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이 모토타다

1 일본 센고쿠 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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鳥居元忠 [토리이 모토타다/조거원충]
1539~1600

도쿠가와 가의 가신으로 타다요시의 아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마가와 가에 인질로 있을 때부터의 최고참 가신이다. 이에야스를 따라 각지를 전전한 역전의 장수로 이에야스가 다케다 신겐에게 대패한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는 부상을 당해 죽을 때까지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후다이 다이묘 중 하나로 서군의 이시다 미츠나리에 대해 끝까지 도쿠가와가에 대한 충성심을 견지하면서 후시미 성에서 농성했다.[1] 그러나 결국 성은 함락되었고, 모토타다는 끝까지 싸우다 스즈키 시게토모[2]의 손에 죽었다. 이 전에 이에야스와 마지막 술자리를 가지면서 50여년간의 회포를 풀었는데, 이에야스는 그와 헤어지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정하다는 이미지가 강한 이에야스가 눈물을 보였다는 몇 안 되는 기록 중 하나.

생전 이에야스가 자신에게 표창장을 주려 하자 표창장은 다른 다이묘에게 등용될 때나 필요할 뿐 나에게는 전혀 필요 없다 말할 정도로 곧은 충절을 가진 인물로 훗날 미카와 무사의 귀감이라 불리게 된다.[3]

모토타다 사후, 토리이 가문은 요절한 장남 대신 차남 토리이 타다마사가 가독을 이었고, 아버지의 모토타다의 전공 덕분이었는지 시모우사 야나기번 4만석, 무츠 이와키타이라번 12만석, 데와 야마가타번 24만석으로 차례차례 승진했다. 그러나 손자 때 부터 뭔가 일이 꼬여 가이에키[4]를 당하고, 여차저차 해서 다시 시모츠케 미부번을 받아 번은 막말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이 미부번의 고쿠다카는 고작 3만석. 그나마 이것도 모토타다 덕분에 막부로부터 다시 받은 거였다.

으리의 미카와 무사라고 하지만 진정 으리스러웠던건 이 양반밖에 없었다 하더라[5]

2 대중 매체에서

2.1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아시아 왕조에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캠페인 등장인물 목록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대전사아시아 왕조
액트1. 피액트2. 얼음액트3. 강철액트1. 불액트2. 그림자액트1. 일본액트2. 중국액트3. 인도
주인공모건 블랙존 블랙아멜리아 블랙나다니엘 블랙체이튼 블랙사쿠마 키치로지안 후앙나니브 사히르
서브
영웅
엘리자벳 램지카넨케조지 워싱턴성난 말토리이 모토타다라오 첸프라바르 파텔
사힌노나키쿠퍼 소령카넨케도쿠가와 이에야스
알레인 매그넌워릭피에르 보몽스벤 쿠첼러윌리암 홈이시다 미츠나리왕 진하이조지 에드워드슨
델가도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NPC칠체스튜어트 블랙시몬 볼리바르노나키아멜리아 블랙--바하두르 샤
조지 워싱턴칠체
600px

오른쪽의 뿔 투구를 쓴 장수. 왼쪽은 사쿠마 키치로.

Daimyo Torii Mototada[6]

성우는 손종환. 아시아 왕조의 일본 캠페인에서도 첫 미션인 오사카 성 점령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 휘하의 장군으로 등장하며, 가상의 인물인 미숙한 청년 장군 사쿠마 키치로에게 조언을 하는 등의 역할을 보였으나, 역사처럼 후시미 성(伏見城)에서 열세의 병력으로 농성하다 생을 마감한다.

다만 죽음에 관해서는 서사적인 장엄함을 더하기 위해서인지 할복 자살로 표현하였는데, 실제로는 적병을 하나라도 더 처치하기 위해 할복을 거부하고 전사하였다 한다.[7]

2.2 바사라의 토리이 모토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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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는 호리카와 진. 다테 마사무네 스테이지의 중간보스로, 수송기를 타고 등장. 쉬운 편이나, 조심하지 않으면 다소 어려운 상대.

2.3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鳥井元忠.jpg

능력치는 그냥저냥한 B급이지만 의리 하나는 97로 상당히 높다.

2.4 사무라이 디퍼 쿄우

주역급 인물인 적호(베니토라)의 회상에서 가끔 등장한다. 여기서는 백발의 수염이 없는 무사. 가끔 적호가 '토리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작중에서 적호가 굉장히 따랐던 인물로 묘사되며, 역사대로 세키가하라 전투 전에 후시미 성에서 전사한 상태. 아버지 이에야스가 토리이 모토타다의 죽음에 대해 냉정한 태도를 유지한 데 실망한 것도 부자 사이가 나쁜 원인 중 하나로 묘사된다.
  1. 시마즈가의 문서에선 이 전투때 도와주러 온 시마즈 요시히로를 받아주지 않아 시마즈가 서군에 가담했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2. 스즈키 시게히데의 아들이자 그의 뒤를 이은 사이카 마고이치.
  3. 이름대로 사셨다. 모토타다 → 元忠 → 충성이 으뜸.
  4. 영지 몰수
  5. 사실 농담만은 아닌게, 각종 전국시대 매체에서 '충의의 미카와 무사'라고 묘사되지만 정작 이에야스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부터가 가신에게 살해당했다. 사실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대패한 이에야스를 대신해서 죽은 가신들이나 나가시노 전투 직전에 다케다군에 책형을 당해 죽은 토리이 스네에몬의 사례도 있지만, '충의로운 미카와 무사' 이미지는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된 후 막부에서 일종의 프로파간다성으로 만들어낸 일면도 어느 정도 있다. 특히 이에야스를 오래 섬긴 고참 가신이자 장렬하게 전사한 모토타다는 그런 '미카와 무사'의 아이콘이 될 만했다.
  6. 한국판에서의 명칭은 토리이 모토타다 영주.
  7. 한국선죽교 전설과 비슷하게 모토타다가 죽은 후시미 성에는 그와 병사들이 흩뿌린 피가 말라붙은 혈천정(血天井)이 남아 있었다. 성지 순례를 하고 싶지만 슬프게도 현재의 후시미 성은 당대의 것과는 다른 건축물로, 정식 명칭은 후시미 모모야마 성(伏見桃山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