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노스(1993)

337.jpg
Cronos.

사실 포스터에 나오는 여자는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1 설명

기예르모 델 토로의 1993년작 멕시코 호러영화. 델 토로가 29세 때 만든 그의 첫 장편 영화이며, 아르헨티나 배우 페데리코 루피와 론 펄먼이 출연한다.

16세기 연금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불사의 기계장치 '크로노스'를 우연히 손에 넣고 사용해버린 한 평범한 노인과, 점점 변해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개의치 않고 그를 따라다니며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귀여운 손녀, 크로노스의 비밀을 알고 빼앗으려는 부유한 노인과 악당 조카가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어두운 톤으로 차분하게 그리고 있다.

10년 동안 특수효과 전문 회사를 차려 일하고 있던 델 토로가 어느날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시나리오 수업을 들으면서 20대 초반에 떠올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각본을 쓴 것이 영화의 시작. 이후 '아트 하우스 뱀파이어 영화'를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들겠다는 경력없는 특수효과맨을 믿지 못하는 멕시코 영화 아카데미를 4년 동안 들볶아 예산을 타내는데 성공, 영화를 완성한다. 그리고 크로노스가 1993년 멕시코 아카데미 시상식[1]의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한 9개 부문을 수상하고 동년 칸 영화제에서 비평가 주간 대상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감독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이후 델 토로가 만든 스페인어 영화인 악마의 등뼈판의 미로의 원형 같은 작품으로[2], 이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틀은 뱀파이어 호러지만 장르 영화가 아닌, 뭔가 이것저것 섞인 환상적 리얼리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본의 아닌 영생을 얻게 되고 종교와 현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는 노인과 불사와 권력을 갈망하는 탐욕스러운 인간들, 할아버지와 손녀의 순수한 애정 등을 통해 인간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며 뱀파이어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물론 빠른 전개와 자극적인 표현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상당한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cronos2.jpg
할아버지 헤수스와 손녀 아우로라.

영화의 제목이자 포스터를 장식하는 크로노스는 태엽으로 구동되고 안에는 많은 톱니바퀴와 정체불명의 생체부품이 들어가있으며 외관은 황금색 거미를 연상케 하는 장치로, 디자인도 그렇고 톱니가 돌아가며 살아있는 듯 작동되는 묘사가 꽤 스팀펑크스러운 맛을 느끼게 해준다. '크로노스(Cronos)'는 제우스 아버지 Cronos가 아니라 시간의 신 Chronos를 의미한다. 어차피 혼용되어 쓰이기도 하니 상관은 없을 듯.

2 기타

주인공 페데리코 루피는 이후 악마의 등뼈에서 카사레스 의사로, 판의 미로에서 판타지 세계의 왕으로 출연하며 델 토로의 모든 스페인어 영화 출연 업적을 달성했다.

이 영화의 예산은 200만 달러로, 당시 멕시코 영화 사상 2번째로 높은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할리우드 영화로 치면 저예산이지만...

아마 노인이 주인공인 유일한 뱀파이어 영화일 것이다(...) 물론 노인 뱀파이어라면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 같은 선례가 있지만 적어도 주인공은 아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이름인 헤수스(Jesus), 과르디아(Guardia), 앙헬(Angel)은 각각 예수(Jesus)와 수호천사(Guardian Angel)를 명백하게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등장인물들은 스페인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데, 미국내 스패니쉬 시장을 겨냥한 스페인어 온리 버전도 있다.[3] 앙헬의 목소리를 델 토로가 직접 연기해 더빙했다고.

당시 고급 영화지를 표방하며 저예산 호러물들을 많이 까던[4] 월간 키노에서 엄청난 악평을 실은 적이 있다.다만, 이 악평을 쓴 기사는 해외 영화지에서 평한 걸 저작권 허락으로 번역한 거였다. 나중에 키노 지에서 꼽은 숨겨진 비디오 명작에서는 이 작품을 호평한 걸 보면 국내 키노 지에서는 높게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에서 블루레이와 DVD를 출시했다. 델 토로가 1987년에 만든 미공개 단편 호러 영화까지 포함되어 있는 매니아라면 가치있는 부록이 있으니 영어가 되는 사람이라면 추천. 게다가 헬보이 원작자인 마이크 미뇰라가 커버를 그려줬다.

뱀파이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은 뱀파이어 영화이다.

3 줄거리

주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이 틀 아래의 내용은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의 줄거리나 결말, 반전 요소가 직, 간접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내용 누설을 원치 않으시면 이하 내용을 읽지 않도록 주의하거나 문서를 닫아주세요.

영화는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1536년, 종교 재판을 피해 달아난 연금술사 우베르토 풀카넬리는 멕시코베라크루스 만에 상륙한다. 총독에게 공인 시계 제작자로 임명된 풀카넬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기계 장치의 개발을 완성시키고자 했다. 그는 이 기계를 '크로노스 장치'라고 불렀다. 그 후 4백년이 지난 1937년의 어느날 밤, 한 건물의 천장 일부가 붕괴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희생자들 중에는 가슴에 치명적인 관통상을 입은, 대리석 같이 피부가 창백한 기이한 남자가 있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Suo Tempore."[5]. 이 사람이 바로 그 연금술사였다. 당국은 이 건물을 조사했으나 조사 결과가 완전히 공표된 적은 없다. 조사가 끝난 후, 건물과 그 부속물은 경매되었으나 어떤 기록과 목록에도 크로노스 장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에서는, 그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나이 지긋한 골동품상 헤수스는 부인과 죽은 아들의 딸인 어린 아우로라[6]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가게에 있던 천사상의 속이 비어있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헤수스는 안을 조사하여 기묘한 금빛 기계장치를 발견한다. 기계의 태엽을 돌려보던 헤수스는 갑자기 기계에서 튀어나온 바늘에 손바닥을 찔리고, 상처 안에 침 같은 것이 남아있음을 발견한다. 암으로 죽어가는 부유한 실업가 드 라 과르디아는 풀카넬리의 연구 기록을 입수하고, 영생을 얻기 위해 불량한 조카 앙헬을 시켜 장치가 숨겨져 있다고 기록된 천사상을 사 모으게 한다. 앙헬은 헤수스의 가게에도 들러 천사상을 사 가지만, 이미 비어있는 상태였다.

그날 밤, 헤수스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며 괴로워하다가 마지못해 기계를 다시 사용하고 안정을 찾는다. 계단에서는 아우로라가 이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다음 날 아침 헤수스는 웬일인지 청년같이 활력이 넘치는데, 가게에 출근했을 때 누군가 간밤에 가게를 뒤집어 놓은 것을 발견한다. 현장에 남겨진 명함을 본 헤수스는 과르디아를 찾아간다. 과르디아는 크로노스의 정체를 알려주고, 사용법은 자신이 가지고 있으니 장치를 넘기라고 한다. 그러나 헤수스는 가짜 상자를 건네주고 도망친다.

헤수스가 집에 돌아오자, 크로노스가 들어 있던 상자가 비어있었다. 아우로라가 장치를 가져갔을 것으로 짐작한 헤수스는 아우로라의 비밀 장소인 창고로 간다. 헤수스는 자신을 걱정하는 손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녀를 다독여 장치를 돌려받지만, 결국 욕실에서 크로노스를 다시 사용한다. 헤수스는 자신의 피부에 탄력이 돌아왔음을 발견한다.

가족과 함께 파티에 참석한 헤수스는 코피를 흘리는 남자를 보고 묘한 충동을 느껴 화장실까지 그를 따라간다. 유혹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 피를 핥고 있던 중, 앙헬이 나타나 그를 기절시킨 후 밖으로 끌고 간다. 헤수스를 윽박지르던 앙헬은 결국 주먹을 휘두르고, 의식을 잃자 차에 집어넣은 후 절벽에서 밀어버려 헤수스는 죽는다. 가족들은 죽은 헤수스의 장례식을 치른다. 그러나 헤수스는 화장되기 직전 되살아나 관을 빠져나오고, 아내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차마 말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간다.

말없이 끊긴 전화로 사정을 짐작한 아우로라는(...) 이미 수건을 들고 현관에서 헤수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우로라는 피부가 썩어가는 헤수스를 자신의 창고에 숨겨주고 빛에 약해진 그를 위해 커다란 상자를 마련해준다. 헤수스는 원래대로 돌아오기 위해 과르디아가 가진 연금술사의 기록을 손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헤수스는 아내에게 자신의 모습이 달라졌으며 끝내지 못한 일을 마무리한 후 돌아오겠다는 편지를 쓰고 아우로라에게 맡긴다. 그날 밤 헤수스는 과르디아의 건물로 떠나고 도착하고 나서야 아우로라가 몰래 따라온 것을 안다.

헤수스는 연금술사의 기록을 찾아 과르디아의 방을 뒤지지만,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던 과르디아가 모습을 나타내며 몰래 벨을 눌러 앙헬을 호출한다. 헤수스가 자신의 썩어가는 피부를 가리키며 이것이 영생이냐고 따지자 과르디아는 얼굴 피부를 뜯어내보라고 한다. 헤수스가 뜯어낸 피부 밑으로 창백한 새 살갗이 보인다. 헤수스가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묻자 과르디아는 '인간의 피'라고 답한다. 차라리 기계를 부숴버리겠다는 헤수스에게 과르디아는 기계가 없으면 당신도 죽는다고 말한다. 헤수스는 영생은 필요없으니 원래대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고, 과르디아는 연금술사의 기록을 넘겨주는 척 하다가 지팡이칼로 헤수스를 찔러 쓰러뜨린 후 중요한 페이지는 이미 자기가 없애버렸다고 조롱한다. 이 때 아우리아가 뒤에서 지팡이로 과르디아의 머리를 때려 기절시킨다.

앙헬이 방에 도착해 과르디아가 죽은 줄 알고 귀찮게 자신을 부려먹던 삼촌이 죽고 재산을 상속받게 된 것을 기뻐한다. 그러다가 과르디아가 아직 살아있는 것을 보자 목을 밟아 부러뜨려 죽인다. 앙헬은 헤수스까지 죽이려 하고, 헤수스는 창밖으로 달아나 옥상에서 앙헬과 맞붙는다. 두들겨 맞던 헤수스는 앙헬을 끌어안고 건물 아래로 떨어져 함께 죽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되살아난 헤수스는 무의식적으로 아우로라에게 다가가 피를 빨려고 한다. 아우로라의 겁에 질린 절규[7]를 듣고 이성을 찾은 헤수스는 괴로워하다가 돌을 들어 크로노스를 찍어 부순 후 '나는 헤수스 그리스다'라고 되뇌인다. 장면이 바뀌어 대리석같이 창백한 피부의 헤수스가 침대에 누워 숨을 거두고, 아내와 아우로라가 그의 임종을 지키는 모습이 보이면서 영화가 끝난다.
  1. 아리엘 시상식이라고도 한다.
  2. 이 세 영화의 유사성 때문에 3부작(Trilogy)으로 묶는 사람들도 있다. 크라이테리온도 이 세 영화를 묶어 박스셋으로 내놓으면서 사실상 공식화.
  3. 미국에서는 이런 지역에서만 한정 개봉되어 62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4.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고, 매년 8월 숨겨진 비디오 소개로 유명한 호러영화를 전문적으로 소개하거나 호러 특집 기사를 내기도 했다. 신체훼손물의 고전인 '소사이어티'(브라이언 유즈나)를 마녀가 나온다고 하는 등 가끔 영화를 안보고 쓴 감도 있긴 하지만.
  5. '때가 왔군' 정도를 의미하는 라틴어.
  6. 얘, 나이에 비해 상당히 총명하고 비범하다. 작중 행적을 보면 얘가 아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7. "할아버지!"하고 말을 한다. 작중 얘가 말을 한건 이게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