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 이념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 문서를 열람할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한 문서의 악의적 서술 · 편집은 민사 · 형사 상 소송이 발생할 여지가 있습니다.
趙淵夏
1924년 05월 17일 - 2006년 08월 28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호는 춘산(春山)이다.
1924년 전라남도 순천군에서 태어났다. 순천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농업경제학과 4학년 재학 중이던 1950년 6.25 전쟁으로 중퇴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승주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순천시-승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조경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우경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 후 육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였다. 고문당한 내용은 해당 기사에 있는데 아래와 같다.
한 50대 민간인이 연행돼 들어왔다. 옷을 벗기고 군 작업복으로 갈아입힌다. 이어 의사가 건강상태를 점검했다. 의사는 책임자에게 "혈압이 높으니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중앙정보부에 끌려왔으니 누구라도 호흡이 가빠지고 혈압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지병이 있을 경우 목숨을 잃는 사고가 터지기도 한다.담당수사관은 "사실대로만 얘기하면 곧 나갈 수 있어요"라며 점잖게 취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년전 잡혀왔을 때도 심문하던 수사관으로 기억이 되살아났다.
조사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순조롭게 진전되지 않았다.
수사관이 바뀌더니 2인조 고문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주먹질과 각목 구타가 이어졌다. 고문자들은 기가 빠진 그를 지하실로 끌고 들어갔다.
의자에 앉혀 손발을 묶고 고개를 뒤로 젖혀 얼굴에 물을 부었다.
그래도 묻는 말에 원하는 대답이 안 나오자 고문자들은 그를 어떤 작은 방에 집어 넣었다. 진공실 고문이었다. 조금 있으니 얼굴과 가슴이 바깥으로 찢어지는 것 같고 몸뚱이 전체가 공중에 둥둥 뜨는 듯했다. 비명을 지르려 해도 목소리가 안 나오고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았다.
이후 1984년까지 정치활동 피규제자로 묶여 있었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상임운영위원을 지내다가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소속으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선거구에 출마해 민주정의당 김기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 10월부터 다음 해인 1986년 10월까지 김녹영의 뒤를 이어 제12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으로 활동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동교동계가 이용희를 밀어주려 했는데 이에 대해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해당 국회부의장 선출 파동으로 인해 당내에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