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天符經

1 소개

一始無始一析三極無
尽本天一一地一二人
一三一積十鉅無匱化
三天二三地二三人二
三大三合六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一妙
衍万往万来用変不動
本本心本太陽昻明人
中天地一一終無終一
일시무시일석삼극무
진본천일일지일이인
일삼일적십거무궤화
삼천이삼지이삼인이
삼대삼합육생칠팔구
운삼사성환오칠일묘
연만왕만래용변부동
본본심본태양앙명인
중천지일일종무종일

이상의 81자로 이루어진 경전. 농암유집본에서는 저 중 몇 글자가 다르다.

환단고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기록도 없다. 단지 단군천부인(天符印)을 소지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환단고기가 등장한 이후로는 환인이 환웅에게 전하여 지금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처가 비교적 확실했던 대종교의 경전(삼일신고, 신사기, 신리대전 등)과는 달리 출처가 모호했기에 점차 신비화되었고, 그 덕에 훨씬 더 널리 유포되어 현재 이 경전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게 '단군의 경전' 이라는 점에 거의 의문을 갖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출처의 모호함과 내용의 난해함, 그리고 민족의 경전이라는 배경 때문에 온갖 해석론이 난무하고 있었으며, 더하여 환단고기가 등장하자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어 이제는 세상의 모든 이치와 우주의 법칙을 담고 있는 것 같은 해석을 붙이려고 한다.

하지만 환빠들이나 동양철학 등을 하는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으며 그 내용의 끝을 알 수 없는 심오함을 확신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사학계에서는 한 사학자가 위작으로 확정한 이후로는 위작으로 보는 것에 그다지 의문이 없다.

그 한 사학자란 바로 단재 신채호.

기본적으로 환빠계(?) 종교단체에서는 천부경의 구절을 외우는 것으로 '수련'을 한다. 이렇게 주문을 외우는 '주문 수련'은 한국의 비주류 종교에서는 흔한 것인데, 증산 계열 종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태을주, 운장주 등이 유명하다. 백백교에서도 독자적인 주문 수련을 사용했다. 단군 시대에 나왔다고 주장되는 천부경이 워낙 인기가 높다보니, 구한말에 나왔음이 명확한 태을주, 운장주 등은 증산 계열 종교인을 제외하면 위세가 처지는 추세.

2 위작임을 밝혀내다.

신채호는 1925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조선사연구초에서 "서적의 진위와 그 내용의 가치를 판정할 안목이 없으면, 후인 위조의 천부경 등도 단군왕검의 성언이 되는 것이다." 라고 하였으며, 1931년 조선일보 학예란에 연재하던 조선상고사에서 "우리나라는 고대에 진귀한 책을 태워버린 때(이조 太宗의 焚書같은)는 있었으나 위서를 조작한 일은 별로 없었으므로, 근래에 와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등이 처음 출현하였으나 누구의 변박(辨駁)도 없이 고서로 인정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라고 하여 아예 위작이란 것에 못을 박아버렸다.[1]

대표적인 민족사학자가 민족의 경전을 위작이라고 단정한 것이 워낙 충격적인 까닭인지 환빠나 천부경을 믿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외면하며, 심지어는 조선사연구초와 조선상고사의 연재시기에 6년의 시간차가 있는 것과 조선상고사의 문장을 단장취의하여 '사실 단재는 조선사연구초 당시에는 천부경을 위작이라 부정했으나 조선상고사 연재시에는 이를 인정하고 위작설을 철회한 것' 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조선사연구초나 조선상고사나 단재가 같은 시기에 저술한 원고에 의한 것이라는 게 독립운동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며, 저렇게 말하는 게 무색하게도 저 말은 조선상고사 총론의 '위서(僞書)의 판별과 선택에 대하여'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과연 믿기 위해선 현실도 왜곡하는 것이 인지부조화의 세계.

출처가 모호한 것같은 천부경이지만, 실제로는 1969년 한국 신흥종교 연구의 토대를 쌓은 이강오의 실사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그 출처가 밝혀져 있었으며, 2003년 삿사 미쓰아키의 연구를 통해 검증되어 현재는 그 출처가 거의 분명히 규명된 상태다. 1910년 나철·김교헌의 대종교로부터 분리된, 정훈모의 단군교로부터 1917년에 등장했을 것이라는 것. 그런데 1911년에 '펴냈다고 하는' 환단고기에 천부경이 버젓이 등장한다. 그래서 여기서도 환단고기가 위작일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환단고기가 위작이라는 것과 출처의 문제를 합하면 결론은 단군교에서 날조했다는 얘기가 된다. 문제는 이 단군교가 한일합방, 3·1 운동 탄압과 관계된 친일 교단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친일파들은 대우주의 원리를 알고 있었다! 친일파들이야말로 진정한 단군 사상의 계승자이자 민족운동가" 였단 말인가!! (...)

천부경이 비록 위작일지언정, 완전히 가치없는 쓰레기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성경 전부가 실제로 저자라고 알려진 사도들이 저술한게 아니고, 불경 전부가 싯타르타의 입으로 설법된게 아니며, 도교의 경전인 '노자'나 '열자' 역시 노자나 열자 자신이 직접 쓴 저작이 ㅇ니라 후세의 가탁(假託)이라는 사실을 통해 창작연대 및 저자의 진위여부가 텍스트에 있는 종교적 의미와 별개일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라는 것.[2] 천부경은 위작이지만, 종교적으로 연구해 볼 만한 경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친일파가 천부경을 작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도, 천부경에 종교적인 깊이가 있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담이지만 천부경 매니아들은 시작 부분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끝 부분의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에 우주의 신비가 담겨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간혹 화엄경, 정확히 말하면 의상대사의《화엄일승법계도》의 한 구절과도 억지로 이어붙이는 경우도 있다. 해당 구절은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로, 그 뜻은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으니, 하나가 곧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이 곧 하나를 이룬다"이다.

2015년 5월 단재 정훈모의 손자 정달영이 중심이 되어 펴낸 《단재 정훈모 전집》(총 3권) 중 1권에서 천부경을 설명하며 기존 학계의 설을 부정하고 있는데,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1913년 정훈모가 제정한 <단군교종령>에 천부경이 나온다는 것.(참조링크) 책에 인용된 <단군교종령> 제 55조에는 "天符經과 覺辭를..."이라는 구절이 나온다.[3] 다만 저자가 정훈모의 손자인지라 정훈모/단군교에 극히 우호적으로 서술한 책이니 반드시 걸러읽을 필요가 있다.[4] 다만 천부경의 성립이라 쓰고 날조연대가 좀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근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3 기타

참고로, 농은유집본 갑골문 천부경을 발견한 민홍규씨는 국새 제작시 황금을 떼어먹은 사기행위로 2010년 8월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기치는데 이골났군.

천재로 유명한 송유근의 스승이자 천문학 박사인 박석재의 경우 천부경을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책을 출간하고 있다. # 그러다 보니 송유근의 경우도 영향을 받을 것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어찌되었든 무협이나 판타지에서 깨달음소재로 많이 쓰이며 이거 하나만 외워 놓으면 나중에 차원이동을 해도 깨달음을 얻어 높은 경지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는듯 하다(...)

김진명의 소설 '코리아닷컴'에서는 레무리아 대륙의 비밀이 담겨있는 경전환빠와 초고대문명의 현관합체!으로 나왔으며 동 작가의 소설 '최후의 경전'에서는 말 그대로 인류의 모든 지혜가 담긴 경전으로 나왔다. 한편 이우혁퇴마록에서는 지맥을 조종하는 주문으로 나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고 하는데(......)

소설 이계인에서는 "천부신공"이라는 무공으로 등장한다.

무협소설 황제의 검에서는 처음에는 천마를 다룰수 있는 주문으로 나왔지만 나중에는 신선이 될수 있는 법이 있는 책이라고 나온다. 이후 주인공이 전부 이해하면서 레알 이 되었다.

이외수벽오금학도에서도 나왔다. 물론 클리셰의 따름으로(...)
  1. 물론 단순히 신채호가 위서라고 말했기 때문에 위서란게 아니다. 전래내력과 등장이 모두 신빙성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신채호가 아니더라도 위작임을 쉽게 알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민족 도그마 아래에서 신채호가 갖는 권위는 거의 절대적인 것에 가깝기 때문에, 그의 위작 발언이 천부경을 진본으로 주장하려는 자들에게 가장 걸림돌이 된 것이다. 역사연구에서 그가 범한 여러 오류들이 그의 권위를 빌어 학계에 대한 공세의 도구가 된 것과는 정반대의 사례로 꼽힐 듯 하다.
  2. 반면 종교적 의미가 정통과 너무 다르거나 심하게 퇴색되면 위경으로 분류된다.
  3. 출처:<단재 정훈모 전집> 1권 P.56~57
  4. 이 책에선 1906년 나철에게 두암이 전했다고 알려진 대종교의 경전 <삼일신고>도 1905년 두암의 윗사람인 백봉이 나인영에게 전하고 단군교 입교를 인도했으며, 1908년 백봉의 수하 두일백이 일본 도쿄에 나인영과 같이 머무르던 정훈모를 만나 두 사람에게 <삼일신고>를 전하고 영계식(단군교의 세례식)을 했다는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고 있다.(61쪽 참조) 정말 1905년 나인영에게 전했다면 왜 굳이 1908년 또 전한단 말인가?(...) 나인영은 단군교 안 전하고 대체 뭘 했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