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츠고 요시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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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디앤에이 베이스타즈 No.25
츠츠고 요시토모 (筒香嘉智)
생년월일1991년 11월 26일
국적일본
출신지와카야마
포지션내야수,외야수
투타우투좌타
프로 입단2009년 드래프트 1위
소속팀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010~ )

1 개요

현재 NPB 최고의 왼손 홈런 타자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주포인 왼손 강타자로, 일본프로야구에서는 나카무라 타케야의 뒤를 이을 차세대 거포로 주목받고 있다.

2015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구단이 기획한 이벤트 '드림 스타디움 2015' 홍보영상."어느 소년의 꿈" .츠츠고의 실제 이야기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2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2학년 때 와카야마 뉴 메츠라는 유소년 야구클럽에서 야구를 시작했다.중학교 시절에는 사카이 빅보이즈라는 클럽에 소속되어 30홈런을 칠 정도로 뛰어난 장타력을 보였으며 3학년 때는 전국 대회 8강, 간사이 대표팀의 4번 타자로 세계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중학 시절의 활약으로 간사이 지방의 강팀인 고등학교들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요코하마 고등학교[1]로 진학한다.

요코하마 고등학교에서도 뛰어난 장타력을 선보이며 1학년 봄부터 4번 타자를 맡았는데 요코하마 고등학교 역사상 1학년에 4번 타자를 맡은 선수는 같은 학교 출신인 키다 쇼이치 이후 처음이었다. 2학년 여름에는 제 90회 전국고등학교 야구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첫 시합인 우라와학원과의 경기에서 홈런, 8강전인 세이코학원과의 경기에서는 만루 홈런 포함 연타석 홈런과 1경기 8타점이라는 사기적인 활약을 보인다. 비록 준결승에서 오사카 토인고교에 패배하긴 했지만 대회에서 5할2푼6리의 타율과 3홈런, 14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4강행을 이끌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대회 후 기존에 갖고있던 허리 통증이 악화되어 병원에서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고 2달간 재활훈련을 했다. 이 때 잠시 스위치히터로 전향했으나 다시 좌타자에 집중하게 됐다.

3학년 여름에는 카나자와에서 열린 고시엔에 참가해 7월 26일, 우라와학원과의 준결승에서 동점으로 팀이 쫓기는 상황에서 2, 3루로 찬스가 왔지만 1루 땅볼로 기회를 날리고 만다. 그리고 연장 10회말 2아웃 상황에서 본인의 실책으로 인해 9대10으로 끝내기 패배를 당하고 만다.(...) 대회 후 제8회 아시아청소년야구대회 대표팀으로 선발됐다.

2009년 10월 29일에 열린 일본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2]에 1순위로 지명받고 계약금 9천만엔, 연봉 800만엔(추정치)에 계약했다.

고등학교 시절, MBC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 이후 방영한 다큐멘터리 '가까운 야구 먼 일본'에 출연했다. #

3 프로 입단 후

3.1 2010년

스프링캠프에선 2군에서 육성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중간에 1군으로 호출되어 자체 홍백전에서 3루수, 4번타자로 나와 3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고졸 신인임에도 2군에서 계속 4번으로 출장했다. 8월 22일에는 고졸신인으로 2군 본즈오타 다이시(현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의 홈런 기록을 깨뜨렸고, 9월 12일에는 데라하라 타케히로(현 세이부 라이온즈 소속)의 홈런 기록을 5년만에 경신하는 24호 홈런을 쳤다. 프로 첫 해 2군에서 26홈런, 88타점으로 홈런과 타점 모두 1위를 기록하는 활약을 펼쳤다. 2군에서의 활약으로 구단 프런트에서는 9월 20일부터 다음 해 신인왕 자격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1군 출전을 제안했고 10월 5일,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5번타자, 1루수로 프로 1군 무대에 데뷔했다. 10월 7일, 한신과의 경기에선 3번째 타석에서 구보타 토모유키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안타가 되는 1점 홈런을 날렸다.

3.2 2011년

등번호를 5번으로 바꿨다. 5월에 오른손목 인대 부상으로 3개월 가까이 결장했지만 2년 연속 2군 홈런 1위에 올랐다.

8월에 1군 무대로 올라오면서 주로 중심 타선에 배치되어 경기에 출전했다. 기대를 모았던 장타력은 돋보였지만 삼진이 지나치게 많아 10월 18일에 있었던 주니치와의 경기에선 일본 프로야구 한 경기 최다타이인 5삼진을 당하고 만다.[3]

그래도 1군에서 40경기에 출장하며 8개의 홈런을 쳐내는 등, 거포의 가능성을 보인 해였다.

3.3 2012년

등번호를 요미우리로 이적한 무라타 슈이치의 25번[4]으로 바꿨다. 스프링캠프에서 팀 동료인 사토 쇼마에게 몸에 맞는 공으로 왼쪽 발목 뼈에 타박상을 입어 결국 시즌 개막을 2군에서 맞게됐다.

5월에 1군으로 올라와서 곧바로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3번타자(3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5월 6일 펼쳐진 주니치와의 경기에선 상대 선발이었던 47세의 야마모토 마사를 상대로 프로 데뷔 첫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나이차가 많이 나는 투수와 타자 간의 홈런(26살 차이)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시즌 중반에는 팀에서 영입한 외국인 타자 랜디 루이스로 인해 외야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본인의 커리어 첫 두 자릿수 홈런(10홈런)을 기록했지만 타율은 규정타석을 채운 야수 중 최하위인 .218에 불과해 정확도 향상이라는 문제를 남긴 해였다.

시즌 후에는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멤버로 선발되었다.

3.4 2013년

시범경기에서 주루플레이 도중 왼쪽 발목이 꺾이는 부상으로 개막전 출장이 어려울뻔했으나 일시적인 부상조치를 받아 6번타자(3루수)로 프로 데뷔 첫 개막전 선발라인업에 포함됐다. 그러나 개막 3연전에서 9타수 무안타로 침묵하며 나카무라 노리히로에게 3루 자리를 내주고 4월 1일에 1군에서 말소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6월 25일, 야쿠르트 원정에서 1군으로 복귀해 선발 출전하여 3안타로 좋은 타격을 보였지만 1루에 토니 블랑코, 3루에는 나카무라 노리히로가 버티고있어 두 선수를 뚫고 출전하는데 제한이 있었고, 주로 대수비, 대타로 나오거나 좌익수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8월부터 2군에만 머무르며 시즌 말까지 콜업이 없었다.

2013년 성적은 타율 .216에 1홈런, 3타점에 그쳤다.

3.5 2014년

팀에서 오프시즌에 오릭스 버팔로스로부터 자유계약으로 풀린 3루수 아롬 발디리스의 영입과 나카하타 키요시 감독의 요청에 따라 좌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시범경기에서 .360의 타율로 좋은 모습을 보이며 2년 연속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었다.

개막전 직후 8경기에서 타율 .161에 무홈런으로 부진했지만 그 후 3,4월 타율이 3할에 근접할 정도로 부진을 만회했다. 6월 17일에 오른쪽 허벅지 뒤쪽을 다쳐 2군으로 내려갔으나 10일 후에 곧바로 1군에 복귀했다. 그 후 4월 중반부터 리그 득점권 타율 1위를 고수했고 시즌 중 토니 블랑코와 나카무라 노리히로의 부상 이탈로 인한 라인업을 메꾸기위해 4번 타자로 기용됐다.토니 블랑코가 복귀한 뒤 다시 5번으로 타순이 조정되었다.

7월 12일,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선 11호 홈런을 날리며 자신의 프로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8월 13일에 열린 주니치와의 원정경기에서 1회말 주니치의 오시마 요헤이가 좌중간으로 보낸 뜬공을 쫓아가다 중견수인 카지타니 타카유키와 충돌하여 포구에는 성공했지만 지면에 머리부터 떨어지는 위험한 부상을 당하며 일어나지 못했다. 급히 그라운드에 들어온 구급차에 실려나가 병원으로 이송되어 뇌진탕이라는 검진을 받고 그 다음날인 14일에 재검진을 받은 후 이상없음을 확인하고 1군에서 말소됐다.

이후 재활훈련을 받고 9월 8일,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1군으로 복귀하여 토니 블랑코를 밀어내고 4번 타자로 출전하면서 4번을 맡는 횟수가 많아지고 이후 블랑코가 다시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시즌 막판까지 4번 타자로 출전했다.

시즌 내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지만 본인의 프로 통산 두번째로 규정타석을 채우며 처음으로 3할타자가[5] 됐고, 22홈런, 77타점으로 모두 본인 커리어 최고 기록을 세웠다. 특히 좌타자면서 좌투수 .306의 타율로 강한 면모를 보였고 무엇보다 .416의 득점권 타율을 보이며 클러치 히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즌 후 11월 9일에 열린 미일 올스타전에 부상으로 하차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나카무라 아키라 대신 추가로 선발됐다.

3.6 2015년

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었으며 프리미어 12를 대비해 시즌 전 2월 16일에 개최한 유럽대표와의 경기에서 일본 대표팀으로 선발됐다.

7월 16일에는 프리미어 12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예비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9월 10일,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팀 1차 엔트리에 포함됐다.

정규 시즌에서는 팀의 중심타자로 완전히 자리잡았으며 타율.317(센트럴리그 3위), 홈런 24개(리그 4위), 93타점(리그 3위), 157안타(리그 3위) 등 모든 기록이 전년도에 비해 발전하면서 본인의 커리어하이 기록을 세웠다. 출루율과 장타율, OPS와 총 루타수 모두 야마다 테츠토에 이은 리그 2위의 기록이었고 콩까지마 득점권에서도 .344를 기록하며 작년과 같이 클러치히터의 면모를 보여줬다.

시즌 후 10월 9일에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팀에 최종 선발됐다.

3.7 2016년: 드디어 잠재력이 만개하다

시즌초 부상에서 이탈했다가 복귀 후 다시금 요코하마의 거포로 거듭났다. 전반기 종료시점에서 홈런 22개로 리그 2위를 기록 중. ??? : 저랑 비슷하시네요 그러나 1위에 타격 8관왕을 노리는 꼴지팀의 어떤 4번 타자가 있어 홈런왕 수상은 다소 힘들 것 같기도.

후쿠오카 돔에서 펼쳐진 올스타 1차전에서 3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으로 활약하여 센트럴리그를 승리로 이끌고 MVP를 수상했다. 또한 홈구장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올스타 2차전에서도 선제 홈런을 터뜨리며 2연속 MVP를 노려볼만 했으나...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고, 4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을 기록한 어느 이도류의 괴물이 대신 MVP를 수상하였다.

전반기 시점에서 22개의 홈런을 기록했지만 홈런 편중이 심하다. 22개의 홈런 중 20개가 홈구장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나왔고 단 2개만이 각각 마츠다 스타디움고시엔에서 기록되었다. 자팀 팬들도 '후반기엔 원정에서도 날려줘~'라고 외치는 정도. 응원가를 요코하마의 하늘 높이가 아니라 일본의 하늘 높이로 바꾸자

7월 19일, 후반기 시작한 지 두번째 경기만에 원정인 진구구장에서 멀티포를 쏘아 올리며 전반기 원정 홈런 갯수를 따라잡았다! 게다가 두 번째 홈런은 9회초 8:8 동점 상황에서 나온 극적인 결승 홈런

후반기 초반이지만 완전히 미친듯한 타격감을 보여주고 있다. 7월 22일 교진을 상대로 12회말 사요나라 홈런이 되는 28호 홈런을 때려내며 3경기 연속 멀티홈런을 이뤄냈고, 센트럴 리그 홈런 1위 야마다 테츠토에 한 개 차이로 따라 붙었다. 얼마 전까지 9개 차이였던 걸 생각하면... 게다가 이 날 중계의 해설자는 전임 감독이였던 나카하타 키요시

7월 29일 히로시마 카프와의 경기에서 3점 홈런 2방으로 시즌 31호를 기록, 드디어 야마다 테츠토를 앞질렀다! 미칠듯한 홈런 페이스로 이미 장타율마저 야마다를 추월한 상황 야마다의 타격 8관왕은 가능할 것인가

아직 시즌이 많이 남았지만 츠츠고가 이번 홈런레이스 경쟁에서 우위를 새로 점하게 된 것이 놀라운 건 츠츠고가 5월 초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되어 10경기를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월했다는 것이다. (야마다는 이 시점까지 전경기 출장 중). 물론 이 페이스를 시즌 끝까지 이어갈 수는 없겠지만 만약 남은 경기들을 건강하게 치르게 된다면 타석 대비 홈런 수는 워낙 압도적이라서 홈런 1위를 지킬 가능성도 충분하다. 내친 김에 타점왕도 도전해보자 다만 츠츠고에게 언제나 부상은 큰 적(...) 나중에 오히려 야마다가 부상 당했다

8월 11일 도쿄돔에서 시즌 35호 홈런을 치면서 이제서야 2016년 도쿄돔에서 첫 홈런을 때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구단 프랜차이즈 좌타자 최다 홈런이라고...

8월 20일 나고야 돔에서는 2점 홈런으로 시즌 36호 홈런을 날리며 팀의 승리을 견인했다.

8월 30일 히로시마 원정경기에서 상대 선발 투수인 크리스 존슨에게 시즌 37호 홈런을 기록했다. 9월7일 경기에서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권을 놓고 다투는 야쿠르트와의 맞대결에서 홈런 레이스 라이벌인 야마다 테츠토가 보는 앞에서 39호 홈런을 기록하며 생에 첫 홈런왕 타이틀에 한발짝 더 다가감과 동시에 무라타 슈이치(현 요미우리)이가 45홈런을 친 이후로 8년만에 40홈런을 치는 구단 내 일본인 타자 겸 구단 최초로 40홈런 고지를 밟는 일본인 좌타자에 바짝 다가서게 되었다. 기록이 출중해서 만약 팀이 98년 일본시리즈 이후 18년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한다면 히로시마의 스즈키 세이야, 아라이 다카히로 및 크리스 존슨 등과 더불어 강력한 MVP 후보로 손색없는 활약을 보이고 있는 중.

9월 13일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드디어 대망의 40호 홈런을 쏘아 올렸다. 진구구장이라는 말은 즉 또 야마다가 보는 앞에서 홈런을 때렸다는 것. 츠츠고가 홈런 치면 카메라가 야마다를 주구장창 찍는다.야마다가 며칠 전 1경기 3홈런을 몰아치며 1개 차이로 좁혀졌던 격차를 다시 벌리는 홈런이자, 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클린치 넘버를 '5'로 줄이는 결정적인 홈런이 되었다.

9월 17일 고시엔 한신전에서 3타점 적시타를 때리며 100타점 고지와 타점 1위 자리에 동시에 올라섰고, 19일 요코하마에서의 히로시마전에서 쐐기 1타점을 올리며 구단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쐐기를 박았다. 23일 도쿄돔 교진전에서 만루홈런을 포함해 3안타 2홈런 5타점을 올리며 홈런 2위와의 격차를 4개, 타점 2위와의 격차를 7타점으로 벌렸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322 151안타 44홈런 110타점 89득점 출루율 .430 장타율 .680 OPS 1.110을 기록하였다. 홈런과 타점, 장타율은 1위를 기록하였으며, 2위인 출루율도 1위인 사카모토 하야토와 3위인 야마다 테츠토의 잔여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바뀔 가능성도 있는데... 야마다는 마지막 경기에서 4타수 2삼진을 기록하여 출루율 하락으로 인해 2위를 확보했다. 반면 사카모토는... 출루율 1위를 밀어주기 위해서 경기 출장을 하지 않았다!! 결국 출루율은 2위 확정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히로시마와의 대결에서는 4경기에서 8푼3리를 기록(...). 탈락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츠츠고만 못 한 건 아니다.

4 플레이 스타일

고교 시절부터 초고교급 타자로 주목받았으며[6] 요코하마의 마쓰이 히데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정도로 뛰어난 장타력을 인정받았다. 컨택능력 또한 수준급. 모교인 요코하마 고교의 야구부장을 맡고있는 오구라 기요이치로가 '20년간 봐왔던 타격 재능 중에 최고'라고 극찬할 정도.

프로 초창기에는 거포 유망주들 대부분이 가진 약점인 변화구에 대한 대처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고 선구안도 별로 좋지 못했다. 여기에 2013년까지 끊이지 않는 부상 때문에 같은 고졸 출신의 오타 다이시같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2014년부터 부상 악령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포텐이 터지기 시작했다는 평가. 특히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변화구에 대한 대처와 선구안이 2015년을 기점으로 한층 좋아지면서 향후 마쓰이 히데키에 이어 일본 야구를 이끌어갈 대형 좌타자로 주목받는 중이다.

약점은 수비와 내구성. 실제로 수비력이(특히 외야수 전향 후) 매우 안 좋다. 최근에 열린 프리미어 12 도미니카와의 예선전에서 어이없는 위치선정으로 그라운드를 맞고 넘어가는 2루타를 헌납하며 결국 동점 홈런이 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이외에도 2ch 등지에서 츠츠고의 수비에 대해서 나오는 말 대부분이 같은 수비(...)

가장 크게 부각되는건 부상으로 인한 내구성 문제. 팀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다무라 히토시 뺨칠 정도로 크고 작은 부상이 잦아서 1군 무대 풀타임을 뛴 것은 2015년이 처음일 정도로 아직까지 내구성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16년에도 4월 말, 시즌 초반에 복사근 부상으로 잠시 엔트리 말소가 된 적이 있다.
  1. 마쓰자카 다이스케,와쿠이 히데아키,나루세 요시히사가 다녔던 학교이다.
  2. 당시 팀 명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3. 센트럴리그 사상 8번째, 퍼시픽리그까지 합치면 14번째 기록이다.(...)
  4.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무관의 제왕' 마츠바라 마코토에게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번호로, 요코하마 최고의 강타자 기대주에게 부여되어왔다.
  5. 정확히 3할을 채웠다.
  6. 당시 스카우트들로부터 메이저리그에 진출 할 수 있을 정도라는 평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