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봉준호(奉俊昊) |
출생 | 1969년 9월 14일 대구광역시 |
본관 | 하음 봉씨 |
학력 | 잠실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사회학 학사 |
데뷔 | 1994년 영화 《백색인》 |
가족 | 아버지 봉상균, 어머니 박소영, 4남매 중 막내 |
수상 | 2014년 제50회 백상예술대상 베스트 감독상 |
영화에서 인물은 꼭두각시처럼 움직이지만, 봉준호의 영화에선 괴물조차 인간적 감정을 가진다. - 카예 뒤 시네마 전 편집장 장 미셸 프로동
대중과 평단 양 쪽 모두에서 격찬을 받는 매우 드문 감독 - 영화평론가 이동진
1 개요
한국의 현 영화감독으로 할리우드에서 성공적인 입지를 다진 한국인 영화감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 대한민국의 대표 감독들인 박찬욱, 류승완, 김지운과 영화광 2세대 감독으로 분류된다. 1969년 9월 14일 대구 출생으로 2남 2녀 중 차남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래픽디자이너이자 영남대, 서울산업대 등에서 교수를 역임했던 봉상균이고, 어머니는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둘째 딸인 박소영이다. 한때 만화가를 꿈꿨으며 지금도 스토리보드를 직접 작성하는 미술적 능력은 일정 부분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인되고 있으며,[1] 이래서 봉준호의 빼어난 시나리오 집필 능력에 대해 외할아버지의 문학 재능이 유전된 것이란 의견도 있다. 그밖에도 큰 형인 봉준수는 교수(서울대 영문학)이며 누나인 봉지희는 패션디자이너인 지식인 집안이자 예술가 집안 출신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대구에서 살았으며# 잠실 장미아파트에서 고3 시절(87년) 을 보냈다.[2] 일찍부터 영화 감독을 꿈꿨으나 부모가 좋아하지 않아 영화관에 자주 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1988년에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는데… 80년대 학번, 60년대생. 그렇다. 전형적인 386세대, 게다가 소속 학과가 당시 민중민주(PD) 계열의 중심지[3]로서 이론적이면서도 행동은 과격한 운동권의 온상이었던지라 시위 꽤나 한 모양.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삐라에 만화 정도만 그려주는 날라리 운동권"이었다고 겸손(?)하게 밝혔다. [4] 다만 그런 와중에도 영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 같은 해 잠시, 아주 잠시 영화사 알바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후 군 복무를 하게 됐는데, 당시 후임으로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영화 연출을 하고 싶어했으나 마땅한 방법을 몰랐던 봉준호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이었던 정윤철에게 영화 만드는 법을 간단히 배워 휴가를 나와 첫 단편을 촬영했다고 한다. 흠좀무. 그후 1993년에 11기로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백색인(1993)' '지리멸렬(1994)' 등의 작품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 감독 경력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상업영화계에 데뷔하였으나 전국 관객 10만에 그치며 흥행에서 참패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비교적 좋게 평가했으나, 지나치게 소품이었는데다가 특유의 '삑사리' 유머가 아직 가다듬어지지 않았던 터라, 소수의 관객에게만 환영받으며 일종의 컬트 영화가 되어버렸다. 이후 유명세를 타게 된 봉준호는, 이 때 '플란다스의 개'에 대해 호의적 재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에 약간은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5]
하지만 봉준호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두 번째 작품 '살인의 추억'으로 성공가도를 걷게 되었다. 이 작품은 평단의 호평뿐만 아니라, 5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흥행에 대성공함으로써, 봉준호라는 이름을 대중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후 그의 야심작 '괴물'이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에 이어 한국 영화사상 네 번째로 1000만 관객 달성에 성공함으로써 흥행 보증수표로서 확실한 인정을 받게 된다. 괴물의 최종 관객수는 1301만 9740명.
2009년 6월 네 번째 장편 영화인 '마더'를 발표하여 평단의 호평과 동시에 관객 몰이에 성공, 300만 이상의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단,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사를 받았던 기존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어느정도 호의적이지만 약간 엇갈리는 면도 있으며, 각종 포털 사이트의 네티즌 평점도 역대 봉준호 작품 중에서 가장 낮다. 포털 사이트의 평점이 믿을 만 한게 못되긴 하지만...
2013년 8월 프랑스의 SF 만화를 원작으로 한 '설국열차'를 개봉했다. 이 영화는 봉준호의 헐리우드 진출작으로 오해받기도 하나 실은 한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합작 영화로서 CJ E&M에서 제작비 430억 원 전액을 부담했으며 제작자는 영화 감독 박찬욱이다.[6] 최종 관객수는 934만 2506명으로 '아이언맨 3'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900만대의 관객 동원 영화가 되었다. 동시에 코믹스 원작 영화 중 국내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또한 영화 개봉 이전에 167개국에 사전 판매를 한 덕분에 제작비의 절반을 회수해서 손익분기점은 640만 관객으로 낮추어졌다고 한다. 결과론적으로 흥행에 성공.
그의 영화는 장르의 전형성을 살짝 비틀고[7]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방식으로,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는 대다수 일반 관객, 진지한 메시지를 찾고자 하는 지식인층, 관습 파괴를 원하는 영화광들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 여담 및 일화
- 영화를 만들면서 사소한 부분까지 치밀하게 복선을 배치한다고 봉준호의 디테일이란 뜻의 '봉테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8] 그런데 이 별명 때문에 앞서 나간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마더'에서 고물상 벽에 걸린 일력의 날짜에 대해서도 거기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봉준호 본인이 밝힌 바로는 "그 달력, 소품팀에서 그냥 갖다 놓았거든요." 실제로 본인은 봉테일이라는 별명은 싫어한다고. 숨겨진 암시 찾는다고 하다가 정작 중요한 부분은 놓치는 걸 우려하는 경향이 있다.(하지만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와 김상경이 책상에서 엎드려 이야기하다가 백강호를 찾으러 높으신 분들을 밀치며 갑자기 나가는 장면을 잘보면 뒷쪽에 빨간 등이 깜박거리는데, 이는 경찰에서 높으신 분들이 올때를 대비해 설치한 일종의 경보기라고 한다.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고(애초에 아웃포커싱이 돼있다) 코멘터리로 감독이 설명해서야 알려졌다.)
- 봉준호 감독 세대 기준으로 볼 때는 만화광이기도 하다. 위에서 나온 것처럼 어릴 적 꿈이 만화가이었기도 하지만, '지리멸렬'로 당시 장준환 감독과 함께 신세대 감독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어떤 영화 잡지에 자신의 영화 Best 10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중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미래소년 코난'이 들어 있었다. 살인의추억의 시대에 대한 묘사에 영감을 준것중 하나는 앨런 무어의 프롬 헬이라는 작품이다.살인의 추억의 감독 · 비판자 · 지지자가 가진 3角 대담
- 알고보니 故김기영감독과 독특한 인연이 있었다. 우연히 김기영 감독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영화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고 한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가르치다 은퇴한 봉준호 감독의 아버지가 60년대 국립영화제작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부수입 활동으로 김기영 감독 영화의 자막 작업을 했다. 실제로 프랑스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열린 김기영 감독 회고전에서 영화 '하녀'를 프린트로 보면 확인할 수 있다.봉준호 "아버지가 故김기영 감독 '하녀'에 참여"
- 잘생기기만 한 배우에겐 별 매력을 느끼진 못한다고 한다. 그러서인지 그의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배우들은 송강호처럼 외모보단 연기로 승부하는 배우이거나 원빈처럼 외모가 되는 배우는 봉준호가 후줄근한 패션이나 어눌한 연기로 미모를 얼룩져 놓는다.
김상경은 좀 애매한 듯?대표적인 피해자는 '마더'의 원빈.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원빈이 원빈이 아닌 평범하게 이쁜 동네 바보로 보였다"고 평했다. 봉준호는 후에 '아저씨'를 보고 이렇게 멋진 원빈 씨를 그렇게(…) 만들어 놔서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 그러나 취향에 맞는 미남 배우들한테는 관심을 보이는 발언을 자주 한다. 박해일은 아름답게 생겨서 여자였으면 연애하자고 쫓아다녔을 것이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고, '살인의 추억'을 찍을 당시 다른 배우는 대충 찍는데 박해일 나오는 장면만 조명부터 하나하나 신경을 지나치게 써서 다른 배우들이 너무하다고 한 적도 있다. 강동원은 순정만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이 아름다워 꼭 같이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한 적도 있다. '한밤의 티비 연예'에서 원빈과 영화를 찍을때 강동원이 찾아와 둘이 대화하는 장면을 보며 눈보신한 추억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은근 탐미주의자인듯.
- 먹는 것에 거의 목숨을 건다. 현장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으면 촬영을 안 하려고 하는데 그것도 꼭 두 번째로 내린 에스프레소만 먹는다고 한다. 스탭들이 봉준호와 작업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실력과 명성도 있지만 밥 시간은 칼같이 지키기 때문이라고. 본인이 배고프면 속행을 못 할 지경이라고 하니… 밥 먹을 때가 됐는데 테이크가 길어지면 짜증을 낸다고 한다.
-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과 친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동기며, '살인의 추억'을 만들 당시 서로 동고동락했으며 제작사도 같은 '싸이더스'였다.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가 쫄딱 망해서 싸이더스가 경영난에 처했다가 구원 등판해서 세이브를 올린 게 '살인의 추억'이라 장준환 감독이 많이 묻히게 됐다. 안습. 이후 '지구를 지켜라'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재조명되었고, "장준환이 모짜르트라면 봉준호는 살리에리"라는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의 발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 봉준호는 베토벤 정도?
- 영화 감독 모임 '자랑과 험담[9]' 멤버이기도 하다. 남 험담하는 이 모임에서 특히 뮤* 잇 셀프라는 공연기획사의 김 모 대표를 깐다는데, 누구냐(…) 음악가라는 것 밖에는 밝혀진 것이 없다.
- '괴물' 개봉 후 일본에서 우라사와 나오키와의 대담을 가지기도 했다.# 소문에 의하면 이 때 '20세기 소년' 영화판 감독을 제의 받았는데 '설국열차' 때문에 무산되었다 카더라. 또는 우라사와 나오키가 거부하여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그 전에 싼 값에 영화화 판권을 팔아치운 '올드보이'가 큰 성공을 거두자 일본 출판업계에서 한국 쪽으로 판권을 팔지 말자는 의견이 나와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10] 그러나 2009년 익스트림 무비와의 인터뷰를 통해 봉준호 자신이 직접 이유를 밝혔다. 제의가 들어왔으나 영화 제작에 원작자인 우라사와 나오키의 개입이 지나친 듯 해 거절했다는 것.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에 억울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 고현정과 함께 2010년형 뉴 SM5의 광고 모델을 하기도 했다.
- 다른 감독들이 연기적 재능을 높이 사주는 건지, 아니면 단순한 친목질의 결과인지 몰라도 까메오 출연이 잦은 편이다.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형사로 깜짝 출연한 바 있고,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에서는 영어학원에서 나름 유창하게 영어를 선보이는 직장인 역을 맡았다. 2012년 4월 개봉한 인류멸망보고서에도 아스트랄한 시민단체 간사로 까메오 출연.
- 문신이 있다. 2009년에 '마더' 개봉 기념으로 홍경표 촬영감독[11]과 함께 홍대 앞 타투가게를 들러서 왼쪽 팔부터 가슴까지 '마더'의 한 장면에 나온 나무와 새를 그렸다고 한다.
- 일본 소설가 미야베 미유키가 그의 광팬. 얼마나 팬이었으면 그의 시사회에 방문해서 자신의 작품 영화화도 원한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그런데 정작 봉준호 감독은 미야베 미유키를 몰랐다...말하자면 실례지만 누구시죠?
- 봉준호가 연출한 영화들에서 주연을 가장 많이 맡은 배우는 송강호로서,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 역, '괴물'의 박강두 역, '설국열차'의 남궁민수 역을 맡았다. 변희봉도 비중 있는 조연으로 봉 감독의 영화에 계속 얼굴을 비추는데 '플란다스의 개'에서 경비원 역, '살인의 추억'에서 구반장 역, '괴물'에서 할아버지 박희봉 역을 맡았다. 권병길은 '살인의 추억'에서 폭력 형사 다리 자르는 의사 역, '괴물'에서 미국 관계자에게 벌벌 기는 격리 공간 의사 역, '마더'에서 뺑소니 치는 대학 교수 역을 맡아 단역에 가까운 조연으로 계속 출연했다.
- 김뢰하는 첫 영화인 '플란다스의 개'에서 부랑자 역을 맡은 것을 비롯해서 '살인의 추억'에서 조용구 형사 역, '괴물에서 분향소에서 사람들을 소개하던 정부 관계자역을 맡아서 계속 출연했다. 변희봉 씨와 마찬가지로 마더에서 자기 역할이 있을 줄 알고 기대했다가 없는 걸 알고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아마추어 감독 시절 단편 촬영을 위해 섭외되며 봉준호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봉준호는 출연료로 줄 돈이 없어서 김뢰하에게 사과하며 지갑에 있던 아버지의 정장 브랜드 와이셔츠 교환권을 내밀었다고 한다. 이후 봉준호의 영화에 캐스팅 되어 이름을 날렸으니 윈윈인 셈.
- 뮤지컬을 싫어한다. 제 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평생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찍을 수 없는 장르는 뮤지컬이다. 갑자기 노래하는 뮤지컬 영화는 오글거려 도저히 못 하겠다. 노래가 시작 될때의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 그런 반면 의외로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연출 경력이 조금 있다. 막 <플란다스의 개>를 찍었을 무렵인 2000년 경 김돈규의 <단>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고 <살인의 추억>으로 빵 뜬 이후인 2004년, 한영애의 <외로운 가로등>의 뮤비를 연출하기도 했다. 후자는 "아 이건 봉준호가 찍었구나" 싶은 뮤비인데 반해 전자인 <단>의 뮤비는, 당대에 유행했던 스타일을 충실하게 따른 매끈한 주류 뮤비라는 점이 포인트. 생신인 시절의 박해일이나 청춘스타 시절의 배두나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무엇보다 훗날 연출하게 되는 설국열차의 메인 모티브가 이 뮤비를 통해 십몇년 먼저 등장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메인콘티인 지하철 추격전이나 노래의 중반, 광각의 스테디캠으로 잡은 인테리어 쇼는 확실히 설국열차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 2013년 설국열차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고교생 아들이 조언도 하고 혹평도 해줬다는 것을 보면 현재(2016년)는 성인일듯.
- 올레TV 안내채널(3번)에서 한국아카데미 특집에 출현하여 방청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한 방청객이 어떻게 이야기를 잘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의 내면에 변태끼(?)가 있다고 실토하였다. (이는 창작을 하는데 상상의 한계를 가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항간에서 봉준호 감독을 언급할 때마다 항상 나오는 수식어가 "천재 봉 감독" 이라고 하지만, 본인은 이런 말을 싫어한다고. 봉준호 감독의 주변에서도 평가하길 그저 놀고 먹다 갑자기 영빨 받아 툭 나오는 일반적인 천재과가 아니라 굉장히 집요하게 파고들고 파고드는 강박형이라고 한다. 일례로 700~1500 컷 정도 쓰는 영화에서 콘티 작업만 만 컷이 넘게 만들며, 영화 마더에서는 아예 촬영이 되는 동네에서 살면서 그 동네의 지리를 지도로 스스로 그릴 정도로 완벽하게 분석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마더를 촬영 할 배우 김혜자를 상대로 기본 30~40 테이크를 들어간 것은 유명한 일화. 영화 괴물 때는 전문가들이나 보는 CG 전문지를 구독하며 6개월 동안 독학하며 공부했다고 하며, 괴물이 불에 타는 장면을 위해 전문가들이나 알 법한 유체 시뮬레이션은 몇 차례씩 바꿔가며 선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국 Fume FX 나 플루이드 등의 프로그램은 비싸서 제일 싼 것을 중 괜찮은 걸 우선 썼다고). 그 유명한 살인의 추억은 무려 17고나 나온 시나리오이다. 보통 3고~7고 쯤에 영화가 촬영 되는 것을 볼 때, 그의 어마어마한 집념을 볼 수 있다.
4 필모그래피
4.1 연출
연도 | 제목 | 관객수 | 흥행 |
2017 [13] | 옥자 | ||
2013 | 설국열차 | 934만명 | 성공 |
2009 | 마더 | 301만명 | 성공 |
2008 | 흔들리는 도쿄[14] | 단편 영화 | - |
2006 | 괴물 | 1,301만명 | 성공 |
2004 | 인플루엔자 | 단편 영화 | - |
2003 | 살인의 추억 | 525만명 | 성공 |
2000 | 플란다스의 개 | 10만명 | 실패 |
1994 | 백색인 | 단편 영화 | - |
1994 | 지리멸렬 | 단편 영화 | - |
4.2 각본
연도 | 제목 | 비고 |
1994 | 지리멸렬 | |
1996 |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 | |
1997 | 모텔 선인장 | |
1999 | 유령 | |
2000 | 플란다스의 개 | |
2003 | 살인의 추억 | |
2005 | 남극일기 | |
2006 | 괴물 | |
2008 | 흔들리는 도쿄 | |
2009 | 마더 | |
2013 | 설국열차 | |
2014 | 해무 | |
2017 | 옥자 |
4.3 제작, 기획, 출연
연도 | 제목 | 비고 |
2014 | 해무 | 기획, 제작 |
2011 | 인류멸망보고서 | cameo, 패널 이준호 (옳은시선연대 상임 간사)役 |
2009 | 미쓰 홍당무 | cameo, 학원 수강생 회사원 |
2002 | 피도 눈물도 없이 | cameo, 취조 형사 |
5 수상 내역
연도 | 수상 | 작품 |
2014 | 제14회 디렉터스 컷 어워드 올해의 감독상 | 설국열차 |
2014 | 제5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 설국열차 |
2014 | 제5회 올해의 영화상 감독상 | 설국열차 |
2013 | 제3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 설국열차 |
2013 | 제3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 | 설국열차 |
2013 | 제34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 설국열차 |
2013 | 제22회 부일영화상 최우수작품상 | 설국열차 |
2011 | 미국 캔자스시티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마더 |
2010 | 미국 온라인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마더 |
2010 | 미국 남동부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마더 |
2010 | 미국 샌프란시스코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마더 |
2010 | 미국 보스톤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영화상 | 마더 |
2010 | 제28회 뮌헨 국제영화제 Arri 상 | 마더 |
2010 | 제5회 Asia-Pacific Producers Network 어워드 감독상 | 마더 |
2010 | 제2회 그린 플래닛 영화상 최우수외국영화상 | 마더 |
2010 | 제2회 그린 플래닛 영화상 최우수외국감독상 | 마더 |
2010 | 제2회 그린 플래닛 영화상 최우수외국드라마상 | 마더 |
2010 | 제2회 그린 플래닛 영화상 최우수외국문화영화상 | 마더 |
2010 | 제4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 최우수작품상 | 마더 |
2010 | 제4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 최우수각본상 | 마더 |
2010 | 제25회 산타바바라 국제영화제 이스트 미츠 웨스트 시네마 상 | 마더 |
2010 | 제1회 올해의 영화상 작품상 | 마더 |
2009 | 제22회 일본 닛칸스포츠영화상 외국작품상 수상 | 마더 |
2009 | 제6회 두바이국제영화제 아시아-아프리카 장편극 영화부분 각본상 | 마더 |
2009 | 제24회 마르델플라타 영화제 SIGNIS Award(국제 경쟁 부문 중 최고영화상) | 마더 |
2009 | 제5회 대한민국 대학 영화제 감독상 | 마더 |
2009 | 제30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 마더 |
2009 | 제2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 마더 |
2009 | 제2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 | 마더 |
2009 | 제10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 마더 |
2009 | 제18회 부일영화상 최우수작품상 | 마더 |
2007 | 제44회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 | 괴물 |
2007 | 제25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 금까마귀상 | 괴물 |
2007 | 제4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 괴물 |
2007 | 제1회 아시아 필름 어워드 최우수작품상 | 괴물 |
2007 | 제27회 오포르토 국제 영화제 감독상 | 괴물 |
2007 | 제4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감독상 | 괴물 |
2006 | 제27회 청룡영화상 한국영화 최다관객상 | 괴물 |
2006 | 제27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 괴물 |
2006 | 제5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감독상 | 괴물 |
2006 | 제7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심사위원특별상 | 괴물 |
2006 | 제39회 시체스영화제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최우수작품상 | 괴물 |
2004 | 제1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감독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11회 춘사영화상 감독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11회 춘사영화상 춘사대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11회 춘사영화상 각본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2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감독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2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각본각색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16회 도쿄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51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은조개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51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FIPRESCI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51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 | 살인의 추억 |
2003 | 제40회 대종상 영화제 감독상 | 살인의 추억 |
2001 | 제19회 뮌헨국제영화제 Young Asian Film부문 신인감독상(High Hope Award) | 플란다스의 개 |
2001 | 제25회 홍콩 국제 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FIPRESCI Award) | 플란다스의 개 |
2000 | 제3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신인감독상 | 플란다스의 개 |
6 필수 요소
봉준호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들. 중요한 국면 전환 등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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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적 순간에 넘어지거나 물건을 떨어뜨리기
- '플란다스의 개'에서 아파트 복도를 달리던 배두나가 갑자기 열린 현관문에 부딪혀 뒤로 자빠진다.
- '살인의 추억'에서 사건 현장인 벼 베기를 마친 논으로 내려오던 구 반장(변희봉 분)과 감식반원이 논두렁에서 미끄러져 넘어진다.
- '괴물'에서 남일이 괴물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준비한 화염병이 손에서 미끄러져 허무하게 깨져버리기도 한다.
- '괴물'에서 괴물도 한강 둔치의 경사로를 내려오다 미끄러진다.
- '흔들리는 도쿄'에서는 주인공(가가와 데루유키 분)이 히키코모리가 된 문신녀(아오이 유 분)를 구하러 갈 때, 덩굴에 얽힌 낡은 자전거를 억지로 타고 가려다 자빠질 뻔 한다.
- '설국열차' 중반부 도끼 싸움 장면에서 커티스가 생선을 밟고 자빠진다..
- 날아차기
- '플란다스의 개'에서 현남(배두나)이 술에 취해 부수겠다고 낑낑대던 사이드미러를 현남의 친구 장미(뚱녀)가 날아차기로 부순다.
- '괴물'에서는 박해일이 송강호에게 장례식장에서 날아차기를 한다.
- '살인의 추억'에서도 송강호가 증언을 번복한 용의자에게 날아차기로 응수. 또한 조용구 역을 맡은 김뢰하도 용의자들을 체포할 때 날아차기로 체포한다.
- '마더'에서는 진태(진구)가 '플란다스의 개'에서 나왔던 것처럼 날아차기로 사이드미러를 부수는 장면이 나온다. 도준(원빈)은 이에 진태를 따라 자동차 사이드미러를 날아차기로 박살내려다가 발이 닿지도 못하고 넘어지는데, 삑사리에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 갈대밭
- 지하 공간
- 소녀의 죽음
7 외부 링크
대배우라는 이들이 열심히 하는 건 한국과 똑같더라
할리우드와 일해보니 한국 스태프의 우수성 실감돼
정성일과 봉준호의 인터뷰Part1 Part2
- ↑ 영화 '마더'의 스토리보드를 일부분 실은 '마더이야기'란 책이 있다. 봉준호의 그림체를 확인하고 싶다면 한번 보시길. 기타 등등 부분에 있는 우라사와 나오키와의 대담에 따르면 '플란다스의 개'부터 '괴물'까지 작업하는 동안 본 만화가 각각 '해피!', '몬스터', '20세기 소년'이라고 한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그림에 영향을 받은 듯.
- ↑ '살인의 추억' 코멘터리에서 본인이 잠실고등학교를 다녔다고 밝혔다.
- ↑ 그래서인지 19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 ↑ 기존 버전에 "1990년에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된 경력이 있는만큼 그리 설렁설렁 운동하는 부류는 아니었던 듯하다."라고 되어있었으나, 그 당시엔 현장에 지나가던 학생도 경찰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개패듯 두들겨패고 헤드락 걸면서 연행해가던 게 일상이었다. 구속 경력이 있다 하여 반드시 운동의 잔뼈가 굵다고 단정짓긴 힘들다.
- ↑ 개봉 당시에 비평가들의 의견은 한 마디로 "신선하다"와 "썰렁하다"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중 후자에 방점을 찍는 이도 있었지만 혹평이라고 할 만큼 심하게 문제점을 지적하는 평론가들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봉준호 개인이 어떻게 느끼고 표현했던 간에, '플란다스의 개'는 처음으로 공개된 당시부터 충분히 격려받은 작품이다.
- ↑ 반대로 비슷한 시기에 박찬욱, 김지운 감독이 각각 찍은 '스토커', '라스트 스탠드'는 헐리우드 영화가 맞다.
- ↑ '괴물'은 제목부터 괴수물임에도 (진짜 장르는 가족을 다룬 드라마지만) 시작하자마자 밝은 대낮에 괴물의 모습이 그대로 나오며, '살인의 추억'은 미스터리 스릴러임에도 범인의 정체가 나오지 않는다. 사건 당시를 기억하는 한국인이야 결말을 알겠지만 사전 지식이 없는 외국인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 ↑ IMDB에서도 닉네임이 봉테일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 ↑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김지운, 임필성 등으로 구성된 감독모임. 자기 자랑과 남의 험담을 주로 한다고 하여 김지운 감독이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 ↑ 실제로 일본 만화 '맨홀'이 이런 여론 속에 원작자가 한국 업체에 영화화 판권을 팔려다가 그만둔 바 있다.
- ↑ 설국열차에서도 함께 작업했다.
- ↑ 1. 400번의 구타 - 프랑소와 트뤼포, 2. 파니와 알렉산더 극장판 - 잉마르 베리만, 3. 나라야마 부시코 (1958) - 키노시타 케이스케, 4. 다가올 세상 - 윌리엄 카메론 멘지스, 5. 로라 몽떼 - 막스 오퓔스, 6. 내쉬빌 - 로버트 알트만, 7. 인생은 달콤하다 - 마이크 리, 8.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 - 니콜라스 뢰그, 9.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 웨스 앤더슨, 10. 존 말코비치 되기 - 스파이크 존즈
- ↑ 개봉 예정 연도에 대해서는 확실히 정해진 바는 없으나, 많은 언론에서 개봉 날짜를 2017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 ↑ 영화 도쿄!에서 봉준호가 연출한 세 번째 단편.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각기 미셸 공드리와 네오 카락스가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