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y, 理論
1 일반적 의미
사물의 이치나 지식 따위를 해명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일반화한 명제의 체계.
2 과학에서의 의미
이론은 이해와 설명 그리고 주어진 문제에 대한 견해를 만드는 분석적인 도구이다.
과학에서의 이론은 자연계의 어떤 양상에 대한 잘 확립된 설명으로 사실들, 법칙들, 추론들, 그리고 검증된 가설들이 포함될 수 있다. 보통 그 이론에서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실재들과, 그 실재들 간의 관계를 구성요소로 한다.[1]
과학 이론들은 사실들과 법칙들을 조직하고 설명하며, 예측력이 있어서 검증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과 법칙을 이론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며, 이론은 "추측"이나 "가설"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 이론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이해이다. 그것들은 그저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한 디딤돌이 아니라 과학의 목표이다.
법칙과 이론에 대해 많이 착각을 하는데, '아직 법칙 정도로 확실하지 않아 머무르는 단계가 이론이다', 라는 오해는 적어도 과학에선 잘못된 것이다. 이론은 끝까지 이론이고 법칙은 끝까지 법칙이다. 이론은 검증이 덜 되었기 때문에 이론인 게 아니라 정말 충분히 잘 검증된 기반을 토대로 더 많은 것을 이해하는 설명체계이기 때문에 이론이다. 검증이 잘 된 이론은 정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긴 하는데, 결국 이론이다.
과학계에서 법칙은 관찰을 통해서 어떠한 현상을 진술하는 것일 뿐이다. 중력의 법칙을 예로 들자면, 이 법칙은 어째서 A가 B를 당기는 힘과 B가 A를 당기는 힘이 같은 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이 두 힘이 같다고만 말할 뿐이다. 법칙에는 "왜?"가 없다. 법칙은 "어떻게?"라는 현상에 대해 기술할 뿐이다. 이에 대한 고찰은 과학 항목 참고.
기본적으로 이론은 "반증되지 않으면 진실 (true until disproved)"이 원칙이다. 그렇다고 아무 잡소리나 theory로 쳐주지는 않는다. 타당한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는 가설도 마찬가지다. 사이비 과학자들의 허무맹랑한 헛소리가 이론은 물론이고, 가설도 안 되는 이유다.
자연을 매우 잘 설명하여 크게 신뢰를 얻고 있는 이론들의 예로는 중력이론, 판 구조론, 원자론, 그리고 진화론이 있다.
일단, 법칙과 이론의 차이는 분명치 않다. 동일한 진술이 법칙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이론으로 불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력의 법칙이 때때로 중력이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론'이라는 낱말의 외연(Extension)이 분명하지 않는 한, 엄격한 내포적 정의(Intensional Definition)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이론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질적 속성을 드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과학철학의 여러 사조들은 이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다른 철학적 이론들을 가지고 있다. 논리실증주의자(Logical Positivist)는 이론이 진술들의 합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토머스 쿤은 이론이 사회—심리적 대상(Socio-Psychological Entity), 즉 여러 과학자들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신념(Belief)들의 집합이라고 주장한다.
2.1 이론적 조망
해당 문서 참고.
2.2 이론가
연구자들이나 학자들 중 일부는 "이론가" 라고 불린다. 물론 이들은 주로 이론적 기여를 많이 하기 때문. 다른 동료들이 실험을 하든지 아니면 필드에서 직접 관찰을 하든지 하면서 데이터를 박박 긁어모아 발표하면, 이 사람들은 그때까지 쌓인 사실들을 가지고 논리적 추론을 거쳐서 이론을 직접 제작한다. 물론 일부 굇수들 중에는 필드에서 직접 뛰면서 이론까지 고안해 내는 경우도 있지만 양쪽 모두에 재능이 있는 학자들은 의외로 흔치 않다. 새롭게 만들어진 이론은 이론만 전문으로 게재해 주는 전담 저널[2]에 게재되는데, 명색이 이론인 만큼 잘 검증되고 신뢰할 만한 데이터들을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타당성에 대한 이의제기는 가설에 비해 정말 흔치 않다. 대신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걸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가, 경쟁하는 다른 이론에 비해 얼마나 많은 설명력을 갖는가 같은 것들. 특히 사회과학이나 일부 복잡성이 큰 자연과학 분야들에서 이런 일이 많다.
그러나 굳이 이론을 세우지 않더라도, 좀 더 추상적인 사고활동을 하는 식으로 기여한다면 보통 이론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천문학에서도 옛날에 행성이나 소행성을 찾는 동안에는 "어, 계산해 보니까 이쯤 어딘가에 뭐가 있어야 하는데?" 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실제로 발견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걸 뒤집어서 오히려 실험이나 필드에서는 맥을 못 추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름아닌 파울리 효과로, 이론물리학자의 나쁜 기(…)를 받아서 실험물리학자들의 실험 도구와 장비들이 망가지곤 한다는, (다른 학과도 아니고) 물리학 전공자들의 아이러니한 농담이다.
대중적으로 이론가들의 이미지는 더욱 영 좋지 않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이론가" 라는 별명이 붙는다면, 이는 그에 더하여 "항상 그럴싸하게 나불나불거리긴 하는데 실제로 현장에서의 실력이나 경험이 있는지는 알 수 없고, 심지어 무능력해 보이기까지 한다"(…)는 악평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있다. "현실을 모르는 무능한 이론가" 나,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는 표현이 괜히 익숙한 것이 아니다.
2.3 이론주도적 연구
theory-driven research
대개의 과학 분야들에서 연구는 크게 이론주도적 연구와 자료주도적 연구(data-driven research)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이며, 어느 한쪽만 가지고는 의미 있는 연구가 진행되지 못한다.
연구의 논리적 흐름을 이론적 추론이 주도한다면 이는 이론주도적 연구가 되는데, 만일 이론주도적 연구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각종 학설들과 중구난방의 가설들 속에 파묻힌 채 길을 잃었을 것이다. 학계는 끊임없이 새로운 소식들과 발견들, 보고들이 들어오는데, 이를 교통정리해 주고 유의미한 통찰과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서 도대체 이게 뭐 어쨌다는 거야?" 와 같은 불평만이 쏟아지게 될 것이다.
한편 연구의 논리적 흐름을 데이터와 통계적 계량이 주도한다면 이는 자료주도적 연구가 된다. 흔히 말하는 "데이터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는 자료주도적 연구의 핵심 신조다. 만일 이들이 없다면 학계의 모든 논의들은 책상머리의 신선놀음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연구자들은 복지부동한 채로 탁상공론만을 무의미하게 반복할 것이며, 바깥세상과는 담을 쌓은 채 상아탑의 친목질만으로 만족하게 될 것이다.
약간 사회적 맥락은 다르지만, 중세시대를 까는 카더라성 레퍼토리 중에서 자료주도적 연구가 없는 상황이 잘 드러난 것이 있다. 말의 이빨이 몇 개인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는데, 다들 선현들과 성인들을 인용하며 열띤 논변을 펼쳤지만, 한 수도사가 "말의 입을 열고 직접 세어보면 되잖습니까?" 라고 물어보자 "너 파문!" 을 시전했다나.(…) 이런 기막힌 이야기가 고스란히 사실일지는 차치하고라도, 자료주도적 연구 없이 의미 있는 경험적 진전을 보이는 게 이렇게 어렵고 우스꽝스럽기는 하다.
물론 이상의 서술은 어디까지나 과학으로 한정되는 것이고, 인문학과 같은 비과학 분야에서는 이론주도적 연구에 사실상 의지함으로써 논의를 진행하는 것도 가능은 하다. 물론 여기서는 실험이나 관찰과 같은 과학적 탐구활동을 할 주제가 되지 못하기 때문. 그 대신에 이들도 역시 세상 돌아가는 것과 담을 쌓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인문학이 환경의 변화를 빠르게 따라잡고 그에 더하여 의미 있는 통찰을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