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 투레

셀틱 FC No.2
콜로 아비브 투레
(Kolo Habib Toure)
생년월일1981년 3월 19일
국적코트디부아르
출신지부아케
종교이슬람 [1]
포지션센터백
신체조건178cm, 74kg[2]
유스팀ASEC 미모사 (2000~2002)
소속팀아스날 FC (2002~2009)
맨체스터 시티 FC (2009~2013)
리버풀 FC (2013~2016)
셀틱 FC (2016~)
국가대표106경기 6골

2003-04 시즌 아스날의 무패 우승을 이끌어낸 주역

1 클럽

1.1 아스날 FC

모국 클럽 ASEC 미모사에서 뛰다가 2002년 2월 14일, 아스날의 입단테스트를 통과하여 아스날의 1군팀에 영입되었다. 하지만 선수등록시기가 아니었기에 다음 시즌에서야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영입 당시 이적료는 비공개였으나 훗날 밝혀진 액수로는 15만 파운드였고[3]이는 아스날을 떠나 맨시티로 갈때의 이적료 1400만 파운드의 대략 100분의 1이다.

사실 ASEC 미모사는 꾸준하게 유럽 팀들의 위성구단 역할을 하였고 (지금도 잉글랜드의 찰튼의 위성구단이다.) 당시 아스날의 위성구단인지 여부는 파악되지 않지만 이후에 벨기에의 베베른의 위성구단으로 제르비뉴에마뉘엘 에부에[4], 살로몬 칼루의 형인 보나벤투 칼루, 그리고 콜로의 동생 야야 투레등을 주필러리그에 데뷔시켰다. 아마도 콜로의 이적도 이러한 위성구단에서 추천 받은 선수를 헐값에 영입하는 수준에서 이뤄졌을거라고 생각된다. 코트디부아르가 프랑스어를 사용한다는 점도 벵거에게는 매력적인 요소였다.

그리고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것중에 하나가 당시의 콜로투레 엄연히 코트디부아르 국대의 일원이었고 20살이 갓 넘은 나이에 A매치를 10경기 넘게 뛴 코트디부아르의 촉망받는 유망주이자 확고한 일원이었음에도 15만 파운드에 이적했다는 점이다. 이중국적자가 아닌 콜로 투레에게 비 유럽 선수들에게 까다롭기로 악명높은 워크퍼밋이 발급된 이유도 이때문. 지금이야 코트디부아르 국대에 꾸준히 선발되는 선수를 15만 파운드에 데리고 온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다. 2000년 초반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 그로부터 몇 년뒤에만 해도 이런 식의 이적은 거의 힘들었고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들다. 단기간내에 아프리카 국가 대표팀들의 위상이 얼마나 올랐는지 보여주는 예시가 콜로 투레의 이적이다.

8월 커뮤니티 실드 리버풀 FC 전에서 1군팀 선수로 데뷔하였다. 첼시 FC 전에서 아스날 첫 골을 기록하였다. 2002-03 시즌은 주로 우측 풀백 혹은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지만, 2003-04 시즌 중앙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고 주전자리를 꿰차게되고 솔 캠벨과의 콤비로 아스날의 무패 우승에 공헌하였다. 2006-07 시즌부터는 등번호를 5번으로 옮겼고, 2007-08 시즌부터 부주장이 되어 상황에 따라 주장완장을 차는 경우도 있었다. 아스날에서 7시즌 동안 226경기 9골을 기록하며 주축선수로 성장하였다.

1.2 맨체스터 시티

2009년 7월 29일 같은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1500만 파운드, 4년 계약이었다. 시티에서 첫 시즌은 주장을 맡아 9월 23일, 풋볼 리그컵 풀럼 FC 전에서 이적 후 첫 골을 기록하였다. 11월 7일 번리 FC 전에서 이적 후 리그 첫 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5위에 공헌하였다. 2010-11 시즌 주장자리를 카를로스 테베스에게 양보했지만 팀의 수비의 중심으로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런데 2011년 3월 3일,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콜로 투레가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아내의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다”라고 항변했으나, 잉글랜드 협회는 6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부과하였다.## 그 뒤로 폼도 다소 하락하며 주전 경쟁에서 뱅상 콤파니, 졸리온 레스콧에게 밀려 후보가 되었다. 이 후에는 마티야 나스타시치까지 영입되면서 완전히 쩌리 확정.

1.3 리버풀 FC

2013년 5월 28일 자유 이적으로 리버풀 FC로 이적하였다. 맨시티 시절에도 그렇고 나이도 있어 주전보다는 땜빵용으로 쓰일 것으로 추측되었다. 초반에는 부상이 많은 다니엘 아게르 대신 마르틴 스크르텔과 함께 주전으로 뛰었으나 점차 아게르, 마마두 사코에게 밀리게 된다. 특히 웨스트 브롬과의 경기에서 다 이긴 경기를 그의 실수로 비기게 되면서 완전히 주전 자리는 놓치게 되었다.

14-15 시즌 아게르는 떠났지만, 데얀 로브렌이 영입되면서 여전히 땜빵으로 있을 줄 알았는데 로브렌도 사코도 다 정줄 놓은 수비를 보여주면서 기어코 다시 주전 경쟁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31R 아스날전에서 주전수비수인 스크르텔이 징계로 빠지면서 얻은 주전의 기회에서 말그대로 거대한 똥을 푸짐하게 싸는바람에 주전경쟁에서 멀어질듯 싶다.

15-16 시즌 현재 재미있는 기록이 하나 나왔는데 현재 투레가 출장한 경기에서 리버풀은 무패를 기록하고 있다! 투레는 EPL 4경기, 캐피탈 원컵 2경기, 유로파 리그 4경기에 출장했는데 그 10경기에서 리버풀의 성적은 6승 4무 였다. 하지만 투레는 나오는 경기마다 경기력이 참담하다는게 아이러니.

그러나, 클롭이 온 뒤 시즌 중후반기 이후 제 2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데얀 로브렌마르틴 슈크르텔이 부상을 당하면서 마마두 사코와 듀오를 맞춰 나서게 됐는데, 맨유전에는 경기 후반에는 체력이 많이 없어져 걷는 모습이 많았고, 세트피스 실점으로 패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웨인 루니의 공격을 적절히 차단해내는 좋은 수비를 보여주는 등,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26R 아스톤 빌라전에는 정말 전성기 시절의 콜로 투레를 보여주듯 깨끗하고 든든한 수비를 보여줬고 스탠딩 헤딩골도 기록하였다! 아하하하하항 뛰어 다니며 귀여운 표정을 지운건 덤물론 에이스인 쿠티뉴,스터리지의 복귀의 덕도 있었고, 상대가 올시즌 답이 없는 빌라이긴 했지만 콜로가 늦은 나이에 이런 폼을 보여준다는 것은 콥들에게는 굉장히 반가운 소식. 결국 2015/2016시즌 26주차 위클리 베스트 XI에 같은 팀인 필리페 쿠티뉴,나다니엘 클라인과 함께 이름이 올라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추세는 이어져 리그 컵 결승전과 27R 맨시티 전에서도 매우 좋은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회춘하셨나

4월 원래 주전이던 마마두 사코가 예전의 투레처럼 다이어트 약을 복용했다가 도핑 테스트에 양성 반응을 보이면서 투레는 더 이상 백업이 아닌 로브렌의 주전 파트너로서 구멍이 난 센터백 자리를 매꾸게 되었다. 부상 복귀 후로 기량이 급격히 하락한 스크르텔과 최근 회춘한 콜로 투레를 보고 사람들은 둘의 기량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좋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다. 콥들은 이러다 레알로 가는 게 아니냐며 행복해하는 중.

그리고 유로파리그 4강 비야레알과의 1,2차전과 결승전에 모두 출전하였다. 나이 때문에 재계약 가능성이 높지 않은 콜로 투레는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유로파리그 결승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비야 FC와의 결승에서도 정말 로브렌과 함께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누구의 삽질등 여러면에서 고전하면서 결국 1:3 패배 자신의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경기를 아쉽게 마무리 했다.

원래대로라면 투레의 재계약 여부는 마마두 사코의 징계 수위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었으나 마마두 사코가 복용한 팻 버너는 애초에 UEFA가 지정한 금지 약물 목록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서 사코는 무혐의를 받게 될 예정이고 투레의 이탈은 사실상 기정사실화. 직전시즌에 보여준 기량이 상당히 준수했던지라 중위권~중하위권 클럽에서 노려봄직한 선수다.

1.4 셀틱 FC

투레 본인을 리버풀에 영입시켰던 브랜던 로저스 감독과 재회했다.

2 국가대표

코트디부아르 대표로 2000년에 르완다 대표 전에서 데뷔하였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2006 에서 결승전 진출에 공헌하였다. 그 후 2006년 독일 월드컵,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제는 뒤에서 치고 올라올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선수로써는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이기에 2015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한다.

3 플레이 스타일

아스날에 처음 영입돼서는 고정화된 센터백보다는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오른쪽 풀백과 센터백,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어서 센터백으로 고정된 이후에도 가끔 부상자가 발생하면 해당 포지션에서 경기를 소화하곤 했다. 미드필터부터 오른쪽 풀백, 센터백까지 소화할 수 있었으니 아스날 팀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센터백에서의 활약으로 결국 중앙에 정착하게 된다. 파스칼 시강, 필리페 센데로스등과 경쟁에서 이겨 결국 솔 캠벨과 파트너를 이루면서 굉장한 호흡을 보여주었는데 둘 다 중앙수비수 치고는 발이 빠른 타입이었고 당시만 해도 킥앤러시가 주 공격 전술인 잉글랜드에서 발빠르고 수비능력도 탁월한 수비수 둘이 있는것만큼 든든한 것은 없었다. 아스날에 7시즌동안 매 시즌 전 대회 합쳐 40경기 이상 소화하면서도 부상도 잘 당하지 않을만큼 유연했다.

그리고 본래 아스날 이적 이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활약했기 때문에 수비수 치고는 발재간도 매우 좋은 편. 지금이야 할말 없지만 전성기때만 하더라도 빠른 발에 키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헤더도 좋았고 대인방어나 태클등도 괜찮은 수준이었다.

확실히 나이가 들면서 폼이 떨어지긴 해서, 전반적으로 기량이 감소했다. 아무래도 최대 장점이었던 스피드가 노쇠화로 떨어지고, 여타 기량들까지 떨어지며 폼이 많이 죽어버린듯. 하지만 클롭체제 이후 게겐 프레싱이 도입되며 수비 간격이 좁아지자, 느려진 발이 어느정도 커버가 되었고[5] 여기에 투레 본인의 폼 향상 + 경험이 더해지며 다시금 기량을 되찾아가고있다.

4 여담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친동생 야야 투레가 뛰고 있다. 3형제 중 맏이로 막내인 이브라힘 투레도 축구 선수였으나, 2014년 6월 20일 사망했다고 한다.

대인배 기질이 있다. 로빈 반 페르시가 페예노르트에서 갓 이적한 풋내기일 무렵 자신을 친형처럼 생각해 묻고 싶은 것이나 불만 사항이 있다면 말해달라며 먼저 다가가 적응을 적극 도와 사이가 돈독하다.원문

어울리지 않게 동물 공포증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자기 집의 개조차도 만져 본 게 7년이나 됐다고.그럼 왜 키우는거야

아스날 무패우승을 이야기할때 로렌과 함께 베스트11중에서 가장 언급이 안되는 선수다. 그래도 이들이 없었으면 무패우승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축구 외에도 구기종목은 강력한 수비 없이 강력한 팀이 될 수 없다.[6]

이슬람의 독실한 신자로써 라마단을 정확히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축구 선수로써 이걸 지킨다는 것은 매우 힘들며 라마단에서조차 예외적인 부분에 들어갈 만한 여지가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라마단을 지키는 것이 자기를 더 강하게 한다며 물 조차 입에 대지 않는다. 저기 죽으라고 라마단 하라는거 아니라고 그거 예외라고

야야투레와 같이 맨시티에서 뛰던시절의 맨시티팬들의 응원가중 하나였던 투레송이 컬트적인 인기를 자랑하는중(...) 콜로투레가 리버풀로 이적한후 재계약이 결정됐을 때도 리버풀 선수들이 따라불렀는데 스티븐 제라드의 현란한 춤사위를 구경할수 있다(...) 그외 어린팬과의 만남에서 콜로투레 본인도 따라불렀고 유튜브에는 커버댄스(...)영상도 다수 존재한다.
  1. kolo-yaya-toure-bersaudara-rev3.jpg무슬림 전통복을입은 야야 투레콜로 투레
  2. 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에서는 183cm로 나와있는데 리버풀 구단 홈페이지에서는 178로 나온다. 또한 26361B6500000578-0-image-a-31_1425221548185.jpg 야야 투레와 키차이를 보면 딱봐도 10cm는 차이가 난다. 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는 믿을게 못된다.
  3. 요즘 어지간한 스타플레이어의 주급만도 못하다. 콜로 투레 본인 또한 맨시티에서는 1~1.5주만에 저 돈을 벌기도 했었으니 격세지감...
  4. 이 둘은 이후 아스날에서 뛰게된다.
  5. 데얀 로브렌도 이런 이유로 클롭체제 이후 대각성했다.
  6. -투레-캠벨-로렌의 포백은 무패시즌에 리그 38경기에서 25실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