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 에이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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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ex avery 1908.2.26 ~ 1980.8.26

미국인 텍사스 주 출신 애니메이터이자 성우, 전임 만화가.

2 상세

그의 조부인 니드헴 에이버리는 남북전쟁에 참여한 군인이었으며,[1] 고향인 텍사스의 테일러 지역에선 '프레드', '텍스', '텍사스'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었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에서 what`s up doc?이란 말을 외치고 다녔는데 이 말은 나중에 벅스 버니가 사용하는 명대사가 되었다. 이후 월터 란츠 스튜디오에 입사해 1931년부터 1935년까지 애니메이터로 활동하면서 오스왈드 래빗 극장용 단편의 원화를 그렸으며, 사무실에서 장난을 치다가 압핀이 한쪽 눈으로 날아가는 바람에 시력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porky`s duck hunt 클립 영상.

a wild hare 영상.

그러다가 1935년 워너브라더스로 이직해서 스튜디오 내부에 당시 애니메이터로 일하던 밥 크렘펫, 척 존스 등과 함께 유닛을 결성하였고, 이들은 'termite terrace'란 별명을 얻는다. 첫 작품으로 텍스 에이버리는 gold diggers of `49[2]에서 당시 디즈니 캐릭터와 비슷한 행동들을 벌이던 빈즈 더 캣과 같은해의 i haven`t got a hat에 처음 등장했던 포키 피그를 성인처럼 등장시키고 당시에 드물던 비뮤지컬적 성인용 유머를 연출하였다.[3] 이윽고 그 무렵의 많은 미국 극장용 단편 애니와 대비된 슬랩스틱을 연출시키며 활약하기 시작했는데, 1937년 porky`s duck hunt에서 사냥꾼인 포키를 골려다니며 막 웃음을 짓고 다니는 검은 오리를 처음 등장시켰고 이 오리는 지금의 대피 덕이 되었다. 이후 1940년의 a wild hare에서 카메오 포지션으로 등장했던 벅스 버니의 디자인을 확정시킴과 동시에 성인적 유머 감각을 추가시켜 지금의 벅스 버니를 확립시키는데 기여하였다.

jerky turkey 영상.

1년이 지난 1941년 발표된 the heckling hare에서 사냥개와 벅스 버니가 절벽 밑으로 떨어지는 개그 씬이 프로듀서 리언 슐레진저의 결정으로 일부 삭제당한 것을 두고 분노하여 텍스 에이버리는 이듬해 메트로-골드윈-메이어 카툰 스튜디오로 이직해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하게 되었다.[4] MGM은 텍스 에이버리가 워너브라더스에서 일하던 때보다 많은 예산을 지원해주었고 이는 비현실적, 과장스런 개그 & 유머를 연출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먼저 전시 선전용 애니메이션인 the blitz wolf로 MGM에서의 첫 작품을 제작했고, 이듬해 dumb-hounded에서 자신의 또다른 캐릭터 드루피를 처음 등장시켰으며, 스크루이 스퀴얼, 블래키 단편의 감독 및 바니 베어 단편 감독진 중 1명으로 참여하는 것과 더불어 the red hot riding hood에서부터 몇년간 빨간 두건과 늑대를 바탕으로 한 성인용 유머 카툰을 제작해냄으로써 종횡무진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1950년 작업에 대한 과로로 1년의 휴식 기간을 가졌고, 그 사이 월터 란츠 스튜디오에서 이직한 애니메이터 딕 런디가 드루피 & 바니 베어 단편의 감독을 맡게 됨으로써 복귀 후엔 공동 감독으로 단편 카툰 제작에 참여했으며, 1953년 mgm을 퇴사해 자신의 옛 근무지인 월터 란츠 스튜디오로 이직하였다. 하지만 이 곳에서 칠리 윌리 캐릭터와 몇몇 단편을 제작한 것 말고 활동한 기간은 2년에 그쳤으며, 끝내 1955년 임금 분쟁이 일어나 월터 란츠 스튜디오에서 퇴사해 이후 TV 광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데 집중하였다. 그의 만화완 대조적으로 가정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고 하며, 1972년 아들이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것과 더불어 이혼을 겪기도 했었다.[5] 말년엔 MGM 스튜디오에서 근무한 메이저 감독 윌리엄 해나조셉 바베라가 설립한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의 애니메이션 kwicky koala의 원작자를 맡았고, 1980년 8월 26일 캘리포니아 주의 버뱅크에 위치한 세인트 조셉 병원에서 악화된 폐암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6]

3 의의

텍스 에이버리는 1920년대 ~ 1930년대 초기의 극장용 단편 애니들에서 단순히 이어지는 프레임의 슬랩스틱, 뮤지컬적인 유머 연출에서 벗어나 슬랩스틱, 유머 연출을 보다 개성화시켜, 같은 스튜디오에서 일한 동료인 밥 크렘펫, 척 존스 등 같은 동료 애니메이터들과 후대의 미국 애니메이터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자신이 월트 디즈니와 더불어 미국 애니메이션에 여파를 남긴 애니메이터(이자 감독이)란 점에서 척 존스, 해나-바베라 콤비 등의 애니메이터들이 활약하는데 간접적으로 밑바탕을 깔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큼 이후의 미국 애니메이션 발전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 중 1명으로 남게 되었다.

더불어 텍스 에이버리가 창작한 대피 덕, 스크루이 스퀴얼의 헐벗은 모습과 민폐를 치며 광기를 연상케 하는 웃음소리를 날리는 모습은 미국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발전에 무척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으며[7] 캐릭터들이 무척 빠르게 움직이는 씬, 기존 캐릭터가 아닌 그림자 캐릭터 연출, 무척 기다린 리무진 묘사 활용 등등 과장스런 개그 및 유머들은 미국 애니메이션의 코미디 연출을 다양화시킨데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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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인 애니메이터 중에선 캐릭터의 제4의 벽 돌파 씬을 애니메이션에 처음 도입시킨 감독으로도 꼽히며, 눈알이 부풀려지는 개그를 미국 애니메이션에 처음으로 연출시켰다고도 TV trope 위키 텍스 에이버리 문서에선 표기하고 있다. 여러 연출들을 종합해보면 소위 '약빨은 듯한' 연출을 애니메이션에 표현했던 선구자적인 애니메이터이기도 하다.[8]

4 트리비아

  • 척 존스와는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에서 몇몇 동료들과 속칭 '터미트 테라스'에서 활약해 친분을 맺었으며, 말년인 1975년에 텍스 에이버리는 그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에 척 존스가 밥 크렘펫의 아이디어 크레딧에 대해 비판하는 주장을 적어 응답하는 편지 #를 보냈다. 척 존스는 그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며칠 뒤 발행한 로스엔젤레스 트리뷰 신문 기사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남겼다. - 기사 이미지
  • 게리 모리스는 텍스 에이버리의 접근 방식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였다. - Above all, [Avery] steered the Warner Bros. house style away from Disney-esque sentimentality and made cartoons that appealed equally to adults, who appreciated Avery's speed, sarcasm, and irony, and to kids, who liked the nonstop action. Disney's "cute and cuddly" creatures, under Avery's guidance, were transformed into unflappable wits like Bugs Bunny, endearing buffoons like Porky Pig, or dazzling crazies like Daffy Duck. Even the classic fairy tale, a market that Disney had cornered, was appropriated by Avery, who made innocent heroines like Red Riding Hood into sexy jazz babes, more than a match for any Wolf. Avery also endeared himself to intellectuals by constantly breaking through the artifice of the cartoon, having characters leap out of the end credits, loudly object to the plot of the cartoon they were starring in, or speak directly to the audience.
  • 2008년 프랑스에선 텍스 에이버리의 100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하였다.
  • 미국 본토의 카툰 네트워크 채널이나 부메랑에선 비정기적으로 텍스 에이버리가 감독한 애니메이션들을 편성해 방송시키고 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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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가 빨간 두건에서 모티브를 따와 디자인한 캐릭터 레드는 2000년대 중기부터 제작된 톰과 제리 TV 스페셜에 조연으로 출연한 경력이 있다.

5 관련 영상

말년에 직접 인터뷰한 영상으로, 몇 안되는 그의 생전 육성을 들을 수 있다.

1988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상.

2003년 제작된 비영어권 다큐멘터리 영상.

6 작품 목록

  • 워너 브라더스 - 포키 피그, 대피 덕, 벅스 버니 등등 루니 툰 단편 61편 감독 & 제작
  • 메트로-골드윈-메이어 - 드루피, 블래키, 스크루이 스퀴얼, 빨간 두건 시리즈 등등 단편 카툰 69편 감독 & 제작
  • 월터 란츠 스튜디오 - 단편 카툰 4편 감독 & 제작

자세한 목록은 [2] 참조 바람.

  1. 남군이었는지, 북군이었는진 출처 제시바람.
  2. 여기서 49는 골드 러쉬가 시작된 1849년을 말함.
  3. 이 에피소드에서 텍스 에이버리 특유의 가속도적 작화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4. 월터 란츠 스튜디오부터 워너 브라더스에 근무할 때까진 fred avery 명의로 이름을 표기하였으며, 현재의 tex avery 명의 표기를 확정지은 시기는 mgm에 활동하면서이다.
  5. 출처 - [1]
  6. 구글에 검색된 이미지 중에서 직접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 나오는 것으로 보면 오래된 흡연으로 폐 기능이 악화되어 사망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7. 당장 동시기의 월터 란츠 스튜디오에서도 이런 민폐형 캐릭터가 활약하는 딱따구리(애니메이션)을 제작해서 1950년대까지 상영하였다.
  8. 비슷한 경우로 동시기의 밥 크렘펫 또한 이런 약빨은 듯한 연출을 루니 툰 단편에서 적잖게 구사해낸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9. 이건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인데, 늦은 밤 시간대에 방송하므로 시청하고 싶은 위키러들은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