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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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케빈 키건 (Joseph Kevin Keegan OBE)
생년월일1951년 2월 14일
국적잉글랜드
출신지동커스터 주 암소프
포지션FW
선수스컨소프 유나이티드 (1968-1971)
리버풀 FC (1971-1977)
함부르크 SV (1977-1980)
사우스햄튼 FC (1980-1982)
뉴캐슬 유나이티드 (1982-1984)
지도자뉴캐슬 유나이티드 (1992-1997)
풀럼 FC (1998-1999, 임시 감독)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1999-2000)
맨체스터 시티 (2001-2005)
뉴캐슬 유나이티드 (2008)
국가대표63경기 21골
1977 Ballond'or
수상
알란 시몬센
2위
케빈 키건
3위
미셸 플라티니
1978 Ballond'or
수상
케빈 키건
2위
한스 크란클
3위
롭 렌센브링크
1979 Ballond'or
수상
케빈 키건
2위
칼 하인츠 루메니게
3위
뤼트 크롤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역대 감독
오스발도 아르딜레스
(1991~1992)
케빈 키건
(1992~1997)
테리 맥더모트
(1997)
케니 달글리시
(1997~1998)
샘 알라다이스
(2007~2008)
나이젤 피어슨
(2008)
케빈 키건
(2008)
크리스 휴튼
(2008)
조 키니어
(2008~2009)
크리스 휴튼, 콜린 칼더우드
(2009)
앨런 시어러
(2009)
맨체스터 시티 FC 역대 감독
조 로일
(1998~2001)
케빈 키건
(2001~2005)
스튜어트 피어스
(2005~2007)

마이티 마우스 (Mighty Mouse)

리버풀함부르크의 전성기 기반을 닦은 공격수이자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공격수

잉글랜드 유일의 발롱도르 2회 수상자[1]

1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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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의 모습들. 장발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1968년에 스컨소프 유나이트에서 데뷔해 3년간 선수 생활을 하다가 1971년에 3만 5000파운드의 이적료를 받고 리버풀로 이적했다.

사실 키건은 이안 캘러핸을 대체할 만한 선수여서 그런지 처음에는 미드필더로써 뛰었지만, 당시 감독인 빌 샹클리는 키건의 탁월한 스피드를 알아채자 그를 존 토샥과 함께 스트라이커로 데뷔시켰다.

그는 토샥과 호흡을 맞추어 1973년 리그 우승/UEFA 컵 우승, 1974년 FA컵 등 영광을 연속적으로 이루어냈으나, 1974년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채리티 실드 경기에서 당시 리즈 선수인 빌리 브렘너와 주먹다짐을 하다가 둘 다 퇴장을 당했고, 키건은 11경기 출장 정지라는 큰 징계를 받음과 동시에 축구 선수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지만, 밥 페이즐리 감독의 만류 덕에 그는 선수 생활을 지속하여 1976년 리그 우승/UEFA 컵 우승, 1977년 리그 우승/유러피언 컵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되었다.

이렇게 스타가 된 키건은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하며 함부르크로 이적, 1979년에 함부르크 구단 최초 분데스리가 리그 우승을 이루어냈고, 이후 리버풀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케니 달글리시라는 대체자가 있어서 키건은 리버풀 대신 사우스햄튼을 거쳐 당시 2부 리그였던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1984년에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킨 뒤에 은퇴하고 가족들과 함께 스페인으로 이주했다.

2 감독 시절

1992년에 친정팀인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돌아와 당시 2부 리그에 있던 팀을 다시 프리미어 리그로 끌어올려 강등권과 거리가 먼 팀을 만들었고, 급기야 1995/96 시즌에는 맨유에 이어 2위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1996/97 시즌 도중에 짤렸고, 이후 풀럼의 단장으로 활동하다가 1998/99 시즌 도중에 레이 윌킨스 감독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감독 대행으로 일한 바 있었고, 이후 1999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유로 2000 예선에서 1승 1무 1패로 본선 진출을 했으나 8강 진출에 실패하고, 옛 웸블리 스타디움의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던 독일과의 2002년 한일월드컵 예선에서도 패배하여 결국 경질당했다.

이후 2001년에 조 로일 감독의 후임으로 맨체스터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2002년에 팀을 프리미어 리그에 승격시키고 강등권과 거리가 먼 중위권 팀으로 만들어 주었고, 2005년 경질 뒤에 방송 해설가 등으로 일하다가 2007/08 시즌 도중에 샘 알라다이스 감독이 해임당하자 감독 대행으로 부임하여 팀을 간신히 구해냈으나 구단주 마이크 애슐리와의 불화로 사임하였다.
  1. 케빈 키건보다 더 위대한 잉글랜드 선수로 평가 받는 보비 찰튼조차 발롱도르 수상은 월드컵을 우승한 해에 단 한 번 받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