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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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Neal Waltz
1924년 6월 8일 ~ 2013년 5월 12일

"생물학찰스 다윈이 있다면 국제정치학에는 케네스 월츠가 있다.”

- 前 영국 국제정치학회 회장(1995-1996) 켄 부스(Ken Booth) 교수#

1 개요

미국국제정치학자. 신현실주의(neorealism)의 아버지. 현대 국제정치이론의 기초를 쌓았다고 평가받는다. 월츠 이후 학자들의 이론은 신현실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 혹은 보완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플라톤에 빗대 "월츠 이후의 국제정치이론은 월츠 이론에 대한 주석"이라는 찬사까지 받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일례로 그를 『헤게모니 이후』로 신자유주의적 제도주의 관점에서 비판한 로버트 코헤인은 월츠의 전제와 방법론을 거의 그대로 활용해서 그를 반박했고, 구성주의 국제관계학자 알렉산더 웬트도 『국제정치의 사회적 이론』에서 월츠 이론을 핵심 비판 대상으로 택했다. 뉴욕 타임즈는 그의 부고 기사에서 월츠를 "오늘날의 국제관계 연구를 형성한 다섯 거인 중 한 명"으로 평했다.#[1][2] 미국정치학회(American Political Science Association)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2007년부터 그 해의 가장 우수한 국제안보/군비통제 분야 박사학위논문에 케네스 월츠 박사논문상을 수여한다. 여담으로, 번역된 저작들은 저자의 이름을 '월츠'로 표기했지만 정작 학계에서는 '왈츠'라는 표기도 자주 쓰인다(…).

2 인간, 국가, 전쟁

재미있는 점은 국제정치학의 거장 월츠의 원래 전공은 정치사상이었다는 사실이다. 국제정치학은 부전공. 하지만 대학원생 시절의 중요한 시험 몇 주 전에 하필 국제정치 시험 담당 교수가 이전의 널널한 교수에서 대학원생의 2/3을 떨어뜨린다는 흉흉한 소문의 빡센 교수로 변경되면서 월츠의 운명은 완전히 바뀐다. 조만간 군대에 재소집될 예정이어서 시험을 연기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이 시험에서 떨어지면 말 그대로 인생이 꼬이는 상황. 당연히 국제정치 관련 저작을 닥치는대로 읽기 시작한 월츠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심지어 모순되기까지 하는 관점과 내용의 홍수라는 장벽에 부딪친다. 이 다양한 문헌들의 상충되는 관점과 내용들을 어떻게 이해할까 고민하던 그의 머릿속을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월츠는 이 아이디어를 메모해뒀다가 군에서 돌아와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로 선택했고, 이 논문은 1959년 '국제정치의 세 가지 분석수준'을 정립한 국제정치학의 고전 『인간, 국가, 전쟁(Man, the State, and War)』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인간, 국가, 전쟁』은 전쟁의 원인에 대한 분석 수준을 개인[3], 국내 체제[4], 그리고 국제체제라는 세 가지 이미지(혹은 분석수준)로 구분했으며, 궁극적으로 전쟁의 구조적 원인이 되는 것은 '세 번째 이미지'인 국제체제의 무정부 상태(anarchy)라는 점을 지적했다. 즉 분쟁을 조절할 국가보다 상위의 권위체가 없는 상황에서 모든 국가가 자신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 전쟁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월츠는 첫 번째 이미지인 개인과 두 번째 이미지인 국내 체제 역시 전쟁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세 번째 이미지가 나머지 두 이미지가 작동하기 위한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한스 모겐소로 대표되는 냉전 초기의 고전적 현실주의(classical realism)가 전쟁의 궁극적 원인을 사실상 검증 불가능한 인간 본성에서 찾았던 사실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었다. 즉 월츠는 전쟁의 원인을 국제체제의 무정부성이라는, 검증 가능한 구조적 차원에서 찾으면서 국제정치학에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는 데 앞장 선 것이다[5]. 결국 치열한 논쟁 끝에 고전적 현실주의가 패퇴하면서 『인간, 국가, 전쟁』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6]. 여담이지만 "인간, 국가, 전쟁"은 월츠가 대학원생 시절 정치사상을 공부했던 흔적이 남아 있어서 그와 관련된 논의를 주로 언급하는 편이다. 왜 무정부적 국제체제에서는 국가간 협력이 힘든가를 설명하는 루소의 '사슴 사냥' 비유라거나.

위의 다소 긴 설명을 요약하자면 모겐소가 '국제정치의 무정부성'을 각 국가들이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과"로 파악했던 반면, 월츠는 국가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원인/환경"으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3 국제정치이론

이처럼 박사학위 논문을 덜컥 고전으로 만들어 버리면서 국제정치학을 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학자로 부상한 월츠를 명실공히 전설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바로 신현실주의 혹은 구조적 현실주의(structural realism)를 정초한 1979년의 『국제정치이론(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이었다. 월츠는 여기서 국내체제의 차원에서 국제정치를 설명하려는 이론들을 '환원론적'이라고 비판하면서 국제정치의 이해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체제의 구조라고 주장했다. 상위의 권위체가 없는 국제체제의 무정부성 아래서 각 국가는 생존을 위해 자조(self-help)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무정부 상태에서의 생존 경쟁이 "인간, 국가, 전쟁"에서 말한 것처럼 궁극적으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이기는 해도, 반드시 전쟁이라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개별 국가의 안보 추구 행위는 그 의도와 관계 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을 이끌어내 국제체제의 안정성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체제의 성격에 따라 이러한 안정성, 바꿔 말하자면 전쟁 가능성은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에 국제체제의 구조가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은 어떤 경우에 더 발발 가능성이 높을까? 국제체제의 안정성은 '극성(polarity)', 곧 체제 내 강대국의 숫자에 따라 좌우되는데, 월츠는 체제 내에 단 두 개의 강대국만이 존재하는 단순양극체제가 셋 이상의 강대국으로 이루어지는 복잡한 다극체제보다 안정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유연한 다극체제가 경직된 양극체제보다 안정적이다"라는 고전적 현실주의와 그 이후의 행태주의적 현실주의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긴 평화(The Long Peace)"라고까지 불린 냉전의 안정성을 더 잘 설명한 것은 신현실주의였다. 또한 월츠는 체제의 특성을 단순히 '전체를 구성하는 개별 단위, 즉 국가의 특성의 종합'으로 설명한 행태주의 혁명 이후의 카플란(Morton A. Kaplan)이나 로즈크랜스(Richard N. Rosecrance)의 '체제 이론'이 고전적 현실주의와 마찬가지로 "환원론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체제를 구성하는 개체의 특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체제 전체만의 특성, 곧 '무정부성'과 '극성'이 국제체제의 성격을 결정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신현실주의는 기존 이론들에 대한 치명적인 비판과 견고하면서도 간결한 대안적 이론을 제시하면서 고전적 현실주의와 행태주의적 현실주의를 대체하는 주류 이론으로 떠올랐다.

앞선 『인간, 국가, 전쟁』에서 월츠 이론의 바탕이 깔렸다면 『국제정치이론』에서는 월츠 이론이 완성된 것이다. 바야흐로 신현실주의의 시대였으며, 월츠의 시대였다. 국제정치학에서 월츠의 이론이 곧 현실주의 이론의 기본으로 인식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신현실주의라는 표현 대신 '구조적 현실주의', 혹은 '방어적 현실주의'라는 용어로 통용되는 편이다.[7]

4 비판

물론 사회과학에 100% 옳은 이론이란 없으므로, 월츠 역시 당대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 왔으며, 오늘날에는 월츠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그대로 수용하는 학자들은 거의 아무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물리학으로 치면 아이작 뉴턴의 고전역학의 현재 입지와도 비슷한 것으로, 대학원 이상의 단계에서는 일단 월츠의 저작 두 권은 기본적으로 읽고 시작하지만 실제 연구를 할 때는 고전적 레퍼런스 이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 물론 물리학자들이 고전역학 파트에서 뉴턴의 세 가지 기본법칙을 수용하는 것처럼, 국제정치학자들 역시 아주 기본적으로는 월츠의 전제와 가정을 수용한다. 바로 여기에 월츠의 가장 큰 공헌이 있는 것이다. 월츠에 대한 비판의 요지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4.1 국가들은 정말 협력하지 않는가?

월츠 이론의 핵심은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세계정부의 부재(무정부성), 단일 행위자로서의 국가, 그리고 그로부터 발현되는 국가의 유일한 행위원리인 생존을 위한 안보극대화, 그 결과로서 발생하는 자조(self-help) 원칙의 대두, 장기적 협력의 부재, 성공적인 국가에 대한 다른 국가들의 모방, 국제분업의 부재, 세력균형의 "법칙"[8]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국가들의 협력이 그렇게 부족하고 단기적인가? 많은 국가들은 정치적으로(동맹), 경제적으로(무역협정), 사회적으로(각종 인권/환경/규범협약) 협력하며 이 중 상당수는 장기적으로 이어진다. 이는 대표적으로는 로버트 코헤인(Robert O. Keohane)에 의해 지적되고 오늘날 많은 학자들에 의해 논파/반박된 부분으로, 현재의 학계에서는 단순히 협력이 존재한다/존재하지 않는다를 넘어 어떤 조건 하에서(Under what conditions) 협력이 보다 빈번히 발생하고 장기적으로 유지되는가에 대한 실증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4.2 제2의 이미지의 역습: 국내정치 변수

월츠는 국가를 단일행위자로 상정하고, 모든 국가들의 목표는 생존이므로 국가들을 크기와 성질이 동일한 당구공들의 집합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러나 아주아주아주 간략하게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을 설명할 때나 단순명쾌한 게임 모형을 도입할 필요가 있을 때라면 모를까, 모든 국가들을 균일하게 간주하는 것은 국제관계학을 조금만 파고들어가도 상당히 무리수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단히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것이, 대한민국북한, 그리고 미국의 외교정책은 단일한 국가행위자 가정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국제정치이론에서는 국가의 지도자와 집권정당은 기본적으로 국내정치 행위자의 영향 아래 놓여 있으며[9], 학자들은 대체로 민주주의 국가와 비민주주의 국가의 행태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데 일정부분 합의하고 있다.[10] 최근의 연구에서는 더 나아가 비민주주의 국가 중에서도 북한처럼 전권을 틀어쥔 독재자가 존재하는 국가군과 중국처럼 권위주의이기는 하나 일정 규모가 되는 엘리트들의 이너서클이 존재하는 국가군을 분리하여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4.3 세력균형이론의 취약한 실증적 근거

월츠에 따르면 양극체제 하에서 세력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평화가 유지될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다극체제 하에서 세력균형이 깨졌을 때가 가장 전쟁에 취약한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르간스키(Organski)로부터 시작된 세력전이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을 지지하는 학자들과, 국제정치학에 대한 최초의 방대한 통계적 연구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데이비드 싱어(J. David Singer)가 이끈 실증주의 그룹은 이에 반론을 제기하였는데[11], 이들에 따르면 오히려 강대국 간의 세력균형이 이루어졌을 때가 가장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나폴레옹 전쟁, 보불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등 19세기 이후의 대규모의 전쟁들은 오히려 강대국 간 힘이 동등해지면서 발생하였으며, 설령 힘이 비슷한 강대국 사이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해도 그것은 좀 더 디테일한 시대적 특성(벨 에포크)이나 핵무기의 특성(냉전)에서 비롯된 것이지 결코 세력균형 그 자체로부터 유래한 것은 아님을 주장한다.

5 주요 저작

  • Man, the State, and War: A Theoretical Analysis. Columbia University Press. New York: 1959(정성훈 옮김, 『인간, 국가, 전쟁: 전쟁의 원인에 대한 이론적 고찰』, 아카넷, 2007.).
  • Foreign Policy and Democratic Politics: The American and British Experience. Little, Brown and Company. New York: 1967.
  •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McGraw Hill. New York: 1979(박건영 옮김, 『국제정치이론』, 사회평론, 2000).
  • The Use of Force: Military Power and International Politics. University Press of America. New York: 1983. (로버트 아트Robert Art와 공저).
  • "Reflections on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A Response to My Critics". in: Keohane, Robert: Neorealism and Its Critics. 1986.
  • "Nuclear Myths and Political Realities". Source: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84, No. 3 (Sep., 1990), pp. 731-745.
  • The Spread of Nuclear Weapons: A Debate Renewed. W. W. Norton & Company. New York: 1995.
  • Realism and International Politics. Routledge. 2008.

6 관련 항목

  1. 참고로 다른 넷은 한스 모겐소, 헨리 키신저, 새뮤얼 헌팅턴,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냉전 이후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해진 헌팅턴, 지정학자이며 카터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역임했던 브레진스키를 제외한 둘은 모두 월츠 이전의 고전적 현실주의 학자들이다.
  2. 그러나 이 명단은 굉장히 자의적인 것이, 이 5명 중 실제로 현대 국제정치학 이론의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학자는 모겐소와 월츠 정도이다. 키신저도 『회복된 세계(A World Restored)』와 같은 훌륭한 저작을 남겼지만 이론가로서보다는 외교관으로서 업적을 쌓은 인물이고, 브레진스키 역시 학자라기보다는 전략가로 볼 수 있으며, 헌팅턴은 정치학의 거장이기는 하나 국제관계학보다는 비교정치학에서 금자탑을 쌓은 인물로 봐야 한다. 오늘날 국제정치학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한 로버트 코헤인, 데이비드 싱어, 브루스 러셋, 알렉산더 웬트 등의 인물이 이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전공자들 아니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뉴욕 타임즈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워싱턴 정가와 가까이 있는 학자 셋 + 아무래도 뺄 수 없을 만큼 큰 영향을 끼친 거인 둘 정도의 조합을 뽑은 것으로 봐야 한다.
  3. 인간 개개인의 본능적인 공격성, 정복욕구에서 전쟁이 비롯된 것이라는 논리.
  4. 국가별 정치체제의 특징에 따라 전쟁이 발생, 혹은 예방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논리. 한 보기로 레닌은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한 '제국주의 전쟁론'을 주장했다. 냉전 이후에는 민주주의 체제가 평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으므로 민주주의 국가의 수가 많아질수록 전쟁이 예방된다는 '민주평화론'이 등장했다.
  5. 이는 1950-60년대 미국 정치학계에 몰아닥친 행태주의 혁명(behavioral revolution)의 직접적 반영이었다
  6. 20세기 말까지만 해도 국제정치학에서 현실주의 이론이라면 모겐소의 고전적 현실주의를 의미했지만, 오늘날에는 월츠의 구조적 현실주의를 뜻하는 경향이 강하다.
  7. 방어적 현실주의는 2000년대 초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존 미어샤이머가 자신이 주창한 '공격적 현실주의'와의 대비를 위해 붙인 표현이다.
  8. 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세력균형은 현재로서는 법칙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실증적인 입지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9. 이런 논지를 편 대표적인 학자로 부에노 드 메스키타(Bueno de Mesquita)가 있다.
  10. 이를 강하게 주장하는 이론이 바로 민주주의 국가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전쟁을 하지 않지만 비민주주의 국가와는 전쟁을 한다는 브루스 러셋(Bruce Russett)의 민주평화론이다.
  11. 이들의 데이터베이스는 구글에서 correlates of war로 검색해 보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