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무라 다케야

(나카무라 타케야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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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은 아내인 배우 무라카미 마리에. 일견 가정적이고 바보같이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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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홈런왕. 갭 모에 일본 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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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1일 크레용 신짱 747화에 등장! [1][2] 한그릇 더 군의 위엄 여기서는 끝까지 본명으로 안불리고, 오카와리(한그릇 더)라고 불린다. 신노스케는 오스와리(앉아)이누야샤?군 이라고 부르지만(...).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No.60
나카무라 다케야 (中村剛也)
생년월일1983년 8월 15일
국적일본
출신지오사카 부 다이토 시
포지션3루수, 1루수
투타우투우타
체격175cm 102kg
프로입단2001년 드래프트 2순위
소속팀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02~)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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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소속의 야구선수. 홈런왕 6회, 타점왕 3회에 빛나는 일본프로야구 현역 최고의 슬러거이다.[3]

푸짐한 체구와 아래의 일화 덕에 일본에서는 '한 그릇 더 군'(おかわり君)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대한민국 한정으로는 이대호와 구분하기 위해 일본 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똥차

2 프로 입문 전

2.1 고등학교 시절

집에서 가까운(도보 5분 거리) 오사카 토인고교[4][5]에 진학하여 4번 타자로 활약한다. 프로입단 이전부터 무시무시한 홈런 생산력을 자랑하며 고교 통산 83홈런을 기록한다. 이는 당시 역대 2위의 기록. 또한 뚱뚱한 체형에도 불구하고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프로에서 도루왕 경력이 있는 1년 후배 니시오카 츠요시가 고교 시절 자신보다 나카무라가 더 빨랐다는 증언을 했다.

발빠른 우타 빅뱃 내야수였기에 많은 기대를 받고 2001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3 선수생활

3.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순조롭게 1군에 적응해 갈 것이라던 예측과 달리, 나카무라의 1군 입성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장타력은 뛰어났지만 정교함이 떨어지는데다가 지나치게 삼진이 많았다. 2003년 1군 데뷔전을 가졌지만 큰 활약을 보이진 못했고 2005년 중반에 이르러서야 이토 쓰토무 감독 아래에서 기회를 잡게 된다. 이토 감독은 당시 3루수를 보고 있던 용병 호세 페르난데스를 지명타자로 돌리고 나카무라를 붙박이 3루수로 기용하였다. 나카무라는 80경기에서 22홈런을 폭발시키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특히 센트럴리그와의 교류전 기간 동안에는 12홈런을 기록하며 교류전 우수선수상을 받는다.

2006 시즌에는 당시 개인 최다인 100경기에 출전하였으나 홈런은 9개로 급감하였으며, 득점권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즌타율 .276, 득점권 .205) 부진했다. 또한 좌상바의 모습도 보이며 상대선발이 좌완일 경우 선발에서 제외되기 일쑤였다.

2007 시즌 역시 부진하며 5월에는 2군을 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결국 시즌 98경기 출장에 타율 .230, 홈런 7개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였다.

그러던 중 2008년에 세이부에 오쿠보 히로모토가 타격코치로 들어오면서 나카무라의 커리어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오쿠보 코치는 정교함이 떨어지는 나카무라가 자신의 단점을 고치기 위한 훈련을 반복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단점을 고치기보다는 장점을 살리자'라며 그의 스윙 스타일을 변화시켰다. 동계훈련 기간동안 히팅포인트를 앞 무릎 앞쪽에 형성시키는[6] 훈련을 한 나카무라는 2008년 드디어 홈런타자로 각성하여 46홈런으로 리그 홈런왕에 등극한다. 반면에 삼진 또한 162개를 기록하며 삼진왕에도 동시에 등극한다(...) 뿐만 아니라 리그 최다인 22개의 실책, .231의 낮은 득점권 타율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이듬해인 2009 시즌에도 48홈런을 몰아치며 홈런왕 자리를 유지하였으며 122타점으로 생애 최초 타점왕도 달성한다. 타율 또한 .285로 전년도(.244)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 다만 실책(15)과 삼진(154)에서도 여전한 모습을 보여주며 2년 연속 해당부문 리그 1위를 지켰다.

2010년에는 시즌 전 자신이 친 타구에 얼굴을 맞아서 골절상을 입는 등 시즌 내내 부상으로 고생하며 85경기 출전, 25홈런에 그친다. 부상만 없었다면 홈런왕은 따놓은 당상이던 페이스였지만 이로 인해 홈런 타이틀은 T-오카다가 가져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111개의 아름다운 삼진 개수를 기록하였으며 득타율은 .170을 기록하며(!!!) 공갈포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통일구가 도입되어 일본프로야구 전체의 장타력이 급감한 2011 시즌에도 홀로 대포를 양산해내며 48홈런으로 개인 최다 타이를 이룸과 동시에 3번째 홈런왕을 차지한다. 해당 시즌 퍼시픽리그 홈런 2위인 마쓰다 노부히로의 홈런 갯수는 25개였으며, 퍼시픽리그 전체 홈런이 454개, 치바 롯데 마린즈의 경우 팀 홈런이 46개였다. 나카무라는 리그 전체 홈런의 10.57%를 혼자 양산해내며 양 리그 출범 이후 최초로 리그 홈런의 10% 이상을 홀로 치는 위엄을 보여줬다. 당연히 타점왕도 그의 몫. 2011 시즌 후 팀과 3년 10억엔의 계약을 맺는다.

2012 시즌을 앞두고 본인의 등번호와 같은 60홈런을 칠 것을 선언한다. 시즌 초반 잠시 부진을 겪으나 교류전을 계기로 괴물같이 부활하며 홈런 1위에 등극한다. 하지만 6월 등부상이 악화되어 부상자 명단에 오른다. 그 사이 이대호에게 홈런과 타점 1위 자리를 빼겼지만 이내 역전하면서 27홈런으로 2년 연속 퍼시픽리그 홈런왕에 올렀다.

2013년 시즌에는 전년도 무릎 수술로 인해 시즌 대부분을 날려먹으면서(어깨 부상으로 인해 복귀 지연) 26경기 출전, 4홈런에 그쳤다. 4번타자 자리는 .317 27홈런 110타점으로 타점왕 타이틀을 획득하며 각성한 고교 후배 아사무라 히데토가 메웠다. 그리고 옆 동네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기어코 60홈런을 쳐낸다

2014 시즌에는 완전히 각성. 타율은 여전히 2할 중반대에서 머물렀지만, 출루율이 확연히 높아진 모습을 보였다. 완벽히 타석 접근법을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찾아낸 모양. .257 .384 .579 34홈런(같은 팀의 에르네스트 메히아와 함께 리그 공동 1위) 90타점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2015 시즌에는 7월 24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 4회말에 선발투수 오타니 쇼헤이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면서 300홈런(일본프로야구에서 41번째)과 1,000호 안타(일본프로야구에서 281번째)를 동시에 달성하였다. 300호 홈런은 1,158경기만이며 이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8번째로 빠른 기록이다. 아울러, 같은 날 경기에서 역시 투수 오타니를 상대로 158km의 강속구를 밀어쳐서 만루홈런을 뽑아냈는데, 개인 통산 15번째 만루홈런이며,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만루 홈런(15개)를 친 타자로 오 사다하루와 타이를 이뤘다. 8월 9일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열린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시즌 31호이자 일본프로야구 신기록이 되는 통산 16번째 만루 홈런을 날렸다.

2015 시즌의 70%정도가 지난 8월 16일에(전날 스리런으로 생일을 자축하였다) 리그 타점 106점으로 2위인 이대호와의 차이가 27점이다. 홈런도 이대호보다 7개 앞선 33개. 진짜 독주란게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결국 37홈런, 124타점으로 2관왕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비공식 타이틀 삼진왕(172개)은 덤

2015 WBSC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팀으로 선발되었다. 부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도쿄 대첩 때 일본 팀 마지막 타석에서 대타로 나왔으나 범타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에 패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2016년 시즌 초반 사구에 부상을 당해 주춤했으나, 다시 홈런 페이스를 끌어올리면서 파리그 홈런 경쟁 레이스에서 닛폰햄의 브랜든 레어드, 팀 동료 에르네스트 메히아의 뒤를 쫓고 있다. 물론 삼진 숫자는 당당히 1위를 마크하고 있다. 일본의 자존심 5월 13일부터 3루수로 출전했고, 6월 15일게임 수비 도중 협살 플레이 처리 과정에서 왼쪽 무릎을 다친 뒤 6월 28일까지 1군 경기 출장 기록이 없다. 7월 1일부터 경기에서 다시 출전하고 있으나, 홈런을 날리지 못하고 있다. 타율과 출루율도 하향세.

극도의 타격부진이 계속되자, 타나베 노리오 감독은 오카와리 군의 2군행을 결정했다. '16년 7월에는 19경기에 출전하여 타율은 0.194, 홈런은 2개에 그쳤다. 나카무라는 스스로 몸상태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16시즌은 108경기에서 타율 0.238, 21홈런, 61타점, 출루율 0.313, 장타율 0.447, 125개의 삼진 등 지난해에 비해 크게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4 플레이 스타일

굳이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일본판 마크 맥과이어'. 애덤 던이 아니고? 엄밀히 말해 약맥만큼의 출루율은 갖추지 못했으니 다운그레이드라고 봐야겠다. 물론 도핑은 안 했다. 밥을 많이 먹었을 뿐. 하단의 통산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데뷔 이래 단 한번도 타율은 3할을 넘지 못했으며 커리어 최고 타율이 .285, 통산 타율은 .255 에 불과하다. 하지만 통산 출루율은 9푼 가까이 더 높은 .346 이며, 통산 장타율은 .543 에 이른다. 좋은 선구안과 강력한 파워가 가져오는 압박을 바탕으로 스윙을 아끼며 볼넷을 얻어내고, 비록 컨택은 좋지 않지만 실투는 용납하지 않으며 홈런 내지 장타로 연결시키는 타자. 던이잖아! 상대도 그것을 알기에 더더욱 조심스레 바깥쪽 승부를 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그에게 볼넷을 주게 되어 있다.

다만 초창기에는 이러한 스타일의 확립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아 고 출루율 타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좀 있었다. 하지만 2010시즌 부터 이후 타율 - 출루율 간 간극을 1할 이상 넓히며 자기의 스타일을 완전히 확립했다. 특히 2014 시즌에는 6월 14일 기준 타/출/장 255/.461/.650 이라는 공포의 스탯을 찍기도 했다. 출루율이 타율보다 2할이나 높다. (...)

'70%의 힘만으로도 공을 스탠드로 날릴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의 장타 생산력이 특징이다. 172cm라는, 야구선수로는 크지 않은 키를 가지고 있지만 타고난 파워를 바탕으로 당겨쳐서 홈런을 만들어내며, 홈런들이 라이너성 타구보다는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문샷인것이 특징. 세이부 시절의 팀 동료였던 와쿠이 히데아키에게 홈런을 많이 쳤으며, 이혜천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뛰던 시절에도 메이지진구 구장 좌측 스탠드에 꽃히는 만루홈런을 안겨줬다. 다만 시원한 스윙만큼이나 삼진 또한 많아서 삼진왕을 3차례나 기록했다.

3루수로서의 수비 능력은 영 좋지 않아서 리그 실책 1위를 3차례나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았는데, 3루수로서 2014년까지 통산 필딩률 .950이라는 극악의 수비를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해가 갈 수록 1루수(.989) 기용이 많아지는 중. 그리고 2014년에 들어와서는 1루수로 나왔음에도 부상을 당해 몇몇 팬들은 아예 지명타자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5 이모저모

  • 애칭인 '한 그릇 더 군'은 선배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한 그릇 더 입니다'라고 대답해서 생겼다. 이 말이 통통한 그의 이미지와 어울려서 애칭으로 굳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유독 멀티홈런이 많다.
  • 2살 연상인 탤런트인 무라카미 마리에와 2008년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3남을 두고 있다. 장남은 2009년7월22일생, 차남은 2011년12월3일생, 3남은 2014년6월12일생이다. 어머니 저도 야구를 시켜주시지 그랬어요...
  • 이대호가 일본에 진출했을 당시 한국 언론에서 라이벌로 거론하기도 하였는데, 사실 두 사람의 타격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 나카무라가 압도적인 장타력을 앞세운 스테레오타입 슬러거라면, 이대호는 기본적으로 교타자에 타고난 파워가 더해진 스타일이다.
여담으로 키순으로 치면 일본 돼지 < 미국 돼지 < 한국 돼지 순이다.

6 주요기록

연도경기타율홈런타점삼진
20034.167026
200428.2732510
200580.262225762
2006100.27692978
200798.23073271
2008143.24446101162
2009128.28548122154
201085.2342557111
2011144.26948116134
2012123.2312779125
201326.20841538
2014111.2573490124
2015139.27837124172
통산1209.2573098291247
(굵은 글씨는 리그 1위)
  1.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신노스케 가족이 사는 곳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연고지인 사이타마 현의 카스카베 시다.
  2. 영상 초반부 녹화장면으로 보아 본인이 직접 성우까지 한 듯하다.
  3. 2015년까지 규정타석을 채운 해에는 모두 홈런왕을 기록했다.
  4. 재학 당시 이와타 미노루가 동기, 니시오카 츠요시가 1년 후배였다. 이전 문서에서는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고교 1년 선배라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나카지마는 이타미북고교 출신이다.
  5. 집에서 가깝다고는 하지만 오사카 토인고교는 매년 전국대회 우승후보들이 득시글 거리는 초 격전구 오사카에서도 항상 본선진출 1순위로 평가받는 야구명문고이다. 특히 라이벌 격인 PL학원이 학교측의 야구부에 대한 방침전환으로 예전과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2010년대 들어와서는 오사카에서도 원탑의 지위에 올라올 정도로 강호이며 2014년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오사카에서는 30년만에 3년연속 본선진출을 기록함은 물론 우승까지 차지한 초 강호이다. 서태웅처럼 집에서 가깝다고 무명학교에 진학한 것이 아니라 고시엔 본선에 진출할만한 팀 중에서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고른 것이 차이점.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같은 년도에 2010, 2012, 2014 하계 고시엔에 우승하며 왕조를 쌓았다. 이 시기 활약한 선수로 후지나미 신타로, 모리 토모야등이 있다
  6. 보다 당겨치기 타구가 많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