아니라 특히 동독의 경우에는 아예 어떠한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한국군은 쿠데타를 위해서 군을 움직인 사례가 있는데 이는 분명히 전시/평시 작전통제권을 위반한 경우이다. 북한과 대치 중인 전방 사단을 빼돌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데, 이러한 사례는 원칙적으로는 월권이지만 사후에 정치적으로 무마된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미국이 무마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뜻도 되는데, 1987년에도 민주화 시위에 맞선 친위 쿠데타가 시도됐지만 미국이 이러한 시도를 작전통제권 행사를 통해 막아내고 시위대 편을 들었기에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12] 연합사에 작전통제권이 없다면 한국군은 자의적으로 군을 움직이는데 그 어떤 법적 제약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민주화는 크게 더뎌졌을 것이다. 작전통제권은 비록 그 영향력에 제한적이기는 했으나 한국군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제약하여 민주화에 공헌한 점이 있는 것이다. NL에서는 작전통제권을 놓고 '주권의 제약'이라는 점만 부각하고 있으나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주권을 사실상 행사하는 것이 '군사독재정권'이라면? 혹은 국민이 뽑긴 뽑았는데 그 국민들이 극단적인 포퓰리즘과 이기주의에 빠져 T-4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수준의 막장이라면 작전통제권이 그나마 이성적인 미국에 의하여 제약되는 것이 나았을까, 제약이 없는게 더 나았을까. 작전통제권이 군사독재정권에게 오롯이 있었다면 대한민국에서 무하마르 알 카다피, 사담 후세인 같은 최악의 학살 사례 혹은 국민들이 주도하는 민주적으로 이뤄지는 집단적인 악행이 나타나지 않았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5 전작권에 대한 의견

틀:군관련

  • 한국군의 전작권 단독행사는 한미연합사의 존재 자체가 전작권의 반분을 의미하므로, 곧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본 의견들에서는 한국군의 전작권 단독행사 찬성 의견을 연합사 해체 찬성 의견과 마찬가지라고 판단합니다.

5.1 전작권 단독행사 반대

전작권 단독행사에 반대하는 의견은 다음과 같다.

1. 전작권 단독행사(= 한미연합사 해체)를 하더라도 동맹 관계는 유지되니 단독행사를 해도 상관 없다?

물론 전작권 단독행사 시에도 동맹은 유지되지만, 대신 연합사라는 효율적인 체제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군이 전작권을 단독행사한다는 것에만 중점을 두지만, 한미연합사령부에 한국군과 미군이 전작권을 반분, 이양하여 연합군을 통합지휘하고 있는 현 체제를 볼때, 한국군의 전작권 단독행사는 곧 미군 역시 전작권을 단독으로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서, 전시에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한반도에 군사력을 행사하게 될 두 군대가 통합된 지휘체계를 거치지 않고 이원화되어 따로따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한미연합사라는 일원화된 조직 예하에 있는 기존 체제보다 긴밀하지 못한 연합작전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을 내포하며, 이런 한미연합사 해체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며, 기존 체제보다 군사적으로 분명히 비효율적인 독립적인 체제를 원한다는 것 자체가 한미동맹의 긴밀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므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약화시키겠다는 정치적 메세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는 2006년 즈음 미국 행정부 동아시아 전문가들의 의견에서도 그 여파를 찾아볼 수 있다.

동맹 균열에는 전시작전권 이양 논란도 컸다.

"전시작전권이 이양되면 주한미군의 전력차질 우려가 큰 만큼 이양시기를 충분히 늦춰야 한다.이양 뒤 주한미군 추가감축도 가능성이 있는데 그래선 안된다.한국에서 새 정권이 들어서면 전작권 이양 재협상이 가능할 것이다."

원본링크

다시 말해서, 군사적으로 보나 정치적으로 보나 비효율적인 체제를 대체 왜 해야 하나? 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2. (전작권을 단독행사하면 필연적으로 두게 될) 연락장교단으로는 불충분하다! 상설적인 연합사령부가 필요하다. [13]

현대전은 속전속결

자 그러면 왜 그걸 전쟁이 벌어지면 그때 만들면 될 일이지, 왜 평시부터 이렇게 호들갑을 떠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현대전은 예전과는 달라서 속도의 문제가 있습니다. 걸프전을 해보니까 이런 문제가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옛날 우리 6.25 때는 40일 전쟁계획입니다. 소련군이 만들어주었던 남침 계획은 40일 계획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말도 있었고 또 전차도 있었고 장갑차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전차 수도 그저 한 200여대, 그런데 지금은 수천 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북한의 계획을 내가 보지 못해서 모르지마는, 북한의 능력으로 볼 때 아마 일주일 내외 작전으로 계획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6.25 때도 김일성스탈린에게 가서 전쟁을 일으키는 조건으로 ‘미군이 개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내겠다’란 목표를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이야기했던 기록이 소련 쪽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이 계획하고 있는 남침, 즉 무력으로 전쟁을 한다면 그렇게 40일 계획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미군이 개입하기 전에 정말 되도록 빨리 전쟁을 끝내려 할 것입니다.

준비된 전투력이 긴요

이런 상황에서 준비된 전투력하고 준비 안 된 전투력은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다가 미군을 한 50만 갖다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경비가 너무 많이 듭니다. 해서 소수의 미군을 갖다 놓고 그 대신에 무엇을 만들어 놨냐 하면 연합지휘기구를 만들어놨습니다. 이 연합지휘기구가 평시에 가만히 있다가 사태가 탁 벌어지면 즉각 가동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 상비군의 중요성이, 또 준비된 사령부가, 그리고 훈련되고 준비된 사령부가 현대전에서 긴요하기 때문에, 연합사가 필요한 겁니다.

연락장교단으로는 불충분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미군이 나가진 않겠다고 하니까 연합사를 없애고 연락장교단을 갖다가 만들어놓으면 되지 않느냐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럼 거기 있는 그 사람들, 미군연락장교단에 몇 사람 있는 사람들이 작전계획을 만들까요? 안 만들 거라는 겁니다. 또 그러면 정보판단을 거기서 하느냐 그런 것 거기서 안할 거라는 겁니다.
그럼 누가 할까요? 우리 한국군만 앉아서 한국군만 가지고 싸움한다는 생각으로 그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까, 한미연합된 것, 한미연합작전을 우리 합참의장이 만들 수 없습니다. 한미연합정보판단을 우리 합참에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평시부터 늘 동등하게 한자리에 앉아서 한미연합정보판단, 한미연합작전계획, 한미연합훈련을 하고 있어야, 이게 유사시에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이렇게 유사시에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만 억제력이 됩니다.

정리: 상설연합군사령부의 가치

그래서 상설 연합군사령부가 필요하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이것을 항목별로 이야기하자면, 첫 번째, 유사시 미군을 쉽게 증원하기 위한 장치이다. 두 번째, 항시 대비하고 있는 개념이다. 세 번째, 이게 강력한 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로는 미군이 안 와있지만은 강력한 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다. 네 번째, 한미간의 아주 원활한 팀워크를 준비하는 장치이다. 이런 뜻에서 연합사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미국 역시 정치외교적 리스크를 덜기 위해서 한국의 전작권 환수를 원한다?[14]

Q)일각에서는 미 행정부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군 재배치 작업을 진행중에 있으며, 주한미군 역시 이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만큼 '작전통제권 이양'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며, 이에 대한 찬반 보다는 어떻게 이양받을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박용옥) 그것은 말 장난에 불과합니다. 미군 재배치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맞추어 상시적으로 이루어져온 것이며, 이를 '작전통제권 이양'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기본적으로 미 행정부는 전시 작전통제권을 항구적으로 보유할 의사를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카터 행정부 당시인 1970년대 중반과 클린턴 행정부 당시인 1990년대 중반에도 주한미군 감축 및 작전통제권 이양을 추진한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은 1989년부터 동아시아주둔 미군의 장래에 대한 검토를 본격적으로 수행하여 주한미군 3단계 철수계획을 수립하고 이와 함께 한미연합사 체제의 개편도 구상했었습니다. 당시 계획에 따라 1단계(1990~92)로 주한미군 7,000명이 감축되었으나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연합사 해체, 사실상의 주한미군 전면 철수 등 2단계(1993~95)와 3단계(1996년 이후) 로드맵은 북핵 위기로 인해 그 실행이 전면 유보되었습니다.

그 대신 1990~94년 사이에 한미 양 군사당국 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1993년 3월 군사정전위원회 대표에 한국군 장성 임명, 같은 해 10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책임 한국군 담당, 1992년 7월 한미 야전군사령부(CFA) 해체, 같은 해 12월 지상구성군사령부 설치 및 한국군 장성 사령관 보임, 그리고 1994년 12월 평시 작전통제권 이양 등 여러 조치들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당시의 상황이 지금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미 행정부의 주한미군 감축 로드맵이 한국정부와 긴밀한 협의 하에 추진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1994년까지의 한반도 안보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본 결과 로드맵 이행이 어렵다고 판단, 2단계와 3단계 계획 자체를 전면 유보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노태우 정부 당시 한미 양국은 한반도 안보위협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일치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평시 작전통제권 이양을 비롯한 제반 조치들이 매우 원만하게 처리되었던 것입니다....(후략)

원본 링크 [15]

또한 위의 의견에 덧붙여서, 설령 미군의 이동과 감축 자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시기 및 기지이동/감축규모는 충분히 협상이 가능한 성질의 것이었고 그것을 이유로 전작권을 단독행사해야할 필요는 없었다 다시 말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라는 것. 게다가 전작권 단독행사를 먼저 주장한 쪽은 명백히 미국이 아닌 참여정부 쪽이였다. 참여정부 요인들의 전작권 환수 발언록

4. 지나친 미군에의 의존을 벗어나고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키우기 위해 전작권을 회수해야한다?

이 주장은 지나치게 뛰어난 미군의 존재가 한국군의 작전능력 배양을 방해하는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혹은 지나치게 미군에 의존하는 경향[16]), 위와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그 부작용은 감내하고 작전권을 단독행사해야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굳이 한미연합사령부의 해체 없이도 달성 가능한 목표를 근거로 한미연합사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군의 작전능력이 떨어진다면 한국군의 작전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정상적인 군의 발전 방향이지, 정치, 군사적 리스크를 감내하는 한미연합사령부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것이다.

5.2 전작권 단독행사 찬성

5.2.1 단독행사 연기 반대

반대로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연기에 반대하는 쪽은, 전작권을 회수하더라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만약의 경우, 미국의 참전은 국제 조약상 당연히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애초에 한미상호조약과 전시작전통제권은 엄연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전작권 반환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 북한이 이를 요구한다고 생각하거나[17] 미국은 이를 돌려주려 애쓰려는 이유 때문에 행여 한국측의 일방적인 손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데 그것은 오해다. 엄밀히 말하자면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전시작전통제권의 반환이 아니라 한반도 내 미군의 전면철수이고, 미국이 전작권을 한국측에 반환하려 애쓰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리스크 때문이다.

전작권이 미국이 있는 경우에는 다른 나라와의 마찰로 인해 불가피하게 전면전의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군사적 보복을 해야할 경우, 연합사령부를 통하여 한미간의 협의를 거쳐 대응하여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대응하건 미국은 반드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즉, 보복을 하게 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면 보복을 당한 국가는 그것을 미국의 공격이라 비난할 명분이 되고, 반대로 군사적 대응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 동맹국(한국) 내에서 미국에 대한 비난이 높아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미국은 전작권을 한국에 돌려줌으로써 정치 외교적 리스크를 덜고, 한국은 한국대로 해당 도발국에 대하여 필요한 만큼의 확실한 실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는 주장이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제기된 바 있는데, 이 주장은 당시 국방부 장관 김태영이 공식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은 자위권보다 하위에 있는 개념이며 한국군 단독으로 보복작전이 가능하다고 국회 질의에서 답변했으나, 연평도 포격 사태 당시 연합사 맥도널드 정보작전 부장 왈, “내가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다. 이라크의 신생 군대도 자기 목숨이 걸린 상황이 되면 스스로 판단한다. 그런데 어제 합참에서 뭘 해도 되느냐는 전화가 매 시간, 매 분마다 수도 없이 왔다. 어떻게 한국군이 이라크보다 못하단 말인가?” 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국방부 장관의 답변의 신뢰도는 하늘나라로...짤렸어요[18]

또한 한국이 북한에 비하여 군사적으로 충분히 우위에 있지 못하던 1980년대까지는 전작권이 미국에 있는 것이 더 합리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2010년 현재, 한국이 북한에게 압도적 우위에 있는 상황에서는 이로 인한 이득보다 손해가 더 막대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 확실한 우위에 있는 지금으로서는 작계 5027의 삭제로 인하여 전시 증원될 미군의 지상군의 투입이 늦춰진다 하더라도[19] 한국군은 그 증원군이 올 때까지 충분히 막아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전작권 단독행사를 주장한다.

또 참여정부 당시 전작권 환수에 621조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전작권 환수에 모두 투자하는 비용이 아니라 2020년까지 15년간 국방비의 총합이다. 전작권 환수로 인한 국방비 추가는 없다고 국방부가 밝힌 바 있었다. 비용은 발생했는데 투자는 없다니 [1]

5.2.2 단독행사 연기 찬성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연기에 찬성하는 쪽은, 기본적인 틀은 연기 반대측과 같으나 그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전작권을 반분하는 현 연합사 체제에서, 미군이 한국군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순 있어도, 내정 간섭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기를 강매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최대한 준비가 갖추어져 한국군이 온전하게 작전능력을 배양할 때까지는 연기해야한다는 것, 이들의 의견은 2012년은 너무 이른 시점에서 반환이라 한국군이 제대로 된 준비를 하기에는 능력상이나 예산상의 문제로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한미연합사의 해체를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로 한미 상호 방위조약의 명시조항을 구체적으로 개정해야 하며, 둘째로 서로 중국 북으로 북한, 러시아 남으로 일본이 있는 상황에서 최소한 타국을 제압할 수 없어도 "너희들이 우릴 죽일 순 있겠지만 너희들도 그냥은 못 할 거다." 라는 억지력이 가능한 군사력이 있어야 하며, 셋째로 주한미군에 크게 의존하던 군사정보력을 크게 확충해야 한다.

6 국방부의 공식 입장

국방부에서는 한국군이 '능력부족'을 이유로 전작권 환수를 미루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 예정대로 2012년에 환수해도 문제가 없으며 2015년 말이 되면 국군의 정보능력, 합동화력운용체계, 정밀타격능력 등 핵심전력이 2012년보다 상당부분 더 구비돼 전작권 전환이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20] 발끈(?)하며 공식입장을 표명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전작권 전환 절차가 예정대로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2015년 이후 더 이상의 전작권 이양 연기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결국 구라였지만

이렇게 강경한 입장을 보이던 한국이 미국에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15년 이후로 재연기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싶다는 의향을 전달했다는데, 미국은 당초 계획대로 2015년 전작권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좀 가져가라고 아오, 북한의 핵무장 위협 증대를 명분으로 추가적인 준비 시간이 요구된다는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일단 2013년 10월에 개최된 연례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는 "좀 더 의논해보자"는 정도로 이야기 되었다.

결국 2014년 4월 25일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기간중에 전작권 재검토 하기로 합의하면서, 2015년 12월로 계획되었던 전환 시기의 재연기가 기정 사실화되었다.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군의 독자적인 대북 억지 전력을 확보하는 시기가 빨라야 2020년 초로 예상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약 10년 동안은 한미 연합사령부로 대표되는 현재의 전작권 행사 체계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

2014년 10월 23일의 한미 SCM에서 전작권 전환의 재연기가 공식 확정되었다. '시기'보다 '조건'에 기반을 둔다는 취지에 따라 전환 시기는 명시되지 않았고, 이후 양국 정상 차원에서 전환 시기를 결정한다고 발표했다.[21] 국방부 보도자료. SCM 직후 한민구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2020년대 중반을 목표시기로 제시했지만[22], 전작권 전환을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왠지 듀크 뉴켐 포에버가 되어가는 느낌

이에 대해 북한은 '반민족범죄'라며 맹렬하게 비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추악한 반민족적 범죄행위'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박근혜 패당이 최근 미국 상전에게 애걸해 전작권 전환을 재연기하도록 하는 반민족범죄를 감행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북한 입장에서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행해온 국지적 도발에 대한 한국군의 무력 대응을 막아왔다는 점을 들어 왜 북한에게 이로운(...) 모순? 전작권 반환 연기를 북한이 악을 쓰고 비난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23]
  1. 지휘와 통제를 막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휘는 통제와 처벌할 수 있는 통제의 상위권한이다. 현재의 연합사는 각국 국방부에 처벌 권고를 할 수 있을뿐.
  2. 작통권을 넘긴 과정이 날림이라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군 수뇌부들의 의견을 묻기는 했으나 비공식적인 자리였고 결국 이승만의 편지 한 통으로 작통권이 이양되었다.
  3. 당시 합참에서 이 작업을 진두지휘한 실무자가 임동원 중장이었다. 훗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한다.
  4. 다만 조선일보는 그 당시에도 안보공백우려, 전쟁억지력 약화 등의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김영삼 정권과 조선일보의 관계도 이때부터 금이 가게 된다.
  5. 넘겨준다는 라는 표현은 상당히 잘못된 표현으로 봐도 된다. 내것을 남에게 주고 나는 없다는 개념이 아닌 너도 할 수 있다라는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6.25때 이승만의 국군을 지휘한 경우. 단지 통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연합사에 통제권한을 주고 또한 자국병력에 대한 지휘를 하지 않는 상태라고 봐야 한다.
  6. 실제 냉전말까지 독일에는 미군-영국군-프랑스군-네덜란드군등의 독일 뒤의국가들의 지상전력과 항공전력이 포진해있었다. 이들은 독일통일과 냉전의 종식으로 미군을 제외하고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해소되었다.
  7. 2015년에 다시 이 언급이 불거지는걸 보면 미일동맹의 밀월에 의한 역할론때문인지도 모른다.사실 이 부분은 한반도에 미 8군 사령부가 있고 동아시아와 태평양을 관할하는데 태평양사령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동북아 관할에만 이미 4성 지휘관이 2명이나 있는 점이 감안된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행정부때한미갈등으로 슬슬빠지려고 했을때 미군이 8군 사령부를 일본으로 철수하려고 했던 것도 이러한 요건 때문이기도 했다.
  8. 주한미군의 존재는 주사파NL의 소위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의 핵심근거이다. 이때문에 이들은 주한미군철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를 진보진영으로 표현하지만, 1980~90년대 주사파NL 계열을 제외하면 주한미군을 근거로 해서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보는 진보/좌파 그룹은 없다. PD계열이나 1990년대 이후 개량화된 시민운동 계열은 한국을 대체로 미국의 강한 영향력을 받고 있지만, 상당한 독자적 기반을 갖춘 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애초에 미국 영향 안 받는 나라가 어디있냐는 것도 이들의 의견 중 하나.
  9. 일본과의 독도 분쟁이나 한미동맹의 투사 대상과 무관한 제3국과의 전쟁.
  10. 다만 이건 실제로 그러겠다는 뜻보다는 휴전 협상에 대한 불만,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정치적인 제스처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물론 일단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한 말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11. 이 때 국군 수뇌부에게 '왜 38선을 안 넘나'라면서 '줬을때도 우리가 갖다줬으니 받을때도 우리가 받아올거요. 국군은 즉각 북진하시오'라 덧붙이고 바로 북진 명령서를 결재해줬다. 역시 독불장군.
  12. 평시 작전통제권을 돌려준 건 1994년의 일이다.
  13. 본 주장은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김재창 4성장군의 주장을 인용합니다.
  14. 본 주장은 1999~2000년까지 국방부 차관을 역임한 박용옥 한림국제대학원 부총장의 의견을 인용합니다.
  15. 추가로, 박용옥 전 총장의 주장 후반부 내용을 보면 '전작권 환수를 해도 한미동맹 관계는 굳건히 유지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등장하니 전작권 단독행사 반대론에 있는 위키러들은 이 링크 내용을 끝까지 정독하는 것을 추천한다.
  16. 하지만 한국군이 미군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의견은 한국군의 국방비와 전력을 보았을때 별로 설득력이 없는 의견이라 할 수 있겠다. 군 규모 67만을 유지하고, 한 해 국방비에 38조원을 투자하며 연간 국방비 증가가 1조원이 넘는 국가가 타국군에 (마치 6.25 이전 국군과, 베트남전 당시 남베트남군처럼)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자체적인 국방력을 유지, 증대시키면서도 지옥과 같은 주변국의 안보 위협에 대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단기간 내에 얻기 힘든 핵우산과 전자전 등의 능력을 미군에 아웃 소싱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좋을듯)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의견일 것이다.
  17. 최근 전작권 전환 재연기에 대해 북한이 '반민족범죄'라며 맹비난한 것을 보면 북한이 전작권 반환을 원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18. 오래된 이야기지만, 1970년 방송선 납북사태때 우리군 전투기가 방송선을 끌고 올라가는 북한군 함정을 발견하고도 경고사격 조차 못하였다. 평시작전권마저 UN군(=주한미군)에 있던 시절 확전우려로 인하여 주한미군 항공통제본부에서 발포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 본래 이런 경우에도 자위권 발동이 가능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선 스위치 끄고 켜듯이 순식간에 적성선포 및 자위권 발동이 된다고 볼 수 없다. [2]
  19. 이미 짜여있는 작전을 바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국회의 동의를 거치고 새로 작전 수립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늦어지는 것을 말한다.
  20. 그러나 여전히 주한미군 10대 임무조차도 완벽하게 한국군 스스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2015년 현재조차도.... 사실 예전 연합사가 가지고 있는 정보력, 지휘역량, 전력지수를 한국군 독자적으로 대체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21. 그대신 전작권 전환의 핵심 조건으로 알려진 한국군의 독자적인 전력 확보(즉, 킬체인KAMD)를 2020년대 중반까지 추진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22. 본래는 킬체인, KAMD 구축의 목표 시기인 2020년대 초로 제시되었는데, 예산 부족이나 전력화 초기의 운용능력 미숙의 가능성이 있고, 같은 시기까지 북한이 핵무장을 고수할 경우, 그에 따른 추가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
  23. 북한의 이런 대남비방선전은 단순한 반미사상 선동의 일환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