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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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 No.18
이정협 (李庭恊 / Lee Jeong-Hyeop)
생년월일1991년 6월 24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부산광역시
포지션스트라이커
신체 조건187cm, 76kg
주로 쓰는 발오른발
유스팀당감초-덕천중-동래고-숭실대
소속팀부산 아이파크 (2013~ )
상주 상무 (군복무) (2014~2015)
울산 현대 (임대) (2016)
국가대표14경기, 4골[1]

제 2의 조재진[2]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둔 신의 한 수였다.[3]
슈틸리케호의 황태자였다.
울산 현대의 잠재적 금지어 후보

1 클럽 경력

1.1 부산 아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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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시절. 부산에서의 데뷔 첫 시즌.

부산 아이파크의 유스 팀인 동래고등학교 출신[4]으로 2010년 드래프트에서[5] 부산 아이파크의 우선 지명을 받고, 숭실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동래고등학교 때부터 원톱을 맡았는데, 동래고등학교에서 그를 지도한 송세림 감독에 따르면 적극적인 압박과 수비를 주문해 골을 많이 넣지 못했고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활동량이나 희생적인 움직임이 뛰어나 지도자 입장에선 매력적인 선수였다고 밝혔다.

이런 이정협을 눈여겨 보고 대학, 나아가 프로까지 이끌어준 인물이 다름아닌 윤성효다. 세제믿윤을 찬양하라[6]

2013년 우선 지명을 받았던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여, 3월 10일 경남 FC전을 통해 K리그 클래식에 데뷔하였다. 6월 1일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데뷔 골을 포함한 2골을 기록하였다. 2013년 총 27경기에 출장해 2골 2도움을 기록하였다. 그 해 부산 아이파크의 공격진이 최악이었던지라 신인임에도 많은 기회를 받았다. 하지만 지원도 부진하고 본인도 날카로움이 부족해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다만 국가대표팀 발탁이후 언론에서 떠드는 무명 선수, 흙속의 진주 운운하는 것은 대표팀 축구만 축구고 K리그를 B급으로 보는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정협은 대졸 선수라서 리그 입성이 늦어서 그렇지, 이미 전형적인 K리그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선수다. 프로 유스팀에서 입단을 하고 성장해서 드래프트까지 가지 않고 우선지명을 받았고, 데뷔 첫 해 주전으로 낙찰되면서 리그 27경기에 출전했다.

그리고, 이듬해 경쟁이 국가대표팀에 버금가는 상주 상무에 단번에 합격해 체육요원으로 복무하며 역시 주전으로 뛰었다. 될성 부른 떡잎은 초등학생 때부터 프로팀이 관리하는 요즘 추세에[7] 프로 유스에서 성장해 우선지명을 받고 신인으로 리그 20경기를 넘게 뛰었다는 것은 이미 진작부터 잠재력을 인정받고 구단의 기대가 매우 컸다는 뜻이다.

이정협의 유스 시절부터 데뷔까지 조명한 기사. '부산 덕천중 시절부터 뛰어난 체격 조건 때문에 지역 명문고의 스카우트 제의를 수차례 받았던 특급 유망주였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한편 상주 상무에 있다가 2015년 10월 12일 전역하면서 군대렐라에서 예비군대렐라가 되었고 원 소속팀인 부산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정작 5일 후 소속팀이 광주에게 패하면서 사실상 승강플레이오프로 밀렸고 강등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8] 결국 부산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해서 잔류시켜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 부상 때문에 몸상태가 완전히 올라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산이 워낙 급해 결국 조기복귀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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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4일 대전전에서 원톱으로 선발출장 했다. 몸상태가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전반 26분 수비수의 롱패스를 돌파해 들어가는 한지호에게 떨어뜨려줘 1도움을 올리는 활약을 했지만, 후반 16분 교체된 후 팀은 1-2로 역전패 당했다. 이 패배로 부산과 대전의 승점차는 5점차로 줄어들어 자칫 승강 플레이오프는 고사하고 강등직행할 가능성이 생겼다.

그러나 패배에도 부산의 최영준 감독은 이정협에 대해 “움직임과 키핑이 굉장히 좋았다. 그정도 해줄 수 있는 스트라이커가 현재 부산에 없다. 동현이도 가고 상협이도 가고 이정협의 합류로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11월 8일 인천전에서도 선발로 뛰었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움직임이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 제대 이후 2경기만이라 팀원들과 발이 맞지 않은 상황에서도 헤더에 적극 나서고 활로를 열어주려는 노력은 다했다.

다만, 2015년 부산의 전력이 워낙에 안습인지라... 2선들이 이정협이 창출한 공간을 활용하긴 커녕 되려 수비태세로 돌아서버리는 바람에 모르는 사람은 이정협이 인천 수비에 막혀 아무것도 못한 것처럼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부산 입장에선 이 경기마저 지면 승강플레이오프도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보다 안전한 선택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11월 22일 모처럼 구덕운동장에서 열린 전남과의 홈 경기에서 경기 시작 10여분만에 또다시 부상 당하며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너무 짧게 깎은 잔디[9]가 들리며 헛짚은 다리를 마크중이던 상대 선수가 밟아 이중으로 타격 입은게 원인이었다. 진단 결과는 발목 염좌. 붓기가 빠지고 다시 몸상태를 끌어 올릴때까지 시간이 걸려 승강 플레이오프에 못나갈 가능성이 커졌다. 큰 부상을 극복하고 의욕적으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던 와중이라 더욱 더 안타깝게 여기는 팬들이 많다. 부산은 승강플레이오프가 확정된 마당에 가장 확실한 공격 자원이 빠져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그런데 12월 2일, 소속팀인 부산 아이파크가 수원 FC에게 패배해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닥쳐오자 감독은 2차전에 이정협까지 투입하겠다고 말했는데 문제는 이정협은 아직 부상회복중이다. 가뜩이나 안좋은데 무리해서 뛰면 부상이 악화될 수도 있기에 립서비스라고 봐야할 듯. 실제로 수원 FC의 조덕제 감독도 이정협의 투입여부에 대해서 오히려 수원 FC에게 이득일 수도 있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결국 감독도 부상 때문에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2차전에서 이정협을 아예 명단에서 제외시켰고 팀은 강등당했다. 팬들 사이에선 주세종, 이범영 등과 함께 클래식 팀들이 노리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다. 그리고, 이정협도 전역 후 인터뷰에서 다시는 2부리그에서 뛰기 싫다고 말한 만큼 이적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부산에서 뛰고 싶어도 팀이 너무 노답이다.

그리고 12월 15일자 풋볼N토크 에서 이적에 대한 썰을 풀었는데, 부산 아이파크이종호+임종은 이적료 그 이상을 불렀다고 한다. 25억을 불렀다는 듯. 만약에 이적한다면, 겨울 이적시장 최고의 이적료가 될거라고. 그런데, 부산이 요구한 그 이적료를 덥썩 물어낸 윗선에게 한 소리 듣고 구단이 있다고 한다. 팬들은 울산으로 추측하고 있다. 드디어 부산이 일한다!!

1.2 상주 상무(입대)

2014 시즌 2년차에 이정기에서 이정협으로 개명하고 일찌감치 상무에 입대하였다. 당시 부산의 윤성효 감독이 상주에 가면 기회가 많을 거라며 권유했고, 박항서 감독에게 추천도 해주었다. 부산에 양동현이라는 걸출한 공격수가 제대한만큼 부산팬들도 납득한 결정.[10] 2014 시즌 상주에선 이근호한상운 같은 이름값 높은 선수들이 존재했기에 크게 주목받진 못했지만 그래도 상당한 기회를 부여받아 25경기에 출장해 4골을 기록하였다.

15시즌에는 팀 선배 임상협을 후임이자 룸메이트로 두게 되었다. 한편 15년 10월까지 이정협, 임상협, 이승기를 한꺼번에 굴릴수 있게 된 상무는 강등 1년만에 다시 승격하겠다는 야망에 불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2015년 3월 21일 K리그 챌린지 개막전(상주 홈, 강원 원정)에서 강원 FC를 상대로 역전골을 넣었고 3:1로 상무가 승리했다. 경남 원정 경기에서는 수차례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고 날카로운 슈팅을 날렸지만 골을 넣지는 못했다. 그나마 김도엽이 세번째 골을 넣었을 때는 재빠르게 역습에 나서 김도엽을 향해 정확한 패스를 보냄으로서 1:1 기회를 만들어 줬다. 어시스트는 올렸지만, 국가대표 공격수가 2부 리그에서 골을 펑펑 넣지 못한다고 불만스런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다.# 국가대표 공격수의 숙명이라면 숙명.

리그 초반 공격포인트는 적은 편이었지만 박항서 감독은 이정협의 플레이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방에서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움직임으로 동료들을 편하게 해주고 있다고. 동료 공격수인 박기동이 득점이 많은것도 이정협이 전방에서 비벼대며 수비진을 끌어내준 덕분이다.

5월 23일 충주와의 경기에서 임상협의 선취골과 권순형의 연속골에 어시스트 해주면서 2골 4어시로 어시스트 순위 2위[11]에 올랐다. 경기 MVP도 수원FC의 자파(4회)에 이어 2위(3회). 팀도 대구FC에게 빼앗긴 1위를 탈환하며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6월 3일 경남FC와 경기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는 단순히 활동력을 앞세운 마당쇠 노릇만 하는 게 아니라 공간침투, 패싱플레이를 이용한 돌파와 날카로운 슈팅 능력을 보여주었다. 리그 6골로 득점 5위권까지 수직상승했다.

6월 20일, 서울E랜드와 경기에서 후반전 교체출전해서 1분만에 이승기에게 어시스트를, 그리고 역전골과 추가골의 어시스트를 올렸다. 챌린지리그의 득점왕인 주민규와 맞대결로 화제가 되었던 이 시합은 주민규가 선제골을 넣으며 앞서가는 듯 했으나, 후반에 이정협이 나타나 13분 만에 경기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특히 연계 플레이##에서는 왜 슈틸리케 감독이 이정협을 중용하는 지 알만한 실력을 보였다[12].

7월에는 부상 때문에 휴업 중. 상주 상무가 계속 1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박항서 감독이 무리하게 출전시키지는 않고 있다. 12일 안산과의 경기에 출전할 예정. 후임이자 소속팀 선배인 임상협의 멀티골로 2:0으로 앞서는 상황에서 교체되어 나와 특유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골을 넣지는 못했다.

이후 에두, 정대세가 이적하면서 K리그 올스타전에 빠지게 되자, 주민규와 함께 올스타전 공격수로 선발되었다.
[1]
그리고 PT 8번을 시키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10월에 제대 예정이지만, 은사인 윤성효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자신사퇴했고 부산도 강등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13] 잘못하면 제대 후 상주는 클래식으로 승격하고 부산은 챌린지로 강등당해 또 챌린지 리그에서 뛴다는 웃픈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 다만 강원이나 경남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챌린지로 떨어지면 구조조정 압박을 받기 때문에 본인이 좋든 싫든 이적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실력이 검증된 선수인 만큼 팔겠다고 하면 팀 찾기도 어렵지 않다.

8월 26일 뜻밖의 악재를 만났다. 우즈벡전에서의 부상 후 약 5달 뒤 경남과의 경기에 선발출전했다가 경남 배효성의 악의적인 반칙에 안면 복합골절 부상을 당했다.[14] 경기장에 골절소리가 울리고 안면이 피로 젖고 CT촬영들어가는 순간까지 의식이 희미했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이로서 당분간 경기 출전이 불가능해져 상무와 대표팀에 비상이 걸렸다. 천만다행으로 시력은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부상이 부상인만큼 시력 치료도 병행하고 있는 상황. 수술후 회복에는 최소 2~3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사실상 시즌 아웃.

선수들의 전역 시즌을 맞이하여 전력이 약화될 판에 이정협마저 잃게 된 상주 상무도 상주 상무지만, 승강 플옵권에서 힘겹게 생존 중인 원 소속팀 부산 아이파크도 커다란 악재를 맞이하게 됐다. 그리고 상주는 이정협을 포함한 다른 선수들의 전역병에 걸려 1위를 놓쳤고, 부산도 스플릿 첫 경기부터 광주에게 패배하면서 강등권이 확정된 상황. 부산이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여 잔류에 성공한다면 상관없는 얘기겠지만, 부산까지 강등된다면 전역한 후에도 2부 리그에서 최소 1년을 보내게 생겼다.

9월 19일.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음에 불구하고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참가하겠다고 투지를 불살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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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세계군인체육대회 미국전 후반 41분에 출전하여 5분간 뛰었다. 이로서 김태영-설기현-김남일-신형민에 이은 5호 마스크맨으로 등극했다.
10월 2일 세계군인체육대회 성화주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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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2일 전역했다. 몸상태는 아직 60% 정도라고. 몸을 추스르는게 우선이었으나 부산의 사정이 워낙 급해 조기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부산이 강등되면서 거취가 불분명해졌다. 본인이 상무시절 "챌린지에서 뛰는건 싫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거 아니냐는 카더라가 나왔다. 일단 부산에서는 붙잡는다는 생각이라고.##

하지만...

1.3 울산 현대(임대)


입대 후 임대
1월 7일 울산 현대로 1년간 임대되었다. 부산은 대신에 현금과 올림픽 대표 미드필더 이영재를 임대로 받았다.

올해 18골을 넣겠다는 (...) 다짐 아닌 실수를 저질렀다.
#

3/13일에 열린 본인의 진짜 친정팀 상주 상무와 개막전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방에서 싸워준다는 것을 잘못 이해했는지 상주 상무 선수 2명을 담가버리고, 슛도, 돌파도, 본인의 장점이라는 연계에서도 아무 것도 보여준 것 없이 후반 막판 기회마저도 공을 잡고 찬다고 시간을 줘 날려먹으면서 팀의 2-0 패배에 공신이 되었다. 이날 백미는 해설진의 '이제 울산에는 김신욱이 없어요'

3월 20일에 열린 전북과의 경기에서는 1주일 전보다는 나아지긴 했지만 역시 아쉬운 모습을 이어갔다. 경기는 전체적으로 울산이 전북을 압도하는 흐름이였으나 이정협은 포스트 플레이와 마무리 등 최전방 공격수로서의 역할을 많이 수행해주지 못했고, 결국 팀 역시 득점에 실패하며 무승부를 거둬야만 했다. 특히 전반 막판 결정적인 1대1 찬스에서의 어이없는 슈팅은 이정협의 실력에 대한 팬들의 의구심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4월 3일 전남과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출장했다. 역시 아무 활약도 없었고 울산을 승리로 이끈 것은 국가대표까지 해서 챌린지에서 뛰기 싫다고 외치는 본인이 아닌, 코바의 두 골이었다. 한달이 지났는데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김신욱 같은 경우는 일관성있게 시들시들하기라도 했는데 이정협은 국대에서만은 신나게 뛰어다니고 인터뷰에서는 항상 '리그에서 내 모습으로 보여주겠다'고 말만 한다. 똑같이 시들시들해도 김신욱과 달리 이정협이 울산팬들 사이에서 엄청 욕 먹는 이유도 이것.

그러나 4월 9일 광주 FC와 경기에서 첫골을 터트리며, 자기가 충분히 실력이 있는 선수라는 것을 증명했다. 물론 아직 많은 경기를 뛰진 않았지만 폼이 올라온 것이 눈에 보이는 멋진 활약이었다.

4월 13일 수원 FC와 경기에서는 비록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수비 뒷공간을 향한 침투를 계속 보여주었고 2선과의 연계도 많이 시도하는 등 서서히 울산에 녹아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거리슛도 많이 연습했는지 후반에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날리기도 했다.

4월 17일 FC 서울과 경기에서는 매우 좋은 뒷공간 침투와 2선과의 연계를 보여줬지만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두 차례 슈팅을 기록했지만 하나는 옆그물을 때리고 하나는 골키퍼와 완벽한 1대1 찬스에서 볼터치를 너무 길게 잡아 유상훈 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5월 5일 성남 FC와 경기는 대표팀 포지션 경쟁자 황의조와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결과는 판정패. 슛 3개를 날렸지만 1개는 위로 떠버리고, 2개는 골키퍼 정면으로 향해서 전임자 김신욱에 비해 골문 앞에서의 결정력은 다소 부족함을 보여줬다. 황의조의 경우 전반에는 묻히기는 했지만, 후반부터 실점으로 조급해진 울산 수비진에게 과부하를 주고, 주어진 기회를 도움으로 마무리하고 심지어 없는 기회도 만드는 원더골을 넣었다.

아무리 이타적인 플레이가 강점인 연계 위주의 선수라도, 공격수라면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골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결국 스탯도 참혹해지고 있다. 한 기사에서는 '올 시즌 9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하고 있고, 특히 9경기에서 총 16개의 슈팅을 기록하며 슈팅 시도가 경기당 2개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라고 평했다. 유효 슛도 아니고 그냥 슛이 경기당 1.7개 정도인지라 주전 공격수로서 최전방을 맡기기에는 영 탐탁치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정협을 덜컥 빼버리기도 애매한 것이 다른 공격수들도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박성호는 이제 30대 중반이라 나이와 체력이 문제고, 김인성코바윙어로서는 아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중앙 공격수로서의 능력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김승준은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2016년 기준으로 아직 클래식 2년차라 경험 면에서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그렇다고 이정협이 본인의 장점인 2선과의 연계를 살리기도 어려운 것이, 울산은 윤정환 감독이 부임하면서 철퇴축구를 버리고 노골적인 니가와 뻥축구를 구사하기 때문에 2선 연계 플레이가 딱히 필요없다 (...)

5월 2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는 공격 포인트는 없었으나 후반전 페널티 박스 안에서 절묘하게 PK를 유도해냈고, PK 주자로 나선 코바가 득점에 성공하면서 코바의 골에 간접적인 도움을 줬다.

5월 28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었다!! 점점 울산의 축구 스타일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연계력도 좋아지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김태환의 윙어로써의 플레이에 울산의 2선 전체가 살아나고 있는게 크다. 2선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이정협 역시 강해지는 스타일에 연계 및 활동도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이 날 울산은 제주의 홈 무패 기록을 깨버리고 이정협의 결승골로 2-1로 승리했다.

7월 20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는 후반전에 교체로 투입되어 0대3으로 뒤지고 있던 도중 1골을 넣으며(홈경기 첫득점) 추격의 불씨를 살렸으나 결국 팀의 패배를 막진 못했다. 이후로는 새로운 외인 공격수 프레데릭 멘디에게 주전을 내주고 교체로만 간간히 투입될 정도로 위상이 떨어졌었는데, 9월 21일 성남 FC를 상대로 한 홈 경기에서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역전골을 넣으면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과연 이게 반등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가 관건.

1.3.1 애매한 쓰임새

사실 현재 울산의 팀 컬러는 이정협과 그다지 맞지 않는다. 이정협의 장점은 아래에도 서술했듯이 넓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2선과 연계 플레이다. 상주에서 이정협이 좋은 폼을 유지했던 것도 상주의 팀 컬러가 조직적인 패스 플레이, 즉 연계를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이정협은 안성맞춤인 원톱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대표팀에서 중용하는 이유도 대표팀의 주득점원이 2선에서 침투하는 손흥민 구자철이기 때문에 골사냥보다 탱킹상대 수비수와 싸워주는 선수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울산은 윤정환 감독 부임 이후 잔뜩 웅크렸다가 빠르게 좌우로 벌려 전방의 장신 공격수에게 크로스를 올리는 뻥축구전술을 주로 쓴다. 2015년 시즌이 끝난 뒤 김신욱(197cm) 양동현(188cm) 두 장신 공격수를 과감히 이적시킨 것도 문전에서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타입의 공격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정협이 최전방에서 싸워주는 원톱은 맞지만 싸워서 이긴다는 말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현재 K리그 국내 공격수 가운데 원톱 자원 자체가 부족하고 피지컬로 수비수를 찍어누르고 골을 넣는 원톱은 전무하다. 굳이 지금 울산에 적합한 원톱을 꼽는다면 06-07시즌 드록신인데 현재 이런 피지컬깡패타입 자체가 K리그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드물다.

이정협에게는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에 중점을 두는 광주 FC제주 유나이티드 같은 팀에 더 잘 맞는다. 하지만 울산에 온 만큼 이정협 자신이 울산의 팀 컬러에 빠르게 녹아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정협은 K리그 클래식에서 제대로 활약했던 적이 없다. 2016년까지 합쳐서 통산 클럽 기록이 74경기 13골 9어시스트이다. 분명 2015년 상주에서 기록한 17경기 7골 6어시스트는 괜찮은 기록이지만 챌린지에서 기록한 것이다. K리그 클래식 기록만 놓고 보면 57경기 6골 3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에 불과하다. 애당초 주목을 받은 이유도 포스트 플레이가 가능한 원톱이기 때문이었지 이동국이나 황의조처럼 골잡이로서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 전혀 아니다. 프로 데뷔 4년차로 신인 때깔을 겨우 벗은 정도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팀을 세번이나 옮기면서 아직도 검증을 받는 단계에 있는 선수다.

1.3.2 이적 과정에서 논란

임대 이적 막후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외압(?) 의혹이 있다.# 기사에 따르면 슈틸리케 감독은 부산 아이파크 구단주 정몽규에게 수 차례 이정협의 거취를 물으며 선수를 놓아줄 것을 간접적으로 재촉하였고, 결국 정몽규는 부산이 대승적 차원으로 이정협을 K리그 클래식 팀인 울산에 보내도록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슈틸리케에게 비판적인 의견과 부산 구단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공존한다. 우선적으로 적어둘 것은, 두 시각 모두 슈틸리케의 행동 자체가 부산 아이파크 축구단에 대한 월권 행위라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이정협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부산을 떠날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기사의 내용 자체가 그간 K리그를 존중해오는 모습들이 언론에 노출된 울리 슈틸리케의 행동과 너무 달라서 논란이 일기도했다. 특히나 다음 포털에서는 제공사의 요청으로 삭제된 상태고,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가 나왔다는 언급에 불구하고 타 언론사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제기하거나 관련된 기사를 올리지 않아서 이와 관련된 논란이 증폭되기도 했다. 아이러브사커의 축구팬들은 시끄러워지자 위에서 잘랐다는 둥, 기레기의 농간이라는 둥 하면서 일단 두고보자는 입장#.

하지만 한 위키러가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기자가 답신을 해서 인증을 해버렸다. 인증내용에서는 기사는 자신이 썼고, 잠시 내리기는 했지만, 정몽규가 기자 간담회에서 "이정협 이적과 관련해 슈틸리케가 요청해서 허락했다"라는 해당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이 압박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1.3.2.1 슈틸리케에 대한 비판

슈틸리케에게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그의 월권 행위와 2부리그 무시에 대해 비판한다. 여러 기사에서도 나왔듯이, 당초 부산은 계약 기간 4년에 연봉 3200이라는 울트라 가성비인 이정협을 잔류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가 부산의 구단주인 정몽규를 계속 재촉했기 때문에 다른 구단과는 달리 대한축구협회장을 겸임해서 이를 무시할 수 없었던 위치인 정몽규는 결국 굴복했다는 것. 결국 부산은 이정협을 승격의 주춧돌이자 유스 출신 스타플레이어로 홍보하려던 계획이 어그러져 올림픽 대표 유망주인 이영재+소정의 금액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슈틸리케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연관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는 근거로 부산이 기사에서 슈틸리케가 마지막으로 찌른 23일 이후로 스토야노비치, 최승인, 고경민 등 챌린지 수준급 공격수를 페닉 바이 수준으로 질러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정협이 남았더라면 이렇게 교통정리가 안 될 정도로 공격수를 살 이유가 없다는 것.

의견 자체는 누구나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2부 리그에 있으면 선수가 체력과 경기력이 떨어진다고 자신의 말을 무시하기 곤란한 위치에 있는 구단주에게 대승적 차원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1.3.2.2 부산 아이파크와 정몽규 구단주에 대한 비판

이와 달리 울리 슈틸리케보다 부산 구단을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이는 정몽규의 언론 플레이라는 것. 그 동안 정몽규는 구단 운영에 매우 무관심했다. 2000년에 인수 후 K리그 최강의 구단이었던 로얄즈의 파란 이미지를 한 순간에 말살한 채 모기업 홍보를 위해서 빨간 이미지를 넣어버리고, 2004년 연고이전을 시도했으며, 대승적 차원이라는 이유로 멀쩡한 감독들을 국대 및 타팀에 보내버리고, 잘 하는 선수를 중심으로 상위권에 가기 보다는 선수 팔아먹기에 집중해 매년 실력은 떨어져가고, 레플리카를 13년까지 홈페이지에서 팔지 않을 정도로 성의없는 운영을 하면서 평균관중 2만대의 구단을 3천대로 몰락시키는 병크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대산업개발과 정몽규는 팀 운영에 열의를 보였다고 보기 힘들다. 또 위의 선수 매매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번에도 이정협을 팔아먹을려고 했다는 것. 애초에 팔 생각이 없었으면 NFS을 때려야 하는데 알음알음 요구 이적료가 25억이라는, 터무니없는 금액이기는 하지만 이적료 규모 자체는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이정협 본인도 "챌린지에서 또 뛰기 싫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어차피 부산을 떠날 선수였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슈틸리케가 월권을 시도하자 부산 구단은 "어차피 팔 생각인데 욕은 마침 먼저 월권을 저지른 슈틸리케가 먹겠지?" 하고 신나게 이정협을 원하던 울산과 거래를 마무리지은 것이다. 임대도 일단 부산팬들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있고, 실제 임대비가 얼마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더구나 임대 후 이적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그리고 패닉 바이 건에 대해서는 이정협 임대로 벌어졌다기 보다 부산 공격진의 대거 유출로 발생했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배천석이 전남으로 이적하고 한지호와 김동섭, 윤동민 입대하여 이정협이 남았다 해도 공격수는 주세종과 트레이드해서 영입한 김현성 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급히 보강에 나서는 건 당연하다는 것.

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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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까지만 해도 K리그 골수팬이 아닌 이상 아무도 몰랐던 그저 그런 흔한 젊은 공격수 정도의 위상이었는데 2015년, 그의 인생을 바꿀 전기가 찾아온다.

청소년 대표팀 경력도 없었던 그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눈여겨 본 후 아시안컵을 앞두고 A대표팀으로 발탁했다. 2014년 12월 4일 슈틸리케호의 제주 전지훈련 명단에 포함되며 성인 국가대표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K리그팬들 사이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듣보잡선수였던지라 축구 관계자들 사이에서 테스트도 좋지만 지나친 모험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었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5번에 걸쳐 상주 경기를 관전한 후 확신을 갖고 이정협을 선발했다. 누차 대표팀 선발조건으로 소속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강조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비록 이정협이 이런 원칙에 어긋나지만 예외로 봐달라고 밝혔다. 전임 감독의 엔트으리에 학을 뗀 팬들도 이런 처사에 굳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액막이 무녀를 축출한 게 어디냐며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A매치 데뷔전인 2015년 1월 4일 시드니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조영철과 교체되어 출장했다. 팀이 1:0으로 앞서가던 중 후반 추가 시간에 남태희가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크로스해 준 공을 반대편에 있던 김창수가 받은 다음 골문 앞에 있던 이정협에게 패스해 줬는데, 이를 놓치지 않고 슬라이딩으로 밀어넣었다. 슈틸리케호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15] 화려한 개인기로 만든 골은 아니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집어넣어 국가대표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만들었다. 1988년 아시안컵의 신데렐라였던 황선홍 감독은 이정협에게 절실함과 준비된 자세가 있기에 골이 나온 것 같다며 칭찬을 해 주었다. 한편으로 앞으로 그 절실함을 잃지 말라고 조언했다.[16]

아시안컵 예선 1차전 오만전에서는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었는데 1:1 찬스에서 반대편의 한교원이 국군체육부대장으로 보였는지, 어이없는 각도의 패스를해 메이저 대회 데뷔골 찬스가 날려버렸다. 물론 알 합시가 각도를 좁히고 나와서 패스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지만,[17] 결정적인 찬스에서 과감하게 슈팅할 배짱이 없었다는 건 공격수로서 반드시 고쳐야 할 점이다. 본인도 절치부심했는지 예선 2차전 쿠웨이트전에 교체 투입되었을 때 골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기회를 잡으면 과감히 슈팅을 날렸다. 조별 예선 3차전 호주와의 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이근호의 패스를 받아 전반 32분에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넣었다.[18] 이 골을 잘 지킨 대한민국은 조 1위로 2015년 AFC 아시안컵 8강에 진출했다.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선 본인이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82분 교체될 때까지 전방에 콕 박혀서 우즈벡 수비진을 쉼없이 괴롭혀줬다. 하루 덜 쉰 상태에서 체격 좋은 이정협과 지속적으로 부딪치며 체력이 고갈된 우즈벡 수비진은 연장전에 돌입하자 한국의 측면공세에 무너져 내렸다.

[2]
4강 이라크전에서는 1골 1어시스트로 공격포인트 2점을 기록했다. 전반 20분 프리킥 상황에서 김진수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선취골을 넣었다. 후반 5분에는 가슴 트래핑으로 김영권에게 볼을 떨궈줬고, 김영권은 그대로 왼발 슛을 날렸고, 바운드된 볼이 득점으로 연결되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후에도 전방에서 이라크 수비수들에게 지속적으로 부대끼고 수비에도 동참했다. 이때 다소 충돌이 심하다 싶으면 여지없이 드러누워 적절하게 시간을 끌었다. 백미는 공중볼 경합후 떨어지다 허리를 땅에 부딪쳤다며 쓰러져 잠시 나가 있다 돌아와서는 이라크 진영을 질풍같이 뛰어다니는 모습.

아시안컵 맹활약을 통해 군대렐라(군대+신데렐라), 상주 카바니, 협자기, 디에고 군스타, 군차리토, 상주키치 등 많은 별명이 생겨났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른 별명은 솔저 (...) 당시에는 군인이 맞았으니 빼도 박도 못할 별명이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이기고 우승을 한다면 국군체육부대장이 포상휴가를 적극 검토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정협은 득점을 올리지 못한채 체력이 완전히 방전되어 후반 42분에 교체되었고, 팀은 연장 승부 끝에 아쉽게 패배하였다. 그래도 아시안컵에서 손흥민 다음으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아시안컵 종료 직후 FIFA에서 FIFA가 선정한 아시아를 빛낼 새 스타 5인 중의 하나로 선정했다.[19] 그리고 사단장에게 4박 5일 포상휴가를 받았다. 포상 휴가 후 남해에서 훈련 중인 소속팀에 합류했다.

3월 27일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도 선발 출전했으나, 전반 26분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기성용과 교체되었다. 그런데 이정협이 빠지고 기성용이 몸을 푸는 사이에 동점골을 헌납했고, 이정협을 대신해 공격수를 맡은 구자철이 부족한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팀이 전체적으로 전방 압박이 사라진 안습한 경기를 펼치면서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동시에 간접적으로 자신이 엄연히 국가대표의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6월 11일 월드컵 아시아 2차 지역예선을 앞두고 열린 UAE와 평가전에서 후반 이용재와 교체되어 들어가 특유의 왕성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부지런히 움직인 덕에 주워먹기 골로 3번째 추가골을, 그리고 본인에게는 A매치 4번째 골을 기록했다.

7월 24일 EAFF 동아시안컵 23인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8월 2일 동아시안컵 중국전에 선발 출장해 82분을 소화하고 김신욱으로 교체되었다. 비록 득점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중앙 수비수를 달고다니면서 끊임없이 수비 배후를 노리는 원톱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2선에서 이종호, 김승대, 이재성, 권창훈이 미드필더 사이에서 끊임없이 볼이 돌아다니고 2:0 완승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날 해설을 맡았던 허정무 부총재도 이런 이정협의 움직임을 칭찬했다.

8월 5일 한일전에서는 김신욱이 선발 출장하여 빠졌다.

8월 10일 동아시안컵 북한전에 선발 출장해서 풀타임을 소화했다. 다른 선수들과 연계플레이 능력이 상당히 많이 발전해서 선수들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많이 제공해줬다. 그러나 그 자신은 리명국이 눈부신 선방을 잇달아 펼치면서 득점에 실패, 대회 무득점으로 그쳤다. 이정협은 결정적인 찬스를 두 번이나 맞이했지만 한 번은 리명국의 얼굴면상을 맞추었고 한 번은 김승대와 2대 1 패스를 받아 골문까지 가져오는데는 성공했지만 헛발질을 하는 바람에 수비수의 발을 맞추고 말았다. 일부 기레기와 네티즌들은 이를 두고 '골결정력 부족' 운운하며 비난했지만, 정작 슈틸리케 감독은 '어린 선수들이 슈팅까지 만들어가는 과정은 만족스러웠고, 결정력은 손흥민, 구자철이 합류하면 해결될 것'이라며 낙관하는 답을 내놓았다. 물론 본인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왔을때는 정확히 골로 연결 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이건 플레이스타일을 떠나서 선수로서의 본분이다.

그러나 현대 축구의 트렌드 자체가 스트라이커는 골 넣는 기계에서 '득점 기회'를 창출하는 역할로 다양해졌다. 알기 쉬운 예로 FC 바르셀로나에서 스트라이커 롤을 맡는 선수는 리오넬 메시지만 실제 포지션은 2선 공격수이다. 브라질은 네이마르라는 최고급 2선 공격수를 보유했지만 최전방에서 이정협같은 롤을 수행해줄 공격수가 없어 2000년대 중반부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즉, 현대 축구에서 최전방 공격수와 스트라이커는 동의어가 아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서 70여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역사 속에서 '스트라이커'라는 용어에 걸맞는 선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도 황선홍 은퇴 이후 십여년 동안 스트라이커 정의에 걸맞는 선수는 나오지 않고 있다. 때문에 슈틸리케 감독은 구자철이 일시 부진했을 때도 믿음을 갖고 계속 기용했고, 반대로 이동국과 김신욱이라는 스코어러 대신[20] 이정협을 발굴해 쓴 것이다.

다만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입은 부상 이후로는 국대 차출이 없다. 그렇지만 일단은 선수 본인이 빨리 회복되는 것이 우선인데다가, 2015년의 A매치도 결국 소집되지 못하였으니[21] 이정협은 2016년이 되어야 다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빠른 회복을 기원하자.

2016년 3월 14일 발표된 대표팀 명단에 들었다. 그러나 이전 경기들에서의 부진했던 모습 때문에 발탁 초기에는 "전날 그따구로 하고도 뽑히다니" 라는 여론이 많았는데... A매치 복귀전인 레바논전에서 후반 종료 직전 기성용의 패스를 받아 기적적으로 결승골(본인의 A매치 4번째 득점)을 넣으면서 승리의 1등공신이 되었다 (...) 좋은 모습을 울산에서도 보여줄지가 관건.

3월 27일, 태국과의 평가전에서도 선발출전했는데 석현준과 투톱으로 풀타임을 뛰었다. 그런데 우려와는 달리 레바논전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 이정협은 석현준의 골장면에서 측면으로 빠져있어 수비수 두 명의 시선을 빼앗아 주었고 또 두 번이나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다만 본인은 남태희의 크로스를 헤딩슛으로 연결하거나 기성용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슈팅을 날리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단점인 슈팅이 발판이 되어 후반 23분에 날아온 골 기회를 날려먹었다.

전체적으로, 국가대표팀 공격진의 한 축으로 준수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고, 전형적인 골잡이 스타일의 스트라이커가 아님에도 중요한 시점마다 골을 터뜨려 주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리그에서는 그저 그런 수준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팬들에게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째 이 분이 생각난다 이유는 앞에서 지겹게도 설명했듯. 손흥민,구자철등 1.5~2선 공격수를 적극 활용하는 슈틸리케호의 전술에 잘 맞는 원톱이지만, 울산은 그게 아니기 때문인 것. 문제는 리그에서의 부진이 계속되니 폼이 떨어져서 레바논전에서 결승골을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6월 평가전 라인업에는 들지 못했다는 것. 레바논전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지만 리그에서의 꾸준한 활약으로 재승선에 성공한 황의조와는 대조되는 부분. 다시 국대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면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야만 할 것이나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다.

2.1 통산 국가대표 기록

2016년 6월 16일 기준

연령출전
U - 1700
U - 2000
U - 2300
A 대표144
종합기록144

3 플레이 스타일

이정협보다 뛰어난 '골잡이'는 K리그에 많지만 이정협보다 뛰어난 '중앙공격수'는 K리그에 거의 없다.[22]

가장 큰 장점은 원톱으로 진영깨기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 중앙에서 포스트 플레이를 힘있게 서 주고 수비와 계속 부대끼면서 수비에 부담을 주고 수비의 체력을 있는대로 빼주는 동시에 2선에서 침투하는 동료에게 공간을 만들어 주는데 탁월하다. 아시아축구계 상향평준화로 예전처럼 단순히 중거리 슛이나 측면 크로스로 밀집수비를 뚫는건 불가능해지고 패스웍으로 상대 수비진을 쉼없이 흔들고 공간을 창출해내는게 중요해진 상황에서 딱맞는 자원이다. 애초 슈틸리케아시안컵에서 무명의 2부리거였던 이정협을 깜짝발탁했을 때도, 시즌 25경기 4득점으로 수치화된 득점력은 한참 부족했다. 아시안컵 준결승전 기준으로, A매치 6경기 3골1도움의 이정협은 K리그 통산 52경기 6골이었다(...). 전형적인 스코어러로 발탁한 것이 아니라, 상대진영을 휘저어주는 플레이가 슈틸리케의 낙점을 받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뛰어난 스코어러는 아니다보니, 이런 부분을 의식했는지 슈틸리케 감독도 9월 라오스전 후 자신이 원하는 원톱을 언급했는데 한마디로 4-2-3-1의 원톱, 최전방 공격수가 움직이면서 비워주는 공간을 따라 2선의 공격수가 침투하는 스타일을 원한다고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즉 이정협은 이 조건에 아주 딱 맞고 또 상대적으로 부진하지만 결정력은 좋은 2선 미드필더인 구자철을 꾸준히 발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광래 감독 시절에 최전방 공격수로 곧잘 기용되던 지동원이나 슈틸리케 감독 부임 직후에 원톱으로 기용된 조영철이 피지컬이 좋은 편도 아니고 중앙에 놓으면 상대 수비수와 경합하는 대신 자꾸 측면으로 빠지는 버릇이 있어 공격시 좁은 공간에 선수들이 지나치게 밀집되고 상대편 수비수의 힘을 빼는 역할도 전혀 못한 것과는 천지차이 슈틸리케 감독도 이 점을 높이 샀고 2015년 AFC 아시안컵 A조 조별 3차전 호주전부터 조영철을 밀어내고 붙박이 자리를 꿰찼다.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움직임과 위치 선정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이정협이 A매치에서 득점한 4골은 모두 화려한 개인기로 이뤄낸게 아니라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움직임과 위치 선정을 통해 얻어 낸 골들이다. 여기에 장신임에도 민첩성이 좋고 발기술도 제법있다. 2015 시즌에는 자신감 상승으로 슈팅 능력, 결정력, 개인기 등의 방면에서 향상된 모습을 보여줬고 특유의 피지컬, 활동량이 더해져 K리그 챌린지에선 손꼽히는 공격수가 되었다. 헤딩슛 정확도도 높은편.

그러나 원톱 치고는 중거리슛이 매우 취약하다(...) 물론 원톱의 플레이스타일의 특성상 골문 앞에서 바로 공만 갖다대거나 헤딩을 해도 되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원톱인 박주영, 석현준에 비하면 한 번 중거리슛을 시도하면 대다수가 그냥 데굴데굴 굴러간다. 지금까지 이정협이 소속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중거리슛으로 넣은 골은 없다. 상주에서 해트트릭 할 때 두 번째 골을 박스 바깥에서 때리긴 했지만 이것도 데굴데굴(...) 굴러가서 골문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정협이 중거리슛을 시도할 때 장면을 자세히 보면 기성용, 석현준 등이 거의 발등으로 때리는 것과는 달리 발 옆면으로 차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향후 이정협이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이다.

아시안컵이 끝나고 15시즌을 시작한 후로 이전에 비해 스타일이 달라졌다. 활동량을 앞세우는 것 뿐만 아니라 개인기를 부리기도 하고, 상대 수비수들과 격하게 대립하는 등 성격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국가대표가 되면서 자신의 성장한 기량에 확신을 가지면서 자신감이 오르고, 그만큼 여유도 생긴 모양.

그리고 동아시안컵 북한전에서는 그야말로 자신이 아시안컵때와는 달리 얼마나 발전되었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었다. 원터치패스, 세밀한 연계플레이 등을 많이 보여주면서 그야말로 슈틸리케호의 황태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부각시켰다. 하지만 골이 안 나온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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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흘려서 슈팅찬스 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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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대와 세밀한 연계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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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으로 원터치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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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훈에게 스루패스로 슈팅제공

그리고 사람들이 모르는 또다른 장점도 있는데 동아시안컵까지의 모습을 보면 골 넣어서 단기간에 주목받은 선수들에게서 한 번쯤은 볼 수 있는 일명 탐욕 플레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찬스에서 크로슛 때렸나보다

경쟁이 약해서 실력 있다 싶으면 다소 문제가 있어도 감수하고 쓰고, 골만 넣으면 덮어놓고 찬양하기 바쁜 풍토의 한국에선 득점으로 한순간에 인기가 올라간 선수들은 그 인기를 유지하려고 무리한 플레이를 선보여 오히려 공격 전개를 어그러뜨리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 이정협은 그 자신도 분명 골에 대한 갈망이 클텐데 오히려 매 경기마다 공격전개를 원활하게 하려고 하고 완벽한 득점찬스가 아니면 슈팅을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선수들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도 슈팅이 하나도 없었지만 2선과의 연계플레이와 수비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고 후반에는 김승대와 이재성에게 결정적인 찬스를 두 번이나 내주었다. 한 마디로 자기의 임무와 그 범위를 명확하고 알고 있는 선수.

중앙공격수로서 포스트 플레이에 능숙하단 점이나 뛰어난 스코어러가 아니어서 까들이 따라다닌다는 점에서 영국의 에밀 헤스키와 유사한 점이 있다. 클래스야 당연히 헤스키 쪽이 훨씬 높지만 중앙 공격수에게 득점은 있으면 금상첨화지만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현대축구의 변화를 보여주는 선수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헤스키도 출전 횟수에 비해 득점이 적어서 조롱을 꽤 많이 받았다. 포스트 플레이 면에서는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와도 비교할 수 있다. 다만 헤딩능력은 질라르디노보다 떨어지는편.

4 개명

2013년 시즌 종료 후 이름을 이정기(李廷記)에서 이정협(李庭恊)으로 개명하였다. 2013년에 부산의 수비수인 이정호가 이름을 이원영으로 개명[23]하면서 팀의 주장도 하는 중요한 선수로 자리잡는 등 잘 풀리자,[24] 이정기 역시 그 영향으로 이름을 이정협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개명효과인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아시안 컵 명단에 합류하며 화제가 되었다.[25]

5 기타

가정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 축구화도 선배에게 물려받은 것을 신었다고 한다. 어머니 배필수 씨는 아들이 축구하는 것을 반대해서[26] '차라리 게임에 푹 빠지면 축구 안 하겠지'하는 생각에 거금 270만원을 들여 컴퓨터를 사 줬는데[27] 이정협은 하라는 게임은 안하고 축구만 고집했다고 한다.#

동래고 시절 최전방 스트라이커 치고는 골을 너무 못 넣는 것에 자책감을 느껴 축구를 관둘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동래고 감독인 박형주 감독이 밤늦게까지 설득을 해서 겨우 마음을 되돌렸다고. #.

2015년 3월 A매치 엔트리에 발탁되어 파주NFC에 와서 "파주가 처음인데 밥맛이 정말 맛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제대했으니 이젠 맛 없을걸.

부친이 추자도(제주시 추자면) 출신이라 아시안컵 기간 중에는 이정협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추자도에도 붙었다고 한다. 추자도 출신 축구선수 지동원과는 먼 친척 사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3월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왼쪽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이 있었는데 아직 흔적이 남아있는 걸로 보아 흉터로 남은 듯 하다.

최전방에서 쉼없이 상대 수비수들과 경합하고 어그로를 끄는 원톱의 특성상 큰 부상을 당할 뻔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고 결국 크게 다쳤다. 아시안컵 조별예선 3차전 호주전에서는 심하게 떠밀려 다칠뻔 했고 3월 우즈벡과의 평가전에서는 눈두덩이가 찢어졌고 동아시안컵 중국전에서는 발에 머리를 정통으로 맞을 뻔했고 북한전에서는 무릎을 찍혀 크게 다칠뻔 했다. 그러다 2015년 8월 26일 경남전에서 배효성의 악질파울에 의해 안면복합골절이라는 치명상을 입었다. 이 정도 큰 부상을 입으면 복귀 이후에도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일이 잦아서[28] 팬들의 걱정이 크다. 당시 상무 박항서 감독도 이를 우려했고, 심리치료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유리몸화?

2016년 울산으로 임대된 후, 팀에서는 부진한 활약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3월 24일 레바논전에서 귀신같이 결승골을 넣는 등 대표팀에서는 제 역할을 잘 해주는 모습이 보임에 따라 울산 팬덤 내에서는 그야말로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부상 후유증과 K리그 클래식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적응도 감안해야겠지만 팀에서는 삽질하는데 국대가면 날아다니는 모습이 결코 좋게만 보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즉, 상술했듯이 대표팀뿐만 아니라 평소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울산 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불행 중 다행으로 4월 9일 있었던 광주와의 경기에서 울산 소속으로 첫 골을 넣었고, 이후로도 한결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면서 리그에서도 조금씩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29]

여담으로 이전 버전에서는 이정협의 축구 인생을 일컬어 동년배 최강의 금수저라고 표현했었는데, 사실 금수저는 대부분 본인의 스펙이 아닌 가정의 재력을 기준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부적절한 비유다. 상술했듯이 이정협은 선배의 축구화를 물려받아 신을 정도로 좋지 못했던 형편 속에서 살아왔고, 유스 시절 자신의 부진한 실력에 회의를 느끼고 축구를 포기할 생각까지도 했던 선수다.[30] 이런저런 역경을 딛고 성공한 셈이니 금수저보다는 개천에서 용난다는 표현이 더 맞다. 다만 울산으로 임대되는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고, 본인도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듯. 앞으로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겠다.
  1. 2016년 3월 27일 기준. 대표팀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던 사우디전이 A매치로 인정이 안되어 공식적으론 4골이다.
  2. 실제로 조재진의 플레이스타일과 이정협의 플레이스타일은 매우 비슷하다. 전방에서 공을 따내거나 2선과의 연계 또는 공간을 열어주는 역할 등. 그리고 골 못 넣는다고 욕먹는 것도 똑같다...
  3. 상주 상무박항서 감독마저도 이정협의 아시안 컵 최종 엔트리 선출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잠재력이 무한하지만 아직 완성된 선수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4. 요즘은 주춤하지만,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명가 시대를 연 김호 감독과 철퇴대제 김호곤, 박성화 등 과거에 우수한 선수들을 배출했다. 효멘최용수도 동래고 출신. 최용수 이후로 한동안 잠잠하다가 이정협이 나와서 간만에 우승을 거두었다!
  5. 덕천중 재학시절 부터 당시 숭실대 감독이었던 윤성효가 친히 설득하여 동래고 진학 및 숭실대 진학까지 설득시켰다. 거기다 프로데뷔까지 시켜줬다.
  6. 여담으로, 이정협 말고도 윤성효가 이끌어준 또 다른 대표팀 선수가 박주호다.
  7. 사실, 해축빠들이 설레발치는 이승우, 장결희, 백승호도 본래 인천, 포항, 수원 유스에서 정성들여서 키우던 유망주를 바르셀로나가 편법으로 채간 것에 불과하다.
  8. 광주와의 경기 전 10위 광주와의 승점은 11점 차였으나 이 패배로 14점으로 벌어졌다. 하위스플릿의 남은 4경기를 전승해도, 그리고 광주가 4경기 전패해도 광주보다 무조건 2점 이상 승점이 뒤지게 되어 잘해야 11위 확정이 되었다.
  9. 이 날 중계중이던 부산 MBC 해설진도 선수들이 너무 자주 미끄러지는걸 언급하며 잔디문제를 거론했다.
  10. 하지만 양동현은 팀 스타일과 너무 안 맞아서 울산 현대로 이적시켰고, 부산은 제로톱으로 후반기를 보냈다.
  11. 1위는 서울 이랜드의 김재성
  12. 주민규도 전후반에 걸쳐 2골을 넣었지만, 팀 공헌도에 있어서는 이정협보다 떨어졌다. 왜 이정협이 챌린지 리그 MOM 1위에 올라 있는지 알만했던 시합.
  13. 최하위 대전과 승점차가 크기 때문에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뤄서 살아남을 가능성도 충분하지만, 챌린지의 서울이랜드FC나 대구FC가 만만한 전력이 아니라 장담을 못한다.
  14. 누가봐도 한참 늦은 타이밍에 헤딩경합 한답시고 이정협 얼굴을 냅다 들이받았다. 피흘리며 쓰러진 사람두고 헐리웃 아니냐고 억울함 어필하는건 덤. 결국 5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15. 이날 첫 골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비수의 자책골이었기 때문에, 이겨도 절반의 승리가 되었을 것이다.
  16. 참고로 황선홍 감독이 말한 절실함은 슈틸리케 감독이 이미 강조한 품성이었다.
  17. 각을 좁히고 나오던 오만 골키퍼 알 합시는 물론이고 한교원 조차 자신에게 공이 올줄 몰랐다. 게다가 빠르게 온것도 아니고 완만하게 휘어 날아와서 오만 수비수들이 충분히 대응가능했다.
  18. A매치 데뷔 골과 같은 슬라이딩 슛이었다.
  19. 나머지 4명은 아랍에미리트의 미드필더 오마르 압둘라흐만(알 아인), 호주의 마시모 루옹고(스윈던타운), 이란의 사르다르 아즈문(루빈 카잔), 카타르 수비수 압델카림 하산(알 사드).
  20. 둘 다 체격 조건이 좋아서 대표팀에서 원톱으로 기용하라고 말이 많았지만, 정작 리그에선 처진 스트라이커로 설 때 효율이 극대화되는 선수들로 전방에 혼자 세워놓은 적은 있어도 이정협처럼 수비수와 부대끼며 잠수타고 비벼서 체력 소모시키는 롤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선수들이다. 이 둘은 후방지원이 열악해지면 미들까지 내려와 버리거나 아예 고립된다.
  21. 11월 12일 미얀마전, 11월 17일 라오스전은 모두 이정협이 발탁되지 않은 채로 치뤄졌고 그 두 경기를 끝으로 2015년의 A매치는 막을 내렸다.
  22. 물론 외국인 선수는 제외하고라는 전제가 붙는다. 김신욱은 누누히 지적받았듯이 원톱재목이 아니며 박주영은 부상과 오랜 결장으로 제 컨디션을 못 찾아 현재로썬 K리그에 이정협만큼 중앙공격수의 역할을 이해하고 있는 선수는 없다.
  23. 다만 선수 등록은 이정호로 했기 때문에 2013 시즌에는 이정호란 이름으로 뛰었고, 2014 시즌부터 이원영이란 이름으로 뛰었다.
  24. 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141210134414737
  25. 정작 이정협을 개명하게 만든 이원영은 2014시즌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주장이 되긴 했으나, 시즌 중 계속된 부상으로 결국 수원에서 임대 온 연제민에게 주전에서 밀렸으며 결국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가 2016년 다시 복귀했다.
  26. 한국 학원 스포츠는 한 달에만 백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장비값이 많이 드는 스포츠는 더 하고.
  27. 사실 축구를 진로로 삼는 것이 싫었으면 이 방법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28. 이는 예전부터 흔한 사례였다. 설기현은 2002년 월드컵 직후 절정을 달리다가 2004년 안면골절을 당한 뒤 폼이 확 떨어졌고, 급기야 2006년 '설기현 역주행'이라는 흑역사마저 생겼다. 김용대는 올림픽 대표 시절 상대 공격수에게 걷어 차여 부상을 입은 이후 한동안 소극적인 플레이로 일관한 바 있으며, 정성룡도 과거 크로스바에 심하게 충돌해 부상을 입은 이후 이전만큼 몸을 던지지 않게 되었다. 또 이청용도 톰 밀러에게 발목이 아작난 후 부상 우려 때문에 슈팅에 굉장히 소극적이다. 물론 이청용은 본래 슈팅이 워낙 안습인게 더 크긴 하다만...
  29. 그래도 한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그도 엄연한 임대 신분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잘한다 한들 임대 기간이 끝나면 계약 연장을 추진하지 않는 이상 원 소속팀인 부산 아이파크로 돌아가야만 한다. 물론 선수 본인이 챌린지에서 더는 뛰기 싫다는 의사를 밝히긴 했다지만 개인의 감정과 리그의 규정은 별개의 문제이다. 만약 임대가 끝난 후에도 울산으로 임대될때처럼 다시 논란이 발생한다면 다소 이미지가 깎이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30. 다만 그런 사연들과는 별개로 축구 인생만 놓고 보면 손꼽히는 엘리트인건 맞다. 무려 기업 구단 유스+우선지명+축구부 있는 대학 진학+유망주에 대한 장기 계약+상주 상무 1차 합격+데뷔 1년차부터 계속 주전. 이만큼의 스펙을 전부 갖췄거나 이에 비벼볼 정도의 스펙을 가진 선수는 동년배에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