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 에리코

NMB48 Team N
죠 에리코 (城恵理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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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1998년 11월 27일
출신효고
신체사이즈키 156cm
소속 그룹NMB48 팀 N
그룹 경력NMB48 2 → 4.5기생
NMB48 팀 M (2012)
NMB48 팀 N (2015~)
소속사KYORAKU요시모토 홀딩스
별명
링크구글플러스 트위터 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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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NMB 2기센터

1 개요

일본의 여성 아이돌 그룹 NMB48의 전 팀M·현 팀N 멤버, 한 번 은퇴를 번복한 이후 연구생으로 돌아왔다.

팀M의 센터로 주목받는 유망주였지만,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연예계를 은퇴했다. 외모나 특징이 AKB48 초기의 마에다 아츠코와 비슷했기 때문에 죠랑코 '포스트 마에다 아츠코'로 불렸다. 그러나 과거 AKB48 자체가 인기가 없었던 시절에는 운영진의 푸쉬만으로도 쭉쭉 성장할 수 있었지만, AKB48을 포함한 48그룹이 거대한 아이돌 집단이 되고 난 후에는 단순히 밀어준다고 해서 인기 멤버가 될 수는 없었다.

2 캐릭터

죠의 캐릭터는 말 그대로 '어린이'. NMB48은 다른 48 그룹과는 달리 성숙한 분위기의 멤버가 많았기 때문에 죠의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이' 캐릭터는 상당히 귀중한 것이었다. NMB48의 싱글에는 '철팬티'라든가 '키스를 하면 내 순결이 깨져버려' 같은 위험한 가사가 많았고, 오락 방송 등에서도 성인용 드립(?)을 치는 등 그룹 분위기가 상당히 위험하게 흐르기 십상이었는데, 죠는 그런 이미지를 중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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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B48 게닌!'의 한 장면. 이 장면 바로 전에 야마모토 사야카가 '시트벨트로 지금 당장 나를 묶어주세요'라는 SM 드립을 쳐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죠의 어린이 웃음이 그런 분위기를 맑고 깨끗하게(?) 정화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순진한 어린이 컨셉은 오타쿠를 끌어모으기에 좋은 컨셉은 아니었다. 악수회 대응도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팀M의 동료인 야구라 후코보다는 못했다. 그래서 팀M의 센터는 오타쿠들의 인기를 끌어모으기 좋은 야구라로 하고, 죠는 3번째~4번째 자리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맡겼으면 죠가 상처받고 졸업을 선택하는 일은 없었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오타쿠들도 있다. (물론 아키모토 야스시의 오시멘이라서 그렇게 될 가능성은 0% 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98년생으로 올해 고3이다. 초등학생도 팀N에 들어오고 하면서 예전처럼 애기같은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캐릭터에 고민을 하고 있다. "팬여러분은 언제까지나 아이같은 죠로 있어줘, 라고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다." 라는 이야기를 극장 공연에서 한 적이 있다.

3 성격

여기 있는 내용은 대부분 죠 에리코의 블로그에서 스스로 밝혔던 내용들이다. 졸업 이후 죠 에리코의 블로그는 삭제되었다.

  • 좋아하는 음식: 솜사탕아이스크림
  • 좋아하는 색: 하늘색, 분홍색
  • 좋아하는 동물: 개, 고양이, 토끼. 특히 개는 치와와를 집에서 기를 정도로 좋아한다고 한다.
  • 자신있는 스포츠: 기계체조, 검도
  • 좋아하는 과목: 가정
  • 싫어하는 과목: 사회. 공부는 잘 못했지만, NMB48에 들어와서 공부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니와나데시코'에서 죠를 포함한 멤버 일곱 명을 대상으로 싫어하는 멤버와 좋아하는 멤버를 조사했는데 죠는 시로마 미루, 야마모토 사야카, 키노시타 하루나로부터 싫어하는 멤버로 꼽혔다. 그 이유는 지나치게 애같기 때문이라고...

캐릭터와 다르게 실제로는 히토미 시리 (낯가림) 이 심하다. 멤버와도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리고 자신으로 부터 남에게 말을 거는것을 즐기지 않는다. 멤버들이 올려주는 동영상을 보면 쿨한 매력이 있다. 팀N에 새로 들어온 꼬마들 혼고 유즈하, 니시나카 나나미 에게도 처음 어떻게 대해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팀M 센터였던 시절 이야기하는걸 별로 즐기지 않는다. 아무래도 과거에 광푸쉬로 엄청나게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그 시절 푸쉬받았던 이야기는 멤버들도 잘 하지 않는편.

4 활동

원래 마에다 아츠코의 팬이어서, 마에다처럼 팬들에게 용기와 기운을 북돋워주고 싶다는 생각에 오디션에 지원했다. 2011년 5월 열린 NMB48 2기생 오디션에서 합격하였다. 당시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는 죠를 보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고 하였다.


NMB48 2기생 초기의 모습. 앞줄에 있는 이들이 팀M의 중심 멤버가 된 타니가와 아이리, 야구라 후코, 죠 에리코, 요기 케이라, 무라카미 아야카이다.

NMB48 2기생은 6월 5일 개최된 '놓쳐버린 그대들에게 ~AKB48 그룹 전 공연~' 콘서트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죠는 이 자리에서 2기생 대표로 팬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8월 13일부터 시작된 2기 연구생 공연 'PARTY가 시작된다구'를 비롯, 여러 무대에서 2기생 센터로서 활동하였다. 2011년 10월 19일 발매된 <オーマイガー!>에서 처음으로 센터에 들었고, AKB48의 <風は吹いている>에서는 언더걸즈로 참가하는 등 죠에 대한 푸쉬는 상당했다.

죠는 진짜 그야말로 핵폭풍급으로 밀어주었는데, 다큐멘터리에서 마에다 아츠코의 졸업발표에서 마에다 아츠코를 껴앉으면서 우는 장면은 '운영'이 만든 하나의 작품이었다. (애초에 죠랑 마에다는 실질적 친분이 전혀 없다.) 이는 죠가 마에다 아츠코 팬이라는 스토리가 있기에 운영이 이를 이용할려고 해준것.. 그렇지만 죠는 마에다 졸업 후 얼마 안가 본인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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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6일 1기생과 2기생의 혼성 팀이자 NMB48의 두 번째 팀인 팀M이 만들어졌다. 팀M의 센터는 당연하다는 듯이 죠가 맡게 되었다. AKB48의 총선거 싱글인 <真夏のSounds good!>에는 팀M을 대표하여 선발 멤버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이후 열린 4회 총선거에서는 64위권 안에 못 드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말았다. 죠 스스로도 푸쉬에 못 미치는 자신의 성적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다. 구글플러스에 '미안해요 미루키사야네처럼 되지 못해서', '왜 내가 팀M의 센터인 걸까'라고 한탄하는 글을 올렸다가 지우기도 했다.

그 이후 NMB48 게닌!이나 <ヴァージニティー> 싱글의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인기를 어느 정도 높여갔고, 악수회 판매 성적도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2012년 9월 28일 팀M 공연을 끝으로 NMB48을 떠났다. 와타나베 미유키야마모토 사야카, 그리고 동기인 야구라 후코에게 밀리는 현실은 그가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안티들은 이를 두고 '마에다 아츠코마츠이 쥬리나는 다 견뎌냈는데 왜 못 견뎌내냐'고 죠를 비난했지만, 그 압박감을 버텨내고 센터로 선 마에다나 쥬리나가 대단한 것이지 죠를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졸업의 계기는 학업 따위는 아니었고, 확실하게 압박감에 짖눌렸기 때문이다. 당시의 모바메나 블로그를 보면 부정적인 말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던걸 알 수 있다.

NMB48을 탈퇴한 후에는 연예계에서 완전히 은퇴하여 학업으로 돌아갔다. 2013년 6월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물론 NMB48을 탈퇴하고 나서 찍은 것. 아이돌 복귀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던 팬들은 아쉬워했고 일각에서는 남자처럼 안 보인다면서 여자 친구들끼리 찍은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지만, 어찌되었든 다들 죠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것에 대해 기뻐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013년 10월 13일 NMB48 3주년 기념 오사카성 홀 라이브에서 연구생으로 복귀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팀M 멤버들은 그 라이브 에서 통곡을 하며 쓰러지는 멤버도 있었다. 그만큼 죠의 복귀는 팀M 2기생 에겐 감당하기 힘든것이었다.

이 것에 대해선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NMB48 같은 대인원 아이돌은 기수별로 한 두명의 멤버가 초반의 푸쉬멤버로 정해진다. 죠는 그 중에서도 센터로 선택되었고 가장 많은 기회를 받았다. 죠를 푸쉬하기 위해서 다른 멤버들은 기회를 받지 못한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기회를 받은 죠가 그만둔것은 팀M에게는 상당히 뼈아픈 손실이었다.

물론 거기까진 본인의 선택이니 존중할 수 있다. 어차피 연예계란 곳이 정신적으로 힘든데 계속 이어갈 수 는 없는 곳이다. 죠가 힘들다면 그만두는것은 옳았다. 하지만 팀M의 그러한 기분을 무시한채 복귀를 선택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팀 센터급이 단기간에 졸업한것도 처음이지만 단기간에 다시 돌아온것도 처음이었기에 팀M의 대부분의 멤버가 죠를 용서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리게된다.

이 복귀는 상당히 여러 말이 나왔는데, 자기 손으로 졸업을 선택한 멤버가 다시 돌아왔다는 건 둘째 치고 그 복귀 과정이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정규 오디션을 보고 들어온 기존의 졸업 후 복귀 멤버와는 달리 특별 오디션을 치르고 바로 연구생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팀M 시절에 광푸쉬라고 까이던 죠가 탈퇴 이후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들어왔으니 또 편애하는 거냐는 비판. 이분이분 피가 거꾸로 솟는 중 이분도 솟는중 거기에 같은 날 발표한 연구생 승격에서 팀 N에는 한 명을 승격시켰지만, 팀 M의 빈 자리는 채우지 않고 한 자리를 그대로 남겨둠으로써 사실상 이게 죠 복귀를 위한 자리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죠 본인이 밝힌 복귀의 이유는 아래와 같다.

"저는 졸업 후. 영어 학원도 다니고 고등학교 진학준비를 했습니다. 검도부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떠들며 놀면서 충실하며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몇달뒤 어느날 TV에서 NMB48가 나오는걸 봤습니다. 아마 키타가와 켄지가 나왔을 무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처음으로 후회랄까.. 그런 것을 느꼈네요. 멤버들이 신나게 떠들고 춤추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저 무대에 서고 싶다.' 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것도 죄송스럽지만.. 그런 마음이 저를 복귀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스탭분들에게 다시 이 마음을 전달하고 이렇게 복귀를 하게 되었습니다."

본인왈 "다른것보다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NMB멤버로써? 이런 생각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특히 멤버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라며 그녀 나름대로 고민이 심했던것 같다. 그리고 생각도 많이 달라져서 옛날에는 NMB 활동이 무섭고, 힘들고 괴로운일들이 많았지만 외부에서 일반인으로 돌아가다보니 그 시절이 축복받았다는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그렇게 연구생으로 복귀후 4기생과 함께 재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2014년 2월 24일 대조각 축제에서 결국 야마다 팀M으로의 승격이 결정되었다. 역시 돼지가 좋아하는 멤버는 올라간다 그러나 이의신청기간 중 죠 본인이 승격을 거부하면서 다시 연구생으로.

이에 대해서 본인은 "승격을 결정해주신 스탭분들에게 죄송하지만, 지금은 제가 승격할 상황이 아니고.." 라면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많은 팬들에게 잘한 결정이었다고 칭찬을 받았다.

죠는 이로인해서 팀M 2기생 정식 라인으로 컴백하는 기회를 잃었지만, 동기 2기생들과 4기 연구생의 신뢰를 얻었다.이 결정 이 후 팀M 멤버들의 마음이 상당히 풀렸고, 오히려 죠를 위로하는 멤버들도 많아지게된다.

승격 거부 후에도 '푸른 바다 ~LONG SUMMER~'라는 낮드라마에 아역으로 기용되는 등 이런저런 푸시를 받고 있지만 팬덤에서의 반응은 냉랭하다. 졸업 직전에는 악수회도 소소하게나마 완매를 시켰지만 이제는 부수가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1부도 완매를 못 시킨다. 사실상 비인기-병풍급 멤버로 봐도 할말은 없다.

2015년 2월 4일, 오사카 성 홀에서 열린 아레나 투어 공연에서 연구생 전원이 승격되는 것이 발표되면서 팀N으로 승격하였다. 이로서 죠는 48그룹에서 유일하게 승격을 세 번 경험한 멤버가 되었다.


복귀 후 처음엔 팀M 멤버들과의 과거 때문에 망설임도 있었지만 원래 성격이 좋은 팀M 멤버들은 죠의 과거를 용서해주고 , 죠도 멤버로써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대부분의 앙금이 풀렸다.

다만 팀M 멤버들과의 거리감은 어느정도 남아있어서, 현재의 죠와 친한 멤버들은 연구생시절을 같이 보낸 <4기생>이 대부분이다.

2016년 현재는 과거의 센터 경험자 로 보면 "평범한 멤버" 로써 지내고 있다. 복귀 후 선발멤버가 된적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것이 실제로 인기에 반영되진 않았다. 사실상 병풍 멤버들이랑 별 차이 없는 인기다. 전 팀M 센터 , 광푸쉬 멤버였음을 감안하면 평범하게 지내고 있는 중이다.

팀M 센터라는 과거를 감안할 때, 각 팀 센터중에서 가장 성공하지 못한 케이스다. 아니 기수로 봐도 이 정도급 기회를 받은 멤버가 5~6부에 머무르는 경우는 거의없다. 총선거도 마찬가지로 가망이 없다.

과거와 다르게 어리고 재능있는 멤버도 많이 들어와서 NMB로써도 과거처럼 광푸쉬는 주지 않고 있다. NMB 전체로보면 스토 리리카,시로마 미루,야구라 후코,오오타 유우리,야부시타 슈,시부야 나기사, 등의 다양한 차세대를 밀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영이 완전히 포기하진 않은 멤버인데, <두리안 소년> 선발 이라던가 운영은 아직도 '죠 에리코'에 대한 미련은 있는것 같다.

팀N에 들어가고 나서 성격도 예전보다 자신을 드러내게 되었다. 선배들이 이끌어주면서 죠의 좋은 부분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팀N이라는 좋은팀을 만나서 여전히 바보웃음을 트레이드 마크로 하며 팀N의 극장공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팀N으로써는 힘들게 키워온 니시무라 아이카 까지 졸업하면서, 앞으로 죠의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5기생이 들어오면서 본격적 세대 교체가 이루어질 NMB에서 중견멤버로써 멤버들을 이끌어줘야할 위치가 되었다. 아픔이 있는 멤버인 만큼 타인을 잘 배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탈퇴한 적이 있어서 본인은 "후회가 남지 않을때 까지 활동을 할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있다. (다시 탈퇴한다면 후회는 본인이 감당하는것이니...)

4.1 졸업의 이유

죠의 졸업 선택에 대해서는
우선 죠의 졸업당시 NMB와 48그룹의 상황을 봐야한다.

일단 2012년은 아직 48그룹이 최정상급에 있었던 시기다. 이 시기는 마에다 아츠코의 졸업이 있었을 뿐. 구 카미급 멤버도 건재하던 시절이다. 이런 시기에 NMB는 약진을 하던 시기로 싱글 판매량과 오리콘 차트에서 순위를 올리던 시기였다.

사야네, 미루키가 언더걸스 최상위권 (18위,19위)로 올라가며 저력을 보여주었고 팀N 멤버들이 약진했지만... 아쉽게도 팀M은 전멸했다. 그도 그럴것이 당시의 AKB48 선배가 너무 막강했고, SKE가 강성하던 시기였다. NMB48 2기생이 낄자린 없었던것.

이런 시기 팀M센터로써 속보에 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본방에서 권외가 된 죠 에리코는 무너졌다. 엄청난 기대를 받고 마에다 아츠코랑 둘이서 다큐까지 찍워줬는데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자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어졌다.

총선뿐이라면 상관 없었지만, 2012년 악수회에서 야구라 후코 , 타니가와 아이리 에게도 밀리면서 성적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 시기 모바메,구플,블로그 등에서 센터로써 정신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곤 했다.

결국 팀 센터로써 자신이 없어진 죠는 졸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졸업을 발표하고 나서 "마음이 편해졌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그녀가 팀M 센터로써 시달리던 압박감이 그만큼 컸던 모양이다.

당시 중2이였던 어린아이에게 너무 큰 짐을 맡긴것이 결국 그녀가 무너진 결정적 이유였다. 마츠이 쥬리나 , 마에다 아츠코가 잘 버틴것이지. 어린 중학생이 감당하기엔 팀 센터라는것은 결코 쉬운게 아니다. 거기에 2012년은 예전처럼 비인기 시절도 아니었다. 인기가 있는만큼 노출도가 높아졌고 그에 따른 심리적 부담도 늘어난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팀8 센터 나카노 이쿠미는 그러한 부담감과 늘 싸우고 있다. 이쪽도 인기가 없는 센터인것은 똑같지만 다행이도 팀8 활동이 적다. 그로 인해서 멘탈을 케어할 시간이 있어서, 실력적으론 점점 성장하고 있다는 평가다.

5 선발 참가곡

NMB48

AKB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