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브룩하이머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이름제리 브룩하이머
JERRY BRUCKHEIMER
분야영화
입성날짜2013년 6월 24일
위치6834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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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Jerry Bruckheimer
Mr. Blockbuster

1943년생, 미국의 영화 및 TV 제작자.

왕년에 매우 잘나갔던 헐리웃의 거물 제작자.

헐리웃에서 수도 없는 히트작을 만들어내었고 좀 시들했던 시기엔 CSI시리즈도 성공시킨 흥행의 마술사. 하지만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문서는 다있어도 그에 대한 문서는 없네

8~90년대엔 그야말로 만들었다하면 최소 중박은 터지는 영화 제작자였다.[1] 미국은 한국과 달리 제작자의 역할이 감독을 넘어서거나 감독에 버금갈만큼 엄청나다.[2] 일단 실제 물주들은 투자한만큼 벌어야 된다는 생각도 매우 강하니 그걸 충족시키기 위해서못벌어서 영화판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이름만 제작자가 아니라 실제 만드는 과정에도 감독만큼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본인들도 영화판 혹은 TV스튜디오에서라도 경험이 있다보니 최종편집권(영화의 완성도는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권한 중 하나라 배우들이 요구하는 경우도 매우많다.)을 요구하고 제리 브룩하이머의 경우도 굉장히 영화 및 드라마 전반에 관여한다. [3]

2 생애 및 경력

독일계 유태인 이민자의 자녀로 1943년 디트로이트에서 출생하였다. 처음에는 영화보다는 사진에 흥미를 보였었다. 이후 애리조나 대학교에 진학해 심리학을 전공하였고 이후 처음 일한 곳은 광고회사. 나름 CF를 기막히게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었다.[4] 심지어 광고 상도 타는등 인기를 끌었으나 그의 관심은 이미 영화로 옮겨졌다.

1972년 폴헬믹 제작자와 딕 리차드 감독과 함께 컬페퍼 캐틀 컴퍼니를 시작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며 조금씩 명성을 쌓아갔다. 이때만하더라도 아직 메인 제작자라기 보다는 메인 제작자 밑에서 역량을 닦는 수준이었는데 워낙 감각이 있다보니 조금씩 소문이 퍼져나갔다. 그 이후 리차드 기어가 주연한 1980년에 아메리칸 지골로를 만들어 커리어상 최초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여 헐리우드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본격적으로 헐리우드의 유명 제작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플래시댄스라는 그의 제작자로의 생애에 있어 최초의 빅히트 흥행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그의 영원한 파트너가 될뻔했던 돈 심슨과 최초로 공동제작한 작품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약 9천만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는데 1983년이라는 시기를 생각해보면 굉장한 대박이다.

돈 심슨이 사망하기 전까지 그와 계속해서 공동 제작을 해나갔는데 이후의 작품들이 모두 굉장한 흥행을 거두었다. 지금은 아는 사람도 드물지만 역시나 또 한물간 에디 머피를 당대의 영화배우로 올려준 비벌리힐즈 캅 시리즈나 탐 크루즈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는 탑 건, 크림슨 타이드, 윌 스미스를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려준 나쁜 녀석들등등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흥행으로 이끌었다.

돈 심슨과 브룩하이머의 합은 매우 좋았는데 스튜디오(영화 제작사)에서 바닥부터 일을 배워오며 커리어를 쌓아온 돈 심슨은 인간관계를 맺고 사람을 쓰는데 능했고 돈을 끌어오기 위해 경영진들과 협상하는 재주가 매우 좋았다. 그런 반면 브룩하이머는 영화 현장을 몸소 뛰며 감독과 얘기를 나누고 배우와 얘기를 나누고 비록 감독의 아주 고유한 부분은 컨트롤 하지 않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을 자기 스타일 대로 조정하면서 흥행작을 만들어냈다.[5] 바깥일과 안살림을 나눠서 잘하다보니 당연히 지속적인 흥행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둘의 관계는 더 록을 마지막으로 끝나게된다.[6]

이후 홀로서기를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 돈 심슨이 워낙 대인관계 및 협상에 능해서 제리 브룩하이머로써는 영화 제작 자체에만 힘을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오히려 더욱 승승장구 하게 된다.

1997년 콘 에어를 시작으로 독립한 제리 브룩하이머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한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끈 아마겟돈, 리멤버 타이탄, 코요테 어글리, 식스티 세컨즈등을 통하여 연속적으로 최소 중박의 흥행을 기록하며 2000년대 초반까지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다만 진주만이 생각보다 주춤하고 야심차게 만든 배드컴퍼니도 재미를 못보면서 시들하는듯했지만 블랙호크다운을 만들면서 작품성도 챙겨가기 시작했다.[7]

흥행력이 조금 주춤하다 싶은 평가를 받는 사이 2003년 캐리비안의 해적시리즈를 시작하며 다시 한번 파워를 과시했고 2004년 내셔널 트레져시리즈도 시작하면서 자신의 흥행력에 달린 물음표를 완전히 떼버렸다.

이와 동시에 1998년부터 티비에 슬쩍 슬쩍 손대기 시작했던 브룩하이머는 2000년 CSI시리즈를 총괄제작자로 만들었는데 배심원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쳐 미국 법조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까지 되어버릴 정도로 인기를 끌자 이를 스핀오프인 CSI : 마이애미CSI : 뉴욕등으로 확장시켜갔고 무려 16년이나 지속되어 2016년 CSI : cyber를 끝으로 대장정을 마쳤다.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TV 시리즈들을 런칭하였는데 사실 콜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다른 시리즈중에는 재미 본것이 없었다.

CSI가 승승장구하던 2000년대 중반 무렵부터 슬슬 그의 흥행력에 대해서 의문이 붙었는데 2007년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를 마지막으로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큰 재미를 보지 못했는데 심지어 2007년부터 2010년 후반이 다될때까지 마지막 흥행작은 안습하게도 여전히 시리즈의 힘에 기댄 2011년 캐리비안의 해적:낯선조류 밖에 없었다.[8]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 근 20년간 할리우드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인물이지만 이제는 TV에서도 영화에서도 힘을 못쓰고 있다. 2016년을 기준으로 70살이 넘은 나이를 생각해보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3 평가

최고의 프로듀서였으나 온갖 감독의 권한을 침해하고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감독을 누르기보다는 감독의 스타일을 읽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거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흥행성을 더하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블록버스터하면 아주 지겨울 정도로 비슷한데 이 시초가 제리 브룩하이머였다. 때려부시고 날리고 폭발시키고 자동차 경주하고 난사하는 식의 스타일을 영화에 적절하게 접목시킨게 바로 제리 브룩하이머. 어느 정도의 액션신이 할리우드에 존재했던 것은 맞지만 정말 돈이 아까울 정도로 몽땅 가져다 때려 부시는 스타일은 제리 브룩하이머와 돈 심슨이 할리우드 영화계에 불어넣은 일종의 혁신이었다. 이는 그의 후계자 마이클베이의 트랜스포머시리즈에서 극대화된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영화를 너무 단순한 오락거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나름 감독이나 작가가 자신의 철학이나 생각을 영화로 표현하고 그것을 관객에게 전파하는게 영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맞지만 영화라는게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탄생된게 아니라 하나의 오락으로 발전했음을 고려해본다는 브룩하이머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이와는 조금 과한 측면이 있다.

또한 프로듀서라는 개념이 잘 잡혀있지만 스필버그나 리들리 스콧같은 거장들에 의해서 조금 퇴색되던 의미를 다시 부활시킨 장본인이었다. 아주 예전 스튜디오에서 강제적으로 스탭진을 선정하고 그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오라는 식의 경영진에 의한 영화 시대가 있었다면 이후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코폴라, 스필버그등의 감독 위주의 시대가 도래할 때쯤 제작자가 영화의 성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며 지금의 현 헐리우드 시스템을 완성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

4 트리비아

  • 자기의 작품에 특유의 번개맞는 나무를 넣는데 제작자로써 이름을 넣어 영화 초반에 내보내는 것은 그의 힘을 어느정도 였는지를 보여주는 증거
  1. 제작자라는 개념이 미국과 우리는 좀 많이 다른데 우리나라는 대체적으로 영화 자본을 대는 회사의 대표들이 제작자라는 명함을 맡는다. 영화의 전반에 관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의 전권을 감독에게 쥐어주는 경우가 많다. 한때 미국처럼 제작자들이 설치던 시기도 있었으나 제작자 대부분들이 영화적인 개념조차 없는 시기에 일어났던 일이라 지금은 감독에게 맡겨주는 경우가 많다. 다만 역시나 돈과 관련된 내용이라 여전히 제작자들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입김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한국 영화계는 감독의 예술인 경우가 많다.
  2. 다만 스티븐 스필버그리들리 스콧들은 예외인데 한국에서 박찬욱, 봉준호정도 되는 감독들은 제작자들의 터치를 거의 받지 않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다.
  3. 실제로 영화의 시작은 파워있는 감독들이 아니면 거의 제작자로부터 시작한다. 걸출한 시나리오를 찾아내거나 혹은 기막힌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서 작가에게 살을 붙여오라고 시키는 식으로 영화 전반의 설계를 담당한다.
  4. 훗날 CF감독으로 이름났던 마이클 베이를 키워주게 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5.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영화는 만드는 감독은 망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을 정도로 영화 제작 과정에도 굉장한 영향력을 끼쳤다. 좋게말하면 바른 길로 잡아주는 것이지만 감독들에게는 그냥 짜증나는 고역 그 자체의 인물. 토니 스콧이나 자기가 발굴한 마이클 베이를 제외하면 시리즈를 빼놓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감독은 거의 없었다.마이클 베이도 어느정도 크고나서는 바로 도망쳤지
  6. 이유는 돈 심슨은 심각한 마약중독이었고 그러다보니 일을 태만하게 하는 측면이 있어 나름 브룩하이머로서는 강경책으로 나섰는데 문제는 더 록을 촬영하는 도중 돈 심슨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을 겪게된다. 더록의 마지막에 돈심슨에게 바친다는 문구가 나오는 것도 이 이유 때문
  7. 제리 브룩하이머의 작품중에서 평론가들에게 작품성으로 인정받는 작품은 몇개 되지 않는데 그래도 아주 대놓고 흥행만 노린 작품만 있는 것도 아니다.
  8. 작품성은 물론 재미에 있어서도 캐리비안 시리즈중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새로 런칭했다면 분명히 망했겠지만 워낙 여태까지 해놓은게 많아서 10억불이 넘는 큰 흥행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