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

1 삼국시대의 인물

趙咨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 위나라의 인물로 자는 덕도(德度).

남양 출신으로 들은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아 같이 응대하면 말주변이 좋았으며, 221년에 손권이 오왕이 되자 중대부가 되어 위나라로 사신으로 갈 때 조비와의 문답으로 유명해 이것이 거재두량의 유래가 된다.

1.1 주석에서의 조비와의 문답

조비가 기쁘게 여기면서 농담으로 조자에게 물었다.

오왕은 학문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는 있습니까?

이에 대답했다.

저희 주인께서는 1만 척의 군선을 강에 띄우고 무장 군사 백만을 거느리시면서 현명한 인재를 발탁해 일을 맡기시고, 항상 경략에 뜻을 두고 계십니다. 잠시라도 여가가 나면 경전과 사적을 섭렵해 큰 뜻을 터득하시니 서생들처럼 문장이나 찾고 구절이나 외우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조비는 조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위협하는 말투로 다시 물었다.

만약 내가 오나라를 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소?

조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큰 나라에는 작은 나라를 정복하는 무력이 있고, 작은 나라에는 큰 나라를 막아 내는 방책이 있는 법입니다.

조비가 곧 다그쳐 물었다.

그대의 오나라가 우리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조자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저의 오나라에는 백만의 용사들이 있으며, 장강이라는 전혜의 요새를 차지하고 있어서 무엇으로든지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할 수 있습니다.

조비는 조자의 태도와 말솜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태도를 바꾸어 친철한 말투로 조자에게 물었다.

오나라에는 그대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있소?

특히 총명하고 뛰어난 인재는 8, 90명 될 것이고 저와 같은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수레에 싣고 말로 되어도, 그 수를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조자는 오나라에 돌아와서 손권에게 더욱 중용되었으며, 기도위에 봉해졌다.

1.2 오주전 본전에서의 문답

도위 조자를 사자로 하여 위나라로 파견되어 조비가 조자에게 질문했다.

오나라의 왕은 어떤 군주인가?

조자가 대답했다.

총명하고 어질며, 지혜롭고 웅대하고 재략이 있는 군주입니다.

위문제는 구체적인 상황을 물었고, 조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보통 사람들 속에서 노숙을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그의 총명함입니다. 보통 병사들 가운데서 여몽을 발탁했는데, 이것은 그의 현명함입니다. 우금을 붙잡았지만 죽이지 않았으니 이것은 그의 어짊입니다. 형주를 취하면서 병기에 피를 묻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지혜로움입니다. 세 주를 차지해 호랑이처럼 천하를 보고 있으니 이는 그의 웅대함입니다. 폐하에게 몸을 굽혔으니, 이것은 그의 재략인 것입니다.[1]

1.3 그 후의 이야기

오나라로 돌아와서 기도위가 되었던 조자였지만 조비의 마음에 쏙 뜬 조자인지라 다시 위나라로 돌아가 위나라의 신하가 된다. 실컷 오나라 칭찬하더니 위나라 밥을 먹네

232년의 조예 시절에 다시 한 번 이름이 등장하는데 장제만총이 합비성의 위치를 좀 더 안쪽으로 옮기자고 제안할 때 상서로 있던 조자가 이 의견에 찬성하자 그제서야 조예는 합비성의 위치를 옮기는 것을 허락한다는 일화가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조비에게 사신으로 갈 때 결코 오나라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하면서 출발해 위나라에서 조비와 함께 위와 같은 문답을 했다.

1.4 번역 문제

232년 기사는 국내에 돌아다니는 정사 만총전에는 조지라고 되어있으나 이곳의 원문은 尚書趙咨以寵策為長,詔遂報聽。으로 조자가 확실하다. 국역 자치통감에서 주석을 달아 손권을 섬기던 조자라고 확인시켰다.

2 후한의 인물

趙咨

생몰년도 미상

후한의 인물. 자는 군초(君初).

하내군 온현 사람으로 동탁이 장안으로 수도를 옮기자 사마랑은 동탁이 망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부로에게 동탁이 천명을 거스리고 모반을 해 천하 사람들의 원수가 되었다면서 충신과 의로운 선비들이 일어나 이 곳은 전쟁터가 될 것이라면서 피난을 가자고 권고했지만 부로는 옛 땅을 사랑했으므로 피난하지 않았다.

오로지 조자만 가족들을 이끌고 사마랑과 함께 여양으로 갔으며, 몇 달 후에 관동의 여러 주와 군에서 병사들이 일어나 병력 수십만 명이 모두 형양과 하내로 모여들었다. 장군들은 서로 일관되게 행동할 수 없었으므로 군대를 풀어 약탈을 해서 백성들 중에서 죽은 자가 절반이 넘었으며, 조자는 사마랑과 함께 여양으로 이주한 덕분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

조자는 관직이 태상까지 올라 세상에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1.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이 부분 이후에 주석에서의 문답을 곧바로 등장시켰다. 조자가 "(오왕이) 폐하(조비)에게 몸을 굽힌 것은 재략이다"라고 대놓고 까자 이에 조비가 면박을 주려고 그랬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