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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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속의 골키퍼

이름윌리엄 헨리 "패티" 포크
(William Henry "Fatty" Foulke)
생년월일1874년 4월 12일
사망년월일1916년 5월 1일
국적잉글랜드
출신지돌리
포지션골키퍼
신체조건193cm / 150kg(!!)
등번호-[1]
소속팀셰필드 유나이티드 FC (1894-1905)
첼시 FC (1905-1906)
브래드포드 시티 (1906-1907)
국가대표1경기 (1897)

1 생애

윌리엄 헨리 포크는 크리켓축구 골키퍼를 겸업했던 선수이다. 그는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를 상대로 1894년에 데뷔했다 알려져 있으며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 11년간 300경기를 뛰며 1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1905년 당시 창단 팀이던 첼시에 50파운드의 이적료로 이적했으며 주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즉, 포크가 바로 첼시의 역대 첫 주장이다. 하지만 첼시에서는 그의 유리멘탈[2]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는 첼시에서 방출되어 마지막을 브래드포드 시티에서 보냈다.

1916년 포크는 간경변으로 사망하였다가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조사에서는 간경변이 아닌 가난으로 인해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확한 사인 역시 모른다. 나무위키에 등록된 축구 관련 인물들 중 가장 사망일이 빠른 인물일듯

2 몸무게

패티 포크 항목의 존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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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위 사진에서 보듯 기록적인 덩치 때문에 패티 포크는 수많은 화제 거리를 낳았다. 일단 193cm라는 키는 지금으로 따져도 엄청난 위압적인 키이다. 하지만 더 큰 화제는 역시나 몸무게. 그의 몸무게에 정확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덩치 등에서 추론했을 때 최소한 140kg은 넘는 것은 거의 확실하며 150kg대가 일반론이다.[4]

포크가 처음부터 저런 덩치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처음 데뷔할 때 그의 몸무게는 81kg 수준으로 그의 키를 감안하면 정상적인 몸무게. 하지만 지속적으로 살이 찌다보니 저렇게 몸무게가 폭증하였다. 이 덩치로 인해 그는 참 소설 같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는데 바로 골포스트를 부러뜨린 것. 원래 패티 포크는 골대에 매달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평소대로 골대에 매달렸던 포크. 하지만 그의 육중한 몸을 버티지 못한 골대가 아예 아작이 나버리고 말았다.[5] 그로 인해 경기가 중단되고 말았다고(...)

패티 포크가 뛰던 무렵의 축구장에는 볼보이가 없었다. 그래서 공이 골라인 밖으로 나가면 골키퍼가 주워오곤 했는데, 패티 포크에게는 이 일이 무지 귀찮았다. 그래서 그는 밖의 아이들에게 공을 주워오라고 시키곤 하였는데 이것이 볼보이의 시초라는 설이 상당히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3 who ate all the pies

세계 최초의 축구 응원가로 알려진 노래가 바로 이것이다. 이 노래의 유래는 1938년에 출판된 "Knees Up Mother Brown"이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다. 그 당시 영국에서는 축구 관중들이 경기 시작 전 또는 하프 타임 때 고기 파이를 먹는 것이 관습이었다한다. 하지만 이 고기 파이가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은지라 이를 못 받은 관중들은 그에 대한 아쉬움을 선수들, 특히 좀 비만인 선수들에게 푸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무렵 패티 포크가 데뷔했고 점점 살이 쪄가면서 이 노래는 점차 그에게 불리는 경우가 많게 되었고 아예 나중에는 그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노래 가사는 결코 선수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Who ate all the pies?
(누가 저 파이들을 다 처먹었나?)
Who ate all the pies?[6]
(누가 저 파이들을 다 처먹었나?)
You fat bastard
(너구나 돼지XX야!)
You fat bastard
(너구나 돼지XX야!)
You ate all the pies!
(네가 다 처먹었구나!)

4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몸에 비해 플레이가 그리 둔하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으로도 큰 체격인 그 신체조건은 상대 공격수에게 충분한 압박이 되었을 것이다.

5 뒷 이야기

  • 1902년 패티 포크는 사우스햄튼 FC와의 FA 컵 결승전에서 심판의 동점골 선언에 큰 불만을 품었다. 하필이면 라이벌 폴 로빈슨과의 대결에서 골을 허용한 것이라 더 열이 받았던 포크는 심판을 찾아가서 항의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때 포크는 나체로 드레싱 룸을 나와 심판에게 쫓아가는 등 심판에게 항의를 하는 게 아니라 심판을 말 그대로 죽일 기세였으며 심판은 포크의 이 기세에 쫄았다. 불쌍한 심판은 빗자루를 보관하는 장롱에 숨었으며 포크는 스패너까지 들고와 이 장롱의 경첩을 뜯어내려하다 제지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포크에게 쫓겨 다녔던 심판 톰 컬컴은 재경기까지 심판을 보았다고 한다.
  • 1902년 미첼 앤 캐년스라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6 수상

6.1 클럽

  1.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2. 그 즈음의 포크는 수비수가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자기 발로 필드를 나가버리곤 했고, 상대 공격수들 역시 자기의 골대로 밀어버리곤 했다한다.
  3. 물론 가운데의 눈에 띄는 사람이 패티 포크이다.
  4. FIFA 시리즈위닝일레븐등의 축구게임에서 저런 몸무게의 선수는 만들 수도 없다!
  5. 당시 골대는 나무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6. 이 부분을 The burgers and the fries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