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 히데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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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당시 사진
▲최근 사진.[1]

1 소개

庵野 秀明(あんの ひであき). 절대 안노 히데키가 아니다. 일본인 이름이 '야키'로 끝나는 경우는 없다.[2]

1960년 5월 22일 일본 야마구치우베시에서 출생. 키 180cm.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의 작품을 제작한 오타쿠 출신 애니메이터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2015년 현재는 스튜디오 카라사장대표이사.[3]

제27회 도쿄국제영화제 "안노 히데아키의 세계" PV. 중간중간에 해괴한 것들이 몇 개 보일 텐데 안노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안노가 그린 작화의 주목할 점은, 뭐니 뭐니 해도 파편의 묘사. 요즘처럼 CG로 작업하는 환경이 아닌 1980년대 셀 애니메이션에서, 1코마에 9장의 셀을 겹쳐 찍고, 3초에 동화 250매를 사용하는 등 피를 말리는 꼼꼼한 수공예 작업의 결과물은 지금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카나다 요시노리의 섬광, 이타노 이치로의 미사일 서커스, 나카무라 타카시의 바위 깨뜨리기에 비견될 만한 '이팩트 애니메이션' 표현의 업적이다.

초딩시절부터 만화와 텔레비젼에 푹 빠져 살았던 이른바 제1세대 오타쿠. 중딩 시절에는 쇼조망가(순정만화)에도 심취, 고딩 시절엔 미술부의 부장을 맡을 정도로 그림 실력이 출중했다고 한다.

고교시절엔 아마추어 특촬 모임에 들어간 적도 있었으며, 덕분에 재수한 끝에야 실기시험만으로 입학 가능한 오사카 예술대학에 들어 갔으나 학업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매진하는 길을 걷는다. 재학 시절에는 《돌아온 울트라맨》이란 패러디 특촬물에 《애국전대 대일본》 DAICON III, IV 오프닝 같은 작품의 제작에 참여해 관심을 받는다.

'인물'은 데포르메[4] 수준이나, 메카, 건물, 기계, 폭파 작화는 수준급으로 그려낸다. 특히 건물이나 거대 메카닉 작화는 지금도 업계 일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에야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현재까지도 몇몇 애니메이션에 작화로 참여하고 있고 현재까지도 제작중인 에바 신극장판에 총감독 및 작화로도 참여하고 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거신병의 등장/전투 장면이 그의 작품으로, 이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에게서 받은 영향이 커서 안노는 지금도 그를 "스승"이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폭파 장면에 대해서도 일화가 있는데, 미사일이 발사될 때 연기와 불꽃을 리얼하게 그리기 위해 해외까지 나가서 직접 가서 보고 와서 그렸다고 한다.(가이낙스의 《왕립우주군》 제작시의 일화로, 우주선 발사 장면을 위해 직접 미국 NASA 견학까지 다녀왔다.)

2 경력

2.1 DAICON

대학 시절, 동아리 시절에 만난 학우(가이낙스의 주축 멤버들)과의 인연으로 DAICON FILM의 멤버로, 오사카에서 열린 SF대회의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특촬 영상 제작에 참가하게 된다.

위는 「서투른 대포도 많이 쏘면 맞는다!(へたな鉄砲も数うちゃあたる!)[5]」은 1979년(재수할 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아마추어 애니메이터 집단 '그룹 SHADO'에서 취미활동으로), 「튼튼한 타이어(じょうぶなタイヤ!)[6]」은 1980년에 오사카 예대 재학 시절에 만든 것.[7]

DAICON III 오프닝

DAICON IV 오프닝

DAICON IV 오프닝은 한국에선 여태 정식 공개된적이 없다가, 2008년 PISAF에서 《극장판 천원돌파 그렌라간 홍련편》의 상영뒤에 치뤄진 특별행사에서 상영되었다. 본편 BGM은 영국의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 /줄여서 ELO)'[8]의 Twi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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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린 DAICON FILM의 포스터. 중간에 본인이 있다.

DAICA FILM 시절의 아마추어 특촬 작품 《돌아온 울트라맨》, 안노 히데아키는 총감독 겸 무려 울트라맨(그것도 본인이 고집해서 안경 쓴 민낯)으로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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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르바이트 애니메이터

위의 경험에서 만난 지인들과의 인연으로, 아르바이트 애니메이터로 스튜디오 누에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원화를 그리거나[9],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의 거신병 씬의 원화를 담당[10] [11] 주로 메카와 폭발 씬 등의 특수효과 애니메이션 씬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 시기, 지브리에서 채용이 결정되고, 오사카 예대는 학비를 안내서 제적된다.

안노는 이 시절에 만난 이타노 이치로와 미야자키 하야오를 자신의 스승으로 여기고[12]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로부터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써의 역할이 뭔가를 배웠다고 한다.[13]

2.3 왕립우주군

이 때의 작업을 발판 삼아 1985년도에 같이 DAICON IV를 만들었던 사람들과 가이낙스를 설립, 《왕립우주군》 제작에 참여했다. 당시 평론은 매우 호평이었으나 재미없다며 대다수 관객들의 외면속에 흥행을 대차게 말아먹게 된다.

당초 이 작품만 만들고 해산할 예정이었던 가이낙스는 빚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 방법을 궁리하여 여러 애니메이션의 하청작업과 간간히 만드는 오리지널 창작물로 회사의 생계를 꾸려가게 된다.

2.4 톱을 노려라!

《왕립우주군》의 실패는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의 전기였다. 가이낙스 사장이었던 오카다 토시오는 짊어진 빚을 갚기 위해 잘 팔릴만한 노선으로 오타쿠들이 좋아하는 미소녀와 메카가 등장하는 각종 패러디로 버물어진 OVA SF 애니메이션 《톱을 노려라!》를 기획한다. 그 각본을 읽은 안노는 자신이 감독을 자청한다. 이 작품은 의외로 많이 팔렸고, 재능있는 작화가 정도로만 인식되던 그가 뛰어난 연출 능력 또한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었고 이로서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실은 전설의 미소녀 게임 '몽환전사 바리스' 광고를 찍은 것이 실질적 프로감독 데뷔라고.

2.5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이를 계기로 《왕립우주군》 이상의 대작,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NHK와 토호라는 굴지의 대기업으로 부터 넘겨받게 되지만 상당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그에게 상당한 좌절을 안긴다. 사실상 하청업체로서 버거운 스케줄을 감내해야 했으며 스폰서와의 잦은 충돌을 겪으며 가이낙스라는 조직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결국 《나디아》 종영 직후 오카다 토시오가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는 가이낙스를 등졌으며 마에다 마히로 등은 퇴사하여 곤조를 설립한다.

2.6 공백기

《나디아》 이후 4년의 공백기를 갖게 된다.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말에 따르면 《에반게리온》의 기획이 오랫동안 승인되지 않았고, 안노는 스튜디오에서 이불을 깔고서 4년간 생활을 했다고 한다.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월급도 안 나왔다고(...) 안노는 이 시절 자신에게 있어서 멘토이자 목표이기도 한 토미노 요시유키를 찾아가 그의 아래에서 일을 하면서 비로소 초심으로 돌아와 다시금 자신만의 방향성을 추구하게 된다.[14]

《나디아》 종영 이후, 갑자기 뜬금없이 일반인들이 즐기는 운동스포츠를 즐겨하게 된다.[15] 이 즈음 즐긴 취미는 스쿠버 다이빙. 그래서인지 《에반게리온》에서도 스쿠버 다이빙 장면이 나온다.

2.7 신세기 에반게리온

안노 히데아키의 최고, 최대의 역작이자 평생 그를 괴롭힐 너무나 큰 그림자사실 사도라 카더라

1995년,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등장했고 온갖 은유가제트, 오마주패러디음모론으로 점철된 이 작품은 이례적일 정도로 대성공을 이루었다.

하지만 안노는 정말 살떨리는 4년 만에 잡은 작품으로, 전력을 다해서 그리고 있다는 인터뷰 등을 보아서는 정말 사력을 다한 모양. 게다가 작품 제작 전도 힘들었지만, 에바의 제작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제작비에 치여 힘들게 완성했다. 결국 《에바》 TV판 종영 이후 안노는 완전히 폐인화 되었다. 이후 사이가 벌어져 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독려로 재기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당시 미야자키의 '다시는 《에반게리온》에 손 끝 하나 대지 말아라'라는 조언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작품이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있던 안노는 주변의 공격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1996년에 있던 인터뷰에서는, 논란이 많던 최종화 두 에피소드[16]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만약 이상하다면 시청자 니들 잘못이라고 우겼다.(…) (이 인터뷰에서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이후 안노와 가이낙스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의 제작에 착수하게 되고, 총집편 사도신생(국내에선 보통 데스 & 리버스라고 부르는 듯하다.)과 완결편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을 내놓았다.

사도신생은 단순한 총집영상.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본편의 25화와 26화를 대신하는 새로운 에바 TV판의 결말이다. 충격적 영상들과 파격적인 내용전개로 끝을 맺는 에반게리온을 보면서 오덕들과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심히 당황했다. 일설에 의하면 관람도중 구토를 했다는 관객도 있다고 한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충격적 파국으로 에반게리온은 관련 논문까지 수십편이 나왔다.

다만 이러한 표현법은 토미노 요시유키의 《전설거신 이데온》이 훨씬 앞섰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은 전체적으로 이데온의 극장판을 그대로 오마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씨네21에서 한 자체 인터뷰를 보면 안노는 '어릴 적에 건담 프라모델 다 만들어놓고 불태운 일이 종종 있었다'며, '완벽하게 끝낸다는 것 자체가 싫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대담을 주선한 적이 있는데, 미야자키 감독은 안노를 옆에 두고, 그의 작품을 말하면서, "안노의 가장 큰 장점은 솔직하게 만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에반게리온 같은 정직한 영화 만들어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해 버렸지." 웃으면서 독설. 옆에 앉아 있던 안노의 표정은 미묘...#
이때 안노는 미야자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본인 앞에서는 말할 수 없다고 넘겼는데, 나중에 스즈키 토시오와의 대담에서 레이아웃이 별로였다. 미야상이 어떻게 그런 레이아웃을 오케이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미야상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평했다.#

2.8 그 남자! 그 여자!

결국 에반게리온 구극장판의 여운이 가실 때 즈음인 98년, 에바에서의 독기가 빠진 순정만화 원작 《그 남자! 그 여자!》의 감독을 맡았다.[17] 이후 막판 전개에서 자금 부족으로 여러 실험적 연출만 하다가 마지막화를 흐지부지 끝내버리게 되는데, 엄청난 항의를 받게 된다.

2.9 실사영화

이후 안노는 한동안 애니메이션에는 손을 끊고[18] 《러브 & 팝》, 《식일》 같은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실험적 실사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평론은 좋지 않았다. 애니에서나 먹힐 기법을 무리하게 실사 영화에서 시도했다는 비평을 받았다.

또한 그러던 와중 오덕인증의 병크를 저지르는데 2003년에 연출한 《큐티하니》 실사영화판. 흠좀무. 애니메이션스러운 연출법과 안노 자신의 취향이 적극 반영된 터라 B급을 넘어서 충격과 공포 수준이다. 나가이 고 선생과 안노 자신도 특별출연했다. 흥행에도 실패해서 기울어가던 제작사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는 쾌거를 이룬다. 이 큐티하니 실사판으로 이득을 본 것은 당시 무명이었던 코다 쿠미밖에 없다.

이 때의 일을 두고 사람들이 안노가 애니가 싫어져서 애니계를 떠났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공식적으론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다. 갖다 맞추긴 좋은데 근거가 없는 소리다. 오히려 본인은 2003년 뉴타입에서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애니에도 써먹어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등 이 시기에도 애니에는 꽤 긍정적이었다.

2.10 에반게리온 신극장판/현재

현재 안노 이데아키의 최대 고민거리우찌 마무리를 한다...
가이낙스를 떠나 스튜디오 카라를 설립했다. 지금은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 연출에 총력을 쏟고 있다.

그리고 계속 두문불출중이다. 스튜디오 카라 홈페이지에 개인 블로그가 있으나 신작 프로모션 외엔 일절의 이야기도 안 올라오고 있는 듯 하며 시사회같은 곳에서는 츠루마키 카즈야가 안노를 대신해 나온다고 한다. 다만 작품 기획, 사업 전개, 디자인 등 일은 꾸준히 하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선 몇 안 되는 인디로 독립해서 성공한 예라 업계에서 꽤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후 고질라 극장판에 손을 대겠다고 선언했는데, 그전에 신 에바 극장판 때 많은 분들께 실례를 저질렀었고, 본인도 많은 신경증과 스트레스 때문에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업계를 떠나 있었다고 하며 주위 사람들의 응원과 고질라 극장판을 만들어 달라고 했던 회사의 열정에 감동하여 감독을 맡게 되었다고 할 만큼 고생이 많았던 듯 하다. 그렇다고 에바에 손을 떼거나 애착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커진 부담감 때문에 에반게리온 쪽에 신경을 쓸 여력이 안됐다는 얘기다.

현재 신고지라에서 비평과 흥행 둘 다 크게 성공했지만 에바팬들에게 반발이 컸는지 후속작 제작을 한다.

2.11 신 고지라

토호 영화사로부터 오리지널 고지라 시리즈의 신작인 신 고지라를 맡게 되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에바 팬들 사이에서는 "겨우 '그딴 거'나 만들려고 에바를 팽개치냐"는 악평이, 고지라 시리즈 팬들한테는 "고지라다!"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라는 의견이 많았다. 공개된 고지라의 모습이나 예고편은 '초대 고지라로 돌아왔다'는 호평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2016년 7월 19일 가진 발표회견장에서 "제 작풍은 완전히 무에서부터 다시 만드는 타입인데, 에바 신극장판에서 그걸 세 번이나 해 버려서 다시는 작품이라는 걸 만들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까지 궁지에 몰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신 고지라의 감독직 제안이 들어와서 구원받았다는 기분으로 받아들였으며,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면서 심신을 재충전했기 때문에 에바를 계속 만들 수 있겠습니다. 에바를 기다리신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고지라 영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에바 팬들한테 사과한 것인데, 그 순간 회견장 분위기가 무척 어색해졌다고... # 안노 : 미..미안 관객 : 그걸 왜 여기서...

개봉된 신 고지라는 온갖 웹진에서 극찬에 가까운 평을 받고있다. 감독덕에 먹지않을 욕도 먹고있으니 기껏 간만에 고향 온 고지라는 좀 억울할지도. 다만 여지껏 실사영화에 좋지않은 평을 받은 안노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안노에게도 의미깊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12 기타 경력

안노의 엑스트라 경력은 엄청나게 화려한데, 그 출연 목록이 자신이 연출한 영화들(가령 러브 & 팝, 식일, 큐티하니)부터 아내의 만화가 원작인 사쿠란, 지인 히구치 신지가 연출한 일본침몰 등등등...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여기서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생각보다는 의외로 온화한 편.

야애니크림레몬 시리즈 중 스타트랩에 참여했다.

에반게리온 드라마시디에서는 사도 성우로서 활약하더니, 기어이 사건(?)이 터졌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신작 《바람 불다》의 주인공 역 성우를 맡게 된 것.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하려 했지만 지브리, 특히 미야자키 감독과의 인연 때문에 승낙했다고 한다. 지브리 측에서는 말이 빠르고 단어 발음이 정확해서 적합하다 판단했다고. 안노 曰 미야자키 감독에게는 대사가 별로 없는 과묵한 역이라고 들었었기에 쉽겠거니 했는데 정작 대사는 잔뜩에다 독일어프랑스어에 노래까지 하는(…) 하드코어한 배역이었다는 모양이다. 깨알같은 평가. 신세기 성우게리온 미야자키 감독의 말로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잘나가고 있는 사람의 존재감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모양.안노가 세상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이었다니 자칭 퇴물인 미야자키 감독의 마지막 영화가 안노의 최대 흥행작인 Q보다 2배 정도 관객이 많았던 것은 무시하자

경력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시로바코 12화에 등장한 칸노 미즈아키는 그를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3 성격

완벽주의자여서 감독 데뷔작 《톱을 노려라!》에서는 외부로 발주한 그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리테이크 해달라고 하자, 하청의 미술감독이 시간도 없고 못해먹겠다며 거절하자, 안노는 한동안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근처의 책장에 머리를 꽝꽝 찍으면서 눈물을 뚝뚝 떨구며 "チクショー!チクショーッ!!(젠장! 젠장!!)" 울부짖었다. 보다못한 그 미술감독이 우는 놈은 못 이긴다면서 철야작업으로 수정해 준 일화가 있다. (작화감독이었던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회상)[19]

에바Q 제작당시의 에피소드도 있는데 극중 초반 우주에서 사도를 쫒는 신에서 안노가 무려 49번의 리테이크를 냈다고 한다. 49번째의 리테이크신을 보더니 안노는 "7번째 컷으로 하지" 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49개의 컷을 전부 기억하고 사소한 차이를 눈에 담아두고서 결정했다는 말이다.
또한 우주에서 로켓이 분리되는 장면에 무수한 부품이 산개되는신은 3DCG로 그려졌는데 그걸 혼자서 담당한 3DCG애니메이터가 해당신을 그리고 안노의 완벽주의에 질려서 퇴사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별별 루머가 있는데,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제작 당시 소위 '무인도 편' 때에 한국에 작화를 의뢰했었다가 그 완성도가 나빠서 격노했다든가,[20]그 남자! 그 여자!》 제작시에는 티비 방송국과의 알력싸움으로 감독 강판당했다든가...

워낙 제1세대 오타쿠로 유명해서, 폐쇄적인 오타쿠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고, 몇몇 루머들로 성격도 괴팍한 사람처럼 여겨질 지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평소의 성격은 '나디아'에 나오는 과 비슷하다고 한다.

오카다 토시오 말로는 대학 다닐 때는 항상 여자친구가 있는 리얼충이었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서고도 업계 사람들과의 대인관계에서 처세를 잘한다고 한다.
가이낙스 시절, 제작이 없을 때는 안노는 다른 스튜디오의 작품을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는데, 가이낙스 작품을 만들 때는 이때 사귀었던 스탭들을 데리고 와서 "지원군 데리고 왔습니다."라고 의기양양했다고 한다.

4 오덕후

  • 상당한 수준의 밀덕후다. 자위대에 체험입대한 적도 있고 홍보 영화를 찍기도 했다. 《반딧불의 묘》에 스태프로 참여했는데, 감독이 전함을 그려오라고 하니까 희희낙락하면서 자료조사를 아주 열심히 해서 디테일하게 그려냈다고 한다. 그런데 감독이 전쟁의 비극을 말하는데에 화려한 전함은 필요없다며 디테일을 뭉개버리고 실루엣 처리를 해서 대판 싸운 적이 있다고...
  • 또 《마크로스》의 '이타노 서커스'를 비디오에 녹화해두고 프레임 단위로 반복해서 보며 연출에 대해 연구했다고 한다. 《에반게리온: 파》 초반의 에바 2호기 전투씬은 훌륭한 이타노 서커스.
  • OVA 《기동전사 건담 MS IGLOO》도 마음에 들었는지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포교 활동을 했었다고 한다. 동일 작품의 공식 홈페이지에도 팬의 한 사람으로서 등장하여 기동전사 건담에 대한 애정을 풀어놓고 있다. 《기동전사 V건담》도 좋아해서 감독이었던 토미노와 V건담 관련 대담을 나눈적도 있다.
  • 그밖에도 다른 로봇물도 좋아해서 스폰서 문제 때문에 슈퍼로봇대전에 참전시키기 어려웠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참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도 했었다. 세가는 참전 안시키려고 일부러 감독 핑계를 댔는데 정작 안노는 제안을 듣자마자 바로 콜(...). 이후 테라다 타카노부의 증언에 따르면 슈로대에 참전하는 에바에 대해 물을 때마다 안노가 상세하게 조언을 해준것은 물론 아예 직접 테라다를 찾아가서 의견을 제시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제작에 참여했다고 한다. 작중 통곡의 벽 수준인 AT 필드를 거의 안뚫리게 설정하자니 개사기가 될것같고, 그렇다고 일정 데미지를 줘서 뚤리게 만들면 필드 중화니 하는 고급 설정들이 다 날아가 안노의 심사를 거스를 가능성이 있어, 초전자 스핀의 예시를 들어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그런 무식한게 꼴아박히는데 안뚫리겠습니까? 뚫리죠." 라는 너무도 쿨한 답변을 제시했다. 잘 안알려진 이야기지만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스텝이 이의를 제기하자, "게임이잖아. 적당히 하자고. 우리가 짱이다 무조건 이린식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안봐줘(...)." 하고 다독여줬다고. 그래서 AT필드의 방어력을 적정선에서 합의볼수 있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빨갛다는 이유로 에바 2호기에 샤아를 태우자거나 뿔을 달아보자는 안노의 의견은 덤. 그리고 결국 신극장판에서 기어코 2호기에게 뿔을 달았다
  • 건담, 특히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제작 때 가이낙스의 스탭들을 이끌고 거의 반 자발적으로 참여한 전적이 있다. 해당 작에서 등장하는 네오 지온계열의 함선[21]들이 안노의 작품이다. 퍼스트 건담에다 판넬만 달아놓은 수준의 뉴 건담의 초안을 제시한 적도 있지만 당연히 토미노 감독에게 대차게 까이고 채용되지 않았다.
  • 특촬 작품에도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으며, 그 중 울트라 시리즈의 왕팬으로서 알려져 있다. 특히 《울트라맨》, 《돌아온 울트라맨》에 열심이라고 한다. 후년에 고 히데키를 맡은 주연배우분과 올나이트상영회까지 가진 적이 있었다. # 2013년 말에 하이비전 방송기념으로 다시 재회해서 돌아온 울트라맨에 대한 팬심을 보여주었다.# 대학 시절에 '울트라맨' 8미리 영화를 독립 제작한 것으로 유명. 그리고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팬이기도 하고 아래 서술된 감독부적격 속 내용에 따르면 지인에게 《가면라이더 파이즈》의 변신벨트인 파이즈 드라이버 컴플리트 셀렉션 버전을 선물받았다고 하며 그 후 반다이를 통하여 이러저러한 벨트들을 선물받았다는 듯.
  • 수도 도쿄에 정기적으로 괴수가 출몰, 그 괴수를 물리치기 위한 조직이 있어서 긴급 출동한다는 '울트라맨' 시리즈의 특징적인 설정과 전개가 그대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이어져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고질라'나 '가메라'의 영향은 그다지 없다고 한다. 또한 가장 많이 본 영화로서는 《격동의 쇼와사~오키나와 결전》을 꼽고 있다.
  • 특촬에 대한 사랑은 여전해서, 2012년 도쿄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람회(특촬박물관)용 이벤트 특촬 단편영화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巨神兵東京に現わる)#의 기획과 각본을 맡았다. 기자회견에서는 특촬이라는 것이 앞으로는 없어지게 될거라며 안타까워하면서, 이런 것이 있었다는 것을 남겨두고 싶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다.[24]
  •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하고도 관계가 깊은데 학생 시절 우주전함 야마토 극장판 철야 행렬 당시에 현장에 밤새고 줄서서 봤던 당사자이다. '야마토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다'라는 말을 공석에서 하기도 한다. 톱을 노려라, 나디아, 에반게리온 등 그의 작품 대부분에선 야마토 패러디가 어떤 형태로든 들어가 있다. 다만 2008년에 플레이보이에서 한 니시자키 요시노부와 안노의 대담에서 니시자키는 안노에게 야마토 리메이크의 감독을 맡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는데 안노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이유는 "나는 전쟁 체험 세대가 아니라 야마토 같은 작품은 만들 수가 없다"라고.[25]
  • 일본에서 열린 배틀스타 갤럭티카 이벤트에 지인 히구치 신지와 참가해 둘 다 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전개에 대해 아낌없는 비판을 가해 "과연 안노!"라는 소리를 듣기도(…)
  • 2011년 12월호 뉴타입에선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극장판 제작 소식에 축하 코멘트를 남겼다. 큐베마녀, 음악이 좋단 식의 정상적인 코멘트에 이어 10화의 호무호무 그림이 좋았다라는 말을 남겼다.근데 하필이면 Q 개봉에 앞서서 Q베를 언급해서 팬들을 불안하게 했다.[26]

4.1 안노는 오타쿠를 싫어한다?

《에반게리온》 TV판의 종영 이후부터 제기되어 왔고,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나온 문제의 장면 때문에 확산된 설이다. 《왕립우주군》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패러디와 미소녀로 점철된 작품에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던 오타쿠들에게 염증이 난 안노는 《에반게리온》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오타쿠를 비판했다는 것이 내용의 골자. 이전에는 한국에서만 정설로 통했다고 하지만, 90년대 말 일본에서 작성된 글들을 보면 그쪽도 딱히 분위기가 다르지는 않았다.

실제로 안노는 《에반게리온》 종영 이후로 오타쿠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자주 했는데, 보통은 오타쿠 문화의 소비적인 풍토에 대한 비판을 했다. 이정도라면 업계 중진님의 질책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끔은 정도가 심해 "애니메이션 팬들은 자존심이 없는 현실 도피자들"같은 야마칸스러운 발언을 해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27]

한국에서는 과거 에반게리온 팬덤의 거대한 축이었던 세븐 아이즈(현재는 폐쇄됐다.)와 초장기 네이버 지식인이 만들어낸 오해의 확대재생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인 2000년대 초반에 세븐데이즈에서는 에반게리온의 가사를 끼워맞추며 반 오타쿠 작품이라는 농담식의 게시물이 있었는데 네이버 지식인 등지에서 이런 글을 퍼가며 에반게리온은 반오타쿠작품이라는 곡해된 인식을 만들어낸 것이 확대되어 지금에 이른것이다.

예를 들어 《왕립우주군》에 없던 오타쿠풍을 건버스터에 삽입했네 같은 것.[28] 그리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흔히 《나디아》를 오타쿠 색이 없으며 《나디아》의 실패가 또 안노를 절망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을 하는데 사실 《나디아》도 안노가 자신이 좋아한 여러 작품에 대한 패러디와 오마주를 잔뜩 집어넣은 오타쿠 색이 강한 물건이다. 안노 본인이 인터뷰에서 그런 작품이라고 언급하는데 어떻게 이게 오타쿠 색이 없단 말인가.

오타쿠에 대한 그의 시각은 이전에 각종 영화 매체 등에 그의 인터뷰가 수록된 바 있으나(애니 관련 매체에서는 이를 심층적으로 다루지 못함) 현재는 구해보기가 쉽지 않다. 현재 가장 구해보기 쉬운 안노 본인의 견해는 그의 부인 안노 모요코가 그린 《감독부적격》 부록으로 인터뷰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즉 오타쿠의 긍정적인 면은 인정하되 오타쿠의 폐쇄성을 경고하려고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신세기 에반게리온,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항목에 서술되어 있다.

5 안노와 토미노

토미노 요시유키를 매우 존경한다고 하며 건담 시리즈의 제작에도 몇번 참여했다.[29] 또한 V건담 제작 당시 토미노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을 무렵 '역습의 샤아 친구 모임' 동인지를 출판했을 정도. 이 책에는 유우키 마사미(만화가), 미키모토 하루히코(일러스트레이터), 키타즈메 히로유키(애니메이터 & 일러스트레이터), 이쿠하라 쿠니히코, 스즈키 토시오(프로듀서) 등의 호화멤버가 참가했고 안노와 오시이 마모루, 토미노 요시유키와의 대담 등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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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건담 당시 존경하던 토미노와 대담을 나누는 안노 누구세요? 수염이 없으니까 괴리감이 든다

해당 서적에서는 후일 만들어진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이어지는 안노의 생각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에 안노 히데아키를 깊게 알기 위한 텍스트로서도 중요한 책이다. 다만 《전설거신 이데온》을 대놓고 모방한 에바 극장판에 열이 뻗치신 토미노 감독은 브레인 파워드를 통해 안노를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안노가 토미노를 따라간 행적은 "(중딩이) 이런 퀘스 파라야의 검열삭제를 핥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냐고?!"라는 명대사(…)를 그대로 따라할 시추에이션을 만들어 그대로 따라해 버린 것을 비롯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로봇애니의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낸 후 성공에 의한 파장에 염증을 느껴 기존작을 파괴해버리는 후속작을 만들어 그걸로 자기 주관이나 투영해내고 이후 그 작품 자체에서 등돌리는 것 자체가 기동전사 건담에서 제타와 역습의 샤아에 이를 때까지 토미노가 보여줬던 그것과 놀랍도록 유사하다.[30] 너무 존경하는 나머지 인생 자체가 패러디가 되어가는 건지도. 게다가 슈퍼로봇대전 F에 에반게리온이 참전하였을때 제작진에게 에반게리온의 주인공인 이카리 신지가 퍼스트 건담 때 아무로가 수정당한 거처럼 브라이트 노아에게 수정당하는 이벤트를 직접 넣어달라고 부탁해서 게임 이벤트 중 신지가 에바타고 탈영해서 찌질대다 브라이트에게 수정펀치를 맞고 갑자기 뭐에요! 아버지한테도 맞은 적 없는데!라는 대사를 그대로 찌질대기까지 했을 정도니 이건 뭐...

'역습의 샤아' 제작 당시 스탭으로서 첫출근(?)하게 되었을 때 평소 씻지도 않고 지저분한 용모(위 사진 참조)로 뒹굴던 인간이 깨끗하게 목욕과 면도를 하고 머리도 올백으로 다듬고는 아끼던 외출복으로 치장하고 나와 같은 가이낙스 스탭들이 무지하게 놀랐다는 일화가 남아있다(뉴타입 100% 시리즈 '역샤' 단행본에 당시의 깔끔한 모습의 사진이 있다.). 이 정도면 거의 구루로 숭배하는 수준이 아닐지...

이 때 뉴건담을 디자인해달라는 토미노 감독의 의뢰를 받고 다른 쟁쟁한 디자이너들과 디자인했는데...안노가 낸 디자인은 RX-78-2 그 자체였다. 물론 토미노 감독은 엄청나게 화를 내며 "안노, 이 멍청한 놈. 캭 디져버렸으면 좋겠네"라고 말했다고...이런 말까지 듣고 존경하다니 오오 안노 오오!참고로 안노 본인은 이런 욕을 듣고도 싱글벙글댔다고 한다(...) 이 정도면 빡 도는 것이 정상이다...

[1]
아내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그의 리즈시절. 한국의 모 코미디언을 닮았다는 낭설이...

토미노 영감님은 2010년 방한 당시에도 "에바에서 '뭐시기짱'(아야나미 레이)이 붕대 감아놓은 건 고통을 표현한 게 아니고 그냥 패션"이라 말하며 안노를 깠다. 하지만 안노를 싫어하냐는 질문에는 "그냥 아는 사이 정도다. 그런데 내가 속이 좁아서 그런가 후배가 잘 되니까 배가 아프다. (웃음)" 정도로 반응. 익히 알려진 것과 달리 토미노는 안노를 그렇게까지 미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다 2016년, 안노의 신 고지라가 흥행을 하게되고, 결국 토미노가 가장 질투나는 두 가지 작품으로 지목되었다.[31]

6 안노와 미야자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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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맨 포즈를 취하는 안노와 그걸보며 "이 미친놈 보게" 라는 제스쳐를 취한 미야자키 하야오

토미노 요시유키를 제일 존경하긴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안노에게 끼친 영향력 역시 절대 작지 않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중한 스토리 등은 토미노와 흡사하기에 시청자가 느끼기에는 토미노의 영향력이 더 커 보이지만, 사실 레이 아웃과 같은 기술적인 면은 토미노보다 미야자키에게 배운 게 많고 또 미야자키와 보다 닮아 있다. 애초에 안노의 애니메이션 인생에서 워너비가 토미노라면 실질적인 스승은 미야자키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만 항상 사이가 좋진 않고 티격태격하는 스승과 제자 사이인데, 아무래도 미야자키가 생긴 것과 다르게 토미노 요시유키, 오시이 마모루와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직설적으로 뱉어 버리는 사람이고 안노의 성격도 결코 유순하진 않다 보니 중간에 좀 안 좋아진 부분도 있었다. 저 위에 나온 '안노의 장점은 솔직함. 에바 같은 걸 만들어서 솔직하게 안에 든 게 없음을 인증하는 용기' 같은 인터뷰도 그렇고 (...) 안노의 '미야상도 늙었다' 등의 발언 등도 그렇고. 그래도 안노는 면전에서 그런 비판은 안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본인 앞에서 하는 미야자키의 직설적인 발언도 대단하다. 짬 찌끄래기다 그거지

여기에서도 에피소드가 있는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시절 거신병 앞에 사람을 그려넣어야 했는데, 안노가 거신병은 잘 그린 반면 사람은 도저히 잘 그리지 못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래도 몇 번 사이가 멀어지고 가까워지고를 반복해도, 근본적으로 사이가 좋을 수 밖에 없는 인연이기에 근래에는 다시 사이가 좋아진 듯 하다. 이 항목에 서술된 것 처럼 에반게리온 이후 지쳐 있던 안노를 다시 재기할 수 있게 용기를 준 것도 미야자키고, 결혼식 주빈 참석이나 바람 불다의 성우를 맡긴 것도 그렇고.

7 인간관계

2002년 만화가 안노 모요코 여사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다룬 《감독부적격》이라는 만화를 안노 모요코가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나이 차이가 11살. 그야말로 레알 이카리 겐도다.[32] 게다가 《감독부적격》에서는 스스로를 기저귀 찬 아기로 그려놨지만 상당한 미인이다. 이전에 안노 히데아키는 성우 히다카 노리코에게 청혼한 적이 있지만 거절당했다. 근데 히다카가 이때 거절하면서 자신은 업계관련인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하는데 정작 그녀는 이후 라디오에서 알게된 연하의 디렉터와 결혼했다.얼마나 안노가 싫었으면...

《감독부적격》을 보면 이 아저씨가 얼마나 중증 오타쿠인지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생생 자타공인 극렬 오타쿠 관찰 일지. 《현시연》에 등장하는 풋사과같은 대학생들은 비교도 안된다. 안노 모요코도 기본적으로 오덕이라 잘 맞는 듯 하고 결혼식장에서 동인지를 돌렸다고 한다.(…) 흠좀무.

결혼 후에 상당히 온화해지고 패션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예로 2006년에 그가 출연한 일본 자동차 기업 닛산의 광고를 보면 의외로 패션이 괜찮아서 흠좀무하게 된다.[33] '닛산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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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TV 프로그램 정열대륙 2004년 2월 22일자 화면 캡처. 감독부적격에 나온 감독군과 120% 닮았다. 부인 안노 모요코의 닦달에 똥배가 없어진 것이 특징.

한동안 모요코 여사가 병에 걸린 바람에 침울했다고 한다. 지금은 신작 연재도 하고 남편과 합동으로 일러스트도 그리는 걸 보아하니 어느정도 회복된 듯 싶다.

99년에는 소행성 1994 VY이 9081 Hideakianno로 명명되기도 했다. 발견자이자 명명자는 그의 고교시절 급우 나카무라 아키마사로 에바 때문에 집중 포화를 받고 있던 안노에게 힘내라는 의미에서 그 이름을 신청했다고. 역시 친구는 잘 사귀고 볼 일이다.[34]

8 작품 성향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애니메이션 업계의 정점에 오른 사람이지만, 한편으로 《에반게리온》 이후로 명확한 성공작이 없다는 비판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 비판은 미묘한 부분도 있는데 본래 안노는 대중적인 작품에는 관심 없고 실험작에만 관심 있는 사람이며, 시청자나 스폰서가 뭘 요구하든 그냥 자기 맘대로 만드는 사람이다. 안노의 대표작들인 《톱을 노려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 역시 위의 설명이나 각 작품 항목들만 들어가봐도 제작 비화가 상업적인 내용을 요구하는 스폰서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안노의 싸움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즉, 안노는 애초부터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굉장히 힘든 성향을 띠고 있다. 오히려 《에반게리온》의 엄청난 인기가 기형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에반게리온》 역시 팬들조차 인정할 정도로 매우 마이너한 성향을 띠고 있다. 그런 작품이 인기를 끌 수 있던 것은 안노의 노력과 재능이 결집된 작화와 연출 솜씨, 그리고 비교적 왕도에 가까웠던 중반부 스토리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에바》조차, 관련 논문이 몇 편씩 나올 정도의 작품성을 인정받고도 세간에는 어디까지나 '오타쿠 애니메이션'의 대표 정도로만 인식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마이너성을 엿볼 수 있다.

아무튼 실험 정신만은 정말 투철해서 심지어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넘나드려는 시도까지 한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는 도중에 실사 영상을 집어넣기도 하고, 《그 남자! 그 여자!》에서는 원작 만화 장면을 그대로 넣기도 하였으며, 이후로는 진짜로 영화 사업에까지 뛰어들고 있다. 이렇게 《에반게리온》 이후에는 자기 이름값으로 스폰서의 요구를 뿌리칠 수 있어서인지 정말 별의별 시도를 거침없이 하고 있다. 그 바람에 평범한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작품들만 만들고 있어서 비판을 많이 받고 있지만, 이런 투철한 실험 정신 덕분에 애니메이션 업계를 뒤흔든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란 작품이 나온 것이니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다만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자기가 수익을 책임지는 작품이어서 그런지 상업성도 어느 정도 고려해서 만들고 있는 것 같다.[35] 마키나미 마리 일러스트리어스바스트 모핑 장면 콘티에 '야하게, 피규어 팔리게'라고 적은 일화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9 작품 목록

9.1 감독 작품

9.2 그외 작품

10 기타

시로바코에서 칸노 미츠아키로 등장한다. 잠깐 나오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뒤바꿔 놓는다.
  1. 돈 벌고 결혼도 하면서 부인한테 관리를 받아 저 정도지 결혼 전에는 그야말로 " 나 오타쿠요 "라고 광고하고 다니는 몰골이었다. 바로 위에 있는 99년 당시 사진만 봐도.
  2. 야키는 한국어로 '~구이'라는 뜻이다. 근데 일본 요리 상당수가 '야키'로 끝나기 때문에 '야키'라는 어미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안노의 이름도 히데키라고 오인하는 경우가 무척 흔하다. 안노가 유명해지고 이십년이 지났지만 이 문제는 고쳐질 기미가 안 보인다...
  3. 자잘한 직함을 붙이자면 더 많다. 감독한 작품의 각본도 썼고, 자기가 만든 특촬물에 직접 출연했으니 배우라고도 할 수 있고, 《바람 불다》에선 우정 출연 정도가 아니라 주인공 성우를 했으니..
  4. 데포르마시옹.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실 묘사에서 이것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왜곡하여 변형시키는 미술기법. 본문에서는 Super Deformation(흔히 말하는 SD캐릭터의 그 SD, 인물의 특정 부위를 과장 시키는 카툰에서 파생된 회화기법)의 뜻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사람 그리라하면 만화 그려놓는다는 소리.
  5. BGM은 《기동전사 건담》의 명브금 From Sleep의 후반부.
  6. BGM은 고지라 시리즈의 "괴수대전쟁 행진곡 .
  7. 이 두 작품은 시마모토 카즈히코가 자신의 오사카 예대 재학시절을 모티브로 그리는 만화 《아오이 호노오》(안노 등 실제 인물도 등장)에 전 컷 실려있기도 하다.
  8. 비오덕들에겐 Midnight Blue와 Mr. Blue Sky, Last Train To London으로 유명하다.
  9. 다이콘3에는 스튜디오 누에 팀(이들도 SF동호회 출신의 1세대 오타쿠들)이 왔었는데, 이때 만난 인연으로 프로의 애니메이터들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해서 스튜디오 누에가 만들고 있던 마크로스 TV판 작업에 견학을 갔는데, 이때 이타노 이치로가 느닷없이 컷봉투 원화를 주면서 이거 고쳐보라고...그렇게 메카반(班)에 들어가 3개월간 마크로스 원화를 그린다. 때문에 안노 히데아키는 자신은 동화를 그린 경험이 없어서 그림이 서툴다고 겸손을 떨었다. 그리고 잠잘 곳이 없던 안노는 이때 이타노 이치로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의 인연으로 나중에 마크로스 극장판에도 원화로 참가한다.#
  10. 잡지 아니메쥬에 실린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화 스탭의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 응모할 때 가져간 원화를 미야자키가 보고 그 재능을 높이 평가받아 까다롭다고 여겨졌던 클라이막스 씬의 거신병 등장 씬을 맡긴다. (실상은 인력부족이었는데, 안노 말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격이었을꺼라고. 스즈키 토시오 말로는 그런 어려운 씬은 젊은 애들에게 맡겨야 필사적으로 하니까 일부러 맡긴 거라고.) 안노가 나중에 밝히기길, 자신은 거신병씬의 타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야상'은 작화팀에 여유가 없어서 개봉일자에 못맞추니 그걸루 됐다고 하고 (본래 그림 콘티에는 거신병과 오무가 직접 대결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제작일정상 삭제되었고), 거신병의 그림자도 색을 더 넣어서 거대한 입체감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야상으로부터 2색까지 늘리는 것은 허락하나 3색으로 늘리면 죽여버린다는 쪽지를 받았다고, 안노는 스탭들 몰래 타임을 늘려 원화를 그려버렸지만, 지금도 거신병이 무너져지기 전에 머리를 하늘로 쳐들고 고개를 한바퀴 돌리면서 녹아내렸어야 했다, 그리고 거신병이 녹아내리는 씬도 원화와 원화사이의 동화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동화 5장이면 된다고 지시했는데 동화 7장을 넣었어야 했다. 녹아내리는 것이 너무 빨라서 러쉬 필름을 봤을 때는 죽고 싶었다고 실패작이었다고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그 후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말은 안듣게 되었다고. [2]
  11. 그리고 이 3개월간 카나다 요시노리와도 함께 일했는데, 카나다는 애니메이션은 대충 할 곳은 대충해도 된다고 가르쳐줘서, 안노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며 전력으로 집중해야 할 장면과 힘을 빼야할 대목은 빼는 연출을 하게 된다. 풀이하자면, 정해진 예산이 100이라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까지 일일히 공을 들이면 전반적으로 퀄리티가 낮아질 뿐으로, 보여주고 싶은 대목에 80을 들이고 나머지는 20으로 대충 해도 된다는 뜻이다.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의 '섬 편'은 버려야 할 대목은 버린 좋은 예.
  12. 실제로 아니메를 직접 가르쳐 준 사람은 이 두 사람이라고 공언. 미야자키는 두 번째 스승이라고. (작화 기술면에서는 이타노, 감독&연출면에서는 미야자키, 사상과 스토리면에서는 토미노 요시유키를 더해서 3으로 나누면 안노가 나온다능)
  13. 안노가 미야자키를 의식하게 된 것은 《미래소년 코난》으로 여동생과 채널 싸움을 해서 이겨서(NHK에서 하는 거니까 봐야한다는 논리로 설득, 여동생이 보고 싶어했던 아니메는 오프닝만 보면 되는 허접이라고 눌러내리고) 닥본사했단다. 《루팡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은 극장에서 2번 연속 봤다고...(동시상영이어서 다른 영화할 때는 로비에서 기다려서)
  14. 또 한 사람의 멘토라 할수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상당히 사이가 벌어진 상태였다. 에바 종영 이후에야 화해했다고.
  15. 이후 나온 이카리 신지라는 캐릭터나 오타쿠에 관한 주제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사실 애니메이터라는 직업 특성 상 건강 관리에 소홀해지기 쉽기 때문에 승부에 집착하거나 프로로 전향하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의 운동을 많이 해줘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16. 마지막 26화에서 주변 사람들이 뜬금없이 신지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면서 박수치자 신지가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은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나디아의 생일을 알게된 친구들이 박수치며 생일 축하한다고 하자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과 똑같다.
  17. 후반부는 에반게리온 TV판 같이 연출된 오픈 엔딩이다. 원작자는 안노의 이런 모호한 엔딩 처리 행태에 열받아 단행본 말미에서 안노를 깠다고 한다.
  18. 나중에 말하길 아니메계에 실망해서, 애니메이션은 하고 싶지 않았고, 실사영화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19. 출전 : 最初は、外注に出した美術にキレたんですよ。ガイナックスにも美監(美術監督)はいたんだけど、スケジュールの都合で外部に出したら、それがちょっと不本意な仕上がりだった。でも、リテイクする為のお金が無いわけ。それで美監に頭を下げて「直してくれ」って頼むんだけど、「時間も無いし、やってられないよ!」と断られてしまったんです。そうすると庵野は、しばらく下を向いてたかと思うと、急にブルブルって全身が震え出した。で、いきなりその辺の本棚に頭をガンガンぶつけ出して、涙をボロボロ流しながら「チクショー!チクショーッ!!」と叫び始めたんです。そしたらとうとう美監が根負けして、「泣くヤツには勝てねえよなあ」って(笑)。その後、全員が徹夜で直すっていうような状況でしたね」(太田出版『スキゾ・エヴァンゲリオン』より.
  20. 단 이 사건은 '실력이 없는 한국에 하청을 줘서 망친 것'이 아니라 스케줄 등 여러 트러블이 겹쳐 하청 이전에 '도저히 정상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정설인 듯 하다. 사실 무인도 편을 보면 단순히 작화 퀄리티 운운하기에 앞서 콘티 혹은 시나리오 자체부터 망가져 있는 에피소드가 부지기수였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무인도편은 일본에서 한국에 하청한 분량이 너무 많아 한국에서 하청 들어온 물량을 다른 나라의 회사에 재하청을 했었다고 한다. 그 사정이 이렇다. NHK는 기획회의 단계에서 오카다 토시오에게 일본에서는 원화만 그려주면 나머지는 한국이 다 해줄 거라고 (물론 제작비 절감 차원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에게 하청) 호언장담을 했고, 순진한 오카다는 이것을 가이낙스 사원회의에서 말하고, 안노의 반응은 "정말이야?"라고 시큰둥. 애당초 안노는 당시의 한국 애니업체를 믿지도 않았다.(이미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TV판에 참여해서 한국측의 작화 붕괴에 쓰디 쓴 경험을 맛본 적이 있었다) 결국 그의 예상대로, 한국 업체에 맡긴 작화는 개판이었고, 당시의 사다모토 작화감독은 한국에서 날라온 저질 작화 고치는 것에 지쳐서 뚜껑이 열려서, 성질내고 오토바이 타고 쌩까고 가버렸을 정도다. 오카다 토시오는 이 후 혐한 성향이 돼 버렸다. 자세한 내막은 여기로... 그런데 120엔만 줘놓고 그 이상의 작화수준을 요구하는건 거의 착취다..
  21. 무사카, 레우루라
  22. 에반게리온 작품 구상 작업 도중에도 TV 방송시간이 되면 작업을 내팽겨치고 사다모토 요시유키에게 세일러문 보러간다고(...) 했을 정도
  23. 상술했다시피 본인이 원화작업으로 참가했던 미소녀 전사 세일러문 S 극장판을 보고 치바 마모루의 소년시절 성우로 나왔던 오가타 메구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당시 구상중이었던 에반게리온의 신지 역을 맡겨야겠다고 사다모토에게 제안했다.
  24.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등장하는 거신병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것이라서 당연히 허락을 맡아야 했고,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가 찾아가 부탁하자, 그 즉시 흔쾌히 승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나우시카는 안된다고 한다.
  25. 그러나 우주전함 야마토 2199 제작에 참여했다!
  26. 그리고 이 코멘트에 대한 몇몇 덕후들의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에반게리온: Q 참고.
  27. PREMIERE 97년 5월호
  28. 건버스터 리마스터판 특전 DVD에 수록된 인터뷰에서는 처음엔 이런 패러디뿐인 작품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29. '역습의 샤아'에서 전함 디자인과 일부 메카의 원화를 담당했다. 0080에서는 변명을 써서 역시 일부 메카의 원화를 그렸다고. V건담에서는 가이낙스 스탭를 끌고나와 자원봉사까지 했다.
  30. 이 때 토미노가 무슨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안노는 '토미노 선생님이 알몸으로 춤추는 것 같았다'라는 발언으로 표현한 바 있다.
  31. 나머지 하나는 너의 이름은이다.
  32. 에반게리온에서 겐도와 유이의 나이차이가 10살이다. 이쪽은 1살 더 많다!
  33.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에 게스트 출연해서 그 이유를 말했는데, 아내가 나 때문에 부끄러워지면 안되니까라고 한다. 예전의 무신경함이 다 사라진 듯...
  34. 이 친구의 이름은 나카무라 아키마사. 지금까지 111개의 소행성을 발견했는데, 안노 이외에도 도고 온천, 타카스기 신사쿠, 히로시마 카프(...), 호빵맨, 가면라이더(...), 도련님, 언덕 위의 구름(...) 등 하나같이 기괴한 이름들을 붙였다.
  35. 사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은 별다른 스폰서 없이 본인의 사비로 제작해서 자칫 흥행이 실패하면 파산할일이기에 상업성을 고려해서 만들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