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船みふね 敏郎としろう
일본의 배우
(1920. 4. 1 - 1997. 12. 24)
목차
개요
일본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배우
1920년 중국 칭타오에서 사진관을 경영하던 일본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때는 관동군에 징집되어 사진병으로 복무했다. 사진관집 아들로 태어나 사진병(비행기를 타고 항공사진을 주로 찍었다고 한다.)으로 복무했기에 전투는 거의 하지 않았고 덕분에 생명을 건졌다고 그는 회고했다. 일본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계속 살다가 일본에 처음 가본 것이 스무살 무렵이라고 한다.
2차대전 종전 후 제대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막노동으로 생계를 잇다가, 군대시절 동료가 토호(東宝)영화사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자신도 영화사에 카메라맨 입사원서를 넣었다. 우연하게 카메라맨 원서가 배우 원서에 섞여졌고, 그는 얼떨결에 배우 카메라 테스트를 받게 된다. 배우에 대한 생각이 없었기에 그는 웃어보라는 심사위원의 요구에 "우습지 않아서 웃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불량스러운 태도를 취하는데 빼어난 마스크와 분위기 덕분인지 이런 불량함에도 불구하고 배우로 뽑힌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여배우 다카미네 히데코는 오디션이 끝나자마자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전화를 걸어 대단한 인물이 나타났다고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의 작품에 많이 등장했다.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과도 많은 작품을 같이 찍었다. 1948년작 주정뱅이 천사로 구로사와 감독작품에 첫출연 한 뒤 1965년작 붉은 수염까지 그와 함께 했고 그 이후 결별했다. 그가 주연을 맡은 구로사와 감독의 대표작은 요짐보, 츠바키 산주로, 7인의 사무라이, 라쇼몽, 들개, 숨은 요새의 세 악인, 천국과 지옥,거미집의 성등이 있다.
선이 굵은 인상으로 왕, 장군, 기업가 같은 카리스마적 인물도 많이 맡아서 근엄하고 남성적인 분위기가 강한 편이다. 그러나 라쇼몽이나 7인의 사무라이, 들개의 경우처럼, 거칠고 막나가는 성격의 산적이나 건달의 모습도 잘 소화했다.
기행을 일삼는 구로사와 때문에 죽을 뻔하기도 했다. 거미집의 성의 마지막 화살씬을 찍어야 하는데 정말 실감나는 연출을 하기 위해 진짜로 배우 미후네 토시로에게 화살을 발사. 그것도 그냥 활로 쏘는게 아니라 확실히 벽에 박히게 공기압축장치를 써서 여러발을 쐈다! 덕분에 미후네는 그 장면에서 처절하게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난 후에 그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일단은 참고 귀가를 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서 혼자서 술을 마시던 중에 촬영시의 생각이 떠오르자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서 술김에 산탄총을 들고 구로사와 감독의 자택에 찾아가서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1] 그나마 법정에 고소를 하겠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 장면. 저 공포에 질린 표정은 진짜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와 결별할 무렵 자신의 프로덕션을 세워 영화를 만들고, CF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일본 영화계의 침체기여서 영화제작으로 큰 돈은 못 벌었고 오히려 자신이 다른 감독의 영화에 출연해 받은 출연료로 영화사의 적자분을 메꿔가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구로자와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세계적 명성이 있었고 요짐보와 붉은 수염으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2번 받는 등 거물배우였기에 출연료가 높았다. 영화제작은 어쩌면 부업이었는지 모른다.
일본 배우로서는 할리우드에서도 꽤 이름이 알려진 탓에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다. 존 프랭컨하이머 감독의 영화 《그랑프리》에도 얼굴을 비추었고, 존 부어맨 감독의 영화 태평양의 지옥에서는 리 마빈과 공동 주연했고, 테런스 영 감독의 영화 《레드 선》에선 알랭 들롱, 찰스 브론슨과 함께 연기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천황의 선물을 전하러 가는 일본인 무사가 그 선물을 열차강도에게 강탈당하고 나서 그걸 되찾으러 모험을 벌인다는 황당 스토리이다. 또 이누이트를 다룬 모 대작 영화에서 이누이트 역을 하기도 했다.
제임스 클레벌 원작의 TV시리즈 《쇼군》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연기했다. 정확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아니라 토라나가라고 불린다. 이름들이 다들 조금씩 다르다. 이시다 미츠나리는 이시도라고 불린다. 이 드람에서는 명색이 쇼군이 선원 춤을 추는 등 전반적으로 오리엔탈리즘 연기라고 폄하되기도 하지만 마지막 반전 부분과 그때의 독백장면은 정말로 명장면이다. [2]
이 밖에도 영화 《미드웨이》에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괴작 '1941'에서 할리우드를 습격하는 일본 잠수함 함장으로 나와 태평양의 지옥 프리퀄? 독일 군사 고문 장교 크리스토퍼 리와 함께 개그연기를 펼치기도 한다. 영 감독의 초대형 망작 《인천》에도 출연했다. 해외 각지에서 숱한 캐스팅 제의를 받았으며, 사망하기 1년 전까지도 종이박스 1개가 가득 찰 정도의 캐스팅 제의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구로사와 감독과 미후네의 대단한 팬인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의 오비완 케노비 역으로 미후네를 캐스팅하려 했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미후네의 딸인 미후네 미카는 자신의 아버지는 다스 베이더 역 제의를 받았었다고 전했다. 어느쪽이 진실인지는 모른다. 존경한다는 원로 배우를 얼굴도 안 보이는 다스베이더 역으로 캐스팅한다는 것은 이상하고, 아무래도 다스베이더 역으로 미후네는 덩치가 좀 작다. 반면 '오비완 역이었다면 왜 미후네가 거절했겠는가?'라는 의견도 있다. 《스타워즈》가 개봉하기 전에는 SF 영화는 그다지 좋은 영화로 취급받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무엇보다 무명감독의 첫 작품이나 다름 없었다. 오비완이건 다스베이더건 미후네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만도 했다. 어쨋든 미후네는 《스타워즈》가 전세계적인 흥행을 거두자, 그 캐스팅을 거절한 것에 대해 후회했다고 한다. 미후네 미카는 2015년 도쿄 코믹콘을 홍보하는 행사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먼저 들어온 오비완 케노비 역 제안을 거절했고 다스 베이더 역을 다시 제안받자 그것도 거절했었다고 밝혔다. [1]
자신은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고백했고, 할리우드 영화에서 영어대사를 할때는 단어의 음을 따서 뜻도 모르고 그냥 외웠다고 한다. 1980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수상자 이름이 든 봉투를 개봉하면서 "And the winner is..." 이 말만 외쳤다고...역시 일본인답게 영어 발음이 신통치 않아서 《미드웨이》에서 상당부분 일본계 미국인 성우가 더빙처리를 했다.
그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했던 덕분에 일본의 각종 문화상품에서 그의 이미지가 이용되었다. 만화나 영화, TV드라마에서 그에 대한 오마주라고 생각되는 캐릭터가 엄청나게 많다. 심지어는 홍콩의 삼국지 만화인 화봉요원에도 그의 이름과 생김새를 그대로 본딴 삼선이라는 오마주 캐릭터가 등장할 정도.
일본 영화 수입이 금지되던 당시 한국이었지만, 한국 영화계는 오히려 이를 이용해 일본영화를 엄청나게 모방했었다. 수입이 금지되니 일반인은 어떤 한국영화가 일본영화를 베꼈는지 알길이 없고, 오직 영화계 사람이나 신문기자 정도나 이를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신영균, 신성일, 남궁원 등 한국의 배우들이 미후네의 이미지나 연기를 대놓고 카피하기도 했다. 단, 이미지나 연기를 베낀 것 만으로 표절이 될 순 없다는 게 사실인지라 무작정 태권브이 마냥 깔 일은 아니다.
키의 변동이 심해 리즈시절때는 185cm에 육박했지만 나이를 먹고는 175cm까지 줄었다고 한다.
KBL 용병선수로 뛰었던 토시로 저머니의 이름 토시로는 미후네 토시로의 팬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1999년에 만들어진 덴마크-스웨덴 합작영화인 《미후네》는 제목을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 극중 인물이 좋아하는 배우가 미후네 토시로여서 그랬다고.
자녀로는 본처에게서 얻은 아들 미후네 시로와 내연의 처에게서 얻은 딸 미후네 미카(배우)가 있다.
희한한 클리셰가 있는데 나카다이 타츠야과 대결하면 반드시 미후네가 이긴다.
1. 요짐보 - 칼던지기로 권총을 제압.
2. 츠바키 산주로 - 미후네가 더 빨랐다.
3. 조이치(고바야시 마사키) - 여기서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