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종교, 종교인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요소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문서에 쓰여진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마십시오. 편집할 시에는 문화상대주의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작성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신중히 검토한 뒤 작성하십시오. 또한 문서의 사실에 관한 내용을 수정할 때에는 신뢰가 가능한 출처를 기입하시거나, 토론 과정을 거치신 뒤 하시고,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을 넣지 마십시오.
이 틀을 적용할 경우, 문서 최하단에목차
1 개요
신빙성이 거의 없는 가짜 경전. 예를 들어 자기가 써 놓고 예수 또는 부처 같은 사람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할 경우 위경이 된다.
그러나 옛날의 거의 모든 경전들은, 당시 종교 창시자가 직접 저술했다던가 하는 경우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종교 창시자의 말을 이후에 구전하여 저술되어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정확한 경전은 있을 수가 없고, 경전으로 문자화되거나 옮겨적으며 복사되는 과정에서 첨삭 또는 실제로 나오지 않은 내용 등이 들어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토씨 하나라도 틀리면 위경이다"라는 식으로 따지면, 위경 아닌 게 없을 지경이다. 따라서 대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면 경전으로 인정해 주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리스도교의 경우인데, 원래 그리스도교에서 위경은 AD 367년에 선정된 신약 24서 이외의 다른 모든 그리스도교 문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2 불교의 위경
여러가지 주장이 있지만, 대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등 석가모니가 활동한 인도에 기원을 두고 있지 않고 중국 등에서 찬술된 경전은 학술적으로는 위경으로 본다. 종교적 관점에서 현대 불교에서는 중국 찬술 경전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다.(물론 전통적으로 써온 경전이므로 버리지는 않는다.)
문헌 비판적 관점에서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경전에 대한 비판을 거쳐서 심지어 대승비불설까지 나아가기도 하지만, 종교적으로는 일단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시대 이전은 구전으로 가르침이 전승되던 시기이므로 이 당시 언어로 저술된 경전은 대개 비판 없이 정경으로 받아들인다.
종교적으로는 종파나, 혹은 승려 개인에 따라서 가르침에 근거를 두는 경전이 다를 수 있으며, 위경으로 보는 경전을 포함하는 종파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일본 정토종의 경우는 <정토삼부경>만을 중시하는데, 이는 현대는 말법 세계이므로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는 이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 일련종의 경우에는 법화경을 강조하며 다른 경전은 단지 석가모니가 진정한 법을 감추고 말한 것이므로 가치가 낮다고 보고 무시한다.
이러한 '소의경전'은 종파마다 차이가 있다. 다만, 다른 종파에서 중시하는 경전이라도 역사성이 있으면 '위경'이라 보는 경우는 드물다.
2.1 위경 부정설
위경은 정경이 있을 때만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인데, 불교에는 정경이라는 개념이 뚜렷하게 존재하지는 않는다.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장경도 불교의 일부 분파인 대승불교 계열의 잡다한 경전을 차별없이 전부 모아놓은 것 인데, 대승불교 말고도 불교는 다양한 계열이 있으며 대장경 외로도 다양한 전승의 경전이 있으므로, 이들을 싸잡아 상좌부 불교라고 안일하게 부를 수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정경이 확정되어야 위경이 있을 수 있는데, 불교는 교황청 같은 것이 없으므로 정경을 지정할 집단 자체가 없었다. 중국 불교 내에서 위경 목록을 작성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국 불교 내에서 문제다.
한편 남방불교나 스리랑카에서 팔리어로 문서화된 삼장(三藏, Tripitaka) 같은 것은 중국에 전래되지도 않았다가, 1930년대에 일본에서 타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 박사 공적기념회에서 『남전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번역하면서 동아시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대장경은 정경이고 팔리어 경전은 위경이라는 식의 논리는 성립할 수가 없다. 불교사적으로도 북서인도의 유명한 논사인 세친, 청변, 중현 등이 자신들의 저술에서 석가모니 부처님 사후 1차 결집(근본 결집)당시 불전들은 이미 산실되었다.고 밝히고 있으며 현존 빨리어 경전들 중 대다수가 17세기 이후 동남아 불교의 영항 하에 필사된 것들이다.
석가모니가 부모의 은혜에 대해 설법하는 <부모은중경> 같은 경전은 확실히 후대에 만들어진 경전이므로 위경시비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명의를 빌려 자신의 썰을 푸는 행위는 인류 고전의 오랜 전통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굳이 위경이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불교가 너무 가족윤리를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를 상쇄시키 위해 동방의 불교계가 동방의 전통적인 효(孝) 개념을 불경에 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어차피 불교에서는 깨달은 자는 모두 부처이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직접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도, 모든 경전은 부처의 경전이라고 부를 수가 있다.
원래 불교에서 경전은 깨달음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역사적 인물 석가모니의 말에 의해 직접 전승되지 않은 경전을 모두 위경이라고 부른다면, 현존하는 대장경이 번역문제까지 합치면, 전부 위경시비에 걸려든다. 그러나 애시당초 철학 종교인 불교는 그런 식의 정통성을 심각하게 따지지 않았다. 쉽게 말해 유교의 경전 개념과 유사하다.
물론 요즘 사람이 끄적여놓고 이게 과거부터 전해지던 불경이라고 우기면(...) 위경이라고 불리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구분도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술된 문제점이 생기는 것은 어쩔수 없다.
2.2 위경 긍정설
저 주장을 모조리 인정한다면 3가지 문제가 생긴다.
우선 명백하게 기원이 중국이나 동남아, 일본, 한국 등으로 확실한 경전의 경우는 그 경전이 전통적 불교 경전이라고 부르면 안된다. 상단에서는 남의 이름을 가져와서 썰을 푸는 것은 전통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이런 책을 위서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서 <부모은중경>의 경우는 석가모니가 길을 가다가 뼈를 보고 절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것을 중국인이 썼다면 이것은 관대한 관점에서 위경이라고 안 불러줄 수는 있어도 위서가 된다. 종교의 위경 시비는 벗어난다고 해도, 위서 시비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2번째로 작성자를 부처급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것은 경전이 될 수 없다. 내용이 좋으냐 나쁘냐는 나중 문제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전이 된 물건들은 석가모니가 말한 것이겠거니 하고 경전이 된 것이다. 그 경전을 논할 때, 이 경전은 중국의 누군가가 썼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읽는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수단이면 된다고 하지만, 그 경우에는 그 깨달음의 대상이나 논어나 구약성경이 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논어나 구약성경을 불교 경전이라고 부르는 예는 없다.
마지막으로 저 기준이라면 위경을 잡아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이 과거에 썼다고 했다는 이유로 <라마다경>을 위경이라고 했다지만, <부모은중경>도 인도에서 만들어진 경전들에 비하면 한참 후대에 쓰여졌다. 현대만 문제라면, 노자가 인도로 건너가서 부처가 되었다는 <노자호화경>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도교가 불교를 까내리려고 쓰여진 이 경전도 <부모은중경>과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는데 이 경전은 불경인가 아닌가? 만일 동남아에서 전란시기라는 이유로 전쟁을 긍정하고 적을 말살할 것을 주장하는 경전이 쓰엤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속오계의 임전무퇴의 배경이 되는 경전이 고려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것은 경전인가 아닌가? 즉, <라마다경>이건 <노자호화경>이건 모두 경전이라고 부른다면 몰라도, 위경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라마다경>은 불교를 모독하고 있음에도 위경이라고 하는 것은 통용될 수가 없다.
결국 위경 긍정설은 지극히 정치적 목적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부모은중경>이 위경으로 취급받았을 때, 효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같은 것은 차라리 사소한 부분이다. 진짜 문제는 각 종파에서 중시하는 경전이 위경으로 판정이 나왔을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 너무 거대한 떡밥인 대승비불설은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더라도, 이전의 모든 경전을 부정하고 시작하는 법화경은 내용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이전 경전보다 후대에 창작되었으며 이전 경전들과 그 목적이 다른 것이 명백하다[1]. 그렇다고 해서 '<법화경>은 위경이다'라고 하면 법화경을 정경으로 삼고 있는 천태종이나 법화경이 없으면 종파로서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일련종 같은 교단들은 당연히 반발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불교 자체를 공격하는 경전들을 제외하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
그리고 애초부터 각 불교 종파들은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 하여, 각 종파별로 무엇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설이고 친설이 아닌지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다시 말해 불교 내부에서도 무엇이 위경이고 아닌지를 일찍부터 가려낼 필요성을 느끼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교상판석 작업은 실증적이고 학술적 중립을 지키면서 석가모니 부처니의 친설을 가려내었다기보다는 각 종파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게 주 목적이었고, 인도 본토보다는 중국에서 주로 이루어진 작업이었지만, 교상판석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설인 건가?"라는 시대적 문제 해결이었다. 중국에서 교상판석 작업이 인도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진 기본적인 이유 역시, 석가모니의 고향이자 불교 문헌이 순차적으로 등장한 인도와 달리, 중국은 불교 포교승들과 인도 유학승들이 저마다 석가모니 부처님 친설이라는 불경들과 기타 불교 문헌들을 들고 오다 보니 무엇이 진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인지를 가려낼 필요성을 인도보다 더 크게 느껴서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현대적 문헌비교학의 결과와 비슷하게 아함경은 초기 말씀을 담은 경전으로, 그 외의 대승 경전들은 후기의 말씀을 담은 경전으로 분류되었다. 물론 동북아시아의 주류 불교가 대승불교다 보니 '석가모니의 초기 말씀=소승 경전=하근기들을 위한 방편론적 가르침/후기 말씀=대승경전=수준높은 가르침'이라는 사고방식이 박혀 있긴 했지만, 최소한 일찍부터 무엇이 위경이고 무엇이 정경인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시각은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3 타나크의 위경
우리가 흔히 구약이라고 부르는 경전은 그리스도교에서 성립한 히브리 경전이기 때문에, 유대교의 경전과 많은 차이가 있으며, 이 히브리 경전이라는 것도 전승이 다양해서 파고 들면 상당히 복잡해진다. 예수가 살아있을 당시에도 히브리 경전은 다양한 전승의 다양한 판본으로 존재했고, 문서화되지 않고 율법사들이 암기력으로만 전승되는 것도 많았다.
현재의 구약성경 목록은 AD 10세기경에나 완성된 마소라텍스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최근 발굴된 히브리 경전들이 이 마소라텍스트와 차이가 있다. 마소라텍스트라는 것은 옛날 히브리 경전을 수집해서 당대 히브리어로 번역한 것인데, 그보다 더 오랜 전 판본이 발굴된 것이므로 경전화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대충 뭐는 정경이고 뭐는 위경이다 식으로 함부로 말하기 힘들다.
또한 유대교에서는 그리스도교에서 구약이라고 부르는 타나크보다, 옛 율법적 문제들의 판례나 구전 등을 성문화한 미쉬나를 더 중시한다.
예수가 살았던 시대에는 현재의 구약성경 목록이 당연히 없었고, 구전되는 내용이 상당히 많았다. 미쉬나가 성립한 것이 AD 200년경이다.
4 기독교의 위경(Pseudographia)
의외로 오랫동안 교회는 정경의 목록을 정확히 정하지 않았다. 16세기에 개신교가 일어난 뒤 마르틴 루터가 정경 목록에 대해 칼을 들이대자, 비로소 처음으로 트렌토 공의회에서 성경의 정경 목록을 '법적으로' 규정하였다. 그 이전까지는 대체적인 합의만이 있을 뿐 법적으로 규정된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신약에 대해서는 서기 367년 성 아타나시오가 "내 생각엔 신약 정경은 27권이야"라는 의견을 내자 서방교회에서 대체로 받아들여져서 그나마 빨리 의견이 모인 편이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어느 교회에서는 정경 목록이 이렇고 어느 교회에서는 저런데 적당히 참고해"라는 정도였다. 만약 기독교도 불교의 대장경처럼 싸그리 다 기독교의 경전으로 인정해 버렸다면, 위경이라는 개념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위경(Pseudographia)은 '잘못된 이름을 가진 경전'이라는 의미이며, 외경(Apocrypha)은 보통 가톨릭에서 정경에 속하지 않는 문헌은 모두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이다. 가끔 가톨릭의 제2경전 부분을 개신교 신자가 외경이라고 표현하는 것 때문에 가톨릭 신자와 키배가 벌어지곤 하는데, 이는 교리상의 차이이므로 염두에 두는 것이 좋다.
4.1 역사
그리스도교 경전은 모두 그리스어로 저술되었으며, 이는 저자들이 모두 상당 수준의 그리스어 교육을 받았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잡지나 소설이 광범위하게 출판되지 않았으므로, 옛날에 문자를 배운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경전공부를 의미한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모두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을 이해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중에서 그리스 철학과 동방종교가 짬뽕되어 신비주의적 세계관으로 쓰여진 문서들을 흔히 영지주의 문서라고 부르며, 이들은 모두 신약 27서에서 모두 탈락되었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를 영지주의적이라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고, 영지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이상한 개념이다. 자세한 건 영지주의 항목 참조.
사실 초기의 그리스도교는 딱히 명확하게 정해진 경전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으며, 그나마 몇몇 인물이 정경 목록을 정하기도 했지만 그 목록조차 이곳저곳마다 달랐고 꼭 뭘 읽어야 한다는 강제성도 없어서 다양한 교파가 존재했다. 사도의 이름에 가탁하여 예수의 일생을 기록한 온갖 복음서, 역시 사도의 이름을 빌려서 쓴 온갖 편지, 그리고 각종 다양한 묵시록 등 말세적이고 위험한 문서도 매우 많이 있었다. 다만 유명한 누군가의 이름을 빌려서 저술하는 것은 그 당시의 당연한 관행이었기 때문에 현존하는 신약 27서 중에서도 저자가 불분명한 것이 상당히 많다. 또한 요한묵시록의 경우는 오랫동안 정경목록에서 퇴출해야 된다는 논란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AD 367 아타나시오를 중심으로 한 주류 교회가 정경이라고 지정한 27개 문헌만이 정경으로 인정된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소각명령이 떨어져서 모두 소실되었다. 이때 이집트의 한 수도원에서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문서들을 하루아침에 소각해버릴 수는 없다고 판단해서 항아리에 넣어 땅에 묻어버렸는데, 이것이 1950년대에 발견되어 신학계를 깜놀하게 만든 나그함마디 문서이다.
4.2 특징
정경에서 탈락된 문서에는 요상한 판타지나 영지주의로 분류된 문헌 등 비상식적인 문서들도 많지만, 사실 오늘날 연구에 의하면 그냥 상식적인 예수의 가르침만 적혀 있는 문서들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위경을 싸그리 이상한 책으로 생각하는 건 좀 곤란하다. 그래도 워낙 해괴한 내용의 위경들이 많다보니, 이런 것들이 도태되지 않고 그리스도교 세계에도 남아 있었다면, 그리스도교는 더욱 더 말세사상에 주장이 강한 종교가 되었을 듯. 요한묵시록 하나만으로도 이러한데, 위경 중에는 신약 묵시록이 5~6종이나 된다.
그래도 일부 경전은 정경에 포함되지 못했어도 계속 영향력을 발휘하여 일부는 교회 전승으로 남게 된다. 사도 토마스가 인도로 선교하러 갔다든가,[2] 예수가 부활하기 전에 저승으로 내려갔다든가 하는 류의 이야기[3]들이 이런 것이다.
4.3 구약 위경
아주 많다. 판본도 너무 다양해서 전부 열거할 수 없다.
여기에 나온 목록 중에서 묵시문학에는 세계멸망 스토리가 많지만, 나머지는 읽어보면 그렇게 이상한 내용이 아닌 것도 많다. 정경으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이러한 책들이 내세우는 유명한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어떤 작자가 빙자한 것으로 간주하여 위경(pseudographia)이라는 말이 유래되는 것이지만, 사실 옛날 경전은 원래 저자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경에 대한 설명의 출처는 대부분 대한성서공회이나, 가톨릭 계통 문헌이나 성서비평학 서적에 의한 것도 있다.
- 묵시 문학서
- 창세기 49장에 시사된 바와 같이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유언한 것을 기록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 책의 자료는 BC 2세기 초에 이루어졌으나 대체로 책의 형성은 AD 250년 이후로 보고 있다. 후대의 편집인지 창작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 서기 70년 이전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책에는, 창세기에 없는 내용들이 많이 실려 있다.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상당히 많은 부분이 삽입되고 첨가되었다고 한다.
- 희년사(禧年史)
- 얀네와 얌브레
- 아리스테아스의 편지
- 요셉과 아스낫
- 시빌의 신탁집
- 지혜나 철학 문헌
- 마카베오 3서[5]
- 역사서에서 유래된 1서, 2서와는 달리 창작물로 추정된다. 마카베오 전쟁 이전에 일어난 유다인 박해 이야기이다.
- 마카베오 4서
- AD 10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며, 마카베오 후서 6장 18절부터 7장 42절에 실려 있는 율사 엘르아잘과 그 밖의 사람들의 비참한 순교설화로 엮어진 설교풍의 교훈적 작품이다.
- 아히카르
- 기도, 시, 송시(Ode) 류
- 요셉의 기도
- 므나쎄의 기도
- 바리사이적 입장에서 씌어진 18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기원전 63-40년 사이에 집필된 것으로 추측된다.
- 시선 단편
- 시리아어 제2정경 시편 다섯
- 유다 헬레니즘의 저작 단편들
- 비극작가 에스겔
- 주석가 아리스테아스
- 그 외
- 무명의 사마리아 본문
- 역사문헌 단편
- 필로 위경
- 포킬리데스 위경
4.4 신약 외경
역시 아주 많다. 요한묵시록 하나만으로도 이러한데, 신약 외경의 묵시록은 5~6종이나 된다. 이게 정경에 편입되었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 외에도 이상한 스토리도 많지만, 반대로 별 문제 없어 보이는 문서들도 사실 많다. 사실, 신약 정경 27권이 확립되기 전 초기 교회에서는 오늘날의 신약 정경 외에도 디다케, 클레멘트 1, 2서 등의 문헌을 읽었고 교리적으로도 문제가 없었으나 정경 확립 과정에서 사도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 복음서와 그 비슷한 형태들 - 위경 복음서에 대한 자세한 분류는 복음서 항목 참조.
- 이야기 복음서
- 비온인들의 복음서
- 히브리인들의 복음서
- 나지르인들의 복음서
- 니코데모의 복음서(빌라도 행전)
- 베드로 복음서
- 토마스의 유년 복음서
- 에게르톤 파피루스 2
- 옥시 파피루스 840
- 야고보의 원복음서
- 계시적 대화와 담화
- 말씀과 복음의 모음집
- 이야기 복음서
- 예수 어록(Q 문서)
- 실바노의 가르침
- 소고
- 세상의 기원
- 이집트인들의 복음(콥틱어)
- 진리의 복음
- 아르콘의 본질
- 부호라에 관한 소고
- 3부 소고
- 묵시문학적 문서
- 엘리야 묵시록(콥틱어)
- 베드로 묵시록(아랍어)
- 베드로 묵시록(콥틱어)
- 베드로 묵시록(그리스어/에티오피아어)
- 바오로 묵시록(콥틱어)
- 바오로 묵시록(라틴어)
- 스바니야 묵시록
- 토마스 묵시록
- 이사야 승천지
- 그리스도인 시빌린 사람들
- 우리의 위대한 능력
- 엘카사이의 책
- 제5, 6에즈라 멜키체덱
- 사도 요한과 거룩한 동정녀의 신비
- 행전
- 안드레아 행전
- 안드레아와 마티아 행전
- 요한 행전
- 유다복음
- 바오로와 테클라 행전
- 베드로 행전(콥틱어)
- 베드로 행전(그리스어)
- 베드로와 열두 사도 행전
- 필립보 행전
- 베드로의 케리그마
- 서간
- 아브갈 전설
- 바오로와 세네카 사이의 서신
- 가짜 티토의 서간
- 라오디케이아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의 편지
- 콜로사이서 4장 16절에 '라오디케이아에 보낸 편지를 읽으라'라는 구절이 있어서, 바오로가 라오디케이아 교회에도 뭔가 서간을 보냈다는 이갸기가 되지만 그 편지는 남아있지 않다. 불가타 성경의 일부 판에 <라오디케이아에 보낸 바오로의 편지>라는 책이 있긴 하지만 그리스어 판본이 없기 때문에 후대에 지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4.5 전례 자료 및 전승되어오는 기도문 등
- 강론
- 지식의 해석
- 진리의 증언
- 발렌티누스의 설명
- 시편
- 솔로몬의 오대
- 기도
- 도유에 관하여
- 세례 A
- 세례 B
- 사도 바오로의 기도
4.6 근래에 발견된 복음서
- 유다복음 : 유다복음은 그리스도교 설립초기에 일어난 분파 중 하나인 카인파의 입장에서 비영지주의파를 비난하는 내용과 영지주의적 시점에서 작성된 색채가 강하여, 종교의 입장상 위경으로 분류하고 있다.
5 대표적인 위경들의 내용
5.1 예수 유년 복음들
5.1.1 빛의 탄생
마리아가 아이를 낳게 되자 요셉이 자켈이라는 산파를 데려온다. 마리아는 동굴에서 아이를 낳는데, 동굴 전체가 광채로 빛나고 있다. 산파가 마리아의 몸을 검사하고, 출산 때에도 전혀 피가 흐르지 않으며 아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처녀가 임신하고 처녀가 해산하고 해산 이후에도 처녀인 채라고 하느님을 찬미한다.
'야고보 원복음서'라고 불리는 문서의 내용. 라틴어로 써 있으며 예수의 탄생을 묘사하고 있다. M.R.제임스는 이 이야기가 2세기 때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문서 자체는 정경에 편입되어 있지 않으나, 정통 교회에서는 가톨릭과 정교회의 교리인 마리아 평생동정이라는 형태로 남아있으며, 가톨릭에서는 이 이야기 자체가 전승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5.1.2 기적의 아이
어린 예수가 5살 때 냇가에서 놀면서, 물을 모아 웅덩이를 만들고 진흙 반죽으로 참새 12마리를 빚는다. 그때가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유대인이 아버지 요셉에게 알리고, 요셉은 예수를 야단친다. 예수는 손뼉을 치며 참새들에게 날아가라 명령하고, 진흙으로 만든 참새들은 짹짹거리며 하늘을 날아간다.
율법학자 안나스의 아들이 예수가 만든 물 웅덩이를 빼버리자, 예수는 화가 나서 아이에게 저주를 퍼붓고 안나스의 아들은 온 몸이 말라 죽는다. 그 부모가 아이를 데려가면서 요셉에게 원망을 퍼붓는다.
예수가 길을 걷다가 한 아이가 예수의 어깨에 부딪치자, 예수는 화가 나서 저주를 퍼붓는다. 그 아이는 즉시 땅에 넘어져 죽었다. 죽은 아이의 부모가 요셉에게 가서 예수 때문에 이런 마을에서 살 수 없다며, 저주가 아니라 축복하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원망한다. 요셉은 아무도 안 보는 데로 데려가서 예수를 혼낸다. 예수는 요셉을 원망한 사람이 벌을 받을 것이라 말하고, 정말 그 사람은 즉시 장님이 돼버린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리자, 요셉은 예수의 귀를 당기며 혼내고 예수는 요셉에게 화를 낸다.
율법학자 자케우스가 그 광경을 보고 예수가 영리하다고 크게 놀라서 예수를 데려가서 가르치지만, 예수가 너무 똑똑한 나머지 자케우스는 크게 망신을 당한다. 자케우스가 놀라서 예수가 위대한 존재라고 칭송하자, 예수는 크게 웃으며 저주로 쓰러졌던 모든 사람들을 즉시 회복시켜준다.
예수와 아이들이 같이 놀다가 제논이라는 아이가 집 위에서 떨어져서 죽자, 제논의 부모가 예수를 비난했다. 예수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제논을 부활시켜서, 자신이 결백하다고 증언하게 한다.
한 청년이 장작을 패고 있다가 도끼로 발등을 찍어서 큰 부상을 입었는데, 예수는 그 청년을 치유해 준다.
예수가 6살이 되자, 성모 마리아가 예수에게 물을 길어 오도록 했다. 사람들에게 부딪혀서 물동이가 깨지자, 예수는 옷을 펼쳐서 거기에 물을 담아 가져온다.
요셉이 어떤 부자에게 침대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았으나, 침대 다리를 하나 짧게 만드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자 예수가 짧아진 각목을 잡아 늘여서 멀쩡하게 만들어주었다.
요셉이 예수를 가르치려고 선생에게 보냈다. 하지만 예수가 배우려 하지 않자 화가 난 선생이 예수의 머리를 때리고, 예수가 화가 나서 저주를 하자 선생은 죽어버렸다.
요셉의 절친한 친구인 다른 선생이 예수를 학교로 데려가자, 예수는 오히려 학교에서 가르침을 펼쳤다. 선생은 예수를 요셉에게 도로 돌려보내고, 이미 은총과 지혜로 가득 차 있어서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예수는 기뻐하며 이미 죽은 선생도 되살려 준다.
요셉이 아들 야고보와 예수를 함께 보내서 나무를 해오게 한다. 야고보가 나뭇가지를 줍다가 뱀에게 물려 죽어가자, 예수가 야고보를 치유시키고 뱀은 몸이 터져서 죽어버린다.
요셉의 이웃에서 한 아이가 병들어 죽자, 예수가 아이를 부활시킨다.
집을 짓고 있는데 한 사람이 죽자 예수가 그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율법학자들과 대화를 나눈 내용이 들어 있다.
AD 150년 경에 작성된 「도마의 유년 시절 복음」. 도마의 유아 복음서라고도 한다. 꼬마 예수가 졸지에 불량아가 되버렸다
예수의 어린 시절에 관한 복음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초대 교회에서 수백년 동안 인기를 누렸던 문서다. 하지만 그야말로 단순한 기적행의 연속이며, 내용이 지극히 조잡하고 유치하다. 도덕적인 내용은 완전히 결핍되어 있다. 양판소
5.1.3 그 외의 예수의 유년기에 관한 기록들
예수 탄생에 대한 요셉의 증언 ‘내가 아이를 들자 아이는 나를 보고 아주 환하게 웃었다. 눈을 떠서 똑바로 보다가 갑자기 눈에서 큰 광선이 나왔다.’
라틴 유아 복음서
구유에 누워 있을 때, ‘나는 하느님의 아들, 말씀을 전할 예수다’고 말했다.
어린 예수에 대한 아랍 복음서 크리스트교판 천상천하 유아독존
마리아와 요셉이 이집트로 도망갈 때, 아기 예수가 용이 해치지 못하게 명령하고, 사자, 표범, 늑대가 경배했다. 대추야자나무에게 명하여 땅으로 휘어져서 마리아가 대추열매를 따먹을 수 있게 했다. 이집트 허모폴리스의 신전에 들어가자 우상들이 넘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스도-마태오 복음서(가짜 마태오 복음서)
5.1.4 니고데모의 복음서
예수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의 공관복음서와 대체로 내용이 일치하며 공관복음서에서 인용한 부분도 있다. 추가된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다.
그 중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고 부활하기 이전까지 저승 세계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대목에서 사탄은 천지창조부터 그 때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가두고 있던 하데스(저승의 의인화)를 찾아가 예수를 잡아 가두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천사들을 이끌고 저승으로 내려온 예수는 하데스의 문을 쳐부수고, 하데스에 갇힌 모든 사람들을 구출해낸다.
아담을 비롯하여 주로 구약의 인물들이 여기에 등장하는데, 이들은 예수에게 이끌려 천국으로 올라가고 먼저 천국에 와 있던 에녹과 엘리야, 예수를 받아들이고 죽은 십자가 왼쪽 편의 죄수 디스마[6][7] 등을 만난다. 하데스는 사탄을 원망하며, 예수는 사탄을 하데스에 가둬버리고 최후의 심판이 올 때까지 가둬두라는 명령을 내린 다음 부활을 하러 지상 세계로 올라간다.
딱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내용은 매우 허황된 것이다. 하지만 저승을 파괴하고 죽은 자를 모두 구원하여 천국으로 이끌고 가는 예수의 모습이 매우 스펙터클하고, 현실에서 대체로 비참한 처지였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상세계의 카타르시스 같은걸 안겨주었기 때문에 초기 교회에서는 인기가 많았고 널리 퍼졌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액션 영화 같은 것이었을 듯하다. 이 때문에 예수가 죽어있는 3일 동안 저승에서 옛 유대인의 족장들을 풀어주고 다녔다는 전승도 널리 퍼졌으며 그 뒤에도 교회 전승으로 남아 버렸다. 단테의 신곡에서도 이 내용이 언급된다.예수 부활 직전끼지 살았던 사람들은 다 천국갔으니 이제 구출 작전 후 지금까지의 사람들만 설명하면 된다. 이순신도 지옥갔어요?
6 관련항목
- ↑ <법화경>을 대승불교의 시작으로 보는 입장에서 보면 대승과 소승은 신약과 구약만큼 차이가 벌어져 버린다. 애초에 법화경의 내용이 신약처럼 이전 규칙을 다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만약에 <법화경>이 대승경전과 별도로 존재한다고 본다면 <법화경>만 폐기하는 것으로 땡칠 수는 있다.
- ↑ 심지어 인도의 고대 기독교회인 시로말랑카라/시로말라바르 교회들도 사도 토마스로부터 유래하는 사도전승을 갖고 있다.
- ↑ 예수의 지옥 하강 자체는 베드로1서 3장 18절-20절과 4장 6절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사도신경에도 등장하는 오랜 교회 전승이다. (단, 한국의 개신교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 번역본은 그 구절을 뺐다.) 자세한 것은 해당 구절과 위키백과 참조위키백과의 '베드로의 첫째 편지' 항목예수의 지옥 하강에 대하여는 별도의 항목이 개설되어 있다.(영어) 참고로 사도신경에 기록된 예수의 지옥 하강을 삭제해서 사용하는 곳은 한국의 개신교 이외에는 거의 없다.한국 위키백과영어 위키백과 무엇보다 한국의 개신교의 다수를 차지하는 장로교의 대스승인 장 칼뱅도 본인의 서적인 <기독교 강요>에서 예수의 지옥 강하를 인정한 바가 있다.
- ↑ 가톨릭 교회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장례미사에서 드리던 유명한 부속가인 Dies irae(진노의 날)에 'Teste David cum Sybilla' 라고 해서 시빌을 언급하고 있다.
- ↑ 정교회 및 다른 많은 동방교회는 이를 정경에 포함한다. 마카베오 1서, 마카베오 2서와 마찬가지로 마카베오 3서, 마카베오 4서도 사실 상호 관련은 없는 문서이나 한데 묶여있다.
- ↑ 예수 입장에선 오른쪽이다. 회개한 죄수는 디스마, 회개하지 않은 죄수는 게스따스(제스따스)이다. 디스마는 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으며 축일은 3월 25일이다.
- ↑ 이 장면에서 구약의 족장들은 천국에 올라왔더니 왠 흉악하게 생긴 인간이 천국 문 앞에 있는 걸 보고 크게 놀란다.
- ↑ 투르크메니스탄의 독재자
이자 술탄인 니야조프가 만든 위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