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Attachment/천국과 지옥(영화)/HIGH AND LOW JP .jpeg
1963년 만들어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일본 영화. 미후네 토시로, 나카다이 타츠야 주연. 원제 天国と地獄. 영문 제목은 High And Low. 마릴린 맨슨의 The High End of Low가 본작의 오마쥬이다.
1 줄거리
어느 여름밤, 신발 제조회사인 내셔널 슈즈의 중역인 곤도(미후네 토시로)의 집에 회사의 세 중역이 방문하여,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협력을 요청한다. 곤도가 가진 주식을 자신들이 가진 주식에 더해, 시대에 뒤떨어진 사장을 몰아내자는 것이다. 하지만 곤도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매몰차게 돌려보낸다. 사실은 이미 몰래 회사 주식을 대량 구입하여 경영권을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하려는 계획을 세워, 뒤로 주식 구매를 위한 뒷거래를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집을 저당 잡히는 것을 포함해, 전재산을 담보로 삼아 5천만 엔을 확보해 놓은 상황에서, 돈만 건내주면 된다는 전화를 받은 곤도는, 5천만 엔권 수표를 자신의 충실한 비서인 카와니시에게 맡겨 돈을 전달하라고 한다. 하지만 카와니시가 미처 곤도의 집을 나서기 전에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의 아들인 쥰을 납치했으며, 거액의 몸값(3천만 엔)을 요구하는 유괴전화에 곤도는 당황해하면서도, 아들을 위해서라면 그 돈을 주기로 마음 먹는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아들은 천진난만하게 거실로 들어선다? 정작 납치된 건 운전사의 아들 신이치란 것이 밝혀진다. 유괴범은 운전기사의 아들이라도 상관없으니 돈을 달라고 한다. 거기서부터 곤도의 진정한 갈등이 시작된다. 자기 아들은 무사하지만 도의를 위해 운전사의 아들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런 이익이 없고 오히려 큰 손해를 보기 전에 운전사의 아들을 무시할 것인가.
2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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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곤도는 모든 걸 포기하고, 돈을 지불한다. 운전사의 아들 신이치를 찾은 후에도, 끈기있게 범인을 찾기 위한 경찰의 수사가 진행된다. 유괴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그 과정 중에, 곤도를 배신하고 세 중역에게 붙은 카와니시와 세 중역이 곤도를 회사에서 쫓아내고, 채권자들은 이자를 거부하고 원금을 갚으라며 곤도를 압박하고, 결국 곤도의 집과 가구는 차압된다. 수사 끝에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진범 타케구치 긴지로가 체포된다. (신이치와 몸값 교환이 있었을 때 현장에 나타났던 두 남녀 공범은, 헤로인 중독자들로 경찰에게 발견되었을 땐 이미 헤로인 과잉 복용을 가장하여 타케구치에게 살해 당한 후이다. 또한 진범을 낚기 위해, 그 둘의 사망사실을 밝히지 않고, 대신 몸값으로 지불되었던 지폐 중 천엔 짜리 한 장이 사용되었다고 기사를 써달라는 경찰의 요청에 따른 신문 기사들을 보고, 이후 경찰이 남녀 공범을 가장해 보낸 협박편지에 그 둘을 제대로 살해하려는 목적으로 중독자들이 모여 있는 허름한 뒷골목의 여자 하나를 시험용으로 살해하기도 한다.) 사형을 앞둔 유괴범은 곤도를 보고 싶다 요청하고, 그를 면회온 곤도(내셔널 슈즈가 아닌 다른 작은 구두회사에 들어갔다고 한다)에게 유괴범은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고 있는 자신의 아파트 방 창문에서 보이는,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곤도의 고급주택을 보며 느꼈던 증오를 밝히고, 자신을 동정할 필요 없으며, 자신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지극히 인간적인 공포를 보이며 발작하듯 흐느끼는 그를 교도관들이 데려가고, 면회실 창문 위로 셔터가 닫히면서 어두운 공간에 남겨진 곤도의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전후 일본의 면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곤도와 타케구치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
3 뒷이야기
에드 맥베인(84분서 시리즈)의 '킹의 몸값'을 원작으로 했다. 굉장히 치밀하고 뛰어난 범죄 묘사가 일품인데, 나중에 일본에서 모방 범죄가 일어났을 정도이다. 오야부 하루히코도 3억엔 사건이 일어나자 경찰에 소환되긴했다.
흑백영화이지만 색깔있는 연기가 굴뚝으로 나오는 장면에서 연기만이 컬러 처리된다(경찰이 유괴범에게 줄 몸값을 담은 가방 속에 태우면 색깔있는 연기가 나도록하는 약품을 집어넣었던 것. 유괴범의 증거인멸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서...) 쉰들러 리스트에서 컬러가 들어간 장면들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될 듯. 1998년작 춤추는 대수사선 극장판에서 오마쥬된다. 이 장면만 컬러 처리가 된 이유는 (물론 흑백 화면에서는 약품이 연소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가 없으니 필수적인 연출이었지만)일상성에 대비를 주기 위함이다. 곤도가 가방에 바느질을 하여 약품을 부착하는 씬 이후에 갑자기 급행열차를 등장시키는 컷이라든가, 열차 등장과 함께 삽입되는 굉음도 같은 맥락에서 충격과 대비를 주기 위해 의도된 연출이다. 이렇듯 일상성에 새로운 변화를 주는 형식은 영화 전체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전후의 요코하마는 올림픽 유치와 산업화에 따른 난개발로 기존 공간의 해체와 재구성, 그리고 거주민의 반강제적 이주가 이루어졌다. 역사적 공간으로서의 요코하마와 현대화 과정에서 양극화된 요코하마 사이에서 유괴범의 위치를 찾기 위해 경찰은 불가결하게 요코하마 시내를 다양한 시각에서 관찰하고 분석한다. 곤도의 저택이 보이는 공중전화들 위치에 들러서 그 집을 보는 시점을 파악하는 작업, 급행열차에서 8mm 캠코더로 찍은 영상을 분석하는 것, 범인과의 대화가 기록된 녹음기와 증언을 토대로 열차 소리에 대한 단서를 찾는 장면, 신이치가 그려준 그림대로 바다와 후지산이 동시에 보이는 장소를 수색하는 실수를 하다가 결국엔 높은 곳에 올라가 다른 시각으로 보니 아이가 그려준 장소가 나오는 것은 전후의 요코하마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경찰은 양극화에서 벗어나 서서히 범인과의 접점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스토리라인은 단지 탐정물의 플롯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전후 일본 사회의 해체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마찬가지로 후반부에 외국인 타운이 등장하는 것은 단순히 스펙타클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요코하마 내지는 일본 사회에 침투한 외래 문화의 모습을 보여주어 궁극적으로 파편화된 일본의 일면은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런 양 극단에서 출발해 점점 그 접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전술했듯이 영화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주인공인 곤도와 악당인 타케우치는 각각 부유한 시민과 빈곤층이라는 점에서 극과 극을 보여주지만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사실 이 둘이 매우 흡사한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곤도는 거만하고 질 줄 모르는 성격을 가진 인물이며, 이러한 면모는 회사 간부들과의 대화 씬이나 타케우치와의 전화 시퀀스(돈 안 줄거야!)에서 드러난다. 타케우치 역시 자기 목표를 위해서라면 유괴를 하고, 동업자를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마약촌에서 모르는 이를 낚아 시험용으로 쓰는 인물이다. 이러한 두 인물의 접점에서 구로사와가 제시하는 차이는 희생이다. 이 희생은 단순히 박애주의적 동기에서 비롯된 신파적인 행동도 아니요, 이익 집단이나 혈연관계에 의한 희생도 아니다. 이는 민족애(nationhood)에서 비롯된 희생이며, 이를 위해 곤도는 자신의 욕망을 안으로 삭이는 결정을 하게 된다. 여기서 곤도와 타케우치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에게는 무의미한) 희생'을 통해 구로사와 아키라는 전후 일본 사회의 모습을 재구성하고자 하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데에는 실패하고 만다. 결국 곤도도 면회실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덩그러니 남고 마는 파편화된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1]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고 싶어했으며, 2008년 경에는 졸업으로 유명한 마이크 니컬스 감독에게 리메이크를 넘긴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무소식.
멜 깁슨이 나왔던 1996년도 영화 '랜섬'과도 연결이 되는 영화. 이게 좀 복잡한데, '랜섬'은 1954년도 방영된 한 드라마 에피소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 드라마는 1956년에 같은 제목에 느낌표만 붙은 '랜섬!'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는데, 그 56년도 영화가 천국과 지옥의 원작인 '킹의 몸값'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써놓고보니 왠지 억지로 연결해놓은 거 같은데. 무슨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도 아니고.
- ↑ 요시모토 미츠히로 저, Kurosawa: Film Studies and Japanese Cinema, 2000, p. 303-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