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이름정몽규(鄭夢奎)
출생1962년 1월 14일
본관하동 정씨
가족아버지 故 정세영의 1남 2녀 중 둘째
학력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직업기업인
대한축구협회 회장
조중연(51대)정몽규(52대~ 현직)53대

목차

1 소개

현대산업개발 회장, K리그 한국프로축구연맹 前 총재, 현 대한축구협회 회장, 동아시아 축구 연맹 부회장,아시아 축구 연맹(AFC) 부회장, 부산 아이파크[1] 구단주.

현대그룹 정씨 일가의 일원으로, 아버지는 故 정세영 전 현대자동차, 현대산업개발 회장. 47~50대 대한축구협회 정몽준 前 회장의 사촌동생이기도 하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에 유학하여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1988년 현대자동차 대리로 입사하여 1991년 상무, 1996년부터 1998년까지는 회장을 지냈다. 즉,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현대 호랑이의 구단주이기도 했다. 덕분에 K리그에서 3개팀의 구단주를 해본 유일한 인물이다.

2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2011년 곽정환 前 총재가 자진사퇴한 K리그 연맹 수장자리에 오르자, 많은 이들이 불신의 눈초리를 보냈다. 총재직에 오르자마자 터진 승부조작 사태 뒷처리를 잘 수습했고, 축빠들의 소망이자 수십년간 떡밥이었던 K리그/승강제를 구축하고[2] 실행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관중수 실집계, 미디어 노출 노력, 영업일수 확대 등 개혁 드라이브를 계속했고 이로 인해 물론 워낙 전임자 곽정환이 개판쳐놓은 데 대한 반사효과도 있지만 역대 K리그 총재 중 가장 평이 좋다. 적어도 축구계에서는 이 시절 그의 업적에 태클 거는 사람이 없을 정도. 후임 권오갑 총재-한웅수 총장이 개삽질을 하면서 또 다시 재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부산 아이파크의 팬들은,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로서의 정몽규를 상당히 싫어한다. 딱히 부산 구단의 발전을 이끈 모습을 보기 힘들며,[3] 2012년 부산 아이파크수원 삼성 블루윙즈간의 개막전 당시, 수원의 팀 엠블럼이 박힌 옷을 입고, 성남 일화 머플러를 두르고 경기장을 찾는등 부산 구단주보다는 연맹 총재 역할에 더 집중했던 면 때문에 부산 팬들에게는 많은 불만을 낳았다. 그리고 이러한 부산 아이파크 아재들의 분노는 끝내 부산 아이파크가 2016년 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하는 날 폭발하여 새로운 부산아재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2016시즌을 앞두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게서 "국대 스트라이커의 경기력 유지를 위해서 K리그 클래식 팀으로 이적 시켜달라"는 요구에 대승적 차원으로 울산으로 임대보내며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다. 아무리 봐도 구단주 보다 대한축구협회라는 타이틀을 더 소중히 여기는 듯.억지로 구단 떠안아서 그런거 아냐?

3 대한축구협회 회장

2013년 1월을 기해 임기가 끝나는 조중연 회장이 재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축구계에서는 정몽규 총재의 거취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연맹 총재직을 2년 동안 하긴 했지만 근래 들어 축구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행정가였고 쌓아놓은 업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축구협회 회장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며 대표적인 축구계의 야권세력 인사였던 허승표와 맞붙게 된다. 대부분의 국내 축구팬들은 국내 축구의 암흑기와 야권 집권기가 겹쳤다는 점과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 시절의 업적등으로 허승표 후보보다, 정몽규 후보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으로 더 높다. 많은 언론에서 현대가의 장기집권을 비판하지만, 현대가에 대한 인식도 국내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편이다. 장기집권과 대한축구협회의 만성적인 비리문제등으로 현대가 집권을 비판하는 팬들도 있는 반면, 재정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한국축구계에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는 현대가에 대한 선호를 보이는 팬들도 많이 있다. 그리고 현대가에 대한 입장이 어떻든간 허승표 후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었다.[4]

결국, 전례가 없었던 대한축구협회 회장선거에서 2차투표 끝에 승리[5]하며 축구협회 회장직에 당선이 되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현대가의 사람인데다가 위에 서술한대로 정몽준의 사촌이기 때문에 축구판은 현대가에서 다 해먹는다는 비판도 받는다. 본인이 처신을 잘 못하면, 자칫 현대가의 비판만 받기 때문에 꽤나 가시방석이라는 소리도 있다.

그런데, 2013년 6월에 있을 2014 월드컵 예선전 레바논 원정 때 오랜만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위한 전세기를 운항한다는 기사와, 뒤이어 2013년 후반기 A매치 때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 평가전을 연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축구팬들에게 찬사를 받...기는 개뿔. 최강희 감독을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연임한다는 개드립으로 욕을 잡수시고[6], 이어서 기성용페이스북 항명 사건에 대해 징계도 없이 유야무야 넘어감으로써 "조중연은 이런저런 업적이라도 세웠지. 지금 회장은 도대체 하는게 뭐 있느냐?"라며 평생까임권을 스스로 획득하였다. 이에, 정몽규 회장은 뒤늦게 "더 신중하게 논의 후 처리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는데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정몽규는 실권도 없이 권한행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고, 협회내의 실세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7]

2013년 7월 11일에 난데없는 최성국K리그를 좀먹던 승부조작 원흉들을 용서하자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건의가 있었는데, 결국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면서 정몽규의 평가도 어느 정도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연히 복귀를 금지시키는 것이 옳은 것이기 때문에, 딱히 칭찬을 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반대로, 승부조작 선수들의 복귀를 주장했던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여론의 거센 뭇매를 맞았다.

2013년 12월 6일, 2017 FIFA U-20 월드컵 유치에 성공했다. FIFA 주관 대회 개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면서 정몽규의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 좋아졌다. 유치 성공 이후 인터뷰에서는 여자 월드컵도 유치하고 싶다고 말했으나 2019년 대회는 프랑스에게 밀렸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호가 최악의 성적을 거두면서 정몽규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유명무실한 기술위원회 개혁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재건할 뛰어난 감독선임및 장기적인 비전 확립 여부에 따라서 정몽규의 평가도 달라질 듯 하다.

2015년에는 AFC 회장선거 출마를 준비중이다. 다만, 경쟁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알 칼리파 현 AFC 회장이 제프 블래터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회장직에 오른 사람이라서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블래터가 피파 회장에서 물러났아도 여전히 강력한 세력이고, 아랍권 입지가 큰 터라 여전히 어려운 상황. 결국 알 킬리파에게 참패했다. 이런 가운데 정몽준의 피파 회장도전을 돕겠다면서 북한과 평화적 우호를 위하여 10년만에 남북 친선축구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알다시피 2015년 북한 대남도발 덕에 어려워진 상황이 되었다.

2016년 슈틸리케호가 최종예선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또 한번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편 리그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이 터졌고 결국 축구팬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결말로 끝나면서 현대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백번 양보해서 리그에서 전북의 처벌 문제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다룰 일이라고 해도, 현재 규정상 리그의 심판은 KFA 소속 즉 대한축구협회가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팬들 사이에서 불거저나오는 '전수 조사'는커녕, 심판위원장 등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1. 아이파크는 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브랜드 이름이다.
  2. 물론 이게 AFC의 반강제 덕분인것도 크지만 어쨌든 구축하는데는 기여했으니...
  3. 모기업 현대산업개발이 현대중공업이나 현대자동차에 비하면 규모가 상당히 작긴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재벌인데도 연간 예산은 시민구단 수준인 100억대로 추정한다. 여타 대기업 팀들은 200억 선으로 알려져있다.
  4. 허승표에 대한 팬들의 평가는 "허승표가 당선되면 유스지원금을 다 털어서 외국 유명감독 영입할 사람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유명감독 선임하면 좋지 않나 하는 사람들을 위해 비유해 보면 집 팔고, 적금 깨고, 살림 밑천까지 끌어모아 그 돈을 페라리 끌고 다니는 데에 쓸 사람이라는 것(....)
  5. 여권 지지표의 분열로 인해 1차투표에선 허승표 후보가 승리했으나, 2차투표에서 표가 결집이 되어 낙승한다.
  6. 초기에는 시한부 감독 선언을 한 최강희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언플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최강희 사임 이후 전혀 후임감독을 물색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최강희 감독이 요구한) 외국인 명장이 아니라 요식행위만을 거치며 홍명보를 감독으로 임명한 덕에, 정말로 최강희 감독이 좀 더 성적이 좋았다면 억지로 연임시키려 했던 것이라는 것이 더욱 확실시되고 있다.
  7.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여권이 심하게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눈치를 안 보기가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물론, 의혹일 뿐 진짜 실상은 알 수 없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