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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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에 속한 지중해상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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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의 중심도시인 이라클리오의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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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크레타의 전원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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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인의 전통복장. 터키인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지만 크레타 남성들은 머리에 술달린 머리띠를 한다는게 결정적인 차이이다. 이 장식은 심지어 수천년전인 미노아문명 시절의 그림에서도 볼수 있을만큼 유래깊다.

그리스어: Η Κρήτη (이 크리띠)
영어: Crete
터키어: Girit

  • 바다를 건너서 리비아로 월경 시 처벌받게 된다. 현재 리비아는 여행금지국가이다.

그리스 남부 에게해와 지중해에 걸쳐있는 섬으로 그리스에서는 가장 큰 섬이며 지중해에서는 다섯번째로 큰 섬이다.

1.1 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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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아 문명의 프레스코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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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크레타 / 미노아인들의 복장

이 섬의 역사는 키프로스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이 섬에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미노아 문명이 꽃피웠다. 오늘날 남아있는 흔적은 크레타의 주도인 이라클리오(Ηράκλειο)인근의 크노소스 궁전 정도 밖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생생하게 남아있는 벽화와 도기등을 보면 무척이나 화려하고 생기넘치는 해양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섬의 이름인 '크레타'도 BC 8세기경의 시인인 호메로스일리아드에서 이미 언급된다.

하지만 이후 고전기에 이르면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촌구석 쩌리로 여겨지다가 고대 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을 거치는데, 그 와중에 826년부터 960년까지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4차 십자군 원정 이후로 이 섬에 쳐들어온 베네치아가 접수해서 400여년간 지배했다가 이후 베네치아인들을 쫓아낸 터키인들에 의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1898년까지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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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전쟁 당시의 게릴라들

이후 크레타는 잠시 크레타 자치국(Κρητική Πολιτεία)이라는 형태로 독립했다. 크레타인들은 이미 그리스 본토가 독립한 19세기 중엽부터 꾸준히 게릴라 활동을 통해 오스만 정부에 대한 투쟁을 전개했고, 섬의 임시정부를 발족시켜서 그리스영국등으로 하여금 터키와 전쟁을 하도록 만드는 데 이르렀다. 이후 크레타는 자체적으로 드라크마 화폐도 찍어내고 하다가 결국 계획대로 1912년에 그리스 본토와 합병됨으로써 짧은 역사를 마무리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섬의 위치가 위치인지라 크레타 섬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지정학적 특징으로 인한 파란만장한 역사 때문에, '동지중해의 항공모함'[1] 이란 별칭으로도 불린 바 있다.

1.2 크레타 문화의 특징

크레타섬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적들에게 시달려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이곳의 수도원이나 주택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모두 철저하게 요새화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 크레타의 문화는 상무적이고 공동체적인 경향이 매우 강하다. 가령 대부분의 마을들은 한두 가문의 일족들이 함께 거주하는 집성촌의 성향이 짙으며 강력한 공동체적 연대와 더불어 크레타인 특유의 명예의식과 더불어 마을간의 갈등도 심했다. 과거의 경우 심하면 마을과 마을끼리 칼을 들고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다른 그리스지역도 그렇지만 크레타 남자들은 전통복장을 입을때 반드시 허리띠에 칼을 차는데 이는 남자다움의 상징이다. 전통춤들도 대부분 여럿이서 함께 '통일성'과 '단결'을 중시하는 춤들이 많은데 이는 과거 크레타 전사들이 훈련겸 놀이 겸해서 춤을 추던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다른 그리스 지방들과는 달리 크레타는 지중해 한복판에 위치한 무역거점지였고, 또한 남쪽의 이집트와 서쪽의 이탈리아, 동쪽의 아랍과 페르시아, 북쪽의 흑해터키등의 교역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고대시대부터 여러 외국인들이 이 섬에 정착했으며 그결과 독특한 크레타만의 문화를 만들게 되었다. 가령 1821년 그리스 독립전쟁 당시 섬 주민들은 거의 절반에 달하는 49%정도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었고, 이들과 동방정교회를 믿는 그리스인들과는 매우 조화롭게 지내고 있었다.[2][3] 또한 오늘날까지 살아남아있는 크레타의 전통복장이나 악기, 민요와 방언등을 보면 본토의 그리스인보다는 차라리 서부 터키인에 가까울만큼 동방적인 면모를 풍긴다.




크레타의 민요 [4]

1.3 이야깃거리

이 섬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올리브나무가 있다.관련기사 섬 서부의 콜림바리(Κολυμβάρι)지역 내 부베스라는 마을에 있는 엘리아 부본(Ελιά Βουβών) 이라 불리는 이 나무는 거의 3000년이상 묵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열매가 나오는걸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자킨소스등 섬 곳곳에 1000년이상 묵은 올리브나무들이 분포하고 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배경이 바로 이 섬이다. 때문에 그리스를 비롯한 전세계에서 이곳으로 일종의 순례(?) 여행을 하는것이 인기라 아테네에서 출발하는 국내항공편 노선수 2위가 바로 크레타이다. 1위는 그리스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

미노아 시대에 투우가 있었으나, 현대 스페인의 투우와는 완전히 다르다. 투우사는 소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소가 돌진하여 충돌하기 직전 소의 뿔을 잡았다. 소는 적을 들이박는 순간 본능적으로 머리를 위로 튕겨 올리는데, 이 힘을 역이용해 투우사가 공중으로 뛰어 올라 공중제비를 넘었다. 즉 엄밀히 말하자면 투鬪우가 아니며, 영어로도 Bullfighting이 아닌 Bull-leaping(소 뛰어넘기)으로 표기한다. 이 투우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는데, 공중제비를 성공하는 횟수가 많을 수록 풍년이 오기 쉽다고 생각했다고 카더라.

미노타우로스 전설도 이 투우에서 나왔다고 한다.

1.4 크레타 출신의 인물들 (실존인물)

  • 엘 그레코(El Greco - 1541~1614) : 이라클리오 출신, 스페인의 화가[5]
  • 엘렙세리오스 베니젤로스(Ελευθέριος Βενιζέλος - 1864~1936) : 하니아 출신, 그리스의 수상
  • 오디세아스 엘리티스(Οδυσσέας Ελύτης - 1911~1996) : 이라클리오 출신, 그리스의 시인으로 1979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 니코스 카잔자키스(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 1883~1957) : 이라클리오 출신,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유명한 '그리스인 조르바'와 '미할리스 대장', '성자 프란체스코'등을 쓴 작가이다.
  • 나나 무스쿠리(Nάνα Μούσχουρη - 1934~ ) : 하니아 출신, 그리스의 가수
  • 요르고스 사마라스( Γιώργος Σαμαρά - 1985~ ) : 이라클리오 출신, 축구선수

2 강철의 연금술사에 등장하는 국가

크레타(강철의 연금술사)
  1. 크레타 섬이 배경인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 상황을 여인숙을 운영하는 늙은 여주인이 한 때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4개국 함대의 제독을 혼자 전부 사로잡았다며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걸로 비유한 장면이 나온다.
  2. 다만 그리스가 독립하고 크레타내에서 정교인인 주민들을 중심으로 반 터키봉기가 일어나자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다시 정교회로 돌아오거나 터키로 떠나는 식으로 이주가 이루어져 크레타 독립당시에는 불과 12%정도만이 무슬림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터키 독립전쟁이 끝나고 체결된 1923년 로잔조약 이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터키인으로 간주되어 터키로 추방되었다. 대부분 터키어는 한두마디도 모르던 주민들을 말이다. 그리고 때문에 오늘날 터키에 거주하는 그리스인은 과거부터 터키에서 거주했고, 이스탄불에 거주해서 인구교환협정을 적용받지 않은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인(rum)과 크레타섬에서 추방되어 터키로 온 이슬람교를 믿는 그리스인(giritli)으로 구분된다. '기리틀리'는 터키어로 크레타사람이라는 뜻이고, 이들은 모국어로 그리스어를 사용하지만 정교회를 믿는 rum과는 대립하고있다. 이스탄불에 가면 거기 거주하는 그리스인의 절반정도가 기리틀리이며, 또한 에게해 지역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3. 터키뿐만 아니라 레바논, 시리아 해안 지대에도 수천 명 규모의 무슬림 크레타인 공동체가 있다. 1897년 그리스-터키 전쟁이 끝나자 술탄 압뒬하미드 2세가 당시 오스만 제국 영토였던 그 지역으로 피난처를 알선해주었기 때문.
  4. 크레타 사투리로 부르는데 그리스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κ를 ts로 발음하는 크레타 사투리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것이다.
  5. 엘 그레코는 스페인어로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으로 원래 이름은 도미니코스 쎄오토코풀로스(Δομήνικος Θεοτοκόπουλος)였으며 젊은시절에 베네치아로 이주했다가 스페인에 정착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