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대사관

대한민국의 주요 해외 외교공관
주미대사관주러대사관주중대사관주일대사관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
駐日本国大韓民国大使館
Embassy of Korea in Japan
발족1949년 1월[1]
대사관 승격1965년 12월[2]
공관장대사 이준규 (李 俊 揆)
소재지東京都港区南麻布1-2-5

홈페이지

1 개요

대한민국일본에 설치한 외교공관.

정식 명칭은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이지만 본 위키의 사용자 대부분이 한국인인 관계로 주일대사관으로 항목을 정한다.

2 역사

2.1 주일 한국공사관의 개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근대 국제법에 근거한 외교관계가 성립되었으며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같은 해 관원 5명(민영준 공사, 김가진 참찬관, 전양묵, 안길수 서기관, 번역관 외 1명)으로 주일 조선공사관이 개설된 것이 시초이다.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에게 국권이 침탈되던 과정에서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외교활동을 추진했으나 성과는 미미했고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상실되면서 같은 해 12월 주일 한국공사관은 폐쇄되었다.

2.2 주일 대한민국대표부 개설

일제의 패망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수립 이듬해인 1949년 1월 주일 대한민국대표부를 개설하기로 하고 정한경 초대 대사를 파견한다. 당시 일제의 식민지 착취를 벗어나 독립한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국고는 바닥 난 상태, 당연히 정부는 주일 대표부 사무실을 마련할 자금도 없었다. 1949년 1월, 정한경 대사가 재일동포 사업가인 조규호 씨를 찾아가 500만 엔의 지원을 요청했다. 조 사장은 독립된 모국이 공관 사무실조차 마련할 길이 없다는 호소에 자신의 돈과 친지들로부터 빌린 1,000만 엔을 기부, 도쿄 긴자[3]에 대표부 사무실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당시 고무공장을 경영하던 조규호 씨는 그 뒤에도 공관직원 관사용으로 300만 엔을 추가로 지원하는 등 대표부 운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2.3 재일동포 서갑호 회장의 대사관 부지 기증

이렇듯 대표부는 본국의 사정이 워낙 어려워 운영자금마저 재일동포들의 후원금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때마침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계기로 무상으로 사용중인 외국 공관의 관저 반환을 요구하면서 당시 대표부가 사용중이던 시나가와 관저를 돌려줘야 할 상황이 되자. 이승만 정부는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의 저택을 돌려받아 공관으로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영친왕에게 의사를 타진한다. 그러나 영친왕은 경제적 궁핍 등으로 저택을 일본인 사업가에게 매각하여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그러던 중 방적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던 재일동포 서갑호 회장이 자신이 소유한 미나토구 미나미아자부에 위치한 토지와 목조 건물을 대한민국 정부에 무상 대여하여 청사를 이전하게 된다. 이 땅이 지금의 대사관 부지인데 현재도 아자부는 일본의 황실 친인척 및 정 재계 인사들이 거주하는 요지 중 요지이다. 1962년에는 서갑호 회장이 부지 및 건물을 대한민국 정부에 기증하면서 국유화 된다.

2.4 주일 대한민국대사관 승격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면서 대한민국과 일본 간에 정식 외교관계가 맺어지면서 대표부는 주일 대한민국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이 후 청사와 떨어져 있던 관저 부지와 대사관 근처 부지를 교환하여 청사와 관저를 미나미아자부로 통합하고 1979년에 새 청사와 관저를 완공했다.

3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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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京都港区南麻布1-2-5. 도쿄도 미나토구 미나미아자부 1-2-5에 위치한다.

사진 속 청사는 기존에 있던 건물을 허물고 새로 건축한 청사이다. 기존 청사는 1979년 건축되어 노후한데다 장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도 직하 지진 대비 및 비상 시 재외국민을 보호하기에는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한 정부가 재건축을 결정하여 2013년 완공했다. 건설하는 3년간 요츠야에 있는 주일 한국문화원 건물을 빌려 사용했다.


다만 영사부 건물은 대사관 근처에 있는 민단 중앙본부 건물에 위치 해 있다.
여권이나 비자 등 영사 업무를 보러 갈 때 참고하자.

東京都港区南麻布1-7-32. 도쿄도 미나토구 미나미아자부 1-7-32가 영사부 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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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의 특징 중 하나는 미술관을 겸하는 대사관으로서 사실상 미술관 구실을 할 수 있게 건물 내부를 꾸민 점이다. 재외 공관에 미술 작품을 구비하는 것을 넘어 대사관 건물 자체를 새로운 방식의 문화 외교 공관으로 기획한 것은 전 세계 공관 중 주일대사관이 처음. 세계 주요 문화 선진국들이 재외 공관을 자국 문화를 알리는 전시장 역할을 하는 문화 외교의 장으로서 활용하고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설계했다고 한다. 건물 자체도 한국 전통 이미지를 형상화해, 정면은 작은 천조각을 이어붙여 만드는 전통 보자기 이미지를 형상화했고, 건물 옆면은 반투명 주름 구조물을 햇빛 가리개로 설치해 얇은 모시치마를 겹쳐 입은 듯한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그리고 7층까지 뚫린 로비를 둘러싸고 ㄷ자형으로 사무공간이 들어서고, 가운데 비운 공간이 다양한 미술작품을 보여주는 감상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4]

3.1 영사관

오사카, 후쿠오카, 요코하마, 나고야, 삿포로, 센다이, 니가타, 히로시마, 고베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4 공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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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11 이준규 대사가 취임했다.

5 역대공관장

순서공관장부임기간
초대대사김동조1965.12 ~ 1967.10
2대엄민영1967.10 ~ 1969.12
3대이후락1970.01 ~ 1971.01[5]
4대이 호1971.01 ~ 1974.01
5대김영선1974.01 ~ 1979.02
6대김정렴1979.02 ~ 1980.09
7대최경록1980.09 ~ 1985.10
8대이규호1985.11 ~ 1988.04
9대이원경1988.04 ~ 1991.03
10대오재희1991.03 ~ 1993.04
11대공로명1993.04 ~ 1994.12[6]
12대김태지1995.02 ~ 1998.04
13대김석규1998.05 ~ 2000.03
14대최상용2000.03 ~ 2002.02
15대조세형2002.02 ~ 2004.03
16대라종일2004.03 ~ 2007.03.17
17대유명환2007.03.23 ~ 2008.03.15[7]
18대권철현2008.04.17 ~ 2011.06.06
19대신각수2011.06.10 ~ 2013.05.31
20대이병기2013.06.04 ~ 2014.07.16[8]
21대유흥수2014.08.23 ~ 2016.07.01
22대이준규2016.07.08 ~ 현재

6 여담

2013년 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1950년대 한국 정부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와 관련 자료들이 대거 발견되었다.
  1. 당시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는 국교가 수립되어있지 않았으므로 주일본한국대표부로 공관이 설치되었다.
  2. 이 해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에따라 정식 외교관계가 맺어지면서 주일본한국대표부가 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3. 무려 와코백화점이다! 긴자를 찍은 사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 백화점 건물이다.
  4.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82220.html
  5. 우리가 아는 그 이후락이다. 이후 중앙정보부장 역임.
  6. 이후 외무부장관을 역임했다. 현 동아시아재단 이사장
  7. 이후 외교부장관을 역임했다.
  8. 박근혜 정부에서 더욱 중용되어 이후 국가정보원장,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